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사랑합니다 - 8

지금은짝사랑 작성일 11.02.04 13: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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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우리 제갈은 언제 봐도 참으로 아름다워. 야들야들한 허리하며 매끄러운 몸의 곡선, 거기다 그 얼굴까지. 네가 여자였다면, 너와의 하룻밤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였을 거야.”

 

작전회의를 위해 모두 모인 자리에 가장 늦게 설담이 들어오더니, 제갈군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더니 말했다. 그러나 제갈군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런 설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제갈군이 설담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였다.

 

“오셨습니까.”

 

제갈군의 목례를 받은 설담은 입가를 일그러뜨리고 이상하게 웃으면서 제갈군에게 말했다.

 

“제갈, 꽤나 여유로워 진 얼굴을 하고 있어. 얄밉게도 말이야.”

 

“설담대장 정도는 품을 수 있는 그릇정도는 만들어냈습니다.”

 

“호오, 그 정도면 차고도 남지. 좋아 그러면 시작해볼까? 어, 그런데 현호 모습은 왜 안보이지?”

 

설담이 그 말에 흡족한 듯 얼굴을 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작전판을 사이에 두고 제갈군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아침에 막사로 찾아가보니 자리에 없었어. 뭐 곧 오겠지.”

 

명원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설담이 요즘 다들 너무 헤이 해졌다며 잔소리를 한동안 하다가 그냥 시작하라는 듯 손을 올렸다. 제갈군은 속으로 ‘가장 헤이한건 당신이야’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전판에 그려진 지도에서 한 부분을 가리킨 후 말했다.

 

“홍하성. 그곳은 남만의 수도이며 동시에 남만의 성지입니다. 홍하성은 밀림의 최 남부, 밀림의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홍하성의 함락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홍하성으로 통하는 길은 아시다시피.”

 

명원이 제갈군의 말을 끊었다.

 

“예전, 그곳으로 통하는 길목에서 남만왕의 함정에 빠져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지. 다행히 설대장의 등장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끔찍한 곳이야. 사방이 트인 평원에서의 전투는 오히려 소규모 조직인 우리 청룡대에게는 아주 불리해. 차라리 상부에 우와의 일을 보고하고 군사협조를 구하는 것이 어때?”

 

“상부에게 대규모 군단을 요청하기에는 홍하성으로 향하는 밀림지대가 발목을 잡습니다. 빛조차 잘 통하지 않는 밀림에서의 행군은 1차 대규모 원정이 실패한 전과가 있었던 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흐음, 결국 우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이군. 하지만 우조차 설대장의 무론(武論)을 제외하고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부족해. 설대장의 생각만으로 청룡대를 움직이기엔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

 

설담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인정하는지 자신의 생각이 부정당하는 분위기임에도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 모습에 명원과 제갈군은 평소 설담의 행동들을 나열하면서 비난하기 시작했다.

 

“설담대장님의 평소 행동을 생각해보면 그 무론(武論)도 신뢰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죠.”

 

“그리고 솔직히 제갈군 네가 벽을 허문 것도 설대장이 무심코 뱉은 헛소리에 그냥 얻어걸린 것일 수 도 있어.”

 

계속 이어지는 둘의 말에 만향이 긴장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설담의 눈치를 살피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설담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애꿎은 만향을 걷어찼다. 자신에게 가해진 갑작스런 설담의 발길질을 피하지 못하고 막사 구석으로 날라 가는 만향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명원과 제갈군은 구석에 쳐 박힌채 일어나지 않는 만향과 설담을 기가 질린 듯이 바라보았다. 이내 제갈군이 급하게 달려가 만향을 일으켜 새우더니 괜찮으냐고 연신 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명원이 수염이 듬성듬성 난 턱을 매만지며 감탄했다는 듯이 설담에게 말했다.

 

“호오, 역시 설대장의 각법은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군.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깔끔한 수법이었어. 이 명원, 설대장의 실력에 매번 감탄하는군.”

