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나는 잔뜩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사건의 마지막을 지켜본다. 꼬마 소매치기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고, 그녀는 지갑을 돌려받았다. 여자는 지갑 안의 내용물이 없어졌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사람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어리버리 한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토굴을 나서기 전에, 무릎을 꿇고서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눈다.
“만약, 이곳에서 도저히 지내기가 어렵다면, 나와도 좋아. 누나가 최선을 다해 도와주도록 할게. 믿어도 좋아. 난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니?”
“........네.”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였니?”
“막스........ 성은 없어요.”
“그래, 막스라고 부르도록 할게. 아까 보니까 많이 맞은 것 같던데 아픈 데는 없니?”
“아니에요. 매번 있는 일인걸요.”
꼬마는 고개를 숙이며 말꼬릴 흐린다. 감동적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가슴이 아프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어느 쪽도 난 진정으로 공감할 순 없을 것이다. 난 감정을 온전히 느끼질 못하니까.......... 확실한건 난 이 자리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더 있을 이유도 없기도 하고, 난 이스트 민스터 교구에 접근할 사람을 찾아야하니 지금 이렇게 한가로이 시간을 때울 여유가 없다.
“일단 아픈데는 어디니? 아....... 입가가 완전히 피투성이구나. 그럼 잠깐만 있어보겠니.”
그녀는 소년의 입가에 자신의 손을 얹고서 눈을 감는다.
“아버님, 마음이 가련한 아이입니다. 아버님의 피묻은 손으로 아이를 어루만져 주시사, 아버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이의 마음이 부요해지고, 자신의 소유한 천국의 은혜를 맛보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간단한 기도였을 뿐인데, 효과는 대단했다. 아이의 부어오른 뺨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녀석의 입가에 맺힌 핏물도 닦ㅇ 나간 듯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두 볼을 문지르고, 그런 모습을 그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찾았다.
Channel 2. 아이리스
은발머리의 남자는 제가 아이를 치료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어지간하면 자리를 피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 남자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끝까지 지켜보았어요.
하하,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오릅니다. 저를 도와주려는 남자의 호의를 따귀로 갚아버린 이 여자에게 앙심을 품고서 그는 아마 저를 불법 의료 시술죄로 신고를 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기도력에 의한 치료는 불법이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저는 저번에 언급했던 수녀님과 마찬가지로 경찰에게 체포되겠죠. 그리고는 다시는 수녀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겁니다.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론 마음이 편하며, 또 다른편으론 마음 한 구석에 미련이 남습니다. 아직 과일가게 아주머니에게 잔금을 치르지 못했거든요.
전 고개를 들어, 은발머리의 남자를 바라봅니다. ‘당신의 처분을 받아들이겠다.’라는 표정을 지어보면서 말이에요. 남자또한 저를 바라보긴 합니다만........... 도대체 그 속에는 어떤 마음이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습니다.
날 어떻게 대해야 자신의 기분이 풀릴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안들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요?
“저기........”
전 그 남자의 첫 마디가 마치 위협적인 주먹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아버립니다. 하지만, 뒤 이어 들려온 말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나도 한번 치료해줘 보겠어요?”
“...........네?”
저는 순간 제 귀를 의심하며 다시 한 번 물어봅니다. 지금 이 남자........ 나를 신고할 생각이 아니란 건가요? 분명 신고당할걸 각오하고 기도를 한 셈이었는데......... 이런 말 하기는 참 낯 뜨겁지만, 나름대론 비장한 마음을 품고 한 기도였는데........ 그런 제 나름의 각오가 무색해지는 것 같습니다.
“거 참........ 사람 말 참 못 알아 들으시네. 내 뺨은 안치료해 줄 거에요?”
Channel 1. 로키
그녀는 한동안 멍 하니 서 있다가, 간신히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내 볼에 손을 얹고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볼에는 질척거리는 통증이 있었는데, 도로에 붙은 껌딱지가 떨어지듯이 그것이 사그라든다. 통증이 사그라드는 것 만큼 내 머릿속의 생각은 점차 확신으로 굳어진다.
그녀는 이스트민스터의 사람이 분명하다. 내가 아는 한 이 왕도에서 치유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은 이스트민스터에 있을 뿐 이니까. 그렇게 생각이 달려가기 시작하니 흩어졌던 사건의 조각들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왜 내게 그렇게 딱딱하게 나왔는지, 그리고 왜 내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어버버거렸는지, 이해가 된다.
