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가디언 - 9화 여러모로 난감하지만 (2)-(4)

NEOKIDS 작성일 10.07.20 00: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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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몸이 회복되고 나서, 나는 집 근처를 거닐고 있었어. 깎아지른 벼랑 위에다가 지은 집이라서 단순한 구조이고, 여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서늘하기 그지없었지. 산소가 모자라는지 호흡도 조금 힘들었어. 겨울 때는 거의 못쓸 것 같더라.

산세들을 바라보며, 아, 이래서 이 쪽으로 관광을 오는 거구만 하는 생각에 잠겨서 걷다가, 벼랑 끝에 지은 정자가 나오는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 쪽에 누군가가 서있는 것도 보았어.

이모님이었어. 

이모님은 산을 바라보며 미동도 않고 서 있었어. 나는 순간 그 쪽으로 가야 하나, 하고 머뭇거렸지. 하지만 가족이란 게 뭐겠어. 아픈 일이 있으면 서로 위로하고 보듬어가면서 사는게 가족 아니겠어. 어설픈 생각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아는 대로 행동해보기로 했어. 말실수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모님.”

연화 이모님은 잠시 나를 돌아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어. 아마도 날 보면서 더욱 아픈 기억들이 떠오른 거겠지. 나도 더 뭐라고 말 붙일 수가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 금강산의 풍경들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어떻든 자신의 모습만을 뽐내고 있었고.

얼마나 그 풍경들을 같이 바라보고 있었을까.

“몸은 괜찮아진 게냐?”

“예. 덕분에. 감사합니다.”

“그래, 그리하면 되었다.”

이모님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붙이고 말을 맺었어. 그리고 다시 침묵.

“정욱씨 일은.......저도 무척 슬픕니다.”

“.......”

이모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떨구었어. 나도 송구스러워서 그냥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지. 그러다 문득, 이모님이 이야기를 시작했어. 가슴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 놈, 어린 놈이 사고 현장에서 구해냈을 때도 똘망똘망했었지. 어릴 때는 나를 엄마처럼, 그리고 커서는 마치 연인처럼 생각했다. 그래. 연인. 나는......정욱이의 맘을 알고 있었지......”

거기까지 말씀하시는 이모님의 목소리가 떨려왔어.

“이모님, 힘드시다면 이야기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지후군. 말은 해야겠어. 정욱이가 목숨 걸고 살린 자네이고, 나이니까. 우린 정욱이에 대한 걸 껴안고 살아가야 하니까.”

이모님은 울먹이는 와중에도 단호하게 말했어.

“그러면서도......어쩔 수가 없었어. 아마 보통의 인간과 섞이지 못하는 이 저주받은 피만 아니었다면, 정욱이와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사랑하며 살아가겠지. 그것을 그놈에게 해주지 못했었다. 어릴 적에도 내 피가 그에게 해가 갈까봐 제대로 한 번 안아주지도 못했고, 나이가 들만큼 들어서도 항상 곁에 있으려니, 나를 지켜주려니 하면서 그저 시간을 보냈을 뿐이지. 생각해보면 내가 어리석었다. 차라리 그냥 껴안아주는 것 정도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그 때 왜 나는 힘을 제대로 내지 못했는지......지금도 후회가.....”

울고 있는 이모님께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당황할 겁니다. 당연한 거에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전혀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어. 가족이라 하더라도 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때란 게 있구나, 새삼스럽게 느껴지더군.

“지후군.”

“네, 이모님.”

“자네, 수영이를 잘 지켜줄 수 있겠나?”

정욱씨가 해왔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 같아 처음에는 망설임이 들었어. 하지만 이내, 몸에 힘을 주고 대답했어.

“제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할 겁니다.”

“.........”

이모님은 마치 다짐이라도 받아내듯 나를 응시했어. 나 또한 이모님의 눈을 마주보았어. 내게 추호의 망설임이나 거짓이 있다면 이모님은 깨달으셨겠지. 하지만 그런 것이 없었기에, 이모님의 표정은 온화해지셨어.

