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주말 옛날 얘기나 해볼까 합니다 ㅋ
10.26 청와대의 안 별채에서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커다란 사태후 국민들은 비통함에 슬퍼했지만 한편으로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하나 둘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독재의 차가운 겨울에서 따스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12.12 를 통해 전두환의 신군부가 다시 한번 군부의 서슬퍼런 망치를 꺼내들고 모두는 다시 겨울에 빠지는듯 하게 됩니다.(전두환이 12.12를 일으킬 수 있엇던 가장 큰 이유가 아이러니 하게도 김재규 때문입니다... 조만간 김재규에 관하여 게시글을 써보겠습니다)
이러한 독재의 서슬퍼런 움직임에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따스한 봄이 오고 개강이 되자 서울대를 중심으로 전국 모든 대학이 민주화 시위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5월 서울대 총학생회를 선두로 하여 시국선언이 일어나고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국선언과 군부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납니다.
서울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서울역으로 가두시위를 시작하고. 드디어 서울역 앞에서 모인 많은 수의 학생들과 경찰이 대치하게 됩니다.
학생들 사이에선 공수부대가 투입되어서 진압을 할거라는 소문이 갑자기 퍼지고 4.19 때와 달리 직장인의 참여가 다소 미비하자 서울대총학생회장은 고민에 빠집니다. 이윽고 이때를 노리고 경찰측에서 딜을 제안합니다. 지금 해산하면 모든 학생들이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교통을 마련해 주겠다.
총학생회장이 고민할 때 누군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지금 여기서 물러나면 두번다시 우리는 모일 수 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도 군부을 인정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다소 희생이 따르더라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야 한다."
바로 서울대 총학 중 한명인 유시민이였습니다. 유시민은 해산되는 순간 까지 총학생회장을 설득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경찰에서 준비해준 버스에 모든 학생들을 철수 시킨다. 이 총학생회장이 한때 국회 누드사건으로 우리를 즐겁게한 심재철이다.
심재철과 유시민 그들은 한때 뜻을 함께 했던 동지였지만 지금의 둘은 모습은 자뭇 씁쓸함이 남아있다.
어찌됬든 서울대가 철수하자 지방의 많은 대학들도 철수를 했다... 단 한곳 '전남대'를 제외하고. 이윽고 17일 밤 12:00 유시민이 우려한 대로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다시는 학생들이 모이지 못하였다.
그 5월 서울에 학생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하고 가두시위를 한것을 서울의 봄이라 부르고 심재철이 서울역에서 학생들을 철수 한것을 서울역회군이라 불린다.
아마 그때 심재철이 철수하지 않았다면 전두환의 군화는 광주가 아니라 서울을 짓밟고 있었을지도 모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