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쓴 글들 쭉 둘러서 대출 읽어봤는데, 한마디 해주고 싶어서 쓴다. (아참 너네 일베에서는 반말이 에티켓이라니, 거기에 맞춰써도 기분 안나빠하리라 믿고 쓴다.)
먼저 말해두자면 나 내일 아침 8시 출근해야 하는데 오늘 잠이 안와서 이러고 있는거지, 결코 네 상상속의 그런 백수는 아니란다. 이거 얼른 쓰고 잘거야.
이런 얘기를 한 이유가 뭐냐 하면, 네가 저 밑에 ‘백수’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써놔서 그래. 우리나라에 48%를 차지하는 진보개혁적인 사람들을 한가지 범주로 싸잡아서 이해하려 들지 말란 얘기다. 즉 진보 개혁적인 사람 모두가 백수에 사회 불만 세력에, 선동에 잘휘둘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란거야.
물론 그 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촛불시위처럼 거대한 흐름을 만들만한 역량이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설득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는 영업쪽 일을 뛰어보거나 조직에서 리더로서 사람들을 거느려보면 알게 되어있어. 너는 학생이라서 아직 모르겠지만, 사람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냐.
그런데 네가 하는 말들을 가만히 보면 너와 반대되는 정견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로 그런 무뇌아들이라고 진지하게 믿고 있는 것 같애. 나는 그게 안타까운거야.
너네 일베쪽 애들은 대체적으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 진보 개혁 세력 쪽 사람들은 '선동에 잘 휩쓸리고, 이성적 사고보다는 감성적 호소에 잘 넘어간다' 라고 말이야. 그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바로 광우병 얘기이지? 네가 그걸 예로 드는걸 보니까 일베에서 통용되는 전형적인 이론을 들고 나오는구나 싶더라고. 게다가 게시물 제목까지 '여러분 이성을 찾읍시다'라고 하니 말야...
얘기를 잠시 돌려서, 광우병 건을 잠깐 얘기해보면, 네가 아래에서 주구장창 4대강에 대해서 '조금만 기다려 보자'라고 주장한것과 똑같은 말을 돌려주고 싶네. 광우병이라는 병 자체가 잠복기가 수십년이 될수도 있고, 환자가 치매로 사망한건지 광우병인지를 구별하려면 시체를 부검해봐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어서 판단이 매우 어려운 병이라는 게 사실이야. 그러므로 지금 당장 '허위로 드러났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광우병에 대한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생각은 매우 다양했고, '공기로도 전염된다'는 식의 루머를 진지하게 믿은 저연령층부터해서, 외국의 학술 논문을 발췌, 번역한 것을 인터넷에 올리는 수준의 고학력 층까지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들이 있었단다.
즉 대중운동이라는 것은 네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쉽게 한두가지 단편적인 이미지로 정의 내릴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거야.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의 요지도 그런거야. 세상은 아주 복잡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비록 어떤 특정 사안에서 같은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들이 항상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이야. 그리고 민주주의사회는 그렇게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
사실, 보수적인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세상을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어. 이 밑에 신베르크라는 애의 글을 봐봐. ‘뭐가 그렇게 복잡해’, ‘협상하는게 정책이냐 쳐들어가는게 정책이지’라는 인식.. 얼마나 단순하냐? ‘그냥 쳐들어가자. 북한 싫다. 쟤네들한테 왜 굽히고 사냐.’ 뭐 이런 차원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거지.
‘빨갱이’라는 관념도 마찬가지야. 진보적인 의식이 있다 해서 모두가 폭력혁명을 옹호하지 않지. 이 나라에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중에서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것처럼 총을 들고 정부와 맞서서 나라를 뒤집어야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 대부분은 선거를 통해서 바꿀수 있다고 믿고 있지.
그런데 울나라 보수쪽에서 자주 하는 말이 '폭력혁명을 기도하는 빨갱이들' 이런거 아냐? 진보세력=빨갱이=폭력 유혈혁명=무력 적화통일 이런 공식이지. 그래서 '진보개혁세력=무력적화통일' 이렇게 가는 공식이 통용되잖아.
그리고 요즘 보수쪽에서는 진보를 욕할 때 종북 어쩌고 하면서 욕하잖아? 종북이라는 말은 북한의 지령에 복종한다는 건데, 도대체 이나라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통진당? 이번 선거에서 통진당 표가 얼마나 나왔을까? 문재인 지지표 48%중에 극소수 아니었을까?
그런데 보라고, 이번에 보수쪽 유력인사들 중에 ‘서울시장, 성남시장이 종북이다’이런 말이 나오잖아? 결국 저런 식의 단순한 사고 방식이 ‘신베르크’ 같은 이름없는 필부부터 시작해서 사회 지도층에 이르기까지, 보수세력쪽의 공통된 인식 형태라는 거야.
그것은 사실 너도 마찬가지야. 진보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역사가 깊고 학문적으로나 사회 문화적으로 정교하고 깊이있게 발달된 흐름이야. 그런데 너는 그런걸 단순히 ‘이성없이 감성에 휘둘리는 자들’이라는 식으로 도매급을 취급해버려. 이 얼마나 단순한 사고니.
너의 글을 읽어보니까 이제 막 정치와 시사에 관심을 갖게된지 얼마 안된 것 같아. 네 글을 보니 길어야 3년정도 되는 것 같은데, 너랑 논쟁 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인문학적인 소양이나 시사, 정치에 대한 내공, 사회생활도 웬만큼 되는 성인들이란다. 그러다 보니, 딱 보니까 나이도 어리고 아직 뭘 모르는 티가 나는 친구가 ‘이성을 가지고 살아라’, ‘너희들의 태도가 문제다’라는 식으로 싸잡아 훈계를 하는 모습에 얼마나 같잖아 보였겠니. 그런 이유로 너한테 오는 글들이 논리적이고 차분하기보다, 조롱투에 공격적인 내용들이 많았던 거야.
네가 정말 이성적인 대화를 하고 싶었다면 너부터 그런 글로 진지하게 시작했어야 하는데, 너는 어그로부터 끌었지. 그러니 대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건 너의 책임이 커.
이제라도 진지하게 제대로 된 너의 의견을 피력해보길 바란다. 물론 너네 일베에서는 진지하면 씹선비라고 놀린다지만, 네 성향을 보아하니 그런 쪽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