“그거면 됐네. 반드시 지켜주게. 그 약속.”

“어떤 경우에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이모님은 휘적휘적 안으로 들어가시고 난 후, 나는 남아서 풍경들을 바라보며 내가 한 말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어.

절대로, 지켜내겠노라고.


상황이 상황인 관계로, 어르신들의 회의에 나까지 불려갔어. 그 자리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는 프란데르트에 관해서였지.

“그 외국인 놈이 용과 관계가 있다. 적어도 용의 겉모습을 따라할 수 있다는 이야기야. 앞뒤 사정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수영이 부모님은 크게 충격을 받은 듯한 분위기였어. 내가 아는 한, 적어도 용이라고는 두 분과 이모님 밖에 없을 거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크신 듯 했어.

“그럼.....”

“아마도 놈들은 용의 힘을 연구하고, 그것을 자신들에게 적용시킨 것 같다는 정황 밖에는 알 수 없어. 그러니까 그런 괴물 같은 놈들이 산더미처럼 나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놈들이 왜 그렇게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지게 되는지도 설명이 된다.”

“그 힘을 분쟁지역 같은 곳에 팔아넘긴다는.....”

나의 말에 이모님이 고개를 끄덕였어.

“정보가 없지만, 아마도 그렇겠지. 그렇다면 국제적 문제까지 얽혀있는 복잡한 상황에 우리가 처할 수도 있어. 드라켄 야거가 가진 힘의 근원을 조사하다가 보면 강대국들이 우리를 직접 붙잡으려 하는 날이 올 수도 있고. 하지만 그들은 드라켄 야거들이 축적한 기술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거다. 또한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병력 강하까지 생각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 땅의 정치가들이나 군 내부에도 놈들과 내통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아직, 우리는 그 놈들이 누군지 몰라. 그래서 국정원의 도움이 아직 많이 필요해.”

“국정원은 믿을 만 한가요?”

내 질문에 일단 이모님은 이렇게 답했어.

“그들은 대통령을 위해서는 개도 되는 존재들이다. 그 조직의 초창기부터 그런 역사가 있었고, 이후 지금처럼 바뀌면서도 구도 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자신의 뜻으로 움직이는 적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제약이 있는 조직이야. 고로 대통령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뜻에 반대할 존재들은 아니야. 딱히 그럴 이유도 없고.”

“매형, 하지만 정보가 너무 새나갔다는 건, 국정원도 믿을 수가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버님의 말씀에 이모님도 수긍했어.

“요새 들어서 그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이번에 연락을 하게 되면 좀 꾀를 부려볼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 위치를 가짜로 가르쳐주고 상황을 살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고. 어쨌든,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봐야 될 필요는 있어요.”

이모님이 거기까지 말씀하시다가 날 쳐다보면서 말했어.

“지후군, 자네 아까 전에 나하고 약속했었지?”

“예? 아, 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자넨 여기에 수영이랑 같이 남아야 하네.”

“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몰라. 이젠 드라켄 야거가 자네도 제거대상으로 삼기 시작했지. 그 때 그 용모습으로 변신한 놈이 이야기 하던 것들 들으니 말일세.”

“그렇지만.....”

“자네의 능력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많은 훈련과 경험을 쌓아야만 할 때. 그 때가 꼭 지금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 만일, 상황이 벌어지고 우리에게 어떤 일이든 벌어졌을 때 수영이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자네밖에 없네. 수영이를 위해서야. 내 말, 알아듣겠나?”

솔직히 말해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게 싫었지만, 수영이를 떠올리면 그럴 수도 없었지. 이모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었어.

“잘 알겠습니다.”

수영이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는 눈길에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는 듯 했어. 낯뜨거워서 그냥 뒷머리를 긁적대고 말았지만.

“아, 맞다!”

어머님이 갑자기 외쳤어.

