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가디언 - 7화 뭐든지 해봐야 되는 거다 (3)

NEOKIDS 작성일 10.07.04 23: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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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마당에서.

멍이 들은 내 얼굴을 보면서 정욱씨 왈.

 

“그래도 아기씨가 힘 조절 좀 했는가 봐예?”

 

완전히 삐졌다는 표시로 아무 말 없이 고개 돌림.

 

“마, 어제는 그래도 본의 아니게 마이 미안했심더.”

 

이보세욥, 미안해하는 표정이 아니신데. 얼굴근육이 웃음을 참을려고 막 움찔움찔 하시는데.

하기사 뭐 정욱씨도 불가항력이었겠지. 아무 생각 없이 잠깐 나왔을텐데, 그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으니 갑자기 구경꾼이 되었겠지. 뭐 이렇게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했어. 나중에사 이모님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반정욱씨는 완전히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수영이 보내놓고 숨어서 구경했던 거라더구만. 헐.

 

"미안한 것도 풀 겸 해서 오늘은 특별코스 훈련을 할 낍니더.“

 

그 말을 하더니 나를 데리고 안채 뒤쪽에 있는 철제문을 열었어. 그 철제문은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었지.

그 문을 열어놓고 조그만 사다리를 잠깐 타고 내려갔는데, 어둑한데서 불을 키니까 옅푸른 색의 형광등들이 파바박 켜지면서.

 

와우. 이건 뭐 거의 일개 중대 쯤은 보급할만한 정도의 병기고가 눈앞에 떡 버티고 있더구먼. 저격용 라이플, 대물저격라이플,M4A1 소총 계열부터 시작해서 슈타이어AUG, AK계열, 드라고노프, MP5 계열, 스미스&웨슨, 심지어는 잡지같은 데서나 볼 수 있던 외국군소회사의 커스텀 총기까지.

 

거기에 한 쪽 벽면은 권총이 종류별로, 한 쪽 벽면은 수류탄 및 각종 폭탄들이 즐비하게 있는 거야. C4, TNT, 그 외 여러 가지 규격의 탄약들. 9mm, 5.56mm, 7.62mm. 심지어는 6.8mm나 38, 45구경 같은 놈들까지. 거기에 폭발물은 뭐 듣도보도 못한 것들 등등. 그리고 가운데쯤에는 가지가지 모양의 나이프들과 광학옵션 등등.

 

그런 걸 다 어떻게 아냐고? 뭐 인터넷에서 사진도 봤고, 군대도 다녀왔고, 다른 남자직원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그런 이야기가 떠오를 때도 있고, 또 동료 한 놈이 완전 골수 밀리터리 취미라서 어울리다가 잡지도 보고 그랬던 적도 있고.

그런 취미에 돈을 들인다는 것 자체는 꿈도 못 꿔봤지만, 그래도 나름 공부하고 즐겼었다고.

 

“마 여기가 제 보물창고입니더. 막 피가 끓을라 카지 않십니꺼?”

“진짜, 조금 흥분되네요?”

“그치예? 그치예? 큭큭큭~그니까 오늘은 스페샬인기라예. 사격 말입니더.”

“사격이요?”

“야. 사격연습 할낍니더~”

 

그러면서 막 혼자서 뭐가 신났는지 이것도 설명하고 저것도 설명하고. 이 총은 의외로 총열이 좋아서 저격엔 쓸 만하다는 둥 저 총은 피카티니 레일이 안붙어 있던 건데 커스텀으로 일체화 되어서 만들어진 거래는 둥, 이건 규격이 몇 파이인데 몇 파이 짜리는 너무 작아서 바꾼 후에 미국 특수부대가 채용했다는 둥, 혼자서 막 신나서 나도 알아듣기 어려운 정보들을 늘어놓고 있는 거야. 딱 모습이 전의 그 밀리터리 취미의 직장동료 같았지.

혼자서만 신이 났길래 난 그냥 옆에 있는 AK처럼 보이는 소총을 하나 집어 들었지.

이것저것 막 보다가 뭘 하나 건드렸는데, 팅 하면서 총이 막 분해가 되어버리고 부품들이 떨어지네?

 

“지후씨 뭐하능교!”

 

정욱씨가 화급하게 달려와서 그 광경을 확인했어.

 

“지후씨, 아무거나 막 손대지 마이소!”

 

서슬이 퍼래져서 막 그러는데, 아이 참나. 이까짓거 가지고.

