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왜들 이러세요 정말
자,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까지 나왔으면 대강 상상이 막 들지 않아? 뭐 굉장한 엔진의 음과 편안한 느낌을 느끼며 주변 차들에게 손도 한 번 흔들어주고 뻐기면서 회사까지 온다는 대강의 그림이?
그런데 전혀 아니었거든.......잠깐......눈물 좀 닦구.....
보통 총알택시라고들 하지. 택시기사 아저씨들이 돈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엑셀밖에 밟지 않는 행태. 그러나 진짜 총알은 따로 있더라고.
아......30분 안에 그 버스도 안다니는 촌동네에서 서울 한복판까지 논스톱으로 밟아 제끼시는 무서운 그녀.
신호등이 무어냐 빨간 불이 켜져도 그냥 밟아주시는데, 내 몸은 이미 나무등걸 따위는 우습게 봐도 될 정도로 훌떡 굳어서 하염없이 내 몸을 애처롭게 묶은 안전벨트만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지.
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게 있었어. 그녀의 집에 관한 비밀. 왜 내가 그렇게 산골짜기에서 헤매도 그녀의 집을 발견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대답.
그건 포장된 도로까지 있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그 도로나 집 같은 것이 숲의 전경들로 아주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어. 그녀가 운전하던 포장도로로 버스가 다니는 길로 나오자 그 집은 숲에 가려져 완전히 산처럼 보이더라고. 심지어는 내가 헤매던 산길 쪽에서 보면 아예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까지 위장되어 있었지.
쏜살같이 달려가는 자동차의 뒤편으로 그런 광경들을 보면서 왜 저런 집을 지었을까 하고 잠시 들었던 의혹은 다시 신호등을 또 가뱝게 무시해주시는 그녀의 퍼펙트한 운전에 안드로메다 관광 떠났어. 난 내 옆 차창에 정면으로 다가오다 스치듯 안녕~하는 덤프트럭의 범퍼를 보며 세포핵에서부터 일어나는 전율과 옷을 뚫고 나올 듯 곤두서는 털들의 반란을 만끽해야 했고.
하지만 서울 한복판, 출근 시간인 거였어. 이제부터는 그녀가 밟고 싶어도 못 밟도록 차들이 꽉꽉 들어찬 차도의 연속인 거였어. 그런 상황을 보며 난 지옥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온 내 몸과 정신에 감사했어. 평소 같으면, 버스라도 탔을 때 개나소나 차 사가지고 g랄이여 하며 욕을 대여섯 바가지 퍼부어줄 아침 출근 정체길이 이렇게나 고마운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 그녀의 입에서 뭔가 궁시렁 궁시렁 욕타령이 흘러나오는 것 같더니 갑자기 핸들을 확 돌리는 거야.
난 다시 내 몸과 정신을 지옥에 렌트해 줬어.
그녀가 중앙선을 넘어서 달리기 시작하더군.
정체가 일어나지 않아서 속도를 있는 대로 내고 있는 차들이 보이는 그 곳으로 말이야.
아침 밥상에 분명히 술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러는 거야! 제발 멈춰! 난 죽고 싶지 않아!
이렇게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던 말들은 앞에서 맹렬히 오는 차들을 보더니 목젖을 붙잡고 안 나가겠다며 버티길래 니들도 참 딱하니 그러라고 했지. 되려 그놈들이 목젖을 붙잡는 바람에 딸꾹질이 났어. 헤꾹, 헤꾹. 내 딸꾹질 소리에 와방 짜증이 났는지 그녀는 엑셀에 얹은 고운 다리에 더 힘을 실어주시더라.
풍경이 샛노래져서 정신줄을 제대로 놓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건 그녀의 흥분된 듯 발그스름한 뺨과 함께, 대시보드의 속도계 바늘이 거의 끄트머리까지 가는 광경이었을 거야.
다시 눈 앞의 사물들이 분명해지기 시작할 무렵, 난 그 곳이 회사 건물 로비 앞의 도로라는 걸 알았지. 출발하기 전에 대강 한 번 설명해줬는데 그녀는 단번에 정확하게 찾아온 거야.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니 정확히 지각타임 10분 전.
“빨리 내려.”
허겁지겁 가방을 챙기고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네. 난 그래서 잔뜩 쫄아서 다가갔지.
“이제 다신 그 면상 안 봤으면 좋겠네.”
그래, 뭐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지. 내가 변태짓을 해서 만난 인연이니 그런 말을 들어도 싸고. 그래서 그냥 어리버리 고개 한 번 숙여주고 그녀의 차가 맹렬한 속도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어.
하지만 그 이후 잠깐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그 말투나 분위기상, 그 땐 정말 기분이 확 상하더라고.
아니, 막말로 따지면 그냥 그녀 뒤를 따라간 것뿐이고, 내가 무슨 추행을 한 것도 아니오, 더더군다나 왜 그러고 다녔는지도 모르겠지만 R몸은 자기가 까서 보여줘놓고, 역으로 따지면 모가지를 수도로 얻어터지고 고문당해 죽을 뻔한 오해까지 샀던 차인데, 사과를 해도 모자랄 마당에 계속 사람을 깔보듯 짓누르는 건 뭐임?
그러다 보니 그냥 더러운 인연이구나 싶어서, 나도 이 황당무계한 경험을 빨리 잊고 아침 회의에만 집중하려고 돌아섰는데, 또 몸이 멈칫했어.
떠벌이 아가씨가 날 바라보고 서 있었던 거야.
회사 동료 중에 한 사람 있어. 윤미선이라고. 원체 입단속 마인드가 저렴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사사건건 트러블이 없는 곳이 없다가 회사사람들도 다 포기하고 알아서들 조심하고 있는 그런 사람인데, 나 역시 같은 팀원만 아니라면 얼굴 안 보고 싶은 부류거든.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그 여자한테 딱 걸렸지 뭐야.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