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조원들이 머무르는 막사의 분위기는 곧 다가올 마지막 전투에 대한 흥분감과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각자의 병기들을 매만지며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던 낭인들 중 검붉은 얼굴을 한 사십을 이미 넘겼음직한 남자가 누가 보아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의 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정성스레 닦고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오랜 시간을 낭인으로 살아오면서 배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자신의 무기를 늘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답을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3류 무인이었지만 자신을 자식처럼 대해준 스승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항상 ‘칼밥을 먹고 사는 이들에게 자신의 무기를 최상의 상태로 손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자신에게 강조했었다. 비록 자신의 스승은 전투가 있기 전날 과음을 하는 바람에 숙취와 함께 자신의 목까지 날아가 버렸지만. 그는 그런 스승님의 말을 항상 잊지 않고 실천하는 성실한 면을 가진 낭인이었다. 그 남자의 옆에서 정성스레 검을 닦는 그를 멍하니 쳐다보던 약관이 갓 지났을듯한 남자가 물었다.
“노형, 그 검이 무엇이기에 그리 애지중지 하는 거요?”
그 남자는 자신을 향해 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검을 매만지고 있었다.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생각에화가 난 그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노형, 매번 내 말을 무시하는 건 참을 만한데, 나는 나를 무시하는 것만은 참을 수 없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남자가 가시 돋힌 말투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자, 그제야 자신의 검에서 눈을 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아, 미안하네. 검에 정신이 팔려서. 그래 뭐라고 했었지?”
그 남자가 허탈 한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노형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소. 그런데 노형, 내가 듣기에 예전 설담 대장님과 같이 일한 적이 있다지?”
“그랬었지.”
남자는 가볍게 대답하였고 이에 질문을 한 남자가 은근한 미소를 띠우며 물었다.
“그때 설담 대장님은 어떠했소?”
“흐음, 오랜 된 일이라.”
남자는 칼을 매만지던 손으로 동그란 모양을 만들었다. 이에 질문을 한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별로 대단치 않는 이야기면 알아서 해요.”
자신의 품에서 동전 몇 개를 빼어 남자에게 던지자, 재빠르게 그 동전을 낚아챈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설담 대장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 처음에 설담 대장과 이 곳 남만에서 마주쳤을 때에는 전혀 다른 사람인줄 알 정도였으니.”
예전 그 남자가 설담을 만난 건 낭인촌에서였다. 돈에 목숨을 판 낭인들에게 누군가가 ‘이들 중 사연 없는 자만이 나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한 다면 예외 없이 모두가 길가의 자갈을 들어 던질 정도로 낭인들은 각자의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낭인촌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난 세상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이 들거든? 한번 건드려만 봐라’라는 얼굴을 한 채 어슬렁거린다. 결국 낭인촌은 난폭한 바람만 마구잡이로 불어대는 그야말로 흉흉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어서 의뢰를 하러 오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발을 붙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런 낭인들 중에서도 설담은 정도가 가장 심했었다. 설담의 표정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보는 사람마저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불에 전소 되어 버린 오래된 고목과도 같은 얼굴이었다. 더구나 그는 낭인촌의 낭인들이 아자(啞子)라고 착각할 정도로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설담과 같은 의뢰를 배정 받은 자들은 꽤나 곤혹스러워 하다가 그 외뢰를 거부하고는 했다. 돈에 목숨까지 파는 낭인들이 돈이 되는 일을 거부하는 웃기는 광경이 연출 된 이유에는 설담의 표정과 말이 없는 것 이외에도 설담이 낭인치고는 가진 힘이 크다는 이유가 있었다. 설담이 처음 낭인촌에 들어 왔을 때, 한 낭인이 그의 어린 얼굴을 보고는 시비를 걸었다가 그날부로 설담의 검에 의해 낭인계에서 영구 은퇴를 하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졌었다. 그나마 그 낭인이 실력이 형편없었다면 모르겠지만 그 낭인은 무림에서도 이류로 통할만큼 꽤나 강한 자였으며 그런 자를 설담은 단 한수로 오른 손을 잘라버린 것이다. 이렇다보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생각으로 낭인촌의 낭인들은 설담과 같은 의뢰를 받게 되면 모두들 피하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에이, 지금 설담 대장과는 너무 다르지 않소. 노형이 다른 사람을 착각한 것이 아니오?”
젊은 남자가 말을 끊고는 투덜거렸다.
“어허, 듣기 싫으면 말던가.”
“아뇨, 계속하시오. 돈 값은 해야지.”
“그날 나는 설담 대장과 같은 의뢰를 받고는 의뢰를 포기할까 고민하고 있었지. 그런데 하필 의뢰가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상당한 거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결국 그 의뢰를 맡을 수 밖에 없었지.”
그는 설담을 찾아가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나랑 같은 임무야. 기녀의 호위를 맡으라는 군.”
