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랴오닝(遼寧)성 카쭤(喀左)현 베이둥(北洞) 2호 유적에서 발견된 ‘기후(箕侯)’란 이름이 새겨진 사각형 청동솥인 ‘기후방정(箕侯方鼎·왼쪽 사진)’과 이곳에 새겨진 문구의 탁본. 학연문화사 제공
“최근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학계의 한국고대사 왜곡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단계를 넘어 우리 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조차 중국사로 보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학계에서는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箕子)조선을 부각시켜 기자조선에서 발해까지 만주와 한반도의 국가들이 모두 중국사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 한국사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조선사연구회장인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최근 출간된 ‘고조선사 연구 100년-고조선사 연구의 현황과 쟁점’(학연문화사)에 실린 글에서 “기자조선의 실존여부가 다시 국제적으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고조선사 연구의 범주를 떠나 중국고대사를 비롯한 북방민족의 청동기 문화에 대한 검토 등 우리학계의 보다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 교수가 우리학계의 고조선사 연구 현황을 조감하고 쟁점을 살펴본 ‘고조선사의 쟁점과 역사현장’에 따르면 최근 한·중 학계 모두 요서 등 중국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갑골문과 금문에서 나타나는 ‘기후(箕侯)’가 문헌상의 ‘기자’로 주목되면서 기자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 박준형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연구사도 책에 실린 ‘한국 근현대 기자조선 인식의 변천’에서 “지난 2002년 중국에서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면서 중국학자들은 단군조선을 신화로 취급하면서 역사적 실체를 부정하는 반면에 기자동래를 역사적 사실로 재구성하고 기자조선을 한국사의 시작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위만의 출자(出自)를 중국계로 보면서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중국사의 범주로 고조선사를 재구성하고 있다고 박 연구사는 지적했다.
고조선사연구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이 함께 펴낸 책은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을 전공한 서 교수 등 8명의 학자들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계기로 한국북방고대사가 국제적인 역사분쟁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실정에서 지난 100년간 축적된 국내외 고조선사 연구성과와 쟁점을 공동연구를 통해 체계적으로 분석 정리해 보여준다.
가령 박경철 강남대 교수는 ‘중국 고조선사 인식의 어제와 오늘’에서 ‘동북공정’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시기를 나눠 중국에서 고조선사 연구와 인식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 교수는 “‘기자동래’의 시기는 은나라와 주나라가 교체하는 기원전 11세기쯤이지만 ‘기자동래론(箕子東來論)’과 ‘기자봉국론(箕子封國論)’ 모두 기원전 1세기쯤 편찬된 ‘사기(史記)’와 ‘상서(尙書)’ 이전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다”며 “기자봉국론이라는 영웅사변기(英雄徙邊記)는 기자·태백(太白) 등 고대에 변경으로 간 영웅들의 서사를 통해 이 지역을 자신들의 혈연적·공간적 영역에 포함시키려 했던 ‘역사심성’의 산물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책에는 고조선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군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4단계로 나눠 체계적으로 살펴본 서영대 인하대 교수의 ‘단군 인식의 변천’과 전통시대부터 현재까지 고조선의 중심 위치에 대한 논쟁과 연구의 흐름을 정리한 박선미 서울시립대 강사의 ‘고조선의 강역과 중심지’ 등의 글이 실려 있다. 북한과 일본 학계의 고조선 연구성과와 현황을 소개한 하문식 세종대 교수와 윤용구 인천도시개발공사 문화재팀장의 논문도 눈길을 끈다. 책 말미에는 공동연구자들이 수집한 20세기 국내외에서 전개된 고조선과 단군 관련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논저목록이 실려 있어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