“일단 지금 꺼낼 필요는 없지만, 정욱씨가 지후군을 위해서 필요할지도 모르니 여기 가져다 두라고 한 게 있어요. 무기랑 장비들. 나중에 보여줄 테니 잘 챙겨놔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욱씨에게 머리를 조아려 존경을 표하고 싶어졌어. 이모님도 정욱씨의 이야기에 상념에 잠기는 표정이었고.

그렇게 회의는 끝났어.


조그맣게 공터처럼 있는 공간에서, 나는 정욱씨가 준비해놓은 무기들을 바라보고 있었어. 12.7mm, 5.56mm, 9mm 패러블럼탄이 각각 탄약통으로 15개씩. 각종 옵션을 장착한 M4a1 1정과 탄창 10개, 베레타 M93R 기관권총 2정과 드럼탄창 및 30발들이 탄창 각각 4개, 바렛 m82 CQB 버전2가 1정에 바렛용 10발들이 탄창 3개.

이 무기들과 같이 동봉되어 있던 편지가 하나.

나는 편지부터 먼저 뜯었어. 그건 정욱씨가 직접 손으로 쓴 것이었지.


지후씨에게.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건 제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너무 상심하지 말길 바랍니다. 수영 아기씨를 지키는 것에만 전념해주세요.

지후씨가 쓸 만한 무기들로 무기고에서 정성들여 골라봤습니다만, 나중에는 더 좋은 무기들을 찾아 쓸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탄약이나 옵션, 기타 부품 수입에 대해서는 동봉한 연락처 등으로 연락하면 수급에 불편함이 없을 겁니다.


추신: 바렛 대물저격총은 체력을 키워두시면 쓰기 편할 겁니다.


그리고 뒷장에는 각종탄약들의 수급처가 적혀 있었어. 평소 정욱씨 성격만큼이나 별 군더더기 없는 편지.

꼼꼼하게 챙겨놓은 정욱씨의 글씨들을 보자니 갑자기 숨이 북받쳐 올라오고 눈물이 흘렀어. 지금도 잠시 생각해보면, 눈물이 날려고 그런다.

제길. 그런 편지를 주느니 살아있으면 좋잖아.


난 아예 처음부터 바렛 대물저격총을 잡았어. 놈들에겐 핀포인트 사격도 중요하지만 위급할 경우 아예 몸뚱어리를 날려 버릴만한 화력이 필요했지. 10발이라는 탄환의 한계가 있고, 탄창 갈아끼우는 것도 연습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무게를 줄였다지만 10kg 가까이 되는 총을 스트링 하나에만 의지해서 몸에 얹으니 턱 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무게감도 있었고.

단점은 여러 가지였지만, 난 그 무게감에 익숙해져야만 한다고 결심했어. 그건 정욱씨가 남긴 것이자, 내가 지켜내야 할 앞으로의 시간들. 그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거든.


그렇게 바렛을 쓰는 연습을 하고, 분해조립을 해보고,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수영이가 달려왔어.

“지후씨......어떻게 하면 좋아......”

“왜? 갑자기.”

“이모님이 국정원이랑 통화를 하는 걸 몰래 들었는데......”


이모님을 찾아뵈었을 땐, 이모님도 이미 뭔가 많이 생각하는 중이셨어.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고.

“그게, 사실입니까?”

“그런 것 같군. 일단 화상까지 전송되어 온 것을 보면. 드라켄 야거가 보냈다고 하더군.”

위성시스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화상까지 전달되는 전화 안에는, 국정원에서 보내온 화상이 바로 뜨고 있었어. 그 화상을 보고 난 머리에서 피가 증발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부장님이, 거기 옷이 다 찢겨진 채로 묶여 있었어.

“자네가 아는 사람이 맞는가?”

화소가 엉망이라면 또 모르지만, HD급의 화질이라 못 알아볼 리가 없었어. 틀림없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신미희 부장.

“어떻게 저 여자를 알아서 저들이 끌고 간 건지......”

“아마도, 정욱씨가 절 구해오던 그날 밤 미행하고 있었기에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뿐만이 아냐.....다른 회사 사람들 모두가 다 잡혀갔고, 정보들이 들어왔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저 여자만 따로 저렇게 묶여 있다는 거지.”