설담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검을 챙겨들고는 그를 따랐다. 겨울을 건너가는 바람 소리가 만만찮은 날 이었다. 의뢰는 한 기녀가 어미를 만나러 가는데 그 길을 호위하는 것 이었다. 기녀의 호위 의뢰치고는 의뢰비가 상당한 것을 의아하게 여긴 그는 평소 자신의 성실성을 대변하듯, 그 기녀에 대해 알아보았고, 기녀가 흑룡방주의 애첩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첩의 호위를 낭인에게 맡긴 것으로 봐서는 흑룡방주의 관심이 식은 퇴기겠군.”
그는 기루 앞에서 기생을 기다리며 기대하지 않는 다는 투로 말하였다. 설담은 물론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를 호위해주실 분들인 가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른 전후로 보이는 긴 머리의 여자였다. 옆으로 긴 눈이 이지적인 느낌을 주었다. 어미를 만나러 가는 길이여서 인지 기생 특유의 진한 화장을 하지 않아 어딘가 기생답지 않은 청초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조금 전, 자신이 퇴기라고 했던 것을 그녀가 듣지 않았기를 바라며 홀린 듯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고, 곧, 자신이 그녀의 얼굴을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저희가 맞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고 이에 당황한 그는 따라서 머리를 숙였다. 문제는 머리를 너무 심하게 숙인 나머지 몸이 기우뚱하며 중심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모습을 본 기생은 웃음을 참듯이 입가에 손을 갖다 댔다. 얼굴이 붉어진 채 어색하게 웃는 그를 설담이 뒤에서 짜증스런 눈길로 쳐다보았고 설담의 그런 눈길을 느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정쩡 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그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주었고 그녀는 그런 자신의 이야기에도 잘 동조해 주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보다 즐거운 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한껏 기분이 좋아 진 그는 어느새 설담과 같은 의뢰를 맡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 설담을 제외한 둘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걷다가 번화가가 끝나가는 곳에 이르자 기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불편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황급히 저으며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딸이 걱정 되어서요. 이제까지 어미와 떨어져본 적이 없었는데 잘 지낼지 걱정이 됩니다.”
딸이 있다는 사실에 그는 알 수 없는 실망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내 자신과 함께 걷는 이 여인이 기녀라는 것을 잊었던 자신을 속으로 꾸짖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작 사흘정도 걸릴 길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소. 어서 갑시다.”
그는 자신과 설담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연신 힐끔 거리며 중얼거렸다.
“낭인이나 기녀나 돈에 몸을 판 지랄 맞은 인생인건 매한가지지. 내가 무슨 마음을 품은거야.”
이틀 후, 그녀의 어미가 있는 곳에 도착 할 때 까지 그녀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미와 짧게 대화를 나누고는 금새 기루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을 보니 딸이 많이 걱정되는 듯 했다. 그럭저럭 아무런 위험 없이 호위를 마치고 기루에 거의 다다랐을 때 그는 곧 자신이 받을 보수를 생각하며서 연신 히죽거리고 있었다.
“이봐, 설담 나는 이때가 가장 좋아. 돈을 받기 직전의 설레임 말이야.”
물론 그의 말에 설담은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 기루에 도착하여 자신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녀에게 보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 기루 앞에서 비질을 하던 남자가 기생을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달려와 말했다.
“이보게, 이를 어쩌면 좋나.”
연신 혀를 차던 남자가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없는지 안으로 들어가 기녀들을 불러왔다. 남자의 손에 끌려온 기녀들이 남자에게 짜증을 내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어린 딸의 죽음을 전했다.
“언니, 어떡해요. 흑흑.”
평소 어린여자를 범하는 것을 즐기던 흑룡방주가 그녀의 어린 딸의 미모를 탐했고, 늘 딸의 주위를 떠나려 하지 않는 그녀를 먼 곳으로 보낸 후, 채 피어나지도 않는 꽃을 짓밟은 것이다. 기루 앞을 청소하던 남자가 곧이어 거적때기에 쌓인 딸의 사체를 가지고 왔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딸의 얼굴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틀린 것은 하체 주위에 가득한 피와 목에 시퍼렇게 새겨진 손자국이었다. 자신의 딸의 사체를 품에 안은 기생은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였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점차 핏기가 사라졌고 눈은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잠시후, 기녀는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서 샘물이 솟아나듯 차오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세상의 어느 어미가 자식의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을까. 한참동안을 울부짖는 그녀를 달래던 기생들이 자신들은 손님을 받아야 한다며 그와 설담에게 장례를 치루는 걸 도와달라고 하였다. 차마 그냥 낭인촌으로 돌아 갈 수 없었던 그는 딸의 사체를 안고 뒷산으로 향했다.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밭을 그와 기생은 말없이 걸어갔다. 설담은 저 뒤에서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산송장 같더니만 마음의 편린은 남아 있었나 보군.”
