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1. 얽힘의 시작 (2)

NEOKIDS 작성일 08.04.23 01: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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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가 어지러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검신과 환영이 잔상을 남기며 그 명멸을 빛으로 표하고 있었다. 치열한 이 싸움은 아직은 좀 더 흑검 쪽이 유리한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흑검은 난무하는 검무의  중심부에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두 개의 검이 내뿜는 모든 종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인간의 공력이란 아무리 강건하다 하여도 결국 한계는 있는 법. 마루와 아라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힘의 소진이 예상보다 빠른 탓이기도 했거니와, 검은 검의 마력이 훨씬 더 강대하게 이 주변의 생기와 기력의 흐름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도 마루와 아라에게는 불리한 면이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전음이 아라의 머리에 울렸다.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네. 좀 더 힘을 내보세!’

아라는 마루에게 답하며 푸른 검의 기운을 한층 극강으로 내보였다. 공중을 쏜살같이 가르고 있는 검신의 주변. 하늘 위의 먹구름과 푸른 빛의 경계 사이가 * 듯이 부딪히며 일렁이더니 청룡과 현무의 형상을 그려냈다. 마루도 그에 답하듯이 붉은 기운을 더욱 끌어올렸다. 하늘을 찌르는 붉은 빛이 대지를 파고들어 땅을 달리는 주작과 백호의 모습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게냐!’

흑검이 일갈함에도 둘의 쇄도는 그칠 줄 몰랐다. 사성수의 형상은 검은 검을 향해 몸을 웅크리다 한 순간 모두 달려들었다. 사성수가 검은 검의 신형과 기를 물고 뜯고 싸우는 동안에도 흑검의 움직임은 유연하며 지칠 줄을 몰랐다. 모든 사성수의 기운이 쇠잔한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은 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 형상들의 기맥자리들을 흩트려 놓자 그 형상들은 단 한순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이제 잔재주는 끝난 거냐?’

검은 검의 흉흉한 기운이 더 강해져 오자, 마루와 아라는 전율했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 검은 검이 강할 것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신들의 손에 있는 이 위험한 무기들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야만 할 때가 온 것도.

“준비는?”

“벌써 되어 있네.”

둘은 잠시 눈을 감고 다짐했던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에 대한 모든 준비도 되어 있었다. 이제는 실현할 일만 남은 것이다. 둘의 손에서 무기들이 놓여졌다.

‘음?’

흑검이 그들의 행동에 잠시 의아해했지만 곧 본능에서부터 울려오는 위험신호를 즉각 눈치 챘다. 그들은 공중에서 멈춘 채로 마주보면서 어검술을 행하고 있었다. 나란히 마주본 검의 끝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검술은 공격을 위해서가 아닌, 무언가 의식을 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식. 봉인의 행위. 그런 느낌은 전과 아주 같지는 않지만 과거에도 흑검이 느껴본 적이 있는 위험신호였다.

‘어림없는 짓거리!!!!’

흑검이 사성수와 싸우느라 떨어져 있던 거리에서 두 사람을 향해 쇄도해 왔다.

 

하지만 흑검의 판단은 늦어도 너무 늦어 있었다. 벌써 두 개의 칼이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을 서로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다. 음과 양, 조화와 합일, 극과 극의 합. 그것이 원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순간 태양과도 같은 강한 기운이 그 원의 가운데에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에 또 영향을 받는 듯 검신들이 서로에게 이끌려 들어가 검신을 포개고 합쳐지기 시작했다.

‘이건!’

흑검은 자신보다 강대한 힘의 기운에 두려움을 느꼈다.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힘. 자신의 소우주적인 힘과는 별다르게, 빨아들이고 파괴하는 힘이 아닌 창조하고 생기를 돋우는 힘. 그러면서도 자신의 힘보다 월등하고 더 큰 질량과 부피를 가진. 그런 힘이 지금 생성되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흑검은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일대의 주변 기운이 모두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천지개벽의 순간 같은 그런 압도적인 생기가 모든 것을 압도했던 것이다. 그 기운이 자신의 속박력을 파쇄하고 휘저어 놓는 것을 느끼면서 흑검은 전율했다. 한 번도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흑검 자신의 검신과 흑검이 조종하는 인간의 잔영이,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었다.


