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년 전, 대구에서 근무할 때였다. 무료한 토요일 오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근처 야구장에서 삼성과 해태가 시범 경기 중이었다. 막 1회전을 시작했으니 지금 달려가도 문제없을 듯했다. 홈이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정하고 앉자마자 파울 볼 하나가 높이 떴다.
공은 위태롭게 날아 관람석에 맞은 뒤 튕겨 올라 내 다리 사이에 정확하게 꽂혔다. 탐내거나 시비 걸 사람 없이 내 소유가 분명했다. 탄탄한 소가죽을 빨간 색실로 꿰맨 잘생긴 공이었다. 다음 주말, 이 공을 가지고 서울에 가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소란하던 주변이 가라앉은 뒤 다시 경기에 집중하려는데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사내아이가 허둥지둥 내 앞으로 왔다. 그러고는 200원을 불쑥 내밀며 공을 팔라고 했다. 참으로 맹랑한 녀석이었다.
내 아이들이 생각나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섰다. 경기장에 잘 오지 않는 내게, 평생 이런 행운이 또 올 것 같지 않았다.
“안 되지, 안 되고말고!”
다시 경기장으로 눈길을 돌리려는데 녀석이 또 찾아왔다. 조금 전에 내민 200원에 100원짜리 동전을 더 주겠다고 흔들어 보였다. 주머니 속의 돈을 긁어모은 듯했다. 기어이 공을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공이 그렇게 갖고 싶니?”
“저 야구 선수 될끼라예!”
그 야무진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포기하지 않는 녀석의 근성이었다. 이런 녀석이라면 선동열, 이만수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으리라.
공을 넘겨주기로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녀석에게서 돈을 받을 것인가! 큰 값을 치르고 얻은 물건일수록 귀하게 여겼던 경험을 떠올리면 돈을 받아야 할 성싶었다. 나는 돈을 받고 공을 준 다음, 노파심에서 물었다.
“차비는 있니?”
“걸어갈 끼라예.”
“집이 어딘데?”
“복현동예…….”
이 엉뚱한 녀석을 어떻게 하랴. 복현동이라면 열 정거장도 넘는다. 받은 돈을 얼른 녀석의 바지 주머니에 찔러 줄수밖에 없었다.
인사를 꾸벅하고 물러난 녀석은 세상을 다 얻은듯 팔을 휘두르며 내달렸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녀석은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대구 출신 이승엽 선수가 홈런 기록을 세웠을 때 나는 문득 녀석이 생각났다.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