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김현준 이야기2>
"오빠.."
익숙한 목소리에 고갤 돌렸다.
천천히 걸어와 나를 안는 그녀.. 어떻게 된건지 잘 감이 안잡힌다. 날 안고있는게 수영이인가 헷갈린다.
하지만 몇초사이 정신이 다시 돌아왔고 나현이라는 걸 알았다.
"여긴 왠일이야."
"오빨 만날 수가 없잖아. 여기서 기다리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수영이가 신경쓰인다. 시야를 돌려 수영이 쪽을 보니 얘도 적잖히 놀란 눈치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닌 거 같아 나현이를 이끌고 밖으로 나와 일단은 차에 태웠다.
이번엔 또 무슨말을 할까..이상한 말로 또 날 황당하게 만들면 그땐 정말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헤어졌다고는 하지만 마음을 전부 정리한건 아니다. 나현이는 나에게 첫사랑이고 수영이를 향하는 마음보다
컸으면 컸지 덜하지는 않다.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으니까.
"그 날 그렇게 놔두고 가버리면 어떻게해."
그녀가 입을 연다.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책임 하게 여자를 모르는 곳에 떨어트려놓고 가버린 나도 예전여자친구이니 뭐니를 떠나서
매너있게 행동한 건 아니었다.
"다시 돌아와달라고 한마디만 해줘.."
후~, 한숨이 나왔다. 머리 끝으로 짜증이 몰려오는게 느껴진다. 이 순간 아무것도 갖지 않은채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는건 너무 한심한가..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기다린 전화..아까 가게에 있었던 그 여자 전화였지?"
"...그래.."
"그 여자..사랑해? 어려보이던데.."
"너랑 관계 없잖아."
"대답해줘, 그 여자 사랑해?"
.......
모르겠다.. 난..수영이를 사랑하나?
수영이와 나현이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아마 나현이는 내가 첫번째로 한 사랑이고, 사랑하는 법에 익숙해 진 후에
수영이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수영이와 나현이는 성격부터가 다르니까 그럴지도 모르고..
나현이와 다르게 수영이는 마음이 너무 여리다. 말한마디에도 조심스럽고 약간만 열을 줘도 녹아내리는 밀랍같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애정을 갖고 지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 반문을 했다.
수영이가 단지 나에게 지켜주고 싶은 동생일 뿐일까...
"사랑해, 그러니까 그만해."
"하.."
확신이 없는 채로 그렇게 대답을 했다. 사랑한다고.. 어쩌면 책임지지도 모를 말을 내뱉은지도 모르겠다.
"그럼..이젠 더이상 나는 필요없어..?"
이 물음에도 역시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예 마음이 멀어졌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렇게 앞에 있고 그래 다시시작하자, 하고 말을 하면 내일부터 내 옆엔 예전과 같이 나현이가 있을테지..
그렇지만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래서도 안된다는 걸 예전부터 쭉 생각해왔다.
"나..유학가..사촌오빠 친구가 거기서 의학과정을 밟고있대. 나보고 오래..오랫동안 안돌아올지도 몰라.
아니, 아예 안올지도 몰라.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살지도 모르고.. 오빠가 가지말라고 나한테 한마디만 해줘..
내가 다 잘못했어. 오빠가 가지말라고 하면 안갈께.."
결혼할지도 모르는다는 말에 이상하게 맘이 아려오면서 시큰거린다.
내 여자 였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와이프가 된다고 생각되니 그런가?
속이 불편해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현이는 한참 날 쳐다보며 내 대답을 기다렸지만 난 뭐라 입을 뗄수가 없었다.
복잡한 심정이다.
가지마..가지마.. 말하고 싶다. 그 말 한마디면 나현이를 꼭 끌어안고 그동안 묻어놨던 슬픔을 다 털어내고 울 수 있다.
고개를 돌려 나현이를 봤다. 글썽거리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 울먹이는 수영이의 얼굴이 나현이 얼굴에 겹쳐졌다.
주먹을 꼭 쥐었다. 이를 악 물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되겠다..."
나현이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말도 하지않고 차에서 내렸다.
힘없이 걷는 나현이의 뒷모습을 한참 보고 있으니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대로 핸들을 잡고 고개를 숙여 숨죽이듯
울었다.
날려버렸다. 이젠 정말 다 끝이다.
그런데 마음은 끝도 없이 깊은 곳으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눈물을 애써 참으며 마음을 다 잡아야만했다. 좀있으면 수영이가 끝날 시간인데 이런 얼굴로 그앨 볼 순 없다.
천천히 가게 근처로 차를 몰아서 근처에 주차를 했다.
초점도 없이 멍하니 가게 안에서 뒷정리를 하는 수영이를 보고 있었다.
수영아, 오늘은 내가 너한테 기대도 될까...? 니가 날 위로해 줄래..?
