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북돋을 요량으로 와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젠, 일반인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가면도 쓸 필요가 없다. 나는 품안에 감추어둔 몽둥이나 날붙이등 소위 ‘연장’을 꺼낸다.
사람들은 우리들이 내지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사태를 온전히 파악할 새도 없이 우리 요원들은 몽둥이며 파이프며를 휘둘렀고, 운이 억세게 없던 몇몇 사람들은 그것에 맞아 픽하고 쓰러졌다. 나는 요원들의 사기를 북돋고, 소위 ‘폭도’들의 기세를 떨어뜨리기 위해, 군중들에게로 뛰어들어 몇몇 사람들을 밀쳐내며 앞으로 달려나간다.
몇몇 눈치빠른 사람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길을 터주기도 했지만, 사태를 파악하고서도 눈치가 없는지 아니면 자신의 기량에 대해 과도한 신뢰를 가지고있던 사람은 내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나는 연장을 보여주거나 위협스럽게 휘둘렀다. 몇몇은 그것에 맞아 쓰러지고, 몇몇은 아슬아슬하게 길을 터줌으로써 몽둥이 찜을 면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목표로 한 곳으로 가기까지는 별다른 제지를 받지 못했다.
내가 목표로 한 곳이 무엇이었냐고? 나는 사람들을 선동하던 그 청년을 향해 달려갔었다. 원래 사람들의 집단을 허물어 뜨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집단의 구심점에 있는 소위 ‘대가리’를 쳐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니 인민이라고 칭하는게 좋을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런 존재들은 자신들이 마음과 몸을 다해 충성을 다하고 싶은 존재를 두고 싶어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영적인 측면으로 가면 ‘종교’가 되는 것이고 세속적인 측면으로 가면 ‘정치’가 된다. 추종의 대상이 비전을 제시하지만 사람들은 비전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추종의 대상이 내뿜는 카리스마에 자신의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모든걸 바치게 마련이다. 그 추종의 대상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사라지면, 사람들은 사분오열 흩어지거나, 공석을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 특히 지금과 같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뿌리를 두고있는 이런 집단은 후자의 결과 보단 전자의 결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나는 마지막으로 나를 제지하던 추종자를 쓰러뜨린 뒤에 청년에게로 뛰어 들어가 녀석을 엎어뜨리고, 그 위에 깔고 앉아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처음엔 그도 나의 이러한 행위에 거칠게 반항을 했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몽둥이찜에 결국은 간신히 얼굴만 가린 채 윽윽하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녀석의 저항이 수그러들 때 쯤 녀석에게서 일어나려는데..........윽! 녀석의 바지가 축축하다. 이런 제기랄, 이 꼴사나운 녀석이 공포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절인 모양이다.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세상을 바꾸자며 목청을 높이던 녀석의 실체는 이렇게 나약하고 겁이 많은 애송이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봉기의 수괴를 정리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의 충성스러운 요원들이 몽둥이를 질질 끌면서 희생양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몇 요원들의 연장에 붉은 끼가 어린걸 보니, 그들도 애먼 사람을 몇 잡은 모양이다. 한편 구심점을 잃어버린 군중들은 요원들의 몽둥이를 피해 진동한동 뛰어다니며 각자의 살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어때? 내 생각이 정확히 적중하지 않았나? 이런 감성적인 집단은 유체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국가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구심점이라는 한 사람만 제거하면 사분오열 흩어질 정도로 나약하다. 나는 인간을 혐오하여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우리’에게로 귀속되었지만, 인간들 보다 더 인간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이들의 애처로운 움직임은 앞으로는 진압대의 방패에 가로막혔고, 뒤로는 우리 요원들의 폭력에 몰린, 소위 말하는 궁지에 몰려서 우리들에게 두들겨 맞거나, 뉴 빌리지로 도망치는 걸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내게 두들겨 맞았던 요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다른 요원들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희생자들을 두들겨 팼고, 희생자가 보이지 않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마 내게 두들겨 맞으면서 얻은 억울한 심정을 해소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그도 나를 발견하여 나를 향해 씩하고 웃었고, 나는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네미는 것으로 격려를 대신했다. 나의 이 행위가 그의 성취감을 자극했는지, 그는 더욱더 분기탱천하여 길길이 날뛰었다.
