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이 사랑하는 법..[10]

그어떤날 작성일 06.12.30 00: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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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지 마요...>


내 방이다. 눈을 뜨지 않아도 익숙한 느낌이다. 내 침대, 내 이불..

집에 도대체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고, 몇시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눈이 너무 많이 부어서인지 눈뜨기도 힘들고, 머리도 깨질듯이 아파왔다.

아파서 왕왕울리는 눈위에 차가운 손을 올렸다.

눈을 감은 세계에선 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한 트리가 있는 초저녁의 거리도 보이고,

작아져서 우리집 소파 옆의 작은 틈으로도 들어가보기도 한다.

에스프레소 커피향기가 짙은 숲속의 카페안의 라떼아트가 아주 예쁜 카페라떼도 보인다.

그리고, 난 어제 그런 커피향기가 농후한 까페에서 소중한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

어째서 연주는 내가 성민오빠를 뺏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대체 내가 연주에게 그 일을 말하고 나서 두사람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던 걸까?

갑자기 이놈의 심장이 또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건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연주를 버릴 수 있을까? 연주는 나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성민오빠와 사귀는 사실까지

비밀로 하면서 내 옆에 있고 싶어했는데..

용서해야 하는걸까..

그런데 내가 정말 이런 일을 당할 정도로 잘못한게 있는걸까?

처음부터 연주의 애인인 줄 알았다면 난 눈길 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난 성민오빠와 연주가 사귀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연주 말대로 내가 제 3자의 입장에서 둘을 헤어져라 한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다.

결국 그건 두사람 사이의 문제지 내가 둘의 관계를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 따윈 없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 손은 아주 작은데, 갑자기 엄청난 양의 돌맹이를 받아든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다 담았다 생각하면 옆으로 튕겨져 나가 땅에 떨어져버리고, 또 주어서 손에 담으면

다른 것이 떨어져버린다.

결국엔 난 감당하지 못하고 손을 벌려 그 돌맹이들을 땅으로 쏟아버리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문득 내가 집에 가려고 하다가 김현준씨를 만난 게 떠올랐다.

순간 너무 깜짝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머리야..'


머리가 아파 고개를 숙이니, 이번에는 눈이 빠질 것 같이 아팠다. 거울을 보고 싶었다.

대체 어떤 몰골일까...

예상보다 눈은 많이 부어있지 않았다.

많이 울어서인지 안압이 올라가서 눈을 깜빡거리기도 쉽지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아침 10시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니 엄마가 쇼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며 녹차를 드시고 계셨다.


"넌 어린애가 벌써부터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시고 다니니?!"

"미안해요, 엄마. 근데 나 어제 언제왔어?"

"9시쯤 들어왔는데, 사람이 술을 마신건지 술이 사람을 마신건지, 자기 몸도 못가눌 정도로
마시면 어떻게해?"

"일이 좀 있었어요, 근데 아빠 재판은 어떻게 됐어?"

"다행이도 승소했는데 모르지, 그쪽 사람들이 또 들고 일어날지..나쁜 사람들.."

"정말 잘됐네요.."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단숨에 마셔버리고 더 잘게요, 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

엄마가 날 부르셨다.


"근데 어제 너 데리고 온 그 남자는 누구니?"

"...남자?"

"김현준 이라던데.."



아뿔싸...

김현준씨가 날 데리고 온거야? 어떻게?

생각해보니 어제 내가 술김에 김현준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떻게 된건지 조금있다가 내 눈앞에

그 사람이 있었다.

난 내가 환영을 보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환영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그 때 이후로 기억이 전혀 없다.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것 같았다.

언제 전화를 걸었는지 부터 알아야했다.

방으로 얼른 돌아와 핸드폰을 열었다. 문자가 3통이 들어와 있었다.




'푹 쉬어요, 그만울고요..' 12/23 10:01 P From:010xxxxxxxx


'참 그리고 꼭 해장하시구요' 12/23 10:05 P From:010xxxxxxxx


'아직 자고 있으려나, 컨디션 안좋죠?' 12/24 09:42 A From:010xxxxxxxx



정말 환영이 아니었구나..

사과를 해야겠는데..목소리도 안좋고, 만취한 상태로 안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선뜻 전화하기도 꺼려졌다.

모르는 사람한테 너무 큰 폐를 끼쳤다. 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그게 더 예의가 없을 것 같았다.

감사의 말이든 사과의 말이든 나중에 하자해서 핸드폰을 책상위에 놔두고 반신욕을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에 뜨거운물을 넉넉히 받고 로즈마리향 입욕제를 풀었다.

몸을 로즈마리향이 나는 뜨거운 물에 담그고 눈을 감았다.

무거운 머리를 뒤로 젖히고 기지개를 폈다. 피로한 게 다 씻겨져 나가는 기분이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난 지금 뭐하는거지..

모두가 즐거워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에 술을 마신 후유증으로 욕조안에서 피곤을 풀고 있다니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졌다.


'똑똑...'


"수영아 전화오는데.."


[ling~ ling~]


내 핸드폰에서 나는 벨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욕실문을 두드리셨다.


"누군데요?"

"몰라, 이름안뜬다~"


혹시 김현준씨일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전화하기 좀 그랬는데, 지금이 기회라면 이참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했다.