 

명원은 어느새 설담에게 아부성이 짙은 말을 하면서 그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제갈군이 그 모습에 참지 못하고 험악한 표정으로 명원과 설담에게 다가가다가 갑자기 들려온 현호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저어, 임무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현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막사 입구에 서있었다. 임무라는 소리에 설담이 제갈군을 쳐다보며 자기에게 보고도 없이 현호에게 시킨 일이 있냐는 분노의 눈빛을 보내자 제갈군이 그 전 일은 이미 머릿속에 사라진 듯 다급히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저기, 설담 대장님이 어제 술자리에서 남만의 내부사정을 조사하러 갔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현호가 설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설담은 마치 먼 기억이라도 더듬듯이 눈동자의 초점을 풀고, 곧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해 눈을 깜빡 거렸다.

 

“내가 그랬었나?”

 

설담이 현호에게 다가가 어색하게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현호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만향은 자세를 바로잡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밤,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현호를 홍하성으로 보냈었지. 난 나의 감만으로 움직이지 않아. 한 무리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써 당연한 일이지.”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의 대사에 감동이라도 한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막사 안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을 맞으며 조장들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일단, 우의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처럼 보입니다. 우의 부족들이 홍하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홍하성을 포위한 듯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아직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꽤나 험악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주변 소규모 부족들에게 퍼지는 소문에는 왕에게 독을 먹인 것이 각이 아니라 우 입니다.”

 

“아 글쎄, 우 녀석은 남 뒤통수 까는 일은 못한다니까.”

 

명원이 설담을 무시하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누가 남만왕에게 독을 먹였는지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 단지 우가 홍하성으로 가는 길만 확보해준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그 평원만 무사히 지나간다면 홍하성으로 들어가는 일은 간단하지.”

 

명원의 말에 제갈군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천천히 말했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전쟁에서 명분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왕에게 독을 먹인 폐륜아를 우리가 벌한다는 명분이면 남만 부족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어질 남만과의 전쟁은 저희에게 유리해지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청룡대의 수로는 남만을 점령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만향, 황제가 우리 청룡대를 남만으로 보낸 건, 남만을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야. 이런 소규모 조직으로 남만 전체를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그도 알고 있을 거야. 홍하성에서 우와 각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청룡대는 최대한의 이윤을 얻어서 황제에게 보고하기만 하면 돼. 남만왕의 확실한 죽음이 우리가 이번 홍하성 침투에서 얻어야 하는 이윤이야. 그래야만 남만왕을 독살한 자를 벌한다는 명분을 청룡대는 얻을 수 있고, 우와 각의 세력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겠지. 남만왕의 죽음과 남만의 분열, 이 두 가지면 남만원정에서의 청룡대의 역할도 끝이야. 황제도 이정도 성과면 만족하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중원으로의 귀환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약간 얼굴이 상기된 제갈군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리는 남만왕의 목을, 우나 각은 왕의 자리를, 서로에게 공평한 일이야.”

 

“그걸 두고 공평하다고 하는 거야?”

 

명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설담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뭐야, 원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전장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예상도 못했어.”

 

설담의 대꾸에 제갈군이 낮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대장과 처음으로 의견일치를 보는군요.”

 

“이거 우리가 아주 악당 같군.”

 

명원은 머쩍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뭔가 좀 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설담은 명원의 관자놀이에 에 발갛게 돋아나는 핏줄을 보며 차갑고 낯설게 말했다.

 

“명원, 나도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야. 더군다나 우는 그녀에게서 무공을 배운 녀석이야. 어찌 보면 내 사제일 수 도 있지. 하지만 명원,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전장임을 망각하지 마라. 너는 정파의 후기지수 화산신룡이 아닌 청룡대의 조장 명원이다. 청룡대는 이곳 남만에서 침략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침략자라...”

 

현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담의 말을 반복했다. 명원은 자신이나 청룡대가 음식을 향해서 이를 드러내는 쥐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명원은 자신의 속내를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에게는 달리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설담은 명원의 침묵을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서, 설담은 조장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자자 모두 단순하게 생각해. 우리는 남만과의 전쟁을 하루빨리 마무리 짓는 것에만 집중하면 돼. 남만왕의 목숨을 취하는 것, 그 외의 것들은 전쟁이 끝 날 때까지 마음속으로 넣어둬. 모두 각자 조원들에게 돌아가 곧 있을 전투를 알리고, 준비하도록 해.”

 

설담의 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어느새 막사안은 이제 곧 시작될 전투에 대한 긴장감과 흥분감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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