대다수의 폭도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제 로열 퓨너럴에는 결박을 당하거나,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몇몇 희생자들의 신음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사건이 어느정도 정리되었다 싶었는지, 메가폰을 들었던 남자, 그러니까 군경의 진압대장이 내게로 와서 손을 네민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폭도들이 로열 퓨너럴로 진입하는 걸 막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나머지 잔당들은 뉴 빌리지 쪽으로 돌아가던데요.”
“당연이 그곳으로 가서 붙잡아야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폭도들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우리에게 불리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요원들의 활약에 잔뜩 고무가 되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중늙은이를 보니, 차마 ‘아까 당신이 뉴빌리지에서는 지지고 볶는건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모습은 그 나이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철부지 어린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철부지 아이들은 어지간한 어른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행동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들은 어른과 달리, 너무나도 순수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Channel 2. 아이리스
노 신부님 한분이 성서를 들고 연단에 섭니다. 아무래도 그분이 이번 간이 미사를 주관하시는 신부님인 모양이에요. 그분의 등장에 사람들중 몇몇(이라고 하기에는 수가 엄청나게 많지만)이 의자에 착석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서둘러서 ‘정의구현 사제단’이라고 써있는 플랜카드를 연단 아래에 붙여놓았습니다. 신부님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착석했을 즈음에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면서 운을 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그리고 자매님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아니요 저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은 사람들의 답에 ‘저 역시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인사하시고는 설교말씀을 시작하셨답니다.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국을 약속하는 것’?........ ‘종교인’으로서 하자면 맞는 소립니다. 하지만, 이번에 말씀드리고자 하는건 ‘종교인’이라는 신분을 벗어나 ‘인간’으로서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요. ‘오소독스’ 즉, 정식의 가르침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니, 듣고 싶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제 말에 귀를 막으셔도 됩니다.”
신부님의 말씀에도 어느 누구도 자신의 귀에 손을 가져다 대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가 그러더군요. 종교라는 것은 ‘천국’을 약속함으로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지옥’을 경고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간다고요.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한다면 종교의 역할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앞서 ‘가장’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요........ 가장이라는 말은 단 하나의 것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우리는 두 가지 역할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저는 전자와 후자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후자의 역할을 택합니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 좋죠! 하지만 상처입은 사람에게 위로만 해서는.......... 그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은 올바르지 않은 삶이니.........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한다면 고통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겠지요.”
신부님은 목이 타는지 연단에서 물을 한모금 마신 뒤에 다시 말씀을 이어나가십니다.
“그동안 우리 보편종교는 세속정치와 역사적으로 많은 갈등을 빚어왔고, 한때는 세속정치를 지배한 적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그것이 금지되어있습니다. 저 역시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심지어 사람의 아드님께서도 그런 요지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왕의 것은 왕에게로.’라고 말이죠. 하지만! 종교가 세속정치에 간섭을 하지 말란 것은 세속에 대한 관심을 일절 끊으란 말이 아닙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갈 때, 어느 누구도 잘못이 ‘잘못되었다’라고 말하지 못할 때! 아버님 외에 두려울 것이 없는 우리 종교인이 ‘이것은 잘못되었다.’라고 신념을 다해 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눈앞에는 아까 목이 타서 물을 마시던 신부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점점 감정이 고양되 수많은 청중들 앞에 사자후를 내지르는 웅변가가 보이고 있습니다. 그분이 느끼는 정의감, 분노, 그리고 열정이 제 가슴에도 깊이 스며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저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 싶어 옆 사람의 표정을 슬쩍 살펴보았는데,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할 것 없이, 그러니까 남녀노소 누구나가 지금 저와 같이 신부님의 감정에 공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형제님들, 자매님들, 그리고 수사님들과 수녀님들 당신들은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아니요! 우리들은 안녕하지 못합니다!”