“아니!”

모여 있던 열 명의 무리들은 흑검이 내뿜었던 강한 기운보다 훨씬 더 강대한 기운을 피부로 느끼면서 바닥에 눌어붙듯 엎드려야 했다. 그 압박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크어억......자칫하면......우리도 죽겠소.....”

화산 검객이 거품을 뿜으며 말을 꺼내는 순간에도 지표의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바위들은 제멋대로 떠다녔고 그마저도 계속 소멸되어갔다. 모든 지표의 것들은 제 형상에서 이리저리 일그러진 채 자신의 모습들을 잃어가고 먼지보다 더 작았던 원래의 아득한 근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힘이 조금 있으면 엎드려 있는 자들에게로 닥쳐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 힘은 그들이 압력을 받고 있는 장소로 확대되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저 편의 두 사람의 일정한 주변에서만 시전되고 있었다.

“이.....이것은.....저 두 사람은.....”

 

발타는 이 상황을 이해했다. 저 힘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재창조할 수 있는 강한 힘임에도, 걷잡을 수 없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갈 수 있음에도 저 두 사람은 그것을 자신들의 생명력과 염원으로 최대한 눌러 억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절대로 이쪽에 있는 자신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이 대륙과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그렇게 모든 것을 지키겠다는 그런 마음이 미세한 기운들을 타고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열 명 중 발타 외에는 없었다.

발타는 그 마음을 느끼고는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이대로 소멸할 수는 없지!!!!!!!’

흑검은 유체이탈을 시도했다. 이미 흑검의 검신과 검신을 잡고 있는 진시황이라는 영역은 저들에게 잡혀있었지만 영까지는 그렇게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영체마저도 극강의 생기가 만든 손아귀에서 달아날 수는 없었다. 그 손아귀에 모든 것을 잡힌 흑검의 영체가 몸부림을 쳤다.

‘놔! 놓으란 말이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 강대한 힘의 손아귀는 곧 그 영체를 온 사방으로 에워싸고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거대한 거품에 둘러싸인 것처럼 영체는 쪼그라들면서 듣기만 해도 그 공포에 미쳐버릴 것 같은 비명을 질러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그것도 그 힘이 포위를 끝내자 들리지 않았다. 조금씩 그것은 아주 작아졌고, 작디작은 지경까지 이르러 흑요석 같이 손바닥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는 자그마한 보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귀에 그 흑검의 요사한 목소리가 아닌 어떤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잘 몰랐지만, 그것은 진시황의 목소리였다.

-육체와 영의 해방을 준 그대들에게 감사한다. 허나 나의 안식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모든 걸 가지기 전까지는. 그 때까지는 잠시 동면할 뿐이지. 나는 다시 깨어날 것이다. 이 흑검과 함께. 그리고 다시 너희들의 이 세상을 이 손에 쥐기 위해 오리라. 명심하라.-

귓가에 울려오는 그 목소리에도 둘 다 대꾸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모든 힘이 이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소진되었고, 몸을 가눌 힘만 겨우 남아있었던 탓이다. 보석과, 두 사람, 그리고 합체했다가 떨어진 두 개의 검이 공중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제 한울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그 때가 오는 걸까.’

‘그래, 지금이 그 때인 것 같군. 마루.’

‘각오는 했었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군. 아라, 내 최후에 네가 같이 있어 좋다.’

‘마찬가지다. 벗이여.’

땅으로 내려온 둘의 앞으로 천천히 그 열 명의 무리가 다가왔다. 치료를 하려는 복호산의 여사제를 화산검객이 검신으로 막아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저 둘을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그들은 이미 생명을 불태웠소. 지금이 기회요.”

