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실신 1

지금은짝사랑 작성일 09.07.26 20: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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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조금만..젠장..조금만..제발..

후욱...후욱...

후욱...후욱...

 

 

아무리 노력해도 호흡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뼈가 드러난 어깨와 비현실적으로 어긋난 뼈에  꿰뚫어져 버

 

린 허벅지에는 쉴새없이 피가 솓구치고 있었다. 지혈을 해야 하건만 내 뒤를 바짝 쫒아오는 흑의인들이 그럴 여유를 줄리

 

는 만무했다.  이미 쓰러져도 될만한 상황이건만 나는 바닥이 난 단전의 내공들을 간신히 운용하며 한곳을 향해 달려나갔다.

 

물론 그곳으로 간다고 해서 이 모든일에서 벗어날런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단지 아버지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하시던 '교에

 

무슨 변고가 생긴다면 죽현으로 달려가거라'는 말을 충실히 지킬뿐이었다.

물론 그런말씀을 하실때마다 농이 심하다며 웃고는 했지만.

 

간신히 죽현에 도착한 난 사방을 채운 대나무들에 둘러쌓여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곳엔 을씨년스럽게 흔들리는 대나

 

무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절망이란 감정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무작정 죽현에는 왔지만, 그 후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현을 언급하셨을 뿐 그외에는 말씀하지 않았었다. 나는 힘이 빠져 털썩 주저 앉았다.

"그래 어차피 뭔가를 기대한것도 아니잖아. 단지 이 지옥같은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가느다란 줄을 잡은 것 뿐이었어."

나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죽현에 가면 모든게 괜찮아질거야'라는 희망은 자신이 해야할일을 충분히 수행했다. 이곳

 

을 달려올 동안 나는 절망이란 감정에 지지 않았으닌까. 하지만 더이상 희망은 없었다. 나는 이미 말라버린줄 알았던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빌어먹을!! 이왕 예측했다면 비밀수호대를 만들어 놓던가. 아니면 영약이나 천고병기들을 준비해놓던가 망할!!!"

나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뒤를 쫓던 흑의인들도 그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내게 다

 

가오던 발걸음을 잠깐 멈췄다.

"그래 죽여라! 죽여! 망할 진작에 죽을 것을,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내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필사즉생 생즉필사라더니.

 

젠장! 필사면 즉사구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다큰 소저가 그 무슨..쯧쯧..."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눈을 뜨고는 그 목소리 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흑의인들도 발걸음을 다시 멈추고는 나

 

와 같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15살 남짓한 소년이 혀를 끌끌 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 아버님은 항상 말씀하셨소. 목소리큰 여인은 평생 남자들 등골을 파먹는다고."

"무...무슨..."

"물론 항상 터지고 사는 아버님 이야기인지라 설득력은 없지만 말이오."

흑의인들의 빗발치는 살기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소저, 저자들은 얼마나 강하기에 여자인 소저를 이 꼴로 만든것이오? 여자는 남자들보다 우월한 생명체라고 어머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소년은 신기하다는듯 피가 철철나는 내 어깨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눈에 비치는 감정이 영락없는 호기심인지라 나는 기가

 

막혀 말을 잃었다. 아..마소현 죽기전에 참 못 볼꼴 많이 보는구나. 그래도 생면부지인 꼬맹이가 내 덕에 죽는건 싫은지라. 나

 

는 소년을 밀치며 외쳤다.

"어서가, 여기 있으면 죽어! 훠이 훠이. 이봐요! 이 아이는 그냥 놔줍시다."

내 바램과는 다르게 흑의인들은 소년까지 죽이기로 마음 먹었는지 우리가 있는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급한 내맘을 모

 

르는지 아이는 무언가 깨달은 듯 크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허허. 아무리 강한 여자들도 다수에는 어쩔수 없나보군. 역시 어머님 말씀대로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는건가?"

이정도 눈치면 앞으로 세상살아가면서 굶어죽거나 맞아 죽기 쉽상인 녀석이었다. 이왕 나타날거면 은거기인이나 나타날 것이

 

지. 참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이다.

가뜩이나 꼬일대로 꼬인 내 단전은 답답한 마음에 더욱 꼬여만 갔다. 이러다가는 칼에 죽기전에 내상으로 죽을 판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그제서야 흑의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싱긋웃으며 내게 말헀다.

 

"절대 외지인에게는 신경쓰지 말라는 어머님 말씀이 있었으나, 내생에 어머님 이후로 처음보는 여자이니."

인심을 썼다는듯 싱긋 웃으며 소년은 흑의인들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버버..."

기가막혀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간신히 잡아놓았던 의식이 꺼져가는 가운데  흑의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

 

가던 아이의 뒷모습이 빛이 되는것을 보았다.

찰나의 순간.

 

모든것을 꿰뚫은 듯한 빛의 궤도.

 

빛의 잔적과 함께 소년이 흑의인을 뒤쪽에서 나타났을때 대나무숲에는 금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정적만이 가득했다.

 

정적을 깨뜨린건 한방향을 향해 꺾어 부러지기 시작하는 대나무들이었다. 그와 함께 휫날리는 잎사귀와 하나씩 터져나가는

흑의인들의 몸. 피빛 안개가 대나무 숲을 가득 채웠다. 허공을 수놓던 핏방울들이 하나하나 떨어지면서 대지를 적셔 가는 비

 

현실적인 배경을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피에 젖은 옷을 털며 어머니에게 혼나

 

겠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니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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