“교통, 수도, 의료를 필두로 하는 ‘사회 간접 자본’은 빈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보장을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개를 들어 거리에 서 있는 가로등을 보십시오. 세상에 어떤 가로등이 ‘넌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에 네게 희미한 불빛을 비추겠다.’ 혹은, ‘넌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네게는 햇살과 같이 밝은 불빛을 비춰주겠다.’라고 말을 합니까? 여러분들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지금 무언가가 잘못 되고 있습니다. 아주 지독하게 말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보장해야 할 ‘사회 간접 자본’을 지금 민간에게로 넘기고 있다고 합니다. 경쟁은 효율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사회 간접 자본이 경쟁의 대상이 될 때 일어나게 될 일들을 생각해 봅시다. 라스알게티에서 프로하기온까지 가는 철도가 상 하행선 하나면 족하지, 철도 회사별로 여러 개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회 간접 자본’이란 근본적으로 독점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간의 손에 떨어진다면, 그것의 소유주는 그것을 손에 쥐고 얼마나 많은 횡포를 부릴지 생각해 봅시다.”
저는 솔직히 이 대목에 이르러서 수사님이 연단에서 사람들에게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들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로 흥분한 것 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저도 내심 그걸 기대할 정도로 잔뜩 흥분해 있었거든요. 하지만 신부님은 반대로 눈을 감더니, 다시 한 번 물컵을 들어 물을 들이키시더라구요. 세상일은 타이밍이라는데, 왜 신부님은 굳이 타이밍을 끊고 한박자를 쉬셨던 걸까요?
“여러분, 아마 여러분들은 제가 지금 당장 연단에서 뛰어내려 여러분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할 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걸 내심 바라는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감성으로 분노하는 한편으로 차가운 이성으로 우리가 바꾸어야 할 미래의 청사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성 없는 감성은 한낱 눈먼 싸움꾼에 불과해, 제 아무리 주먹을 내질러도 그것은 허공을 가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청사진 없는 시위는 한낱 폭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무엇입니까? 국가가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나라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거리로 나섭시........”
달아오른 감정이 채 식지 못해 발갛게 상기되었던 신부님의 얼굴이, 어느 한 지점을 보더니 순간적으로 파랗게 질려버립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요? 저 뿐만 아니라, 신부님을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도 신부님의 시선이 멎은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봅니다. 도대체, 무엇이 신부님의 뜨거운 감성을 차갑게 식혀버린 것일까요?
Channel 1. 로키
우리는 진압대와 약 10여분 사이의 거리를 두고 뉴 빌리지로 진입했다. 원칙대로 하자면, 우리가 맡은 업무는 폭도를 로열 퓨너럴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끝이 났지만, 진압대장이 우리 요원들의 솜씨를 본 뒤로는, 우리에게 추가금을 내고서라도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곤란한 일을 떠맡게 되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찰나에, 찰리가 나타났다. 그는 진압대장과 대화를 나누며 이리저리 협상을 한 끝에, 결과를 들고 우리에게 왔다. 그 ‘협상 결과’라 함은, 우리가 추가금을 받고 초과근무를 하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냐고 요원들이 불만을 표시했지만, 찰리는 느긋했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마. 듣자하니, 저들이 앞서나가고 우리는 뒷수습만 하면 되는거 같던걸. 그리고........ 요것도 많이 땡겼다구.”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검지와 엄지를 만나게 하는 모션을 취한다. 그리고는 그를 조금은 불만스럽게 쳐다보는 요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너희들. 정시퇴근 못 하는거 아니냐고 겁에 질려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걱정은 하덜랑 말어. 자고로, 전투요원이 벌인 일을 뒷수습하는 건 선요원들 몫이 아니겠어? 이제부턴 선요원이 나설테니. 너네는 팀장 허락맡고 퇴근해.”
