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프롤로그

NEOKIDS 작성일 08.04.19 23: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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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직 나오지 아니하였느냐.”

 “예. 아직......”

 “무엇을 하고 있는게냐. 좀 더 공사를 채찍질하여라!”

 “예. 화...황상....아....알겠사옵니다.....”

당장 목이라도 떨어뜨릴 기세에 답하는 자가 고개를 떨구고 몸을 떨며 나가는 모습을 본 후 진시황은 이 초조함을 곱씹어 보아야 했다. 통일을 한 지도 꽤 되었건만, 자신의 천하가 아닌 변방에서는 계속 자신의 영역을 넘보는 자들이 많았다.

그것은 이때까지 일사천리로 모든 것을 얻은 진시황의 그늘에서 늘 꿈틀대던 불안이었다.

 ‘힘이 있어야 한다.....더 큰 힘이.....모든 것을 눌러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이......’

 

그 옛날 중원대륙의 땅 가운데. 당시 소주(蘇州)에 있는 호구(虎丘)라 불렸던 산.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의 명검이 모두 묻혀있다고 전해지는 그 산 언저리. 그 명검들을 발굴하기 위한 공사 진척을 보려고 세운 황제막에서 진시황은 의자에 앉아서 주먹을 이마에 갖다 대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한 시진이나 있었을까. 그 정적은 급사의 목소리로 깨어졌다.

“화....황상!”

호들갑을 떨며 들어오는 급사의 안색에 진시황의 눈빛이 빛났다.

“왜 그러느냐? 무언가 나왔느냐?”

“나오긴 나왔사온데....그것이....직접 와서 보셔야 겠사옵니다.....”

“어째서냐?”

“망측한 기운들이 흘러나와 인부들이 모두 도망을 가고 소란을 피우는 등 난리가 났사옵니다.....”

“괘씸한 놈들. 여봐라. 나는 즉시 그 곳으로 향할 것이다. 도망을 친 그 놈들은 모두 목을 벨 것인즉 지금 당장 군에 일러 그 자리에서 도망친 모든 인부들을 잡아 가두라 일러라!”

진시황은 다른 보좌하는 병사에게 이르고 급사와 함께 서둘러 황제막을 나섰다. 갑옷과 검은 그대로 찬 채였다. 축축한 기운이 섞인 바람이 진나라 군막들의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이....곳이옵니다.....”

한걸음씩 땅을 파놓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급사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고 있었다. 진시황 역시 검이 내뿜는 기운들을 강하게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춘추전국시대의 망령과 피의 냄새를 머금은 검들의 무덤, 검지가 그 위용을 드러내는 찰나였다. 뚫린 동굴 너머로 거대한 인조의 벽들이 보이고, 바닥에 꽂혀있는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검들이 자고의 왕족들의 무덤들과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검들이 야광충의 희미한 빛을 받으며 여기저기서 웅웅거렸다. 처음으로 맡은 살아있는 사람의 피 냄새와 심장의 박동소리, 그것이 검과 망령들을 흥분시킨 것이다.

“흐흐흐흐흐.....”

진시황의 낮은 웃음소리가 검지의 동굴 안을 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검들이 모두 박힌 자리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 뒤를 따라 이루헤아릴 수 없는 수의 야광충들이 날아들어 엉켜들면서 급사와 진시황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급사는 무서워 머리를 팔로 감싸고 바닥에 엎드렸지만, 진시황은 그 검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네놈은 무엇을 위해 이 무덤에 왔는가?’

머릿속으로 직접 울리는 목소리에 진시황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대답하였다.

“영원한 제국을 위해 왔소.”

‘네놈조차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그대들조차도 그 욕심의 노예가 되어버렸지 않소. 나는 의지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그 의지의 정복을 원하오.”

머릿속에 말을 하던 기운이 잠시 멈칫한 듯한 낌새를 느끼며 진시황은 왠지 일이 잘 되어가고 있는 걸 깨달았다. 그것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꽤나 담대한 놈이로구만. 네 과거의 맥을 짚어보니 너도 나처럼 지옥불을 한 가운데 있어야 할 처지가 될 정도로고.그런 놈이 뭘 어쩌겠다고?’

