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전 일을 어찌어찌 쓰고 출판사에 투고라는 걸 해봤는데… 결과는 뭐….ㅋㅋㅋㅋ
작문이란 걸 배워본 적도 없고,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많이 읽는 편도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죠?? 뭐,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실망은 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ㅋㅋㅋㅋㅋ
이벤트라는 것도 하고 있고,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랐던 마음에 썼던 글이기에 부끄럽지만 조심스럽게 올려봅니다.ㅎㅎ
여는 글
‘카미노(산티아고 순례길)가 허락한 사람만이 카미노를 걸을 수 있다.’
10년 전 9월 그 길을 걸을 때 어느 한국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수십, 수백 년 전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약간의 체력과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니 아직도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누구나 걸을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선택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순례자’의 저자 파울로 코엘류가 ‘알레프’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바로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찾는 ‘프랑스길’만 해도 800km에 육박한다. 다른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걷기만 했을 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에게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갈망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만 간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그 길로 이끄는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10년 전 처음 그 길을 걸을 때의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도 같은 질문을 할지 모른다. 왜 10년이나 지난 지금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그동안 참아왔던 대답은 ‘이제야 쓸 수 있게 됐다.’이다.
걷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성한 여행기가 있었기에 내용을 잊을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한 달여의 시간을 완벽하게 기억할 수 없기에 여행기를 보더라도 가끔 기억이 가물가물한 날이 있다. 어라? 뭐지?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지? 왜 이런 내용을 쓴 거지? 도대체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거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진을 보며 그날로 돌아가 본다.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그날의 내가 되어 길을 더듬어 걷다 보면 며칠 전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10년이 흘렀음에도 마치 첫사랑과의 추억처럼 그 길은 아련하지만 확실하게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큰 부담이 되진 않았다. 다만 그때가 영영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이따금 찾아오긴 했다.
순례길은 걷는 이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지와 사연들이 공존한다. 그들 모두 원하는 답을 얻거나 의미를 찾는 건 아니다. 길 위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첫발을 디딜 때와 마지막 발을 뗄 때 바라고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무언가와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무 것도 얻지 못하거나 산티아고라면 치를 떨며 다시는 스페인 쪽으로 오줌도 안 눌 거라던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난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첫발을 디딜 때 바라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그 길이 내게 준 것인지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800km란 긴 거리를 걸으며 스스로 얻은 깨달음인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그 선물이 삶의 방향과 형태를 바꾸고, 10년의 세월 동안 시나브로 삶과 의식을 다듬어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것만은 확실하다.
지난 몇 년 동안 더욱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이 찾는 그 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며, 세상 모든 진리가 그 길에 있다거나 그 길을 걸어야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한 남자가 낯선 길을 걸으며 만났던 아름답고 소중했던 일들을 혼자만 기억하기 아까워 함께 나누고자 함이다. 지인의 여행담 듣듯 가벼운 마음으로 읽히길 바랄 뿐이다.
1. 기적의 시작
Promise(약속), Devotion(헌신), Destiny(운명), Eternity(영원), and Love(그리고 사랑)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이 낱말들을 나는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오랜 시간 다짐하고 간직해왔던 소중한 진실을 알리려는 듯 낮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 그리고 잔잔하게 울리는 드럼 심벌 너머로 피아노 반주와 함께 노래가 이어진다.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이제는 고인이 된 신해철의 노래 ‘Here I stand for you'의 내레이션과 첫 소절이다.
97년에 발매된 이 곡을 들었을 때 고작 중학생이었던 난 가사 내용처럼 ‘운명’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것 같이 화려하고 멋들어지며 누구와도 공유될 수 없는, 오직 주인공에게만 허락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어른이 된 그 시절 소년은 이제 더는 운명을 믿지 않게 됐다.
초월적 존재의 힘으로 인해 내 의지를 벗어난 사건이나 미래가 존재한다는 건 자유의지의 부정을 의미한다. 무수한 우연 속에서 스스로의 결정과 노력만이 상황을 선택할 수 있다. 운명이니 기적이니 하는 것들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벌어지는 비상식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단어이거나 그런 것들을 가치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한 표현 수단일 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어른이 된 소년의 가슴 속을 가득 채웠던 운명은 이제 더는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2011년 8월 프랑스 남부의 한 시골 마을에 도착한, 운명을 믿으며 10대를 보냈지만 성인이 되어 더 이상 운명을 믿지 않게 된 어른의 입에서 탄성과 같은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운명인가?”
