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겨울밤, 아버지가 낯선 아저씨를 집에 데려오셨습니다.
“얘야, 상에 밥 하나 더 올려라.”
산골에서 긴긴 겨울을 나려면 쌀을 아껴야 했습니다.
내가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라고 볼멘소리를 하자 아버지는
“날도 추운데 거리에서 자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시골을 다니며 방물을 파는 장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밥까지 먹은 아저씨가 고맙다며 까만 잿물비누를 꺼내려 하자 아버지는
“고깟 거 팔아서 몇 푼이나 남는다고. 도로 넣어 두시오.”
하셨지요.
아저씨는 고개가 땅에 닿도록 허리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몇 년 뒤 12월 아버지, 조카와 삼척에 사는 오빠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조카가 기차에서 자꾸 먹을 것을 사 달라고 졸랐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돈 없으니 더 사 달라고 하면 안 된다.”
하며 김밥과 사이다를 사 주셨습니다.
그때 무슨 이유인지 기차가 현동역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허, 이러다 버스 놓치겠는걸.”
아버지는 창밖을 내다보며 걱정하셨습니다.
기차가 연착한 탓에 우리가 춘양에 내렸을 때는 하루 한 번 있는 버스가 떠난 뒤였습니다.
아버지가 여인숙을 알아보셨지만 가진 돈으로는 하룻밤도 묵을 수 없었습니다.
찬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고 발까지 시렸습니다.
깡충깡충 뛰었지만 세찬 겨울바람은 우리를 마구 공격했습니다.
그때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르신, 날도 추운데 왜 밖에 계세요?”
고개 돌려보니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간 아저씨였습니다.
“버스를 놓쳐서 이러고 있네.”
“여인숙에라도 들어가시지 않고요.”
“돈이 모자라서.”
“그럼 저 따라오세요. 이러다 감기 걸리시겠어요.”
앞장선 아저씨는 여인숙으로 들어가
“내일 아침 식사까지 잘 대접해드리세요. 돈은 나중에 드릴 테니.”
라고 당부한 뒤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물건을 못 팔아 여비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우리를 본 것입니다.
만약 아저씨가 모르는 체 지나쳤다면, 아니 그때 우리를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복 받는다는 옛말처럼, 아버지의 작은 베풂이 우리에게 되돌아왔습니다.
<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