그들은 어둠보다 깊은 침묵에 잠긴 채 그렇게 언덕을 올라갔다. 어느새 둥근 달도 산등선 너머로 숨어버리고 별들마저 자신이 든 횃불에 가랑가랑 사라져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겼을 때, 그는 산자락이 마련해준 어둠 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닦아내었다. 하지만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다 늙어서 눈물이 다 뭐야.”
그는 고개를 푸욱 숙이고는 산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시간이 지나 눈물의 양은 줄었지만 완전히 마르지 않았는지 찔끔찔끔 새고 있었다. 천민들에게 정해진 장례의식이 따로 있을까. 딸의 사체를 한밤인지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볕이 잘 드는 남동쪽에 묻고 나서 기녀들이 챙겨진 술을 그 주위로 뿌리는 것이 전부였다. 무덤을 부여안고 오열하는 기녀를 바라보며 그는 씁쓸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오라지게 춥네, 이런 한밤중에 숨기듯 장례를 치르는 지랄 맞은 인생이 또 어디 있을까. 내세에는 좋은 집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살거라.”
그의 입에서 한을 토해내듯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말을 들었을까, 설담이 평소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생소한 그 노래는 바람에 실려 어둠속에서 왕왕 거렸다. 그렇게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 한 퇴기의 딸의 장례는 끝나갔다. 그는 기력이 다한 듯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기녀를 일으켜 새워서는 산을 내려왔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하자. 이내 자신을 부축하던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기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지러운지 잠시 비틀대더니 이내 몸을 고쳐 세우고는 말했다.
“의뢰를 하겠습니다. 제가 가진 돈을 모두 드리겠어요. 흑룡방주를 죽여주세요.”
그는 그녀의 절망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급히 품에서 꺼낸 은전 서너 개와 패물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으며, 흑룡방주를 죽이는 것은 그들 중 상위에 속하는 것임을 그녀에게 알려주기 위해 힘들게 입을 열었다.
“못들은 것으로 하겠소. 흑룡방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우리 같은 낭인들에게는 과한 상대요. 더구나 그 은전 몇 개와 싸구려 패물을 대가로 그대의 의뢰를 받아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오. 모든 것을 잊고 그냥 이곳을 떠나시오. 그대의 딸도 그리 바랄 것이오.”
의뢰를 거절한 그의 고개가 힘을 잃고 꺾였다가 힘들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의 힘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비참 했지만, 더욱 비참한건 자신의 말로는 그녀를 설득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수년을 사내들 배 아래에서 지내 온 여인 이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에 독심이 가득한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는 왜 그리 그녀를 순하게만 보았을까. 그는 시린 그녀의 눈을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그 의뢰 받아 들이겠소.”
남자는 설담의 말에 온몸이 굳어졌다. 자신은 급히 설담이 뒷말을 하는 것을 막고는 설담을 끌고 가 기생과 자리를 벌리고는 말했다.
“미친 거냐? 흑룡방주 그 자는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일류급이야. 괜히 이 곳에서 왕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고. 의협심에 가득찬, 무모한 젊은 낭인의 검에 죽을 위인이 아니야.”
그의 갈라진 목소리는 힘을 잃고 많이 꺼져 있었다.
“난 의와 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오. 단지 내가 세운 기준에 의해 행동할 뿐. 스승님은 항상 말씀하셨소. 여자가 위험에 처한 것을 그냥 지나치는 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라고.”
“거참, 자네도 말을 길게 할 줄 아는 고만. 아니 그것보다, 그게 아니래도. 그 스승님이 다른 말씀은 없으셨는가? ‘강자에게 기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같은 말.”
“그런 말도 하셨지만. 전자가 상위요.”
곧이어 설담은 기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강한자 만이 다른 이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너의 딸이 그렇게 죽은 것은 네가 약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너는 딸의 복수마저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려고 한다. 이 얼마나 약한 어미인가.”
설담의 말은 차갑고 단호했다. 하지만 그 말은 기녀뿐 아니라 그의 마음에도 큰 동요를 일으켰다. 그는 설담의 눈빛을 바라보고는 자신이 그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젊음이 무모함이 더 이상 어리석게만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주먹은 피가 날듯이 꽉 쥐어져 있었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기대에 찬 목소리로 남자가 물었다.
“나야 모르지, 흑룡방주의 보복이 두려워. 그 날로 짐을 꾸리고 도망 갔거든.”
“에이, 그게 뭐요. 모양 빠지게.”
검을 닦던 남자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끼고는 민망하지 말없이 자신의 검을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그들의 주위에는 다른 조원들 까지 모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뭐야, 내가 돈 주고 듣는 이야기를 공으로 듣는 건 무슨 경우야.”