 

“에이, 알았어요. 다시 조립해 놓을께요.”

“조립한다고예?”

“네. 그럼 됐죠?”

 

그리고서 난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완전히 조립을 해서 진열대에 내려놓았어.

 

정욱씨가 멍해진 얼굴로 그걸 다시 집어 들더니 노리쇠를 당겨서 격발을 해보더라고. 정확하게 격발이 되는 철컥 소리가 들리자 정욱씨가 날 바라봤어.

 

“이거, 분해조립해 본적 있십니꺼?”

“아뇨, 그냥 설계도만 대강 봤어요.”

“우째 설계도만 봤는데 조립을 합니꺼?”

“에이, 왜 이래요. 남들도 다 할 텐데. 이 스프링은 여기 들어가서 노리쇠 지지해줘야 되고, 얘는 가스 조절관이니까 여기로 들어가면 되고, 노리쇠 뭉치는 여기쯤 있으면 되고......”

“지후씨.”

 

정욱씨가 날 쳐다보면서 진지하게 물었지.

 

“전에 뭐했십니꺼?”

“네? 그냥 회사원이었는데......”


어째 분위기가 영 이상한 거 있지. 탄이랑 M4계열 총 하나 챙겨서 나갔는데, 정욱씨가 아무 말도 않고 있는 거야. 혹시 내가 괜히 총 만져서 삐졌나 싶어서, 나도 그냥 가만히 있었지.

사격장은 이모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 차타고 가면 7분쯤 걸리더라고. 근처 군부대에서 이용한다는 사격장인데, 이미 책임 군부대와는 이야기들이 다 되어 있다고 안내해준 국정원 요원이 말하더라. 그래, 그런가 보다 싶었지. 그 곳도 거의 산등성이를 깎아놓아서 250m 사로까지는 오르막이었어.

 

예비군에서도 사격을 해보긴 했지만, 그 땐 영점이나 잡는다고 쐈던 거고, 진짜 제대로 된 사격은 해볼 턱이 있었나. 그런데 쏘는 총이 우리나라엔 없는 총이라니. 막 설레지 않겠어?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이건 뭐 그냥 기본인거야. 덤으로, 난 군대에서도 거의 특등사수였으니까.

어쨌건 표적들을 좀 세워 놓고, 실제 훈련에 돌입했어.

 

“영점부터 잡을 테니까 준비하시라예.”

“네? 이 총, 영점 안잡아도 될 것 같은데.....”

“뭐라꼬예?”

“영점, 안잡아도 될 거 같다고요. 그냥 놓고 쏴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잘 잡혀 있는데......”

 

영 못 믿는 눈치기에 일단 영점사격 표적지 25m쯤 놓고서는 탄창결합하고 노리쇠 당기고, 조정간 단발에 놓고, 사격개시. 여기까지야 군대에서 기본으로 했던 거고.

10발을 쏴봤어. 영점표적판에 맞은 거 보니까 내 말이 맞더구만. 정욱씨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갔지. 

 

정욱씨가 별다른 말없이 한 번 쏴 보라길래 그냥 처음 단계부터 쭈욱 빠른 속도로 착착착 해나갔어. 그냥 서서쏴로 조준하고, 쏘고. 조준하고, 쏘고. 군대 있을 때와는 달리 헤드셋 모양의 귀마개를 해서 귀 아픈 건 없더라고. 화약의 매캐한 냄새와 총알이 튀어나가면서 느껴지는 뻐근한 반동. 너 그리웠다. 흐흐흐.

표적판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정욱씨는 혼이 나간 얼굴을 하는 거야. 나도 표적판을 봤는데, 역시 내가 쏜 대로 탄공이 조금 위트 있게 하트 모양을 그려놓고 있었지.

 

역시 특등사수 실력 아직 죽지 않았구나. 여담이지만, 내 보직이 전투공병이었는데 주변 부대들은 보병. 보병 중에서도 총 잘 쏜다고 소문나서 거의 소대저격수 정도로 키우고 있던 난다긴다 애들 다 나와서 붙어도 사격대회 1등 먹었던 나니까. 보병 애들은 공병을 못 이기냐고 개굴르면서 복귀하고 난 대대장 포상휴가만 세 번이나 받았던 역사. 이거 쫌 내 자랑 같아서 싫다. 큿큿큿.