찰리의 말에 요원들의 얼굴이 급격히 밝아진다. 역시, 그가 느긋할 수 있었던건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그의 용의주도함은 정말 인정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요원들은 찰리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그들은 오로지 내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만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공은 이제 내 앞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그래도 폭도들이 있는 위험한 장소에 비전투요원들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야?”
입을 열려는 차에, 펜릴이 내 말을 가로막고 끼어든다. 맞는 말이다.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어서, 방금까지만 해도 내 입을 주시하던 몇몇 요원들 사이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있을 정도였다. 딜레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두 개의 상반된 가치관이 충돌한다. 두 개의 가치관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너무나도 가치 있게 보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하기가 애매하다. 그러니까........그걸 지금 이 상황에 접목시켜보자면, 쉬고싶다라는 ‘생존의 욕구’와, 비전투 요원들을 보호해야한다는 ‘당위적 의무’가 서로 부딪치는 것에서 딜레마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지. 펜릴은, 요원들의 표정을 살펴보면서 천천히 내게로 걸어온다.
“정시퇴근은 하고 싶고, 하지만 위험한 장소에 전우를 몰아넣기는 미안하고....... 복잡하구만 복잡해........ 그럼 이렇게 하자구.”
펜릴은 동전을 꺼내든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바로 정시에 퇴근하는 거고, 뒷면이 나오면 다 같이 초과근무를 다는거야. 어때? 확률은 반반이잖아.”
요원들은 조금은 술렁이지만, 그래도 대체로 동의를 하는 것 같다. 동전 한 닢을 가지고 요원들을 설득해 나가는 녀석의 모습을 보자니........ 참으로 영악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펜릴이라는 사람을 조금 더 오래 알았다는 죄로, 나는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꾸미는지 잘 알고 있다. 녀석은 무언가 복잡한 상황에 놓였을 때, 항상 저 동전을 꺼내서 ‘복잡하게 생각할 거 있어? 운에 맡기자고.’라고 말하곤 했다. 나도 처음에는 저 우매한 민중들처럼, 녀석에게 홀라당 속아 넘어가, 그대로 하자고 했었지........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녀석의 동전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녀석의 동전은 모두 뒷면으로만 되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제발 도와주세요! 지금 로열 퓨너럴에서는 시민을 상대로 하고 있는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부님을 얼어붙게 만든 것은, 그분이 말하던 ‘지옥에서 갓 뛰쳐나온 악마’도, ‘위협적인 차림을 한 경찰’도 아닌, 피투성이에 절뚝이는 걸음으로 간신히 기어온 한 여자였습니다. 신부님은 단상 바로 앞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 눈짓을 받은 신부님과 복사, 그리고 수녀님들이 재빠르게 나와 그녀를 부축했습니다.
“자매님, 일단 진정하시고........”
저는 상비약 상자에서 소독약을 꺼내, 그분의 상처에 그것을 발랐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감정이 격양되어 있었는지, 요오드 용액이 살갗에 닿아도, 아프다는 소리는커녕, 얼굴하나 찌푸리지도 않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그녀가 보고, 겪은 일들을 전하기 위해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댑니다.
“경찰이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심지어는 죽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기에 앉아만 있다가는, 앞서 로열 퓨너럴로 진입하려고 했던 시위대와 같은 처지가 될거에요. 모두들 시민들을 도와주세요!”
