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1. 얽힘의 시작 (1)

NEOKIDS 작성일 08.04.21 2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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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얽힘의 시작.

 

 

 

지평선조차도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는 너른 땅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유자적했을 그 대지의 사정이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 하늘은 검은 구름의 소용돌이와 거친 바람으로 진동하고 있었고, 땅은 그 지축이 모두 뒤집어질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온 검신이 칠흑같이 검은 빛을 띤 검을 든 긴 수염의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정신이 혼미해질 경황에도 정신을 차려 자세히 보면, 누구라도 그가 검을 들고 있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도에서 흘러내려오는 검은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고, 들고 있는 자의 결의라고는 조금도 깃들어있지 않은 것 같은 도의 움직임과 그 도를 든 자의 흐리멍텅한 눈빛, 그것은 흡사 검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기능하는 한 마리의 생물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검의 노예가 된 자는 최초로 통일된 중국 천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으로 엎드렸던 자, 바로 진시황이었다.

 

그 검의 적의는 백여 마장쯤 떨어진 거리에서 적대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갓 스물을 넘겼을까 한 미려한 풍모들과, 그들의 손에 들려진 검과 도의 기운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들의 두루마기가 흑검이 날리는 거친 적의와 살의의 바람으로 쉴 새 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평범한 자라면 이미 몇 번이라도 다리가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을 법한 그 강대한 기운 앞에서도 표정조차 변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은 신형을 꼿꼿하게 유지하고 검을 주시하면서 자신들의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 담대한 신형 못지않게 그들이 든 각각의 무기에서 풍기는 기와 발색은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한 사람의 검은 석양의 그 빛처럼 장엄하면서도 웅장한 붉음을, 한 사람의 도는 너무나 푸르면서도 무색투명할 정도의 청명함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선 흑검이, 자신을 든 진시황의 입을 빌어 일갈했다.

'너희 동쪽의 듣도보도 못한 오랑캐들이 감히 나를 막겠다는게냐!!!!!!!' 

흑검이 내지르는 그 울림 또한 마음에 직접 울리며 공포를 자극하는 기묘한 능력을 가진 것이었으나, 두 개의 도와 그 주인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붉은 검을 든 자가 노기에 차서 그에 대답했다.

“인간의 어두운 손에서 태어난 한갓 미물이 어찌 인간의 세계를 쥐고 흔들려 하는가!!!”

‘인간들의 어두움이 날 만들고 나에게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인간마저도 그 어두움을 이기지 못하고 나와 하나가 된 즉. 그 뜻을 너희도 모르는 바는 아닐 터이고. 나 역시도 그 뜻에 따라 행하는 터. 그것에 어떤 잘못이 있다는 것이냐.’

“부정하지는 못하는 바. 그러나 네가 따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닐 진저. 왜 너는 하나만의 길로 스스로를 물들였는가.”

푸른 도를 지닌 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냉기가 사방에 흐르는 듯한 전음이었다.

‘우습구나. 애초에 나에게 이런 힘을 준 이유는 결국 인간 자신들의 끝간줄 모르는 욕망 때문이 아니던가.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나로 하여금 피를 머금게 하기를 즐겼던 것들이 인간이거늘. 이 자도 나에게 그런 것을 바랬고, 나는 그것을 완수했다. 이 자는 그 대가로 나와 한 몸이 된 것일 뿐, 우리의 계약관계에 너희가 왜 끼어드는가!’

“참회할 줄 모르는 요물 같으니!!! 네가 마신 피가 정녕 그 자만의 피더냐! 가리지 않고 죄 없는 사람들의 피까지 모두 빨아먹은 네가 아니더냐!!!”

검은 도의 전음에 대해 붉은 도 주인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말을 들은 검은 도의 마지막 전음 또한 즉시 울려져 왔다.

‘쳇바퀴 돌 듯 하니 이야기를 나누는 건 이제 무의미하겠군. 그러나 너희들 정도의 힘으로 날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은 가봐야만 아는 법!!”

 

붉은 도의 남자는 제법은 호기 있는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바로 다음 곁에 서 있는 청도의 주인에게 묻느라 속삭이는 말의 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준비되었는가?”

“벌써 되어 있다네.....”

“역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가......”

청도의 주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홍도의 주인에게 대답했다.

“이 힘이 아니면 저 놈 상대는 할 수 없네. 하지만 이 힘은 너무 위험하니 될 수 있는 한은 그 힘을 쓰지 않고서 막도록 해봐야 할 것이야. 우리의 목숨을 걸지 않으면 막을 수 없네. 여기서 수많은 생명들의 맥을 무너지게 할 수는 없어.”

“알았네. 이제, 시작하세나.”

두 사람은 자신의 무기에 더욱 힘을 쥐었다.

“다음 세상에서 만나세. 마루.”

“한 세상 자네와 즐거웠네. 아라.”

