어느 미치광이의 낙서

쿠라라네 작성일 09.10.29 17: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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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한 낙서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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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장난인가 싶어 무심코 지나쳤던

어느 골목길의 담벼락 낙서.

 

 

 

 

 

 

구불 구불하고 제멋대로 휘갈긴 못난 글씨로

굵게 적힌

 

 

 

 

'민주주의여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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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이 동네 미치광이의 소행이리라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해 여름,

들리는 풍문에 낙서의 주인은

뼈도 못 추리고 흠씬 두들겨 맞아 객사했다더라

머리 위로 피가 솟구쳐

끈적하게 온 얼굴을 뒤덮고

허연 치아가 검붉게 범벅이 된 꼴로

 

 

웃으며 단 한마디 남겼다더라

 

 

 

 

'민주주의여,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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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단단히 미 친 놈이로구나

 

 

벌건 대낮에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친구는

한숨처럼 한 마디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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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미치광이의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라

 

 

 

 

괜찮아

별거 아냐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오로지 내 입에 풀칠만 잘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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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퇴근 후 골목길 담벼락에

 

 

 

미치광이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하나가 아닌 둘로

셋으로

넷으로

 

 

 

 

 

'민주주의여! 일어서라!'

'민주주의여! 일어서라!'

 

 

 

 

 

'민주주의여! 일어서라!'

 

 

 

 

광인(狂人)들의 낙서로 담벼락은 꺼멓게 몸살을 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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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미쳐갔다.

미치광이들은 담벼락에서 길거리로 광장으로 

마구 쏟아져 나왔고

 

 

 

 

나는 방구석에 누워 조용히 이 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미치광이의 죽음을 한숨처럼 내뱉은 친구가

며칠 전, 어느 길가에 차갑게 나뒹구는 모습을 보았다는 얘기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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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미치광이들은

시퍼런 새벽 빛에 이슬처럼 사라지고 

밤사이 영글고

 

다시 사라지고

다시 영글고

 

 

 

 

 

왜,

어쩌다

 

모두들 미쳐가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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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원하는 걸까

민주주의가 무엇이기에

 

 

 

 

우리 집 담벼락도

내 친구도

 

 

 

모두 미쳐버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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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섧게 울던 밤이었다

 

 

 

 

요란한 호각 소리에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듯 울어제끼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시멘트 바닥에 질질 끌리는 슬리퍼짝 소리에

 

 

 

 

미 친 놈마냥

 귀를 막고

입을 막고

눈을 막고

 

 

 

 

 

두터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느라

숨이 막혀 환장하겠지만

 

 

 

그래,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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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광인들의 시대가 흘러 흘러

 

 

 

 

 

이불을 걷어 내렸을 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세상은 조용했다.

 

 

 

 

그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세상은 눈부시게 변해있었다.

 

 

 

 

시커먼 담벼락은 이미 누군가 새 하얗게 페인트 칠을 해놨고   

거리엔 미치광이 대신 웃음이 넘쳐났고

 

 

 

 

나처럼 모두들 제 살기 바쁘게 지냈다

꿈도 있었고

희망도 피어 올랐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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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던 그 어느날,

푸른 빛이 감도는 새벽을 벗삼아

여느 때처럼 담벼락을 따라 길을 나섰고

 

 

 

나는 또 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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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여! 일어서라!'

 

 

 

 

 

가난을 사랑했고 눈물을 사랑했고

신념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했던

오로지 가슴 속 뜨거운 사랑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셨던 나의 캡틴.

 

 

 

죽어도 죽지 아니하고

내 가슴 속에 활활 타올라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로 살아 나시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통령 두 분 모두

아픔이 없는 세상에서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두 분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글쓴이 올림.-

 

 

 

 

 

출처  다음 카페 소울드레서 / ⓧ살랑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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