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故 추명자·이병호씨, 억척스레 모은 돈 노무현재단에 기부하고 하늘로…
"우리 두 사람이 죽은 다음에나 이 사실을 알려주세요. 부탁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추명자(58) 씨와 이병호(58) 씨가 생전에 몇몇 사람들에게 남긴 말이다.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평생을 힘들게 살았던 두 노년의 여성들이 살아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 사람은 30년간 동고동락한 의자매다. 1970년대 두 사람 모두 경남 밀양시의 호텔과 식당 일을 전전하다 우연히
만나게 됐다.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니 남편과 사별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서로의 처지에 동병상련을 느꼈다.
이씨는 혈육이 없었지만 추씨는 정신지체를 앓는 다섯살된 딸을 두고 있었다.
그때 어려운 처지에 서로 의지하고 살자며 의자매의 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20여년 동안 두 사람은 여관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공사장 함바집도 운영하면서 돈을 모았다.
주변에서 억척스럽다는 말을 절로 나올 만큼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고생 끝에 2001년 밀양에 땅을 샀고
이듬해에는 방 14개짜리 3층 건물의 모텔을 지었다. 여관에서 일한 경험을 살리겠다는 뜻이었다.
자그마한 성취를 했던 그때 두 사람은 약속했다.
"우리가 죽으면 이 재산을 병원이나 다른 좋은 곳에 기부해 뜻있는 일에 쓰도록 하자."
모진 세월의 풍파로 행여 좋은 마음이 바뀔까 봐 공증까지 했다.
고생 끝에 찾아온 잠깐의 행복에 마음을 놓았던 탓일까. 그로부터 2년 뒤인 2004년 추씨는 덜컥 암 판정을 받았다.
고통스런 암 치료 과정을 꿋꿋하게 버텼지만 암은 온 몸으로 전이되기만 했다. 삶을 더 이상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이 아팠다.
재단이 설립됐다는 뉴스를 듣고는 자신들의 재산을 노무현 재단에 기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민주주의'같은 거창한 뜻이 아니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힘들었던 삶이 고난으로 점철됐던 자신들의 삶과 오버랩됐기 때문이었다.
날로 악화하기만 하는 추씨의 몸상태와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이 할머니의 마음이 약해졌다.
혼자 남게 되는 데 대한 두려움으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은 지난해 11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추씨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다. 의자매도 갔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직감한 추 씨는 한달 뒤인 지난해
12월 17일 재산의 절반인 2억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나머지 2억원은 딸의 생활비로 쓸 수 있도록 법무법인에 신탁했다.
대구 파티마 호스피스 병동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던 추씨는 그로부터 4개월이 흐른 지난 8일
홀로 서기 어려운 딸과 좋은 뜻을 남기고 훌훌 세상을 버렸다.
추씨의 유골은 밀양 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뿌려졌다.
노무현 재단 관계자는 "평생 힘들게 사신 분들이 자신들의 기부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두 사람을 애도했다.
이런 착한 분들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