붉은 검의 주인 마루와 푸른 검의 주인 아라가 눈길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동시에 형세를 갖추고 살기어린 눈으로 검은 도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의 신형이 순간 흐릿해졌다. 공기 중에 기운만이 남아 두 사람의 잔상을 남긴 까닭이었다.

“으아아아아앗!”

두 기합성의 일갈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어느새 검은 도의 신형에게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쇄도해 나가고 있었다. 밝은 빛과 검은 어둠이 그 자리에서 어지러운 선을 그리면서 한데 뒤엉켜 지옥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더욱 멀리서 떨어져 지켜보던 열 명 남짓 되어보이는 한 무리가 있었으니, 이들은 하나 같이 그 무도의 성취가 녹록치 않아 보임에도 그 싸움을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자신들이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던 까닭이리라.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가운데 합하고 별하며 서로가 가진 반탄의 극한 기운을 쏟아내는 절륜의 전투. 어찌 압도되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그들 모두의 생각 역시 그 싸움만큼이나 어지러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소이다.....이 싸움이 대체.....인간의 것이란 말입니까.....”

복호사에서 온,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사제장이 놀란 눈으로 그 싸움을 지켜보며 탄식했다.

“저도 놀랐소이다. 저 흑마검이야 그렇다 치고, 저 두 동이족 청년의 절기도....”

“어떤 면에서 보면 수치가 아닙니까. 오랑캐라 일컫던 자들에게서 도움을 얻다니.”

화산에서 내려온 자가 그들의 놀라는 모습에 콧방귀를 뀌며 한 소리를 했다. 그 말에 발타라 불리는 자가 한 마디를 했다.

“저들은 치우의 자손들로 우리보다 벌써 천 년 이상을 존재한 부족이오. 그렇게 낮춰볼 것은 아닌 듯 하오만....”

화산 검객은 자신의 얕은 지식을 애써 감추려는 듯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천년이든 만년이든 지금 우리 중원의 강함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 있겠소이까. 흥하고 쇠하는 것은 모든 것의 이치. 또한 저 힘은 장차 마검 못지않게 우리 강호를 뒤엎을 중대한 사안인즉, 토사구팽. 어떻게 되든 저들의 힘이 쇠하였을 때 우리들 또한 할 일을 해야만 하오.”

“그건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닙니까!”

발타가 화산 검객의 입장표명에 반기를 들었다.

“게다가, 화산의 생각은 그들의 힘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미숙함에 불과합니다.”

“무엇이라 하였소!”

화산 검객의 목소리가 노기로 얼룩져 있었다.

“우리들, 아니, 이 중원 무림 전체가 집중하며 지금 태동하려는 그 수많은 절륜과 절기의 힘을 지금 스스로 부정하는 것입니까! 도리가 중하다고는 하나 발타는 어찌 그렇게....”

“지금 이 싸움의 기를 제대로 읽고 계신 겁니까.”

“무슨 말씀이시오?”

“복호사의 여수장께서도 이미 감지하셨을 터. 그래서 인간의 싸움이냐고 물은 것이외다. 화산이나 복호사 수장님이나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강기와 관련해서 많은 절륜을 연구하였을 터. 그 역사가 지금도 이미 몇 백여 년이 되어 가오. 허나 지금 눈앞의 싸움은 우리 강호의 그러한 절륜과는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뭐가 다른지 말씀을 해보시란 말이오.”

“보통 손속을 섞게 되면 그 손속 속에는 적의라던가, 여러 가지 감정들이 밀려오는 경우를 체득하게 되오이다. 화산 역시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닐 테지요.”

“그래서 그게 어쨌단.....”

화산의 검객이 말을 멈추었다. 그 역시 그 싸움을 다시 읽고서는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 감각. 그것이 발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발타는 화산의 검객도 이제사 깨달았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인간영역의 손속들이 아니올시다. 저 무한함. 저 흐름. 무형류. 되는 대로 부딪히는 것 같으면서도 정교하고 그러면서도 광범위한..... 이건 마치.....”

“우주와 우주가 격돌한다, 그 말씀이시오?”

지저분한 옷차림의 늙은이, 종진이 발타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하긴, 나도 별 가진 것 없는 사람들과 나 나름대로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 무예 비스무리 한 것을 연구해 왔다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 까막눈에게도 지금의 싸움은 차원이 다른 것 같구료.”

“다른 말은 필요 없소이다. 저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오!”

화산의 검객이 대화에 쐐기를 박았다. 다른 이들은 별 말이 없었고,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다른 이들 역시 자신들이 믿는 무공의 힘을 이렇게 강대한 힘에 간단히 무시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고, 그것은 그들이 앞으로 만들고 일으킬 무예의 파벌들, 즉, 앞으로 구파일방이라 불리게 될 강호의 이익들과도 관련이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런 그들의 욕망을 읽어내면서, 발타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된 자존심으로 이미 눈이 먼 자들이로구나. 도대체 이 전투는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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