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

엉덩이를씰룩 작성일 12.10.10 20: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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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 깊어 보이는 절. 커다란 사찰들이 줄지어져 있고 그 속에 숨어있는 경건한 공기가 흐르는 곳. 그 사이로 바바리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사찰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고 있었다. 사찰 주위로는 ‘KEEP OUT' 이라 쓰인 노란 테이프가 둘러싸여 있어, 어두운 밤 속, 테이프에서 희미한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바바리코트의 남자는 대웅전에 들어섰다. 안에는 한 스님이 불상 앞에서 정좌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바바리코트의 남자가 들어오자, 스님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오늘 탐정께서 멋진 추리로 범인을 찾아내셨는데, 이 늦은 밤엔 어인 일이신가.”

바바리코트의 남자는 스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흐트러짐 없이 정좌한 모습이었다. 스님 앞에 있는 불상은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자는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한 뒤, 절 안에 들어왔다. 그는 스님의 옆에 정좌한 뒤, 차분히 물었다.

“주지스님. 오늘 제가 여기 기거하던 이동훈 학생의 살해범으로 주지스님을 지목했었지요. 그리고 스님께선 그것을 시인하셨습니다.”

주지스님은 잠자코 말을 들었다.

“생활을 담당하시는 영진 스님과 그 분의 여섯 제자들께서 저를 무척 비난하셨지만, 주지스님께선 그들을 막고 스님께서 학생을 죽이셨음을 선언하셨습니다.”

탐정은 스님을 바라보았다. 스님은 피곤한 기색이 있었으나, 여전히 경건하게 정좌하고 있었다. 탐정은 다시 말을 이었다.

“살해도구, 증거, 정황, 그 모든 것들이 스님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탐정은 잠깐 숨을 멈췄다. 고요한 가운데, 향 연기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째서 죽이신 겁니까?”

대답이 없자, 탐정은 빠르게 말했다.

“사실 이동훈 학생은 항분노성 장애로 정신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고, 여기서도 폭력적인 몇 몇 정신이상 행동들을 보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장 탐탁지 않아 했던 사람은 주지스님이 아니라 생활담당이신 영진 스님이셨고요. 오히려 주지스님께선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고 기다려주자는 입장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영진 스님과 마찰이 생기셨던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힘이 센 이동훈 학생이 화를 못 참고 영진스님의 제자를 폭행했을 때도 동훈 학생을 감싸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훈 학생을 살해할만한 사람은 주지스님이 아니라 영진 스님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주지스님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가냘픈 몸이었으나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어떤 절도와 강건함이 있었다. 그는 다 타버린 향로에 새 향 몇 개를 올린 후, 불상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그리고 불상을 바라본 채 말을 꺼냈다.

“동훈 학생의 흉기를 자네도 알고 있겠지? 돌을 갈아 만든 송곳 같은 칼 일곱 개 말일세. 밤중에 자고 있는 머리에 쓰면 훌륭히 살해도구가 될 것들이지. 나는 그가 그것들을 만들기 전부터 그가 벌들을 죽여 벽에 붙여 놓은 것, 그의 방에 여기저기 있는 주먹자국들 따위도 알고 있었네. 영진과 그의 제자들이 그를 탐탁지 않아 한 것, 그리고 동훈 학생이 그런 그들에 대한 앙심이 있던 것 또한 알고 있었네. 나는 부처님의 자비와 나의 능력을 믿었었네만, 그가 영진과 그의 여섯 제자들을 죽일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네.”

탐정은 빠르게 말했다.

“그럼, 스님들을 살리기 위해 학생을 죽이신 겁니까?”

스님은 천천히 부처님께 절을 했다. 그리고 나서, 탐정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사람이 일곱인의 목숨을 해하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탐정은 스님을 보다가 사찰 벽에 있는 그림에 눈을 돌렸다. 사람 가죽이 벗겨지고, 끝없는 칼날 위를 고통스럽게 걷고 있는 죄인들이 그려진 지옥도였다.

“내가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스님은 다시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그는 가냘픈 몸이었으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절도와 강건함이 있었다.


다음날, 탐정과 경찰들은 주지스님을 구치소로 연행했다. 탐정은 절을 떠나기 전, 대웅전의 부처님께 합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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