 

(사실, 그 때는 휴가 나가도 별로 할 일은 없었지만.....)


“다시 쏴보소. 이번엔 좀 작은 걸로.”

 

표적판을 100m 사로에 놓을 걸 250m에 놓고 쏘라니. 이거야 원. 그래도 쏴봤어. 이번엔 좀 더 신경 써서 30발 한 탄창 다 비워서 별모양으로.

 

“다시 쏴보소. 좀 더 작은 걸로.”

 

아놔 사람 놀리는 거임? 무슨 사과박스에나 쓸법한 널빤지 조그만 걸 주워 와서 250m 사로에 놓는 거야.

에라, 기분이다. 이번엔 위에서 아래로 점선으로 톡톡톡.


완전히 날 보는 정욱씨의 표정이 괴물 같은 걸 바라보는 꼴이 되어가더군. 나도 이제 슬슬 정욱 씨의 반응을 이상하게 느끼기 시작했어. 이번엔 외국 동전 좀 큰 걸 놓고 그걸 쏘래.

 

나도 장난으로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이번엔 진지하게 표젹을 노려봤지. 아, 작긴 하더군. 하지만 못 쏠 정도는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 딱히 말로 잘 설명할 순 없었지만, 동전이 확 눈앞으로 당겨놓은 것처럼 보이는 게, 정확히 가운데로 쏘면 어떻게 될 것도 같았어.

딱 한 발만 쏘고서, 정욱씨가 동전을 가져오는 동안, 난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어.


정욱씨가 내민 동전을 들여다보니, 동전은 정확히 가운데에만 구멍이 나있었어. 정욱씨가 놓던 자리에서 허릴 굽혀서 가져왔으니까 동전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거겠지? 난 2002년때 히딩크가 어퍼컷을 하던 것처럼 이얏호, 하면서 승리의 세레모니를 했고.

 

“좋십니더. 확인차 마지막.”

 

이번에는 산등성이까지 전력질주로 뛰면서 일정간격으로 표적을 연발로 쏘라는 거야. 또 내려오면서 일정간격으로 표적을 연발로 쏘고. 그렇게 5발씩 끊어서 30발 전부.

헑?

안 그래도 아직 체력이 점병이인데 무슨.

하지만 해보라면 해봐야지. 뭔가 확인하고 싶은 것 같은 눈치인데, 나도 슬슬 오기가 생기고.

그래서 뛰는데.


헥헥헥헥헥아유젠장헥헥헥헥헥......이러다디지겠네

가서 챡 엎드려 다다다다다 쏘고.

헥헥헥헥헥흐억학헉악헥헥헥헥헥......아슈바된장맞을

가서 또 엎드려 다다다다다 쏘고.

나중엔 지겨워져서 내려올 땐 대강 서서쏴로 쏘면서 왔다.


정욱씨가 표적판을 보고는 마침내 알겠다는 듯이 말했어.

 

“능력, 이거네예.”

“흐아압헉켁.....네? 뭐라구요? 하윽흑컥.....”

 

아직도 허파의 반란이 진압 안 된 관계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내게 정욱씨가 표적판을 보여줬어. 그제서야 나도 허파 따위 어떻게 되든 간에 그냥 놀라버리고 말았지.

 

표적판은 정확히 중심부, 그것도 탄공하나만 집중적으로 뚫어져 있더군.

 

사격이란 건 호흡이 중요하다는 사실, 군대에 가면 기본으로 배우는 거잖아. 그런데 호흡이 단오날 춘향이 널뛰듯 한 상태인 건 둘째 치고, 뛰면서 근력 딸려서 자세까지 흐트러진 상태에다가 거리까지 중구난방인 상황인데도, 난 표적에 정확히 다 맞춘 거야.

난 눈이 동그래져서 정욱씨를 바라봤어.

 

“체력이고 뭐고 다른건 다 젬배이인데.......총이랑은 엄청 친하다는 거, 그게 지후씨 능력인기라예.”

 

정욱씨도 어느 정도는 감격, 어느 정도는 놀라움, 어느 정도는 뭐가 이따우야 하는 식의 표정으로 표적지들을 훑어보면서 말했어.

 

나? 더 말해서 뭘 해. 팔짝 뛰었지. 좋아서.

누가 보면 록키 영화 찍는 줄 알았을 거야. 마지막에 애이드리아아아아안~하고 부르는 그 때 모습처럼.

 

드디어 진짜로, 수영이네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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