그녀는 자신의 팔을 하늘로 치켜드는데, 그 바람에 그녀의 손목에 난 상처에서 피가 솟구쳐 제 얼굴에 튀어버렸습니다. 사람의 신념이란, 그만큼 대단한 것이겠지요. 강한 신념은 때론 자신의 유기체로서의 삶의 안위를 뒷전으로 미루어버리기도 하게 마련이니까요. 어쨌거나, 이분의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이분의 흥분을 강제로라도 진정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결박하고 상처를 싸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자신의 목숨을 건 그녀의 노력이 보람을 거두게 된 걸까요? 진공과 같던 정적의 순간이 지나간 뒤에, 밀물이 밀려오듯이, 아니 그때에 맞춰 갯벌속의 게가 몰려가듯이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너무나도 작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비탈길에 눈덩이가 구르듯이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왁자해졌습니다.
“신부님! 저희는 이대로 앉아만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망설이는 순간에도, 시민들이 경찰들의 손에 쓰러지고 있지 않습니까?”
용기를 낸 몇몇 시민들의 지적에, 좌중들은 환호로 답을 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신부님은 땀이 흐르는 것인지,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와 눈을 훔쳐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연단을 움켜쥔 손을 풀고, 수사님은 마음의 준비를 하셨는지, 두 팔을 하늘로 높이 치켜 올리셨습니다.
“축도하겠습니다. 모두 눈을 감아주십시오.”
신부님의 축도는, 이자야라는 예언가가 자신의 예언을 책으로 엮으면서 적어둔 하나의 구절에서 인용된 것이었습니다. 왕국이 하나의 영토를 이루고, 전란의 시대에 돌입하기 전에 살았던 이 예언가는 시대적 상황에 걸맞지 않게 참으로 애통하고 슬픈 내용의 예언을 했지만, 이 구절만큼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살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 자주 언급되기도 한답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상투적이라고 할 수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것도 의미할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놀라지도 말라. 나는 너의 아버님이다.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니 너는 마음에 염려라는 감정을 담아두지 말거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할 것이다. 내 손으로 너를 꼭 잡아줄 것이다. 내가 너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니, 너는 마음에 염려라는 감정을 담아두지 말거라........ 아드님의 이름으로 축도합니다.”
신부님의 축도를 받으며, 사람들은 두 눈을 감고 그리고 두 손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아까, 이곳에 삶이 약동하고 있다고 제가 말했던 것 같은데......... 기억하나요? 이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까 했던 제 생각에 수정을 해야할 수 밖에 없음을 느꼈습니다. 이곳에는 생명이 약동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죽음의 숙연함도 함께 감돌고 있었습니다. 살아야 하기에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 나갑시다. 여러분 아버님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겁니다.”
Channel 1. 로키
결국 모두가 초과근무를 달고, 우리는 뉴 빌리지로 진입한지도 한참이 지났다. 평소에는 그렇게 사람이 미어터지는 동네이건만, 지금 이 순간은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길거리에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의 빈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쓰레기와 비릿내음, 그리고 핏자국이었다.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걷는 것는다는 사실은 요원들에게 꽤나 흥분감과 일탈감을 불러일으켰는지, 몇몇 요원들은 평소에 라면 상상 속에서나 했을 별별 기괴한 행위를 해보였다. 예를 들어달라고? 뭐....... 전봇대 위에 올라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던지, 주인 없는 상가의 유리창에 돌을 던져 재물을 약탈한다거나........ 분수대의 조각상위에 올라가 오줌을 눈다고 하면....... 아마 당신은 내 말을 듣고 지독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명이라는 껍질속에 감춰진 인간의 속살이 얼마나 추악하며, 그리고 얼마나 무절제하게 쾌락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한참을 피비릿내를 맡으며 쓰레기더미를 뒤지는데 선요원중 하나가 무언가를 찾았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가 지시하는 곳에 가보니, 그곳에는 피를 잔뜩 흘린 채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거 같나?”
“숨은 쉬는데........ 두개골이 함몰됐고, 늑골도 대여섯 개가 나갔는걸요? 이쯤 되면 폐에도 바람구멍이 서너 개 쯤 뚫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군요.”
“그러니까......... 죽을 것 같아? 살 것 같아?”
“음....... 치료만 잘하면.”