그해 8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WYD(World Youth Day[세계청년대회]의 약칭,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적 종교행사)가 열렸다. 수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행사답게 공통 일정은 열흘이 넘었고, 거주 지역의 ○○교구는 대략 18일의 일정으로 행사 참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는 앞뒤 주말을 포함한 9일, 연차도 넉넉하게 남아있으니 규정상 안 될 이유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회사는 휴가 외의 연차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정받는 사원, 5년이라는 시간을 성실히 달려온 덕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삶으로 향하는 과정의 중요한 순간이었기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스페인엔 갈 수 있을 거야. 세계청년대회가 아니라도 비슷한 행사, 혹은 다음 기회에 갈 수 있을지 모르지. 아직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했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삶이 안정되고 수입이 어느 수준에 오르면 나도 남들처럼 1년에 한두 번씩 해외여행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확신은 없다. 하지만 마음에 품었던 것을 포기하기 위해선 그런 식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선 현실과 주변의 목소리와 전혀 다른 목소리가 아우성쳤다.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네가 지금까지 꾸준히 했던 이야기잖아. 17살에 가는 여행과 20살, 군대를 다녀온 20대 중반, 경제력이 조금 생긴 20대 후반까지 느끼는 감성은 전부 다르잖아.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불확실한 미래일지라도 언젠간 같은 곳을 갈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네가 보고 느끼는 걸 미래엔 절대 느낄 수 없는 거야.
마음의 소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인근 물가로 1박 2일 여행 허락을 받기 위해 아버지께 드렸던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로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눈앞에 놓인 자신의 현실엔 이렇게 겁을 먹고 있다는 게 참…….
가자.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행복을 맡기는 건 너무 아깝잖아. 호기로운 다짐과 달리 과정은 한심했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혼자 다녀본 적 없는 놈에게 해외여행 준비는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왕 회사까지 그만두고 가는 마당에 비자가 허락하는 한계까지 여행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긴 기간의 여행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모르는 길이면 물어서라도 가야 할 텐데 뭔 배짱인지 인터넷이나 책을 조금씩 뒤적이는 것 외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준비다운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어쩌면 죽어서야 고칠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커져가는 압박감과 달리 몸과 마음은 앞날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느긋했다.
“여기 어때?”
퇴사를 마음먹은 뒤로 수개월 동안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식의 막무가내 계획만 가지고 있던 미련한 여행 고자에게 마리아 누나가 불쑥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순례자들의 고향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길이라… 성지(聖地) 같은 곳인가? 책 표지의 마른 땅을 걷는 이들의 사진을 봐선 일반적인 관광지보단 성지에 가까워 보였다.
“몰라?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도 했었는데. 스페인 북쪽에 있는 순례길인데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고, 여자 혼자 다녀도 될 정도로 엄청 안전한 길이래.”
“걸어요? 얼마나 가야 하는데요?”
“보통 한 달은 더 걸린다고 하던데? 800km 정도 된대.”
여자 혼자 다녀도 될 정도로 안전한 길, 스페인 북쪽, 도보나 자전거 같은 말들은 단 두 마디에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한 달 이상 걸리는 800km의 길. 말이 되나? 그 긴 거리를,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할 정도의 거리를 맨다리로 걷는다고? 왜? 종교적 신념 같은 건가? 난 그 정도로 독실하진 않은데. 물론 스페인에 가는 첫 번째 목적이 WYD라는 종교행사이긴 하지만 그 뒤에 있을 잿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라 성지나 순례는 마음속 깊이 다가오진 못했다.
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장소와 과정에 대해 흥미가 생기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기에 매년 수만 명의 사람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걸까.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걷기만 할 수 있을까. 게다가 800km. 만약 그 길을 온전히 걸음만으로 완주한다면 꽤 쓸 만한 경험담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순례길에 대해 약간의 흥미를 보이자 한사코 책을 권하는 마리아 누나의 호의를 최선을 다해 사양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흥미일 뿐이다. 흥미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빌리는 순간 흥미는 선택으로 바뀌고 선택에 구속될 것 같았다. 800km? 확실히 드러내기 좋은 수치인 건 확실하다.
인정욕구라고 해야 할지 허세라고 해야 할지. 순례길을 걷겠다는 다짐 한 번 구체적으로 한 적 없으면서도 첫 해외여행을 축하하고 걱정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 길에 대해서 떠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스페인 북쪽에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이라는 곳이 있는데 무려 800km에 달하며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하는 길이다. 아직 확정 짓진 않았지만 기회가 되면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누군가는 걱정하고 누군가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신비한 길에 대해 궁금증을 보이거나 응원해 줄 거라 생각했다. 혹은 부러움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인들의 반응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헛된 꿈, 시간 낭비, 무모함, 오판…….