"엄마 핸드폰 좀 가져다 줘요"


욕조에서 몸을 일으켜 욕실 문을 살짝 열어 핸드폰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김현준씨의 번호가 아니었다. 011로 시작하는..내가 바로 어제 지워버린

연주의 핸드폰 번호였다.

순간 아주 빠르게 기억은 어제 오후 3시로 거슬로 올라가고 있었다.

난 그 기억속에서 연주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다. 연주의 눈이 뭘 말하고 있는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연주의 눈도 심하게 흔들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왜 나에게 이러는 걸까?

연주에게 든 실망감은 이루말할 수 없지만 연주도 나름 생각한게 있으니 나에게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순간, 정말 많이 화가나서 나에게 심한말을 해버렸지만, 실은 그게 진심이 아닐거라고 내 마

음 한구석에서 어리숙한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영악한 나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넌 배신당했잖아, 이제와서 무슨 전화야, 받지마!, 하고 외친다.

부재중 전화 1통 이라는 메세지가 뜬다.

그래, 난 이미 연주와 성민오빠의 번호를 핸드폰에서 지워버렸다.

더이상 마음 쓸 필요도, 돌아볼 필요도 없는 거다, 넌 새로운 삶을 살면돼, 라고 생각하지만,

머리와 마음이 일치되기엔 난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마음이 아려오면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린다.


'잊긴 뭘 잊어, 지금은 이 아픈 마음을 추스리기에도 에너지가 부족해.........'


울고 싶다..온몸으로 힘껏 울기 위해서 난 로즈마리향이 짙은 물속에 잠수를 해버렸다.

많이 울자, 실컷..눈물이 섞인 이 물로 깨끗이 씻어버리자, 라고 생각하며 난 흐느꼈다..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 핸드폰을 책상위에 두고 머리를 대충 말린 후 침대에 누웠다.

숨쉬기도 쉽지가 않았다.

너무 빠르게 몰아쉬면 다시 울음이 터질 것 같았고, 느리게 쉬면 그대로 숨은 점점 줄어들어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째깍..째깍..벽걸이 시계도,

깜빡..깜빡..핸드폰의 램프도,

저마다 살아있다고 존재감을 나타내는데 그런 모든 물건의 주인인 나는 어떻게 살아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코는 훌쩍거린다.

입은 우는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꽉 다물고 있다.

속이 답답했다. 보자기를 쫙 펼치듯 누구라도 좋고, 어디라도 좋으니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싶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잠시 난 가만히 있었다. 눈을 감고 연주가 다시 전화를 걸었나 하고 생각한다.

만약 연주라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왜 전화했어? 이번엔 얼굴에 물을 뿌려주고 싶어...?' 라고 할까..


그래,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주자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일어나셨네요? 제 문자 못보셨어요?"


"아, 네..안녕하세요. 아..어제는.."


"어제 일이 미안해요? 미안하면 있다가 5시 반까지 집 앞으로 나와 있어요."


"네? 아니 오늘은..."



뚜..뚜...


우울한 기분이 젖어있었는데 갑자기 산통이 다 깨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 할말만 하고 전화끊은거야?

아까 그 기분과 똑같다.

내가 어제 김현준씨를 만났다고 생각하는게 환영인가 아닌가 애매모호한 기억과,

지금 전화를 받은게 맞나 아닌가 하고 의문이 들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 전화통화..

이 사람은 나에게 정확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번쩍, 하고 한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져 잔상만 남아버린 카메라의 후레쉬같은 느낌이다.

잠깐..생각해보니 어제 이사람이 날 집에 데려다 줬다는데 우리집은 대체 어떻게 안걸까?

내가 무의식중에 집이어디냐는 말에 대답해버렸나..그럼 혹시 어제 있었던 일도 다 말해버린 것 아니야?!

'돌아오지 않는 기억'이란 책에서 '어제저녁의 일'이란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잡았다.

아니야..그럴리가 없어.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난 그렇게 입이 가벼운 애가 아니야...

갑자기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다시는 정신을 놓을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5시 반..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 버튼을 누르고 거울을 봤다. 앞뒷면이 전부 거울이라 그 안에는 서로 비추어진

수많은 거울 안에 수많은 내가 있다.

어떤 나는 나를 쳐다보고 있고, 어떤 나는 나를 등지고 있다.

등지고 있는 나를 봤다.

수많은 등을 보이는 나는 새카만 머리카락을 늘어트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나무하나 없는 바위로만 이루어져있는 계곡처럼 싸늘하게 서있다.


"왜그렇게 서있어?" 내가 묻는다.


"힘이 들어서.." 등을 보이는 내가 말한다.


"힘이 들어..??" 다시 내가 묻는다.


"보이잖아..니 등이, 그리고 내 등이 그렇게 힘들다고 보여주고 있잖아.." 등을 보이는 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딩동~ 1층입니다.]


1층이라는 안내음에 거울안의 수많은 '나'들은 엘리베이터 문 앞 숫자계기판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문이 열리고, 나는 내렸다. 그리고 아파트 라인 앞에 세워진 차에서 김현준씨가 내린다.

말쑥한 모습에,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려진 그의 눈은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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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막바지가 눈 앞입니다.

각자 아쉬움반 시원함반인 마음이실 것 같아요.

세워놓은 2007년의 계획과 아직 진행중인 2006년의 계획들이

모두다 차질없이 잘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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