망설이는 선요원의 태도에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사람의 감정이란 이래서 문제다. 한낱 인정이라는 것 때문에 녀석은 우유부단한 태도로 의사결정을 미루고 있다. 아니, 이건 인정이라고도 할 수가 없겠다. 녀석은 단지, 자신의 대답 때문에 사람이 죽는걸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건 인정이라기보다는 책임의 회피다.
“‘잘하면’ ‘못하면’이라는 주관적인 표현은 이제 빼기로 하지. 수치로만 하자고. 녀석이 생존할 가능성이 수치상으로 몇 퍼센트야?”
“어.......그게, 25퍼센트입니다.”
“그래?”
나는 그 사람의 심장을 잘 겨냥해서 그곳에 단검을 밀어넣는다. 그는 심장에 칼이 들어가자 바르르 떤다. 단검을 잡은 내 손에는 붉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럼 빨리빨리 그렇게 말을 하라고.”
나는 우유부단한 선요원에게 시신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에, 다른 요원들을 감독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아까 선요원이 첫 부상자를 발견한 이후로, 마치 금맥을 찾은 것처럼 부상당한 사람이나 죽은 이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선요원들은 그들에게 다가가 생명의 징후를 확인했다. 만약 그들의 바이탈 사인이 제법 강하다면 우리는 그를 남겨두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이 생존률이 50%미만으로 떨어진다면, 우리는 그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거둬갔다. 그 뒤에 마킹을 하는 것이다. 이는 시신이 된 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붓이 정신없이 뛰놀고, 양동이에 담긴 붉은 액체가 흩뿌려지면서, 이 길거리는 더욱 더 기괴하게 변해갔다.
선요원의 활동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몇몇 요원들은 욕지기가 치밀어, 길거리 구석으로 가서 토악질을 했다. 참으로 웃긴일이 아닌가? 방금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이 모두 제 것인 마냥 텅빈 길거리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른 이는 그로테스크한 연출에 토악질을 하는 겁쟁이가 숨어있던 것이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멸시하는 의도를 가지고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들은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현상’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한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현상 자체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다면, 그로테스크한 현상을 연출해내기 위해 선요원들이 들이는 노력과, 숙달된 기술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것에 경탄을 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한참의 시간과 경험을 겪은 뒤에나 그런 여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꽤나 친절한 녀석들이네 이렇게 정리할 것들을 모아두다니 말이야.”
“그러게 말이다. 참된 환경운동가들이여.”
“환경운동가라고? 왜?”
“분리수거를 즐겨 하잖아.”
이 순간에도 농담을 하는 펜릴의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펜릴에게 대단하다고 한마디 하려는데, 수색을 보냈던 요원하나가 돌아왔다.
“로키님, 군경의 움직임이 멎었습니다. 아무래도 뉴 빌리지에 있던 또 다른 시위대와 마주친 것 같습니다.”
“그래?”
“분위기를 보니, 2차적인 충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음........ 초과근무 계약을 할 때, 그들을 서포트 해야한다는 조항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냥 지들끼리 치고박으라고 하지뭐.”
내 결정에 펜릴은 반론을 제기한다.
“초과근무란건, 기존의 업무에 추가적으로 해야하는 것이니, 난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기왕 마주쳤으니, 흩어질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확 조져놓으면 나중에 쓰레기 조각 찾으러 헤매는 수고도 줄어들 것 같지 않겠어?”
“........”
그의 말에 요원들은 물론이고, 선요원들까지 동의의 기색을 보인다. 펜릴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씩 웃고는 동전을 꺼낸다.
“그럼 내기라도 할까? 앞면이 나오면 네 뜻대로, 뒷면이 나오면 내 뜻대로 하는거야.”
“닥쳐.”