역시 여자의 육감이란. 이모님은 뭔가 캐묻는 듯 나를 보면서 말했어.

“자네, 저 여자랑 무슨 관계인가?”

관계......라고 해봐야 술주정한 거 집에다 데려준.....그러고 보니 또 끔찍한 그날 밤의 술주정과 총격전이 떠올라서 나는 이때까지 없었던 단호한 태도로 말했어.

“아무 관계 없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저랬을까.....”

“아마도 저들이 착각을 한 것이겠지요. 정욱씨가 절 구해주던 그날 밤에, 저 사람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뿐입니다.”

“그렇다는 거다?”

“네.”

식은땀이 흐르는 건 차치하고, 이제 그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가 문제인데. 이모님은 별 다른 말을 안하신 채 몇몇 화상들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 나도 별 생각은 안하다가 문득 보니, 몇몇 화상에 어떤 남자의 손과 와이셔츠의 소매가 찍혀 있었어. 그리고 그 와이셔츠 소매의 아주 독특한 단추도 눈에 들어왔지.

이모님은 일단, 생각을 그만두신 후 말했어.

“대강 알 것 같군.”

이모님은 내게 수영이 부모님을 불러올 것을 요청하셨어. 난 급하게 뛰어나가면서, 나로서의 입장을 어설프게나마 정리해보았고. 역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해야겠다 싶었어.


“현재 상황으로는 지후군이 다니던 회사의 민간인 다수가 드라켄 야거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가 벌어졌습니다. 위치는 서해상 쪽의 무인도. 일부러 공해상을 잡은 걸로 봐서는 무기와 인력을 수송하기 용이한 지점을 고른 것 같아요. 그들의 아지트는 급조상태라서 정확한 정보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그들이 보낸 정보가 전부입니다.”

“.......”

역시, 모두들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어. 이런 분위기는 내가 하려는 말에 좀 더 자신을 실어주었어. 괜찮겠지. 여기서 이야기해도.

“따라서, 우리는 정면대결하여 싸울 것입니다. 출발은 내일입니다.”

어라라. 이게 내 말보다 먼저 나오면 안 되는데.

“공해상이라면 우리의 힘을 맘껏 발휘해도 큰 피해가 없겠지요. 다만 바다라는 점을 고려할 때 쓰나미 정도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런 점만 유의하면 될 것 같군요.”

“저, 이모님, 외람되나마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이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거침없이 말했어.

“이모님, 이건 함정입니다. 가셔서는 안 됩니다.”

모두들 말이 없었어. 그래서 좀 더 말해보기로 했어.

“저들이 공해상을 골랐다는 건 어르신들과의 일전을 준비하기 위해서겠지요. 그냥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 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정면으로 그냥 들어가겠다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인가?”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국정원이 이 일을 처리하게 내버려두는 겁니다. 여차하면 군부대의 동원을 요청해서라도 일을 처리하겠지요.”

이모님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어.

“자네처럼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야. 하지만 우리에겐 두 가지가 걸려 있네. 첫째는 우리 존재 때문에 상관없는 사람들이 휘말려들었다는 것에 대한 책임이고, 둘째는 국정원이 우리를 위해서 해준 일들에 대한 책임이야. 이미 우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수많은 희생을 겪었네. 거기에는 보답해야만 할 의무가 있어. 그 인질들을 구해서 이동시키는데에 군부대의 협조가 필요하겠지만, 군부대가 맞서 싸우기엔 그들은 너무나 강한 존재들이야. 그리고.....”

이모님은 뜸을 들이다가 말씀하셨어.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자네와 수영이는 이 전투에서 빠지는 걸세.”

“네?”

“자네의 지인들이 걸려있는 문제라 하더라도, 자네는 수영이를 지켜야 할 1차적인 의무가 있다는 말일세. 나와 약속한 것을 잊지 말게.”