문을 열고 나오는 수영이를 부르기 위해 크랙션을 울렸다. 차에 탄 수영이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고맙게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내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정적은 이어졌다.
"오빠..괜찮아?"
시간이 늦어서 거리엔 차도 사람도 별로 없었다. 차가 세상을 통과하고 있는지, 아님 세상이 차 뒤로 도망치듯 달아나는지
소리도 시간도 멈춰버린 것 같은 그 정적에서 수영이가 나에게 물은 말이었다.
단순한 말이었는데 어째서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많이 생각한 끝에 물어본 것일테지...
괜찮냐는 그 말에 날 걱정한다는 모든 마음이 깃들여 있다는게 느껴졌다.
수영이를 아파트 입구에 내려주기위해 차를 세웠다.
"수영아, 아까 그사람, 오빠가 헤어진 사람이란거..눈치챘지?"
"어? 응.."
"잊을 만 하면 찾아와서 날 흔들어. 힘들다. 많이.."
숨길 수 없었다. 마음이란 강철이 아니다. 그 어떤 강한자도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다운 것이다.
차갑게 굳어졌다고 믿고 있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것은 대체 뭐때문인걸까..
눈물이 흐른다. 아마 내가 안타까운건 나현이가 이제 정말은 나와 다른 별개의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이상 추억해서도 안되는 시간이 생겨버렸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날 위로해 주는 수영이의 상냥한 마음 덕분에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안경에 떨어진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는 수영이에게 입을 맞췄다.
이젠 내가 갈곳은 너 밖에 없어..
니가 가지고 있는 따뜻함으로 날 감싸안아줘...
나도 그만큼 널 아낄테니까..
심적부담감 때문에인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난 해변가를 걷고 있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변가에 앉아 울고 있는 수영이가 보였다.
왜 울고 있냐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들리지가 않는다. 손을 뻗어서 쓰다듬어 주고 싶었는데
수영이가 점점 멀어진다. 가지말라고 외치는 내 목소리도 점점 작아져 들리지 않게 되고 있다.
난 가만히 서 있는데.. 수영이는 앉은채로 스크린아웃이 되듯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달렸다. 수영이가 멀어지는 만큼 잡기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하지만 누가 내 다리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놓으라고 발버둥 치다가 벌떡 일어나며 잠에서 깼다.
피곤하다. 뒷목이 땡기고 어깨도 뻐근했다.
왜 울고 있었을까. 왜 멀어졌던 걸까.
단지 가위를 눌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수영이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집어들었는데 메세지가 들어와있었다.
나현이였다.
'지금 그 여자한테 갈꺼야. 오빠를 포기해달라구. 협박이 아니야. 오빠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날 막으러 와. 그 홍차가게로 갈게.'
누가 쫓아오는 것 처럼 대충 씻고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안돼,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때문에 수영이가 상처입는건 더더욱 안돼.
빨간 신호도 무시한채 차를 급하게 몰았다. 수영이가 나현이와 만나게 해선 안된다.
급하게 가게에 도착했더니 나현이가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게 보였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왔네? 근데 조금 늦었어."
"너 정말..."
그 순간, 가게 안에서 수영이가 날 발견하고 나오는 걸 눈치챘다.
나현이 팔을 낚아채서 가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빠, 하고 뒤에서 수영이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일단은 모른 척 했다.
한적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현이를 뚫어질 듯 쏘아봤다.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화내지마, 오히려 당황한건 이쪽이니까."
"뭐?"
"그 애 정말 당돌하더라.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포기할 수 없대. 양보하지도 말쟤.
난 정말 오빠를 뺏으려고 간게 아니야. 그 애가 어떤 애인지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난 그 당당함에 기가 죽었어. 오빠..행복해.."
무슨말을 해야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현이는 나를 지나쳐 멀어져갔다.
날 위해 그런걸까, 아님 정말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아보자고 그런 걸까.
지금 당장은 모르겠다. 시간이 더 지나봐야 나현이의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나를 생각해주는 수영이의 마음이 고마워서 마음이 따뜻해 졌다.
그런 말을 했을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항상 여리게만 보였는데..이젠 수영이도 당당해졌다.
나란 사람을 두고 당차게, 그것도 그 사람의 전 애인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난 굉장히 따뜻하고 깊은 애정의 깊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 난 수영이를 만나서 치유되고 있었어. 사랑이란 다른 게 아니야.
이런 따뜻함을 돌려줄 수 있는게..그게 바로 사랑인거야...
고마워 수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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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인사드립니다.
설이라고 약간 저도 쉬게 되었네요^^ 그 사이에 얼른 글 써서 올립니다.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모두 설 잘 보내시고
올해도 건강하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한 일년이 되길 빌겠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만수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