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사랑 vol.1

zmfpf 작성일 06.12.30 0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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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2001년 겨울 어느날...

눈의 시체들이 어기적 어기적 밟힌다. 그 질퍽거림 때문인지 아니면 곧 있으면 내 호주머니 속

에서 나가게될 수십여 만원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씨발...”




나도 모르게 뱉어져 나온 무심한 말 한마디가 허공 속에 묻힌다.

아... 지루한 시간의 연속. 글쎄 수능이 끝나고 난 지금 이 시간이 과연 황금의 시간인지

가시밭길의 연속인지 모를 순간들, 그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다.


“63만 5천원입니다. 여기 수강증이랑요, 정해진 날짜에 맞춰서 오시면 됩니다. 오시기 전까지

학과시험 이랑 안전교육, 학과 수업 합 4시간은 꼭 수강하셔야 하고요, 당일 못오시게 되시면

오시기 1시간 전까지 전화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네...”

정형화된 말투. 사람들이 마치 기계처럼 말줄기를 뽑아내는 이곳은 운전면허 학원이다.

남은 시간동안 시간을 죽이기에는 너무나도 아깝기에 이 비싼돈을 쳐들여 온것이다.

회색빛 건물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무작정 옮긴다.

오늘은 뭘 하지... 친구놈들은 뭐 하나 요즘같은 날... 낡아빠진 핸드폰을 빼든다.

“나야 진형이. 살아있냐? 크크크. 오늘 뭐하냐? 시간있으면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자.

어?? 알바?? 너 알바해? 뭐하는데? 어... 그래 알았다. 한창 바쁠때네... 연말연시니까.

열심히 해라. 그래.”
“어, 오랜만. 뭐하냐? 미친, 시간이 몇신데 대낮까지 쳐자. 뭐?? 너도 알바해??

무슨 애들이 죄다 알바냐. 무슨 돈에 미쳤나.

이 황금같은 시간, 언제 또 돌아온다고 일이나 하고 있냐? 언제 까지 하는데?

저녁에 시간 않나? 새벽??? 으휴... 하긴 요즘에 낮에 알바 구하기도 힘들겠지...

그래 자라 자.”

참... 나도 18년 인생 살아오면서 친구 한 놈도 못 불러 내다니... 헛살았다. 헛살았어...








“여기선 살짝 액셀을 밟아주면 되요.” “이렇게요?”

부우우우우웅!!!!!!

“자,잠깐!!!!! 브브브레이크!!!!”

끼이익~~~

“헉...헉.... 거기서 그렇게 액셀을 세게 밟으면 어떻해요!! 코너돌때 튕겨나가 잖아요!”

“아니, 전 그냥 살짝...”

“가세요 브레이크 때고”

“네...”

여차 저차 학과시험, 기능, 도로 까지 모두 무사히 마치고 받은 63만 5천원의 운전면허증을

들고 생각난 것은 카메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바로 카메라 인것이다.

뭔가를 하나 이루어 냈으니 그 보상으로 카메라를 사고 싶은, 솔직히 말하면 예전부터 가지고

싶던것을 졸업선물이라는 포장에 씌어 받고 싶었던 것이다.







“안돼! 그런돈이 어딨어! 이게 미쳤나.”

“아니, 아빠... 졸업선물 이잖아요! 생전에 제가 무슨 선물을 받았어요? 고3이라고 용돈을

받았어요? 다른애들은 컴퓨터다 노트북이다 사던데...”

“이게! 돈 200이 애 이름이야!!”

“그럼 150만이라도...”

“콱!! 너 방으로 와!”

“아니, 아니요... 그럼 100만....”







전철 속 사람들은 언제나 정형화 됬다. 도미노 처럼 딱딱 일렬로 붙어서서 정면만 응시 한 채

아무도 말한마디 하지 않는다.

간혹가다 우는 아이들이나 개념없는 중,고등학생들 뿐만이 기 네모난 상자속의 정적을 깬다.

아빠와의 오랜 회담과 협상 끝에 100만원이라는 내 학창시절의 보상금을 받아내고 있는돈

없는돈 아껴가며 모아온 내 통장을 털어 모은 꽤나 큰 돈을 들고 지금 서울 어딘가의 전자 상가

로 향한다.

[이번역은 용산, 용산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이내 전철은 수많은 사람들을 토해내고 그 안에 나도 포함되어 토사물이 되어 세련되고 커진

그 전자상가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바디 145, 렌즈 78, 추베, 추메, 베터리, 필터, 가방, 삼각대 까지 총 243만원입니다.”

“아니, 여기 보세요. 여기요. 사이트에는 바디 최저가격이 143 으로 되어있고 렌즈도 75만원

인데 어떻게 이렇게 팔아요? 5만원만 깎아 주시죠? 저 학생이에요. 돈이 어딨다고...”

“그럼 거기서 사시던가... 저흰 이렇게 밖에 못줍니다.”


