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 패배로 여권이 책임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책임론의 한쪽에선 패배 자체를 감지하지 못한 경보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방선거일인 2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은 밝았다. 청와대 옆 신교동 국립농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오전 8시 투표를 하고 나와선 취재진에게 “누구 찍었느냐고 안 물어보나? 일 잘하는 사람 찍었지”라고 농담을 걸 정도였다. 청와대 내에서도 선거에 대해 크게 걱정하는 참모들은 없었다. 격전지의 전망을 물으면 “잘 되겠지”라는 낙관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가 조금씩 흘러나오면서 청와대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뒤늦게 기자들에게 “전망이 어떠냐” “바닥 민심이 어떤 것 같으냐”고 거꾸로 물었다.
결국 오후 6시에 발표된 출구조사는 한나라당 참패를 기정사실화했다. 충격에 빠진 참모들은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머물다 출구조사가 발표된 지 한 시간 만에 관저로 들어가버렸다. 대통령은 그 이후 선거 결과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그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권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에게 올라간 보고서 대부분이 낙관적 전망만 담았다” “희망적 보고를 받고 마음을 놓았던 대통령은 선거 결과가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정무라인이 선거 직전 주말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낸 보고서도 낙관적이었다고 한다. 0.6%포인트 차 신승으로 끝난 서울시장 선거를, 오세훈 후보가 10%포인트 안팎으로 여유 있게 이길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서울 구청장 선거에 관해서도 ‘막판으로 갈수록 우세한 분위기가 더욱 좋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뚜껑을 연 결과 한나라당은 4개 구에서만 승리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25개 구를 ‘싹쓸이’한 데 비하면 참담한 성적이다.
직접 지방을 순회하며 민심을 파악했다는 민정라인의 예측도 빗나갔다. 지사 선거에서 대통령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긴 강원·충북에 대한 민정의 막판 판세 보고는 ‘추격이 강세지만, 격차를 좁히긴 힘들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여기에 대통령의 ‘착시’를 부른 다른 정보들도 있었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전했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선전을 할 것이라는 전제로 선거 이후 강력한 국정 운영 기조를 건의한 기관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주변의 민심 수렴 기능이 이처럼 고장난 원인은 여론조사 결과만을 지나치게 믿은 탓이다. 그래서 청와대 안팎에선 “여론을 수렴하고,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부정적 의견도 더 많이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등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막바지 한나라당 참패를 경고한 수도권 30~40대들의 의견도 들었지만, ‘낙관론’이 대세인 상황에서 이런 의견을 비중 있게 보고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