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 프롤로그

무심한하늘 작성일 10.06.02 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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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모래바람이 수건틈을 뚫고 콧속으로 들어온다. 한껏 달아오른 콧속은 텅빈채 불위에 올려진 냄비처럼 까끌거린다.

 

그늘을 찾아서 쉬어야 한다. 그늘! 그늘이 어딨지? 그늘이 어디 없나? 그늘에서 쉬고싶다. 그늘이 없다.

 

닳아서 헤져가는 콧속으로 냄세가 느껴진다. 인간의 냄세! 썩어가는 인간의 입냄세!

 

걸음을 늦추고 양손을 긴장시킨다. 머리속으로 재빨리 계산을 해본다.

 

무기는? 야삽과 단검. 보호구는? 관절만 조심하면됨.

 

몸의 상태는? 알레르기 때문에 코와 입과 눈이 엉망이지만 두명쯤은 견딜 수 있다.

 

"도...도와줘." 늙고 병든 인간의 목소리다. 지금 이렇게 살아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이미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

 

서둘러 이자리를 피해야 한다. 적이 분명하다.

 

"도와달라니까." 목소리가 변한다. 역시 인간상태는 벗어나있다.

 

"어이. 안들리나?" 목소리가 셋으로 갈라졌다. 세명인가?

 

그늘도 없는 곳에 흙과 모래를 뿌리며 인간 세명이 나타났다. 썩어가는 인간들이! 오늘도 살기위해 썩은 인간을 죽여야 한다.

 

세명이 나를 둘러싸자마자 왼손으로 야삽을 꺼내 노인을 향해 던졌다. 곧장 날아간 야삽은 길에 엎어져 있는 노인의 오른쪽 어깨를 찌르고 떨어졌다.

 

"아아악!" 노인의 어깨에서 피가 번져나오자 다른 두명의 눈이 번뜩인다. 날카롭게 웃어제끼는 녀석의 입은 시커멓다. 얼마나 다른 인간을 먹어치운걸까?

 

두명이 좌우에서 파이프를 들고 덤벼온다. 머리를 숙여 하나를 피하고 오른손에 들린 단검으로 놈의 복부를 찢어놓는다.

 

두번째 파이르를 왼팔 상박으로 막는다. 저릿저릿하다. 파이프에 박힌 못 하나가 살갛을 건드렸다.

 

돌려잡은 단검으로 두번째 녀석의 목을 찢는다.

 

오늘은 사냥이 빨리 끝났다. 두녀석 다 살기는 글렀다. 이 세상에 항생제는 이제 구할 수 없는 산삼만큼이나 희귀한 것이니까.

 

피와 기름으로 얼룩진 단검을 노인의 옷깃에 닦는다. "아. 으윽... 살려주게. 응? 살려줘. 난 그냥 저새끼들이 시켜서 한거야. 응?"

 

들을 가치가 없는 헛소리. 죽거나 살거나 둘중에 하나인 세상에서는 노인의 자리가 없다. 죽음이 현명한 선택이었을텐데... 남을 잡아먹으며 살만큼 대단한 분이셨던가?

 

"직업은?" 노인은 살려줄것이라는 희망에 헤벌쭉 입을 벌리며 웃는다.

 

"직업." 계속 웃기만 하는 이 노인은 내가 말하는걸 못든는건가?

 

"직업이라고 말했다." 노인은 헉헉댈뿐 말을 잊지 못한다.

 

들을것도 없다. 그저 이상한 단체의 회장따위였겠지. 지금까지 이런곳에서 살아남은 노인들중 존경받을 위인은 없으니까.

 

재빨리 머리를 비틀어버린다.

 

죽어가는 식인자들의 몸을 뒤져보니 물티슈 두개와 커터칼 하나, 캐첩 3개가 나왔다. 노인은 쓸데없는 지폐뭉치를 배에 두르고 있다. 죽기 싫다는건가? 아니면 다시 쓸일이 있다는건가? 어쨌든 불쏘시개로 쓸 수 있다.

 

 

 

싸구려 오토메틱 시계로 2시간을 더 걸었다. 작은 판자촌이 보인다. 오늘은 물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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