아... 이 쉬팍 용팔이 자식들... 한두푼도 아니고...

“그냥 주세요...”



가벼운 건지, 무거운 건지 아무튼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방 만큼은 무거워 진것임에 틀림없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가지고 싶던 것을 마침내 사서 그런지, 한참 보고 있으니 이내 가격 생각

은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흐흐흐...


“흐흐흐...크크... 이걸... 흐흐...”

“엄마... 이 오빠 이상해...”

“일로와 어서!! 엄마가 이상한 사람옆에 가지 말랬지!!"

미친놈 취급 당했다.




흐흐흐... 하지만 집에서도 나의 그 제2의 자아 '미친놈' 님께선 여전히 카메라에 정신이 팔려

사라지시질 않았다.

"저것이 카메라 사더니 정신이 나갔나..."

엄마 까지도 날 이상한 눈으로 볼 때쯤 낡아 빠진 전화기가 요동을 친다.

"어, 한형이냐? 웬일이냐?"

"너 카메라 샀다며?"

"어, 어케 알았어?"

"애들이 너 요즘에 카메라에 완전 미쳐서 집에 쳐밖혀 있다던데, 임마 카메랄 샀으면 찍어야지

병신아."

"야, 내가 길을 뭐 아냐..."

난 서울 촌놈이다. 서울 밖이라곤 나가본 적이.............. 있긴 있다. 수학여행 같은 것....

그밖에 서울을 나가본적도 없으며 서울 지리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나인것이다. 그러니

사진기가 있어도 어딜가서 찍어야 할지 도통 모를 수밖에...

"낼 2시까지 주유소 앞으로 사진기 들고 나와. 사진 찍으로 가자."

"사진? 어디로?"

"을왕리 해수욕장"

"해수욕장??!! 겨울에 갑자기 무슨?"

"잔말 말고 나와! 짜슥 형님이 불러주시는데..."






공항버스. 타본적 없다. 공항에 갈때조차 타본적 없은 공항버스를 해수욕장 갈 때 탈줄이야.

요금도 드럽게 비싸다. 해수욕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엔 역시나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한형이 자랑스레 입을 연다.

"여기는 낙조가 죽인다고. 수평선 끝에 걸려서 활활 타오르는 그 정렬의 태양을 이 카메라로

담아낼때의 그 환희!!! 그 환상의 저녁을 오늘 맛보는 거야!! 여기서 잠깐 기다려봐."

"어디가는데?"

"술 사러."

"술?? 술은 왜?"

"아직 저녁 될려면 멀었잖아. 잠깐 시간이라도 때우게"




간단하게 맥주 한캔씩 하며 난 새로 산 200여 만원의 카메라를 손에 쥐고 이것 저것 시험해

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전에 미리 손에 익혀두고 기능을 알아 두어야 하니까

말이다. 해변가에서 연사기능으로 아무거나 마구마구 찍어대며 손에 익히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야, 이것좀 가르쳐 줘봐. 이거 뭐냐?"

"어...그건... 야! 시,시간 됬다. 따라와 좋은 장소 있으니까"

"이건 가르켜 주고 가야지! 야!!! 아~~ 새끼. 지두 모르면서..."




김한형. 친구놈들 중에 사진을 유일한 취미로 가지고 있는 아이. 자칭 사진 매니아. 좋은 사진

한컷을 찍기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내. 그래서 가끔 굉장히 위험하고 무모한 짓을 하기

도 한다. 지금 처럼...


"야 이씨!!! 이런 미친새끼야!!!! 그만 올라가! 이러다 떨어져 죽겠어!! 해 다진다고!"

"좀만, 좀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돼"

해변 옆 암벽을 방불케 하는 산을 따라 우린 산을 오른다. 아니 암벽을 탄다. 무거운 카메라 가

방과 삼각대를 등에 메고... 좋은 자리를 찾는다는 내 앞에 있는 이 우매한 자의 말에 따라...

그래도 거기 까지만 했어도 좋으련만.

"처,철조망... 뭐야 여긴... 초소!!!! 군대 초소잖아!! 여기 민간인들 못 들어오는 곳이잖아!"

"좋아~~ 여기야!! 여기가 최적이라고! 보이지 바로앞에!! 빨리 준비해!"

"머리 바로 위에 총대들고 있는데 넌 셔터가 눌리냐??"

"잔말말고 어서! 해진다고! 이렇게 고생한거 다 개고생 만들 셈이야??"

"참.... 난 모른다!! 으이구!!!"

덕분에 좋은 사진이 찍혔다. 발 밑에 보이는 절벽과 머리위의 총대로 인한 심한 손떨림에도

불구 하고 78만원의 렌즈는 자랑스런 손떨림 보정기능으로 나름대로 봐줄만한 사진을 만들어

냈다.

해변가로 내려와 한형과 내가 찍은 사진을 확인 하고 있는데...






뭐지 이 여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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