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이 사랑하는 법..[3]

그어떤날 작성일 06.12.04 13:33:00
댓글 2조회 553추천 2


<나 많이 아픈데, 주사 한방 놔줄래요?>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첫사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온힘을 다해 그사람을 사랑했다.

약간은 무표정 했지만 남이 범할 수 없는 깊은 세계를 가지고 있는 듯한 그 사람의 눈에 난 빠져

버렸다.

그치만 그 사람은 나의 연인은 아니었다.


"연주야, 나 우리 과 선배있잖아, 성민 선배 좋아하는데.."

"..어?"


입학한지 얼마 안됐을때 아직 어리기만 한 신입생 여자애들은 갖 고등학교 교복을 벗었기 때문

에 생각하는 것도 어리고,

대학에 와서는 없을 줄 알았던 이간질을 통해 동기들의 사이를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내 대학 친구 연주는 그 어리기만 한 여자애들이 빚어낸 이간질의 희생양이었다. 연주는 활발하

고 자유분방한 망아지 같은 스타일로 약간은 자기중심 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남학생들과 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자애들에게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다.

입학 3달 후 연주는 과에서 소위말하는 왕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리 저리 몰려다니면서 뒤에서 남의 나쁜점을 말하고 다니는 그애들 같이 되기는

싫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연주를 감싸고 있었다.


"수영아, 너 쟤가 어떤앤 줄 몰라서 그래?"

"난 그런거 싫어, 일부러 나한테 까지 와서 그런 얘기할 필욘 없잖아.."

"야 다 너 걱정해서 그러는거지.."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그리고 연주 나쁜애 아니야."


연주는 딱히 나말고는 의지할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나와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나도 그런 연주가 싫지 않았다.

들려오는 이야기의 연주와 내 앞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연주는 다른 애였다.

나의 비밀도 연주라면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연주 또한 나한테 속내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울기도 몇번 했었다.



"근데 말야, 성민선배가 요즘 힘들어 하는 것 같던데..학교도 그만 두고 싶어하는 눈치고..에휴..

진짜 어떻게 해야하지..속상해 죽을 것 같아. 요 일주일 새 학교도 안나오고..."


한숨만 나왔다. 연락은 했지만 '무슨일 있어요?' 하고 직접적으로 깊은 이야기를 들을 사이까진

되지 못했기 때문에 걱정만 앞서고 있었다.


"그래? 내가 다른 선배들한테 무슨일 있는거냐고 살짝 물어볼까?"

"그래 줄 수 있어?"


내가 성민선배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봐 쉽게 나설 수 없었기 때문에 연주는 거의 나의 행동

대장 격으로 성민선배의 일을 알아다 주었다.

난 그런 연주가 한없이 고마웠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기위해 기다리는 도중 연주는 성민선배랑 친하다는 한 선배에게 물

어봤다는 내용을 전해주었다.

"성민선배 아버지가 회사 운영하시는 거 알지? 근데 요즘에 좀 삐걱거리나봐. 망해간다는 이야

기 하는 선배도 있고.. 성민선배..장남은 아니어도 걱정 되겠지. 만일을 대비해서 학교 그만두

고 일자리 알아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 강원도로 혼자 여행갔는데 갔다와서 학교 다시 나오면 계속 다니는거구 안나오면 자퇴

서 낸다는 거 같더라.."



자퇴..자퇴????

안되는데..자퇴하면 안되는데..

순간 우울했던 기분이 더 우울해지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괜찮아?"

"어? 어.. 나 그만 집에 갈게.."

"그래 조심해서 가~ 내일 보자~"


한숨이 나왔다. 첫사랑인데, 남들이 다 힘들고 어렵다 해도 나는 잘됐으면 좋겠는데 사랑은 역

시 그 흔해빠진 말처럼 맘대로 되지 않는구나....길을 걷다가 주저 앉고 싶었다. 정신이 몽롱했

다. 그렇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없었다.

좀 더 친했더라면, 좀더 말을 나눴더라면 들키지 않고 걱정하는 전화 한통화는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돌아오지 않을 애꿋은 시간만을 탓하면서 속을 태울 수 밖에 없었다.


이틀 후, 공강시간에 학교앞 까페에서 연주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과대표 한테서 전화가 왔

다. 과사무실로 성민선배가 전화를 해서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수업 중이라 핸드폰을 무음으

로 해두었던 터에 나는 전화가 온것을 모르고 있었다.

성민선배한테는 두 통화가 와있었다.

재빨리 발신을 했다.


"여보세요?"

"선배님, 저 수영이에요. 전화하셨었다면서요?"

"아..응..너 연주하고 같이 잘 다니지?"



