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바다의 시간 -마지막

혼돈자 작성일 09.07.19 13: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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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뒤...

내가 20대 후반으로 되었을 쯤...

 

난 낙원상가에서 보컬녹음을 위해 싼 녹음용 마이크와 케이블 몇가지를

사고 상가안을 걷고 있었다... 그 때 뒤에서 누가 내등을 툭 쳤다... 뒤를

돌아보자 힙게스가

-야 발란!! 너 맞지?-

-어... 그래... 야... 오랜만이다...-

하며 우린 서로의 어깨를 치며 반가워했다...

 

우린 피맛골 주점에서 간단하게 술한잔 했다... 힙게스는 나에게...

-여어... 너 예전보다 술 많이 늘었다... 예전엔 한병 넘기면 끝장났었잖아?-

-그러게... 그래도 많이 먹는다고 할 수는 없어... 그래 어떻게 지내냐?-

서로 건배하고 마시면서 내가 물었다... 힙게스는

-나... 홍대클럽쪽에서... 힙합공연하면서... 그러고 있어... 아직...

  이렇다할 그런건 아니고...-

-야... 그래도 나보단 낫네... 난 아직 집에서만 그래...-

하며 말했다... 말이 사실이지... 나도 아직 번듯하게 뭐 하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얘기하는 중... 동호회 얘기도 나누었다... 아무리 안좋게 끝났어도... 나름

재밌었고 의미있었던 시간임은 분명했으니까... 그러니 결국 그때 엠티 얘기도 나왔다... 

-저기 혹시... 그럼 동호회 사람들... 연락이나... 소식은 알아?-

그말에... 힙게스도 직접 알지는 못하는것 같았다... 몇몇은 우리처럼 그럭저럭 살아가는것 같지만...

크리티아 누나는 정신병원을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엑스형과 용진러쉬형은 죄로

형을 언도받고... 지금 아직 감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그 때 힙게스는

-아... 얼마전에 애엄마된 락소녀 누나 만났는데... 그 때 니 얘기 하더라... 니가

  친친누나 정말 잘 설득시켰다면서...-

-말마... 사실... 내가 그때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몰랐어... 너무 무서워서... 니가 더 힘들었지...

  힘들게 그렇게 경찰서까지 달려가서...-

그렇게 얘기하면서... 그 때의 그 슬펐던 친친누나의 얘기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힙게스는...

-너 그거 알아? 그 친친누나 동생... 아직 안죽었데...-

난 그말에 놀라서...

-그래?-

-사실 죽은거나 마찬가지지... 장애인 요양원에서 식물인간채로 살고 있다더라...-

아... 아직 안죽었었구나... 그러고 보니... 힙게스 말대로 장애인이었던 친구가 이젠

식물인간 신세까지 되어버렸으니... 너무나 가혹한 인생이다...

 

교도소 면회실... 처음오는 곳이라 긴장되었다... 난 나이를 좀 먹은 친친누나를 만날수가

있었다... 예전처럼 환하고 따뜻한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온화해 보였다...

-나... 항상 너에게 고마워해... 너 만나면 이얘기 하려고 했어... 정말 고맙다...-

-아... 아녀... 뭐... -

난 쑥스럽게 대답했을 뿐이다... 그래도 누나 기분 좀 맞추어 줄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면회시간이 끝날쯤... 친친누나는... 반쯤 고개를 숙이며....

-사실 예전에... 너보면... 항상 내 동생을 연상케 했었어... 뭐랄까... 내 동생처럼 아무 장비없이...

  간단한 미디로... 테이프로 녹음해오던 모습이 마치... 그런 너에게 그런짓을 했으니... 아니 모두에게...

  변명같지만... 너희들 다 죽일 계획도... 생각도 없었어... 그저 그 셋을 죽이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그 모습을 보여주며 각인시키고 싶었던거야... 그런 내 추한 결말을... 그렇게하고

  나도 죽을 생각이었어... 너하고... 나머지 멤버들에게는 너무 미안해... 결국 나쁜 기억을

  남겨주었으니까...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사과할게... 미안해...-  

-아녀... 그건... -

하며 난 머뭇머뭇했다... 친친누나의 말에서 변명이 아닌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면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셋은 용서할 수 없어서 그랬을지 몰라도... 우리에게까지

그런 살기를 품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누나는 고개들어 날 보며...

