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임형석 어머니께서 빛나는 돌을 품에 안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형석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외조부께서 말씀해주셨다.
양반 이름이 형석이라는 우습기 그지없다.
서당을 다닐때도 성균관에 들어갔을때도 내 이름은 항상 웃음거리였지만 나라는 인간 그 자체는 경원시 되는 대상이었다.
이름과 나는 별개인것 같았다.
난 세상에 날때 울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태까지도 한 번 울어본 적이 없다.
이름으로 놀림을 받다가 싸움이 나서 상대방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을때도,
집에서 기르던 개가 어느날 족제비에게 물려 죽었을 때도,
내가 쫓아 다니던 송연실이 칠순 먹은 김중신에게 시집가게 되었다며 목을 메달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난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 눈에 찬바람이 들어가면 조금 눈물이 흐를듯 하였지만 그 외에는 눈물을 흘려본적이 없었다.
슬프다는 말의 의미, 아프다는 말의 의미, 영원한 상실, 죽음에 대한 의미는 알아도 그것들이 내 주위에서 실제 사례를 보여주어도 난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남들이 흘리는 눈물에 대해 저 눈물이 짠지 싱거운지 씁쓸한지 매콤한지만 알았다.
난 궁금한건 못참았다.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난 궁금한것은 참지 못했다.
난 왜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태어나서 다들 적어도 한번은 울기 마려인데 무릎이 까졌던 한여름 5살의 어린 나이에도 넘어지고 아픈 와중에 길바닥에 보이던 날 넘어뜨린 돌 조각의 땅 밑에 묻혀있는 크기가 무엇일까 궁금할 지언정 울지는 않았다.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유가 시발점이 되어 난 모든 궁금한것을 탐구하고 탐구하였다.
다른 아이들이 천자문을 외우고 사서삼경을 외운다고 할때에 난 궁금한것을 알고 싶어할때 다른 것을 해야 하는게 싫었기 때문에 서둘러 그것들을 익혀버렸다. 집과 서당에 있던 금석학에 대한 글까지도 모조리 외워버리고 뜻을 밝혀낸 뒤에는 내가 궁금한것을 탐하는데 날 방해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