그 약속이 이렇게 걸림돌이 될 줄이야. 만약 이것이 안 된다면 2차적으로 생각해 놓은, 내가 미끼가 되고 어르신들이 틈을 봐서 공격한다는 양동을 생각해 놓은 것도 전혀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지.

“어찌되었던, 그놈들이 우리가 오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가주는 수밖에는 아무리 봐도 방법이 없잖은가 말이야. 그렇다면.”

이모님의 동공에서 광채가 일었어. 시뻘건 색이었지.

“그 반인반용 놈까지 포함해서, 그놈들의 시체와 피로 정욱이의 무덤을 꾸미는 것만이 결국 할 일이라는 이야기지. 누가 얼마나 오든.”


어깨에서 힘이 빠진 채로 나왔어. 그런 내게 어깨를 쳐주면서 기운을 내라고 하시는 수영 어머님. 하지만 이번엔 아무런 도움도 못되어드리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심란했어.

거기에, 진짜로 무슨 일이라도 생겨서 어르신들이 죽는다면. 그 때는 수영이를 어떻게 위로하고 지키고 살아가야 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어.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수영이가 내 앞에 섰어.

“뭐라셨어?”

수영이를 보는 순간 나는 이모님의 당부를 다시금 되새길 수밖에 없었어. 이 존재만큼은 내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이제까지의 시무룩함도 애기들 장난 같이 느껴지고.

“별 말씀 없으셨어. 구하러 가시지 않는대.”

나는 그만 거짓말을 하고 말았어. 적어도 수영이에겐 별 다른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고.


다시 무기를 쓰는 법을 훈련하고 몸을 연마하는 중에, 어머님이 찾아오시더군.

“지후군, 훈련중?”

“네. 어머님.”

나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총기를 만지는 데 열중했어. 어떻게든 수영이를 지킬만한 나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거든. 무거운 바렛 저격총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탄창결합을 빠르게 해보려다가 그만 근력을 쉽사리 잃은 채 총을 놓치고 말았어. 좀 무거워야 뭘 하든가 말든가 하지. 젠장......

뭐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 돌린다는 개념조차도 희한하겠지만, 어쨌든 내 몸에 이 놈을 익숙해지게 하려면 뭐든 해야 했어. 지금에사 생각인데 그 놈을 가지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게 먼저였겠지만.

“쳇.”

가볍게 좌절, 그리고 또다시 연습. 그런 광경을 어머님은 질리지도 않는지 계속 보고 또 보시는 거야. 되려 내가 더 민망해졌지.

“저, 어머님. 구경하시면 제가 조금 쑥스럽습니다......”

“응? 아니.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요.”

그 때 어딘가에서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렸어. 그리고 까마득한 공중에서 거대한 물체가 이리저리 날고 있었지. 그건 아버님이셨어. 아마 아버님도 전투를 앞두고 힘을 연마하고 계셨던 모양이야.

“대낮에 저러다가 인간들에게 들키면 어쩌려고. 항상 말을 해줘도 저래요. 못 말리는 양반이라니까?”

어머님이 킥킥대면서 웃으셨지만, 난 그 광경이 새롭게 다가와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거대한 몸에서 광채가 한 번 번쩍이면서 레이저 같은 광선이 쏘아져 갔어. 그와 동시에 더 높은 하늘에서 뭔가 별빛 같은 것이 반짝였어.

“방금 건 무엇인가요?”

“저이가 계승받은 거야. 드래곤 브레쓰.”

얼핏,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듯도 한데, 정확히 그게뭔지는 몰랐거든. 실제로 보니까 뭔가 살벌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런 광경이었어.

“보통은 저이가 연습을 저렇게 하지. 인간들이 띄워놓고 사용 안하는 인공위성 하나 골라잡아서 저렇게 쏘는 거야.”

헐. 

그럼, 인공위성을 지금 하나 타겟으로 잡고 드래곤 브레쓰라는 것으로 우주 상에서 소멸시켜버리신 것이란 말입니까. 저 정도 사거리와 타격력이면 거의 핵폭탄 급이시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시무룩해져서, 마치 어머니에게 투정이라도 부릴 듯한 심보가 되어버렸어.