퉁명스런 남자의 말을 무시한 청룡대 조원들은 그 뒤의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느새 막사 안은 온갖 억측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이런 그들의 행동은 어쩌면 다음 전투에 대한 긴장감을 풀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설담 대장 무공이면 흑룡방주 목 따는 것쯤은 우습지 않을까? 전장에서 날라 다니는 거 봐.”
“무슨 소릴, 남만병사야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들이고. 흑룡방이 비록 2류 문파이긴 하나 다들 무공을 익힌 녀석들이야. 더구나 흑룡방주면 그래도 강북에서는 어깨 좀 피는 자였어.”
주위가 시끄러워지자 검을 닦던 남자가 황급히 이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조용히 좀 해. 명원 조장에게 한 소리 듣고 싶어? 크음, 결론을 말하자면 설담 대장님이 살아서 여기 있다는 거야. 그 말은 설담 대장이 그 의뢰를 포기하고 나처럼 도망을 갔다던가.”
“갔다던가?”
“흑룡방주의 목을 취했다는 거겠지. 물론 내 생각은 전자야. 아무리 설담 대장님이라고 해도 한 집단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야. 더구나 흑룡방은 정무맹에 속해진 문파들에서도 상대하기 꺼려하는 잔인무도한 집단이라고.”
그의 말에 조원들 대부분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만부부당, 만인적이라 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무인들이 존재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단지 전설에 불과 했다. 어찌 한사람이 만명의 적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이야기와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것이 하나 있지.”
막사안으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검을 닦던 남자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헉, 명원 조장.”
어느새 명원이 그의 옆자리에 앉아 미소 짓고 있었다. 명원의 등장과 함께 막사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조원들은 명원의 눈치만 살피며 연신 침만 삼키고 있었다. 명원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조원들을 천천히 훑으며 말했다.
“흑룡방주가 7년전에 바뀌었어. 정무맹의 한 협사가 흑룡방의 악행을 참지 못하고 단신으로 쳐들어가 흑룡방주를 죽였다고 하더군. 물론 그 협사가 설담 대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알 수 있겠지?”
한 남자가 흑룡방의 정문 앞에 서서 문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무복에 수놓아진 정이라는 글자로 보건대 정무맹의 무사인 듯 했다. 그는 아무리 두드려도 열릴 생각을 않는 문을 바라보며 연신 투덜거렸다. 한참을 더 문을 두드리다가 문을 부셔버릴까 하고 생각하는데, 열릴 생각을 않던 문이 천천히 끼익하는 마찰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가 문을 여는 자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흑룡방도 많이 컸군. 정무맹의 상급무사를 무시하다니.”
문을 열고 나온 남자는 온몸이 피로 가득했다. 정무맹의 무사는 자신도 모르게 문에서 저만큼 뒤로 물러났다. 온몸을 피로 물들인 남자는 그런 그를 스윽 쳐다보더니 그를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어느새 자신의 얼굴에 흐르던 땀들을 닦으며 자신이 왜 그를 피했는지를 생각했다. 아마도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분위기 탓이었다. 마치 짙은 암흑 속으로 주르륵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자는 뭔가에 홀린 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문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런 그를 처음 반긴 건 짙은 혈향이었다. 흑룡방을 가득 채운 시체들과 병장기들. 그는 급히 뛰쳐나와 조금 전, 자신과 마주친 남자를 찾았지만 어느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무맹으로 달려가 상관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자신의 상관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쉽군. 그동안 매달 흑룡방에게 받던 금자가 꽤나 맘에 들었었는데. 그렇다고 손해만 볼 수 없지. 너 혹시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 없냐?”
상관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던 남자에게 다음날 세상은 의협검이라는 무명을 주었다. 그는 어느새 흑룡방과 단신으로 맞서 싸운 협사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세상을 속였다는 마음에 두려워 했었지만 어느새 그는 사람들의 떠받듬과 품으로 들어오는 금자들에 취해 흑룡방의 정문에서 마주친 피에 물들인 남자를 잊어갔다. 정무맹에 의해 지워진 낭인의 이야기는 이후, 은인을 찾는다며 흑룡방의 정문 앞에서 몇날 몇일을 식음을 전폐한채 서있었던 한 기녀의 이야기와 함께 소수의 호사가들의 입으로만 전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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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두서가 없다는 말을 듣는 가운데, 이 글을 써야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쓰고 싶어서 으허허헝
원래 자기가 쓰고 싶은 글 써야 되는 거잖아요ㅠㅠㅠ 9편이 될지 외전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으허허헝
아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 늘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구요.
이벤트까지는 아닌데 제가 제 소설에 나오는 이름이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늘 고민입니다. 앞으로 나올 조연들에 대한 이름
들도 아직까지 정하지 못해서 으허헝 좋은 이름들 있으면 추천해주세연....물론 관심도 없으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