Channel 2. 아이리스
우리가 경찰들을 만난 것은 신부님의 축도를 받고 거리행진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처음 볼 때에 두 가지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이 잔인하리만큼 철저하게 시민들을 진압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본 경찰은 두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골목에서 시민 하나를 구석에 몰아세우고 몽둥이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민의 머리는 삼단봉에 얻어맞았는지 터져있었고, 곤죽이 되다시피 얻어맞은 바람에, 바닥에 엎드려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시민을 경찰들은 낄낄 대면서 두들겨 패고 있었지요.
우리는 그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고, 그들을 붙잡기 위해 뛰어갔습니다.
“어이 이만 하고 튀자.”
“에이 시팔, 더 두들겨 팼어야 했는데.”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자, 두들겨 패던 시민을 버려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우리는 경찰을 놓아 보내고, 시민에게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를 부축하려고 그를 받쳐드는 순간, 그는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냈습니다. 그 바람에 제가 입은 수녀복은 완전히 피범벅이 되어버렸지요.
“상태가 꽤나 심각해 보이는데........늦은 걸까요?”
“........”
사람들의 웅성거림 때문에 흔들릴 뻔한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그의 몸을 훑어보았습니다. 다행이도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그는 피를 많이 흘리고 몇 군데 심한 타박상을 입었을 뿐,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문을 읊었습니다.
“아버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는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나를 데려다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정리할 새도 없이 급하게 한 기도였지만, 다행이 제 마음이 아버님께 닿았던 모양이에요. 기도문을 읊는 중에 제 손에는 푸른빛을 내는 성화가 피어올랐고, 그것이 상처에 닿자, 환부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습니다. 거칠고 불규칙했던 환자의 숨소리가 부드럽고 규칙적으로 잦아들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습니까?”
다행이 여자 한 분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환자를 넘겼고, 의사선생님은 왕진가방에서 도구를 꺼내 그의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녀는 환자의 가슴과 청진기를 대어보고, 눈거풀을 들어 눈의 반응을 살펴본 뒤에야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사인에, 저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마터면 꺼져버릴 뻔 한 생명을 다행이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저희는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기로 하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다행이 일행 중 건장한 청년 몇몇이 그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의사선생님도 함께 가시죠.”
“아니에요. 지금대로라면, 분명히 이 일대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있을게 분명합니다. 수녀님도 기도력으로 사람을 치유하는데 한계가 있을테니, 저도 수녀님을 도와 환자들을 돌보아야 할 것 같아요.”
의사선생님은 사람들의 제안에 고개를 저어 거절하고는, 제 손을 꼭 잡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손길에 저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의료법의 개정으로 의사와 성직자 사이가 원수지간처럼 변해버렸지만, 이 손길이 마치 그간의 숙원을 씻어내리는 화해의 제스처로 느껴졌거든요.
우리는 시민과 그를 부축한 다른 동지들을 보낸 뒤에, 사라져 버린 경찰의 발자취를 추적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간 방향은, 커먼 브룩 사거리입니다.
“우리도 습격에서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도 무장을 합시다.”
한 시민의 제안으로, 우리는 주변에 있는 시설물들을 살펴 무장할 만한 것을 찾아냈습니다. 몇몇은 가로수의 굵은 가지를 꺾어 몽둥이를 삼았고, 몇몇은 벤치를 부숴 나무조각을 챙겨들었습니다. 또 다른이는 대담하게도 소화기를 헐어내 그것을 잡아들었지요. 심지어 복권방 사장님은, 매대에 있는 담배에 라이터 기름을 뿌리고는 그것으로 횃불을 만들기 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무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사건의 한 복판에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는걸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한 무장과 훈련, 그리고 조직력으로 무장된 경찰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하나의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렇게 두 패로 나뉘어 서로의 피를 보아야 한다는 현실에 비애감이 들어 마음이 미어지기도 했지요.
수 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우리는 엉성하게나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장을 갖추었습니다. 저도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지마는, 무기라고 하기 애매한 것들을 갖춘 이 사람들에게서, 굳은 의지와 분노가 형형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커먼 브룩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