 

진노한 듯한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검들과 야광충의 무리가 점점 더 진시황의 모든 방향으로 조금씩 좁혀왔다. 검날의 날카로운 끝들이 진시황의 몸을 다 찢어버릴 듯 맹렬한 속도로 돌면서 위협했다. 목에 손톱 하나쯤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주위를 돌고 있는 그 무리들을 보면서도 진시황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날 삶이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러한 마음으로 진시황은 언제나 버텨왔다. 자신의 아버지인 여불위를 죽인 이래로부터, 언제나 누구에겐가 감시당하듯 살았고 그만큼이나 누군가들을 감시하면서 살았다.

더 큰 제국을 마련했지만 더욱 더 큰 욕망이 자신이 이룬 것 위로 덮여왔다. 그만큼이나 더 큰 불안도 자신의 등 뒤에서 칼을 겨눴다. 좀 더 강력한 힘이 있었다면 자신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좀 더 강력한 힘이 있었다면 수많은 야만족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노략질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원한 삶, 영원한 힘. 수많은 의지와 그 의지의 관철. 그 모든 것들을 이룰 수 있게 해줄 영물을 위해서라면, 아버지에게 사약을 먹인 것뿐만 아니라 진나라를 제외한 자신이 아끼는 어떤 것이라도 댓가로 내어 바칠 수 있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평화로울 수 있으므로.

 

그런 그의 의지가 전달되었던 탓일까. 문득 검과 야광충의 무리가 아주 작은 틈을 두고 한 순간 모두 멈추었다.

‘생각보다는 담대한 놈이로군. 맘에 들었다. 널 위한 길은 내주겠다. 하지만 널 따라온 저 놈은 안 돼! 간만에 야광충의 먹잇감들이 들어왔으니까.’

 

검과 야광충의 무리 한 쪽이 공간을 내주었다. 진시황은 그 쪽을 따라 한걸음씩 움직였고, 진시황을 따라온 내시는 아직도 벌벌 떨며 머릴 감싸고 있었다. 진시황에게 들리는 소리가 그에게는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시황이 움직이는 것과 공간이 트여지는 것을 본 내시가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빠른 속도로 검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온 몸을 난자했다. 급사의 피부들이 순식간에 걸레조각처럼 변해갔다. 그 상처의 사이로 야광충의 무리들이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고기를 주식으로 삼는 야광충들이 성대까지 파고들어 급사가 내지르는 소름끼치는 비명이 기묘하고 참혹한 소리로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시황은 앞만 보면서 태연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수백 마리 괴물들의 형상들이 아로새겨진 돌문 앞에 섰다.

 

진시황은 계속 깊은 동굴 안쪽의 좁은 길로 들어가다가 갑작스럽게 탁 트인 장소로 나왔다. 그의 눈 앞에 거대한 돌문이 가로막고 서있었다. 다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놈은 나조차도 어쩌지 못해 내 생명을 짜내어 겨우 가두기만 해둔 놈이다. 이놈에게 먹히게 될 지, 아니면 이 놈을 가지게 될 지는 전적으로 너의 운에 달린 셈이지. 그렇게도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고 싶은 독한 놈이라면 줄만한, 그런 독한 검이다.’

“강대한 힘이오?”

‘여기 있는 검들을 모두 합쳐도 이 검 하나를 따라오지 못하리라.’

“내게 주시오.”

돌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쓰러지는 돌무더기를 피해 물러난 진시황이 그 먼지들이 이는 사이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머릿속에 들려오던 목소리와는 다른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네놈은.’

진시황은 침을 한 번 삼킨 후 우렁차게 내뱉었다.

“너를 지배할 자이다.”

‘우습군. 나를 지배하고 봉인해 놓는 것도 힘에 겨운 인간들이었는데, 뭐가 어째?’

“왜냐하면 내가 천하이니까.”

‘헛!’

비웃음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가 울렸다.

‘이런 놈이다. 재밌을 것 같지 않나, 흑검?’

‘닥쳐라, 또다른 끝은 오게 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늙은이? 절대로 이런 꼴 따위는 다시 당하고 싶지 않아.’

‘뭐 괜찮아. 어쩌면 지금 나가게 되는 것도 너의 운명. 어디 맘껏 나가서 활개를 쳐보려무나.’

