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인물] 조선의 마지막 노블레스 오블리주

행동반경1m 작성일 09.10.30 01:43:01
댓글 6조회 973추천 6

 

125683438265267.jpg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삼한갑족(신라, 고려, 조선 3조에 걸쳐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인 경주 이씨 백사공파 집안 출신으

 

로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의 11세손이자 독립열사였던 우당 이회영 선생님입니다. 그의 집안은 이항복 이후로 10명

 

의 재상(영의정 9명 ,좌의정 1명 ㅎㄷㄷ)을 배출했으며 아버지는 이조판서직을 지냈던 이유승이며 그의 동생 이시영은 대한민

 

국 초대 부통령까지 지낼(이승만의 독재 정권 때문에 바로 사퇴합니다. 집안 분위기가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듯ㄷㄷ) 정도로

 

조선조 최고의 집안이였습니다.

 

그는 일제에 조선이 병합되기전 안창호, 이동녕과 함께 1907년에 신민회를 만들고 1908년 장훈학교를 세워 독립 운동을 준비

 

했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자신의 형제 6명과 함께 모여 일본에 충성할 것인지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할 것인지 회의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려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정했고 지금까지 가문에서 모와 온 모든 재산을 가지고 만주로 떠나게 됩니다.

 

형제들이 만주로 떠날때 두만강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강을 건너면서 뱃사공에게 2배의 돈을 더 주고는 "일본 경찰이나

 

헌병에게 쫓기는 독립투사가 돈이 없어 헤엄쳐 강을 건너려 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배로 건너게 해주시오"라고

 

했답니다... 참 가슴이 찡하게 만드는 말이죠..?ㅠㅠ

 

그는 만주에가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명칭이 바뀌는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여 독립군 양성에 박차를 가했고 

 

고종의 중국망명까지 계획 하지만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독립운동으로 재산을 모두 써버려 가족들은 중국빈민가를  전전했고 끼니를 못 잇고 굶는건 다반사였고 

 

부인들은 바느질을 해 돈을 벌었는데 하도 바느질을 해서 

 

손가락이 개구리 손가락이 됐고 옷까지 팔아 가족들이 밖으로 나가지도 못 할 정도로 열악했지만 가족 누구도 불평 한마디 없

 

이 의지로 블라디보스토크와  베이징 상하이를 전전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그는 중국에서 '흑색공포단'이라는 행동대를

 

 조직하여 활동해 일제의 요주 대상이자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32년 11월 지린성에 근거지를 확보하고

 

지하 공작조직과 만주 일본군사령관 암살을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다롄으로 가던 도중 끝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

 

문 끝에 타국 땅에서 옥사하게 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 65세..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또 그의 형제 6명중 그를 포함해 5명이 독립전에 타국에서 사망했으며 대다수의 가족들은 고문이나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가문과 재산, 가족 모두를 버리고 자신의 삶까지 바친 우당 선생님은

 

지금 친일파가 아직도 처단되지 않은 체 권력을 휘두르는 이 나라를 지하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출처 : 다음 I Love Soccer - 孔子님..

행동반경1m의 최근 게시물

정치·경제·사회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