왕도에서는 종교인들이 치유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을 어기는 자들은 경찰들에게 체포되고, ‘형식적’이라는 말 외에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허접한 재판을 거친 뒤에 한지로 쫓겨나게 된다고 한다. 국가의 명을 어기고 치유마법을 사용했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그곳에서 마음껏 치유마법을 써보라는 뜻이겠지. 치유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재갈을 물린 이유는 다를 게 아니다. 바로, 의학을 관장하는 자들의 이득을 위해서이다. 그들은 이성을 통해서 인간의 육체를 이해하고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며, 외과적 혹은 내과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치유를 한다. 마치 시계공이 고장난 시계를 고치듯이 말이다.
철저히 이성적인 그들에게 치유 마법이라는 비이성적인 방식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내면적인 이유는 바로 돈이다. 그들은 시계공이다. 시계공이 시계를 고치면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기 위해선, 그들과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는 자들(이라고 그들이 생각하는)을 배제시켜야 한다. 그들이 바로 이스트민스터의 종교인들이겠지. 거기에 그들은 무료로 치료를 하니까......... 눈엣가시일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의도는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성공의 결과가 바로, 내 앞에서 어버버거리는 저 어리버리한 수녀겠지.
아무래도 좋다. 이런 사전적인 지식은 지금의 내겐 사치품일 뿐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이 여자를 이용해 이스트민스터에 잠입을 하고, 원장수녀라는 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은 테니스를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난 서브를 넣어야 한다.
Channel 2. 아이리스
저는 은발머리 남자의 뺨에 손을 얹습니다. 그 남자는 온전히 저를 믿는지 눈을 감습니다. 손을 얹고 기도문을 외우기까지 그 짧은 순간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남자의 상처를 치료해준다면, 그는 나의 이 ‘죄’를 고발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에 그가 치료만 낼름 받아먹고 나를 고발해버린다면 어떻게 하지? 현행법에는 치료를 한 사람에게만 ‘죄’를 씌우고 치료를 받은 자에게는 ‘죄’를 씌우지 않던가? 사실 생각해보면, 치료를 받은 쪽도 ‘죗값’을 치러야 공정한게 아닐까?
.........이렇게 바쁘게 주판알을 굴리는 제 머릿속에, 팽팽해진 거문고의 현을 문득 튕기듯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속된말로, 쪽팔린다. 아이리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잘못’인 걸까요? 아니, 그런걸 잘못이라고 규정짓는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잘못이라고 규탄받아야 하는거죠? 왜 내가 두 손을 걷어부치고 나서는 대신에,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주판알을 굴려야 하는 걸까요? 저는 주판을 내 던지고, 기도문을 읊기로 합니다. 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는 않아야죠.
기도문을 다 외우고 눈을 뜨니, 은발머리의 사내는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집니다.
“이거 참......... 실제로 이런 치유기도를 받아보긴 처음이라 그런지, 얼떨떨하네요. 씻은 듯이 통증이 가라앉아버리다니.........대단하십니다.”
“상처가 나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아까 뺨을 때린 건 죄송해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아니요, 잘 하셨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전 누군가가 절 멈춰주길 바랬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은발머리 남자는 싱긋 웃어 보입니다. 그 웃음을 보니, 제 마음 한 귀퉁이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주판알이 또르르 굴러가 떨어져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 남자는........ 표현은 거칠지 몰라도 선량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런 ‘치유마법’을 사용하시는 분은 이스트민스터에만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스트민스터 분 맞으시죠?”
“네, 전 고아원에서 사역을 맡아서 하고 있답니다.”
“아........ 고아원.”
남자는 제 말을 곱씹으며, 제 눈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그의 붉은 눈이 제 머릿속을 읽는 것 같아 약간은 거북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 혹시 원장수녀님 성함이....... 토리스토아 테펠리나 아니신가요?”
“원장 수녀님을 아세요?”
남자는 제 질문에 다시 한 번 웃음을 짓습니다.
“그럼요, 제가 어릴 때 돌봐주셨던 분인걸요. 오랜만에 왕도에 와서 원장수녀님을 찾아뵈려고 했는데, 이렇게 같이 ‘일’하시는 분을 만나 뵈니 다행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