검의 목소리에 담겨있던 노기가 갑자기 살짝 누그러진 듯 했다.

'이제사 내보내 주는 건가? 고맙군. 안그래도 그럴 작정이다.’

 

흑검이라 불린 그 목소리, 검에 깃들은 암흑의 영혼은 그렇게 낮고 싸늘하게 대답하고는 진시황의 앞의 허공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신, 손잡이, 검받이 할 것 없이 모두 검디검은 색이었다. 밤의 어둠보다도 훨씬 더 깊게 빠져들 것 같은 그런 검은 색. 돌인지, 구리인지, 그도 아니면 철인지조차 구별이 전혀 되지 않는 그런 재질의 검.

진시황은 공중에 떠 있는 그 검을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아들여 올렸다.

“여기서 내 맹세하노니, 나의 제국은 영원할 것인즉, 이 검은 나의 동반자가 되어 영원에 영원을 더하리로다.”

‘시끄럽기만 한 놈이군. 그런 말할 시간이 있으면 얼른 나가자고. 저 늙은이가 또 변덕 부리기 전에.’

흑검이 비웃듯 말함에도 진시황은 자신의 손에 내려와 있는 흑검을 바라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왔던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나가기 시작했다.

 

‘자, 이제 고삐는 풀렸군. 다시 쥬신의 후예들에게 도움을 받기 전까지는 아마도 설레발이를 치고 다니겠지. 껄껄껄. 나도 그럼 나름대로 안식을 취해보도록 할까.....’

 

그렇게 검을 풀어준 존재의 존재감은 깊은 심연의 동굴 속으로 차츰 잦아들었다.

 

 

 

 

 

진시황이 동굴의 입구로 나갔을 때는, 호위무장들이 일부 도착해 있었다. 진시황이 급한 마음에 혼자 동굴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그를 호위하기 위해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었다.

“황상, 괜찮으십니까?”

자신에게 묻는 면면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한 손에 쥐었던 검은 검을 들고 외쳤다.

“잡아놓은 인부들을 끌고 오너라. 그리고 모든 무장들과 병사들도 이 자리로 오도록.”

곧 무장들이 인부들을 끌고 오기 시작했다. 다른 호위군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부산스럽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진시황은 주위에 서 있던 한 무장에게 물었다.

“다 모인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그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은 검의 날이 무장의 갑옷을 뚫고 깊숙이 박혔다. 온몸을 휩쓴 고통에 무장이 눈을 부릅뜨며 검을 부여잡은 진시황의 팔을 잡았다.

“화....황상.....이게.....무슨?”

“너희들은 모두 죽어줘야 되겠다는 이야기지!”

검신을 비틀어 빼면서 진시황은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더 나아졌다. 반응속도, 검을 쓰는 방식, 몸에서 차고 넘쳐나는 활력. 그는 신형을 돌려 끝내 닥치는 대로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너무 빨라 찌르는 순간 잠시나마 포착할 수밖에 없었던 진시황의 붉어진 눈빛과, 피를 머금어 기뻐하는 듯한 검은 검, 그것뿐이었다.

병사들은 창과 칼을 순식간에 진시황에게 겨누었다. 그가 훈련시킨 장졸들이 전부 진시황을 죽여야 할 인간으로 인식해야 할 정도로, 검이 내뿜는 분위기와 상황이 무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은 미약한 정도를 떠나 제대로 한 번 해볼 수도 없었다. 그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수십 여명이 단 번에 두 동강이 났기 때문이다. 듣도 보도 못한 검의 위력과 진시황의 살기에 난리를 피우던 군중들의 아우성이 골짜기 안에서 서서히 고요함으로 바뀌어 갔다.

최후의 한 생명까지 빼앗고 난 후, 진시황은 그 피가 고인 아수라장속에 홀로 검을 쥔 채 서있었다. 혼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거의 인부 1000명에 군사 500명 가까이를 도륙했다. 진시황은 검을 쥔 팔을 들어 하늘을 향했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피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검이 자욱한 피의 안개를 만들어 들이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으흐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한 광경에 흡족한 진시황. 어두운 웃음소리가 온 골짜기를 메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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