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는지 그들은 연신 낄낄댄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분명히 처음 본 아저씨 아줌만데, 마치 오래전부터 만나온 사람처럼 말하는 폼이 예사롭지가 않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런 만남을 대비해왔다는 듯한 익숙한 몸짓이다. 주위에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하는 그 꼴은 어린 내게도 여간 탐탁치가 않다. 그 나이에도 작업이니. 아저씨 아줌마, 나이를 좀 생각하셔야죠.
남자의 목소리가 6호실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다. 그 목소리는 내 발 아래까지 넘실대더니, 곧 시큼한 냄새로 내 발목을 휘어잡고 있다. 아저씨의 입에서 굵은 침방울 하나가 툭 떨어진다. 여자도 지지 않을 거라는 듯, 소리 높여 웃어대고 있다. 도대체 무슨 놈의 대결구도냐.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저씨의 침방울은 쌓여만 가고, 아줌마의 웃음소리는 낮은 천장을 위협한다. 아주 미쳐버리지나 않는지 의문일 정도이다. 한데, 그건 나를 비롯한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인지, 몇몇의 사람들은 그것이 오히려 더 재밌다 하는 표정이다. 남자의 목소리가 차올라 이젠 내 얼굴까지 잠길 지경이다. 알록달록 채색된 팻말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휴대폰은 진동으로 통화는 조용히
파우더 팩트를 꺼내 분을 두드린다. 화장이 자꾸 뜨는 것도 모두 저 늙은이들 탓인 것 같다. 발아래엔 히터가 있는지 뒤에 화로를 두고 앉은 것처럼 뜨겁기 그지없다. 안 그래도 뜨거워 짜증이나 미칠 것 같은데, 저놈의 늙은이들은 뭐가 좋다고 저리 야단이람.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옥천, 옥천역에 정차할 예정이니, 옥천역에 내리실 분들은 잊으신 물건이 없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안 나오니? 조용히 좀 가면 안 되겠니? 이 예의 없는 것들아.
잘 생긴 남자가 앉았으면 했는데, 내 옆자리가 아니라도 바로 내 건너편의 저 아저씨 아줌마의 자리라도. 공연히 낯선 로맨스나 그리다 그렇게 집에 가는 거지 뭐. 인생 뭐 있겠어? 그렇게 영영 괜찮은 남자 한 번 못 만나보고 21살이 되고, 또 그렇게 22살이 되고, 나이를 먹어 언젠가 시집도 가겠지. 그렇게 또 저런 철판을 깔고 다니는 아줌마가 될 거고. 괜히 슬프다. 이렇게 나도 늙어가는구나.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옥천, 옥천역에 정차할 예정이니, 옥천역에 내리실 분들은 잊으신 물건이 없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아저씨와 아줌마는 옥천역이 도착역인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작스레 부산을 떤다. 무슨 역이라죠? 아저씨는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있다가 헐레벌떡 양말을 신는다. 이거 아쉬워서 어쩌나. 이야기 잘 하다 그만 헤어지려니깐 아쉽네요. 그 늙은이들은 아마도 불륜의 여지가 다분한 사람들 같았다. 호들갑에, 부산스러움에 끝은 불륜이니? 늙은이들이 앉았던 자리엔 빵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고, 앞좌석의 뒤편에 매어놓은 그물망 주머니엔 귤껍질이 난무한다. 지저분한 것들. 너희들 같은 개념 없는 친구들 때매 우리나라 거리가 더러운 거라고.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경제 발전 안 되는 것도 다 니들 덕택인지 도 몰라. 니들이 나비효과란 말을 알아? 그 발원지가 혹시 니들의 그런 개념 없는 사고인지도 모르는 걸 아냐고. 니들은 우리 오빠처럼 군대를 한 번 가봐야 정신을 차릴 거야.
옥천역에 내릴 승객은 다 내렸는지 문이 열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라졌어야 할 그 늙은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환청이 아닌지? 멀리서 아줌마의 카랑카랑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문이 열린다. 맙소사 그 늙은이들이 다시 들어오고 있다. 이런 늙은이들이 6호실 전 승객을 상대로 장난을 치나? 호호 내 귀가 이상한가 봐욧, 옥천을 영동으로 들었네욧. 호호.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섭섭해서 나가서 커피나 한 잔 청해볼까 했더니만... 아주 쇼를 하고 있네. 이럴 바에 사람들은 더 이상 안 들어오는 게 좋겠다. 내 옆자리는 제발 비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부처님 엄마...
6호실 투명한 창 너머로 술이 곤드레만드레 취한 아저씨 한 분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 그리고 키 크고, 잘 생긴 남자 하나가 들어온다. 시원시원하고 남자답게 생긴 게 꼭 내 스타일이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 세 사람 모두 내 옆자리만 바라보는 것 같다. 무섭게 시리. 이상한 늙은이가 올 바엔 차라리 비어라. 바라고 또 바라며 고개를 창가로 돌려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잘생긴 남자다. 낯선 로맨스의 시작은 지금 부터다. 인생은 이래서 살아볼만 한 것이다. 히히히. 끝발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