화산검객이 눈짓을 하자, 두 사람은 각각 그들의 무기를 챙기고 모두는 그 둘을 둘러쌌다. 그들의 그 움직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는 바는 아닐 터이나, 그 청년 둘은 공중에서 떨어져 부상이 만만치 않은 와중에서도 서로의 등을 맞댄 채로 가부좌를 틀면서 웃고 있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화산검객은 혹시 이들이 남아있는 힘이 있는지 두렵기도 했거니와, 자신의 그 무력함에 대한 비웃음이기도 한 것 같다고 제멋대로 생각하여 기분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즉시 그는 화를 쏟아냈다.

“무엇 때문에 그리 웃는 게냐? 이제 죽을 놈들이! 우리가 그렇게 우스워 뵈더냐?”

“선생들. 이미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고 온 사람들...... 그것을 받아들이려 이러는 것뿐이니 나쁘게 생각지 마시오.”

서투른 중원의 언어로 기진맥진한 두 사람 중 한 청년이 말했다. ‘미래를 보고 온 사람들’ 이라는 말에 화산검객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들의 부족은 어느새 그러한 신기까지 깨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더더욱 살려두어서는 안될 존재들. 화산검객의 온 몸을 조직한 세포와 신경 하나하나가 그렇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두 청년은 운기조식조차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전부를 불태운 후의 모습으로, 아주 편안한 자세만 유지하고 있을 뿐.

“그렇다면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았단 말인가.”

발타의 물음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타는 왠지 모르게 손을 공손히 모으고 싶어졌다. 자신의 눈앞으로 합장을 한 채 고개를 숙이면서 발타는 눈물을 흘렸다.

“보았다면 피하고도 싶었을 터. 어찌하여....”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의 마지막이었으니까. 허나 발타님의 마지막은 아직 멀고도 멀은 것 같군요. 성실히 갈고 닦아주십시오.”

발타에게 마루가 건네는 말이 끝나자, 아라가 말을 이었다.

“저 흑요석은 조심해서 가둬 주십시오. 그 흑검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어떠한 쇳덩이도 저 영을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아주 먼 미래에는 저 흑검의 영이 담길만한 쇳덩이들이 아주 많이 나올 것입니다. 잘 숨겨주시고, 절대로 저것을 사람의 나쁜 마음으로 이용하게 하지 마십시오.”

둘은 마지막 웃음과 함께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눈을 감았다.


가장 먼저 검을 휘두른 것은 화산검객이었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모두 따라서 병장기들을 두 사람을 향해 내뻗었다. 발타와 복호산의 여사제장, 그리고 거지 차림의 종진은 그 배덕의 무리에 끼어들지 않은 채 발걸음을 돌렸다. 두 청년을 향한 다섯 명의 난도질에 가까운 도륙이 끝이 날 즈음, 다른 두 사람은 자신들이 들고 있던 무기들의 신형을 바라보며 그 황홀경을 넋을 잃고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그래, 우리 둘도 무적이 될 수 있어!”


순간 그 무기들의 신형에서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난도질을 끝낸 채 숨을 몰아쉬고 있던 다섯 명과 그 무기를 안고 있던 두 사람은 그 강기의 반탄에 휘말려 자그마치 30여장을 굴러 나갔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병장기마저 놓쳐 버린 채 의식을 잃었다. 겨우 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화산검객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검과 도가 다시 울어대듯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공중에 떠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 무기들은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 잠시 그들의 시체 위를 애잔한 몸짓으로 떠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기운을 끌어올려 어디론가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는 더듬대며 찾고 있던 방향을 이제 알았다는 듯 쏜살같이 자신의 고향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쳇! 이렇게 될 것도 알고 있었단 말이군!”

화산검객은 혀를 차면서 검을 검집에 밀어넣었다. 그 역시 속으로는 그 무기를 노리고 있었지만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였던 터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들이 날아가 버렸으니 닭 쫒던 개가 되어도 단단히 되어버린 것이다.


발타와 여사제장, 그리고 종진은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과 그들의 상태를 잠시 보았지만, 이내 등을 돌렸다. 이제, 여기 있는 10걸들이 이렇게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일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화산은 문파를 세울 것이고, 저기 있는 자들도 문파를 세울 것이다. 영겁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그 세 명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세 명은 이미 무언중에 서로 굳게 다짐한 것이 있었다. 다시는 저 동이민족을 해하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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