쉽지 않은 기회와 용기로 선택한 해외여행, 그것도 볼거리가 많은 유럽까지 가면서 왜 한 달 이상의 시간을 걷는데 낭비하는가? 말 그대로 순례를 위한 길이니 그만큼의 종교적 신념이 없다면 의미 없는 걸음이며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도전이니 포기하고 다른 선택을 해라. 한 달의 시간 동안 걸음 속에 얻어지는 건 부상뿐이며 보상은 미진할 것이라는 훈계 아닌 훈계들이 대부분이었다.
얼씨구, 이거 은근히 약 오르네. 왜 내 선택을 당신들이 평가하는 거지? 내가 해외여행 한다고 돈 한 푼 보태줬어? 여행지를 추천해 줬어?(실제로 두 가지를 모두 도와주신 분들도 있지만) 왜 참견인데? 진짜 확 걸어서 보여줘?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울컥하는 성격은 누구에게나 있고 홧김에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난 아니다. 좋은 말로 용의주도지만 일반적 표현으로 잔머리 굴리길 좋아하는 얍삽한 놈이기에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 고생을 자처할 정도로 단순하진 않다. 그래서 그 뒤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인터넷으로 알아본 정보도 손에 꼽을 정도다.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이라는 곳에서 출발한다는 것과 그 마을에 있는 순례자 등록소에서 크레덴시알(Credencial)이라는 순례자용 여권을 만들어야 하며 알베르게(Albergue)라고 하는 순례자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영어 한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놈이 다른 여행에 관한 것도 딱 이 정도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길 바랐다. 그 나라의 문화가 살아있는 그런 곳이길 바랐다. 도시의 화려함과 볼거리도 좋지만 앞으로의 3박 4일은 그런 것과 동떨어진 곳이어야 했다.
이틀의 파리 관광 후 교구 일행이 향한 곳은 프랑스 남부의 바욘이었다. WYD행사의 일환인 교구 행사를 위해서였다. 1박 2일의 짧은 오프닝 행사는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 기대해 마지않던 건 오로지 뒤이을 3박 4일의 홈스테이였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을지라도 그 나라, 그 지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느낄 기회를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홈스테이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리투아니아 청년들과 함께였다. 한가로운 시골길을 버스는 느긋하게 달렸다. 리투아니아어와 한국어가 뒤엉켜 맴도는 버스 안의 소란은 내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홈스테이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던 탓에 사소한 불편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 앞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황색 기와가 인상적인 조용하고 예쁜 마을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릴 때도 몰랐다. 마을 회관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조촐한 환영회에서도, 나와 비오를 맞이해준 쟝자크 가족을 만나 그들의 집에 도착했을 때도 알지 못했다.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그들 가족과 즐거운 저녁 식사와 낯설지만 편안한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전혀 몰랐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 식사 후 교구 일행을 다시 만났을 때도, 그들의 목에 나와 비오가 걸고 있는 것과 비슷한 가리비가 걸려있는 것을 봤을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하루 만에 다시 만난 교구 일행들과 자연스러운 인사 속에서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진실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것은 어제 도착해 하루를 묵고 지금 두 발로 서 있는 이 마을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프랑스 길’의 시작 마을인 ‘생장’이라는 사실이었다.
운명인가?
뭐지? 난 어차피 이곳에 올 운명이었던 건가? 그런 게 존재할 리 없다. 운명 같은 건 없다. 그럼 기적인가? 아니다. 기적 역시 운명과 같은 표현방식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하지? 그저 엄청난 우연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단순히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토록 부정했던,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일어난 비상식적 상황을 억지로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운명이니 기적이니 하는 단어를 찾고 있는 건가? 아니다. 그저 믿고 싶은 것이다. 운명, 기적 같은 그럴듯한 단어를 써서라도 이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고 그 단어들이 갖는 의미가 내 현실에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날 운명을 다시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산티아고로 향하는 걸음 속에서 이날의 일이 기적이었음을, 앞으로 이 길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기적의 시작이었음을 알 게 되었다.
사진은 첫 걸음이었던 10년 전과 둘째 걸음이었던 3년 후의 사진을 같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워낙 똥손이라 사진을 못 찍는데 첫 걸음 땐 더 심한 똥손이었던 덕에 건질 사진이 별로 없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