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등

온리원럽 작성일 13.03.30 2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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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32년 전의 꿈 같은 이야기가 되었네요. 나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고, 감당 못한 부모님은 나를 외가댁에 보냈습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집에서 기어 다니던 나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목발을 준비하고 모진 훈련을 시키셨어요. 눈물 콧물 흘리며 멍투성이가 될 때까지 연습해 드디어 목발을 짚고 섰지요. 장애가 있어도 배워야 한다며 여기저기 수소문해 아홉 살이 된 나를 학교에 입학시킨 것도 외할머니셨어요.

드디어 학교에 갔지만 지금처럼 편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수만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요. 학교는 연세 많은 외할머니가 업어서 통학시켜 주셨습니다. 때문에 비나 눈이 오면 학교를 못 갔지요. 화장실을 다녀와야 할 때는 친구들이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등을 내주었습니다. 40여 명의 여자 아이 중 내가 한 번도 업히지 않은 친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있었기에 6년이란 초등학교 생활을 행복하게 마치고 글도 읽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고요. 친구들은 부모님보다 더한 은인입니다. 성인이 되어 당시 친구들 등이 얼마나 가냘프고 작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더군요. 그래도 오로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어린 친구들의 등에 업혔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려는데 5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늦었지만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좀 더 가르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하시던 외할머니 마음에 보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요. 그렇게 40대 후반에 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친구들의 등이 아닌 응원의 힘으로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명문대에 입학한 큰아들과 다니면 좋았겠지만 욕심은 버릴래요. 나보다 더 아픈 분도 많이 봐서요. 그리고 11년 전, 손녀딸 걱정에 편안히 눈감지 못한 외할머니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건강히 잘 자라는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게 웃을 수 있어요. 이제 못난 손녀딸 걱정하지 마세요. 서슴지 않고 내주었던 작은 등이 이제는 바다만큼 넓은 등이 되어 나를 감싸 주니까요.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원정초등학교 13회 친구들, 2011년에도 다 함께 파이팅!

 

<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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