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어느 날 변호인 꼭 보러가자고 보채더군요
평소에 제가 정치의 '정'자만 꺼내도 질색팔색하던 친구라, 얘가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나 싶었었는데
워낙에 당시 유행했었잖아요. 근데 제가 또 작년까진 20대라 20대 특유의 에고이즘을 다 털어내지 못했었는지 유행에 대한 반감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여친이랑 깨져버려서 못 보게 된 영화였는데, 주말이라고 여유롭게 영화감상 하고 왔습니다.
고문장면에서는 별 생각 없이 오징어 우물거리고 맥주로 입가심하며 보다가
법정에서 송강호가 강인한 눈초리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뻔하디 뻔한 몇 마디를 울분을 토해내듯 하는 장면에서 나도 따라 눈물보가 터져버림. 뭐 막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어쩌고 하는 장면이었던듯
너무 뻔한 이야기고, 술자리에서 누가 같은 말을 입에 담았으면 좌중이 웃음바다가 됏을 법한 이야기인데, 그렇게 선명한 눈초리로 짓씹듯 내뱉는 송강호의 내면연기에 나도 모르게 홀려버림;; 나이 서른이 영화보다 눈물 짬;;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쌓인게 많았나보네요
마지막에 변호인 99명인가가 네, 네 하면서 호명과 함께 일어서는 모습까지 보고 잠깐 담배 한 대 피우면서 머리 비우고 오니
해탈을 했는지 선비가 됐는지;;;
요즘 선거철이라고 난리법석인 극우계 트위터리안, 블로거, 그리고 여기 게시판에 서식하는 몇몇 종자들이 귀여워보이기 시작했음;; 미친듯
그래, 그들이 과장없이 피땀으로 빚은 민주국가라서 저런 놈들도 설치고 다니는 거겠거니 생각되니까
갑자기 마음이 넓어지고 없던 호연지기가 샘솟음;;; 영화 보기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정치혐오증, '이 시국에도 저런놈들이? 우리나란 영원히 안 돼' 하면서 침을 탁탁 내뱉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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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는 정말 행복한거고, 지금 시국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만연할지라도
그래도 우린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행복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