-그래도... 아직 그 세사람에겐... 그건 이해해주지?-

-예...-

그건 할 수 없는거다... 용서할 수 없는게 당연하니까... 순간 난 누나의 동생이 아직 안죽었다는

사실에 문득 무언가 원하는 맘이 생겼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고...

-누나... 부탁 하나만...-

-뭔데...?-

하며 누나가 고개들어 물었다...

 

지방에 위치한 장애인 요양원... 난 버스에 내리고 주위를 돌아보고... 요양원이 있는

난 산언덕을 올랐다... 산은 여름이 가고 가을빛이 많이 물들었다...

난 힘들게 올라와서... 요양원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난 친친누나에게...

-요양하는 누나 동생을 만나보고 싶어여... 그가 만든 음악도 듣고 싶고... 그날 이후로...

  항상 궁금했거든여...-

하며 친친누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난 다시...

-혹여나... 내가 엑스형 처럼 그런 일이 걱정된다 생각하시면... 허락안하셔도...-

-아니... 이제 나에겐 그런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가 병원에 전화해서 얘기해볼게...-

하며 친친누나가 웃으며 허락해주었다...

 

이곳 간호인들의 안내로 난 친친누나의 동생이 있는 방으로 갔다... 방안 침대엔...

마르고... 가만히 누워있는 이 남자...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내 20초반... 나를 흔들었던

그 음악의 주인을...그 '하늘처럼'을...

옆엔 작은 카세트가 있었다... 간호인이 어떤 테이프를 꺼내더니

-누나되는 분이 항상 전화로 오시면 환자분과 같이 듣게 틀어달라더군여... 들으시겠어여...?- 

-아.. 예... 감사합니다...-

난 부탁했다... 간호인은 카세트를 플레이 해주었다 테잎이 돌아가며 그 첫음절부터가

내 가슴을 '쿵' 하며 치게했다...

 

정말 거짓말없이... 단순히 사운드 카드에서 나오는 음악이라곤... 내가 믿을 수 없이 너무

훌륭한 음악들이 들려왔다... 난 조용했지만 속으론 격렬하게 그 음악에 빠져들었다...

아직 몇년이 지나도... 내가 다가설수 없는 그런 아름다운 이 음악을 난 만나고 있는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음악으로서 설레임을 느꼈다...

그가 누나에게 전달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아니 모든 사람들이 들어도 감동시킬 수 있는

마음을 담아... 그는 이 불편한 몸으로 최선을 다했고...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다...

이 음악의 주인공인 이 사람은... 이 음악을 정말 듣고 있을까... 듣고 있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같이 듣고 있다는걸 알기 바란다... 이 음악을 동경해온 사람으로서의 바램을... 

A.B면 모두 끝났는데도... 난 조용히 앉아... 그 앞에 가만히 보며 생각에 잠겼다...

 

벌써 노을이 지고... 난 자리를 일어났다... 다시 한번 아무 움직임이 없는 그를 바라보았다... 난

가방안의 시디를 꺼냈다... 친친누나가 음악일을 하면서 만든 곡들을 내가 모아 시디로 담아왔다 

다행히 시디도 같이 플레이 되는 카세트였다... 난 시디를 넣고 그를 바라보며...

-이거... 친누나분께서... 그동안 만들었던 음악이에여... 혹시 누나 음악 들어보셨나해서...

  아마 노래 하나하나가 동생분 생각하시면서 만드신거라 믿거든여... 들어보세여...

  저도 들어봤는데 정말 좋아여...-

그렇게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고... 시디를 넣고 난 플레이를 눌렀다... 친친누나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그와 난 음악을 들으면서... 그만 난 일어나 그를 마지막으로 보며 방을 나왔다...

 

난 어둑해지는 밖으로... 요양원 언덕을 내려오고...

주위를 보며 한번 크게 숨을 들이켜보았다... 담배를 하나 물며...

푸르게 깊어가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이쪽으로 버스가 오고 있다...  

 

친친누나가 만든 음악이 흐르는 방... 그 옆에 누은 그의 손가락은.... 음악에 리듬을 맞추듯 작게

까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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