다짜고짜 연주 라니..

난 연주를 힐끔 쳐다봤다. 연주는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면서 '나?' 하는 듯한 입모양

을 지었다.


"네, 그렇긴 한데.."

"연주 좀 바꿔줄래? 내가 번호를 몰라서.."

"아..네..."


오래간 만에 듣는 성민선배의 목소리였는데 성민선배의 목적은 내가 아니었다. 두번씩이나 전

화를 걸고, 과사무실에까지 전화를 해서 찾던 상대는 내가 아니라 연주였던 것이다.


"바꿔달래..."

"나를..?"


여자의 육감이라고 해야하나, 뭔가 이상했다. 연주가 아무리 선배들이랑 친하다고는 했어도 성

민선배하고 친하다는 이야기는 본인입에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아 네..알았어요~"

"끊..었어?"

"응~ 과사에서 뭐 필요한게 있는데 그것 좀 받아다 달라는데?"

"그걸 너한테 부탁했어?"

"응..그러게.."


친구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상한 느낌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몇일 후 성민

선배가 학교에 얼굴을 내 비췄고 자퇴를 하지 않을거라는 것은 확실해 졌지만, 내가 연주와 다

른 교양수업을 들을 때면 연주와 성민선배가 곧잘 같이 있는 걸 보곤 했다. 조바심이 나고 연주

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 셀 수 없이 가득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학교 앞 까페에서 공강시간을 보내고 있던 2003년 가을,

나는 연주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의심하고 있었던 그것...연주와 성민선배는

연인사이였다.

두사람은 엠티에서 성민선배의 고백으로 사귀기 시작했고 내가 연주를 만났던 것은 5월 중순..

내가 연주에게 성민선배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한달 전부터 이미 연주와 성민선배는 사귀고 있

었던 것이다.

"말하고 싶었는데...난 다른 애들처럼 니가 날 버릴까봐 무서웠어..."

숨이 턱 막혔다. 연주라면 그런 이유에서 말을 못했을 만도 했다. 이미 한번 외톨이가 되어 봤으

니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었던 것이다.

눈물이 나왔다.

"바보야..내가 그렇다고 널 왜버려? 그런 생각이나 하고.."

웃고 있는 데도 눈물이 나왔다...연주는 미안하단 말만 되풀이 하면서 날 안아주었다...

....포기해야했다.

친구의 애인을 사랑할 순 없었으니까...

그간 나에게 비밀로 하고 맘 고생했을 연주를 생각하니 성민 선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아파왔다.

그 날 직후 나는 지독한 몸살에 걸려서 3일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성민선배를 잊는 것

이 너무 힘들어서 기말 시험도 어떻게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내 마음은 닫혀갔다...


사람의 거짓말은 왜 그리 간사할까??

내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건 언제였을까?

언제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건, 그 횟수가 몇번이건, 누구에게 거짓말을 했건 간에 난 인생에서

아주 힘든 거짓말을 하나 해야했다.

절대 들켜선 안되고 평생 나만 간직할 비밀...

연주와 선배의 교제 사실을 안 한달 후 나는 연주에게 거짓말을 했다.


"생각보다 내 마음 가벼웠나봐^^ 쉽게 잊혀지네. 나도 참 웃기지?^^;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

쳐놨으면서..쑥스럽게.."

"그래? 정말이야? 다행이다..너무 걱정했어~"


연주는 내 친구였고 같이 다니는 동안 성민선배의 일은 꾸준히 나에게 들려왔기 때문에 안그래

도 쉽게 잊지 못했다.

그것은 나에게는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야 할지..내가 흘린 눈물의양은 얼

마나 되는지..얼마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는건지..그런 것에서 부터 시작해서 연주를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지..기본적인 내 실연의 아픔보다도 내 친구를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까지가 더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하는 어느날 난 저런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내가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면 연주는 옆에서 더 힘들어 할 것이 분명했다. 편하게 사귈 수 있

게, 내 앞에서도 부담 느끼지 않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이제 내앞에서 선배랑 통화 대놓구 해도 돼~ ㅋㅋ 멀리 도망가지마~ "

"진짜? 기운 차려서 다행이야 정말.."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1년이 넘도록 선배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이유인 즉 연주랑 붙어 다니는 시간이 많으니 성민선배와도 얼굴 마주

칠 일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나도 선배를 오빠라 부르게 되었고 연주랑 사이가 삐걱거리면 오

빠는 나에게 연락을 해서 조언을 구하곤 했다.

그리고 2004년 겨울, 그 커플의 교제 사실을 알고 1년이 약간지나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한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난 재기불능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어떤날의 최근 게시물

짱공일기장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