그러다 보니 그만 말이 술술 나와 버렸지.

“제가 힘이 저 정도만 되었어도, 어르신들이 절 안 데리고 가는 일은 없으셨겠죠.”

“응? 지후군은 용이 아니잖아?”

“하지만 ‘운명의 인간’이라는데 고작 이 정도 총 하나 못드는 체력이라면....”

“그 정도 총은 누구라도 힘들걸?”

“그렇겠죠? 헤헤.”

이게 무슨 잡소린가 하고 나는 입을 다문 채 다시 연습을 시작했어. 언제 어느 때의 상황에서든 조준이 가능하도록 사격 자세를 잡는 일. 하지만 역시 총이 무거워서인지 쉽게 되진 않았어.

그런 내 모습을 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어머님이, 말씀을 하시기 시작하시는데.

“지후군. 체력이라도 조금 나아지고 싶어?”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아.....그 때 어머님의 표정이 지금도 떠오른다.....장난기를 한껏 머금은 눈과 표정이란.

“우리 수영이 아빠가 알면 안 되는데, 그거야 뭐 지후군이 잘 알아서 할 일이공......”

어머님은 가까이 오시더니 귓속말로 속삭이셨어.


“우리 수영이랑, 한 번 하면 되는 거야. 지후군.”


무슨 종치는 소리가 들렸어.

데엥.데엥.데엥.데엥.


하다.

[동사] 

1. 사람이나 동물, 물체 따위가 행동이나 작용을 이루다. 

2. 먹을 것, 입을 것, 땔감 따위를 만들거나 장만하다.

3. 표정이나 태도 따위를 짓거나 나타내다.

4. 그 외에도 또.............................응?


심장은 쿵쿵 기쁨은 둥둥 얼굴은 벌개져서 혀가 저절로 모르스 부호를 치더군.

“업 어버 어버버 어머님 대체 무슨 말씀을!”

“말 그대로야, 지후군.”

그 뒤로 일장설명이 이루어지는데, 용들끼리 뿐만 아니라 용과 운명의 인간 사이에 연이 맺어져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파장이 강해지면 생기는 공진은 단지 위험의 감지 뿐만 아니라 치료에도 이용되고 등등등 쏼라쏼라 하여간 그 땐 여러 가지가 나와서 다 알아듣지 못했는데 마지막 말미가 확 귀에 꽂혔지.

“그런데, 그걸 하면 운명의 인간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거고. 이건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는 사실이니까 틀림없어.”

히아아아아앙. 

아무리 그래도 그걸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전에도 키스 한 번 하려고 했다가 죽탱 맞고 화단에 쳐박혀 버린 게 얼마 안 지난 이야긴데. 아무리 벌거벗고 대낮부터 같이 누워있었다지만, 그건 제가 치료받느라 포근해서 헤롱대고 있던 것일 뿐 전혀 그런 무드도 분위기도 잡지 못하고 바보처럼 껴안고만 있었는데.

(고자라고 비웃는 게냐, 지금 너?)

거기다 더 쇼킹한 건, 지금 하라고 조장하시는게 바로 제 상대의 어머님 맞죠? 그런 거죠? 덜덜덜. 대범하신 것인지 계략의 달인이신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장난꾸러기이신 건지 모를 노릇이옵니다.

“하여간, 난 말해줬으니까 이젠 지후군이 알아서 해요? 단, 우리 애기 아빠한테 들키면 워낙 애기아빠가 고지식해서 분노한 나머지 드래곤 브레쓰 맞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헤겍. 

차라리 따님의 주먹맛이 더 낫겠습니다.

그건 그래도 소멸은 안 당하니깐요......

 

 

 

(다음 회에 계속)

 

 

P.S: 가독성을 위해서 줄띄우기 편집을 많이 했었는데, 지칩니다 ㄷㄷㄷ

그래서 짱공유에선 일정 정도 분량을 쓰고서는 통째로 올립니다.

*아라 라노벨란에서도 연재중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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