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이게 가장 적당하다 싶어서 사왔어요.......... 마음에 드세요?”
그녀는 봉지에서 가발과 옷가지를 주섬주섬 꺼내, 내 앞에 펼쳐보였다. 암갈색의 트렌치 코트와 어두운 색상의 블랙진은 그렇다고 치는데 이.....
“가발은 어떻게 쓰는건가?”
젖은 미역줄기 마냥 축 늘어진 가발은 도저히 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이걸 굳이 머리에 써야 하는걸까?
“아니요. 이건 부분가발이 아니라 전체가발이라서, 이렇게 먼저 머리에 망을 씌우고......”
그녀는 친절하게도, 내 머리에 손수 망을 씌워주기까지 했다. 허허, 참 쓸데없이 친절한 녀석이다. 굳이 부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까지 나설 줄이야. 내가 제 수양어미를 죽인 사람이라는걸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그걸 초월한 것인가 나는 그녀를 온전히 믿지 못했던 내 자신을 질책하며, 눈을 감고 그녀의 손에 내 머리를 맡겼다.
“......왜?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라도 들었는가?”
“큽......그게 아니라요.”
“그럼 왜그리 손이 떨리는 거야?”
그녀는 입을 가린 채, 대답 대신 제 품에 손거울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거울 속에는, 양파망같은걸 뒤집어쓰고서, 잔뜩 인상을 찌푸린, 썩은 고구마같은 사내가 날 보고 있었다.
“........”
“저기......그게.”
“뭐, 이만하면 준수하게 생겼구만 뭘.”
“지금 장난해요?”
내말에 답답이는 파하고 시원하게 웃어넘기고는, 망 위에 가발을 씌워주었다. 이제 거울에는 연한 갈색머리를 한 남자가 있었다. 단지 머리 색과 스타일만 조금 바뀐 것 뿐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확실히 기술이 좋긴 좋다.
“이제 머리는 대충 가린 것 같으니, 옷만 입으면 될 것 같....... 우왁! 지금 뭐하는 거에요?”
“뭐하긴, 옷 갈아입고 있잖아.”
“아니, 그걸 왜 이렇게 당당하게 갈아입는 거냐구요. 아까도 그러더니........ 혹시 노출증 같은거 있어요?”
“혹시, 남자 몸 보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어?”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어. 나도 그런 병같은건 걸리지 않았으니, 너도 내 앞에서 옷갈아 입는것에 대해선 뭐라고 하지 않을테니 너도.......”
“.......그만 하시죠.”
답답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게 눈을 부라리며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순간 ‘어라 이 녀석이?’라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투가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 정도로 차가운 바람에 나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왜 그녀는 내게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일까? 그래도 나름 빚을 진 것도 있고 하여 친절하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내가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녀에게 무언가 실수를 한 것일까?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내가 했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되짚어 보았지만, 끝내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이 녀석은 이해하기 어려운 녀석이다.
“그래서, 이젠 어디로 갈 생각인가요?”
“운터 브룩으로 가자, 거기에 내 동료들이 있어.”
Channel 2. 아이리스
“이게 가장 무난하다 싶어서 골라왔어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
은발머리의 남자는 대답 대신에, 제 손에 들린 가발을 받아서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그래도 뭔가에 흥미를 느끼는가 싶어서 다행인 것 같아요. 저는 내친김에, ‘가발이 마음에 드나 보네요.’라고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했으나....... 가발을 살펴보는 그의 얼굴이 차츰....... 뭐랄까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부정적인’뉘앙스가 확실하게 풍기는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어가는걸 보니...... 그 말은 그대로 침과 함께 목구멍 너머로 삼켜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가 지었던 그 표정을 또 볼일은 없었으며,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뭐냐?”
“가발이라고 하는거에요.”
“이 털 덩어리는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건데?”
“음....... 그러니까.......”
‘그 털 덩어리를 사려고 자그마치 40파운드나 썼다구요.’라고 항변하는 그 말도...... 아까의 그것처럼 침과 함께 그대로 삼켜져버렸습니다. 가격을 아는 순간, 그가 어떤 표정으로 절 바라볼지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두려웠거든요.
저는 구차하게 말을 이것저것 늘어놓으며 이 ‘털 덩어리’의 효용성에 대해 변호를 하기 보다는, 직접 그에게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따로 구매했던 머릿망을 펴서 그의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등장한 처음 보는 물건에, 그리고 그것이 제 머리를 덮는 것에 대해서 꽤나 거북스러운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이내 고분고분하게 제 손에 그의 머리를 고분고분하게 맡겼습니다. 이런 걸 보면, 그가 피에 굶주린 살인마라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 하지만 난관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케흡!”
“.......응?”
“아......큽......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의 머리카락은 예상 외로 힘이 잔뜩 들어간 돈모에 가까워서....... 나름 큰돈을 들여 마련한 촘촘한 머릿망을 뚫고...... 그 작은 구멍사이로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와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황급히 그것을 다시 벗겨보려고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그의 머리칼이 머릿망과 완전히 뒤엉켜 버리는 바람에, 그걸 뽑아버리자니 그의 머리카락을 그대로 뽑아내야 할 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야! 갑자기 왜그래?”
“아니.......그게.”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라도 떠오른건가?”
아....... 대체 어떤 말을 해야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잔디인형의 그것처럼...... 참담하고, 그리고 안타깝다고 해야할까요?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구르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우스워 보였답니다.
저는 그에게 대답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없이 그의 몰골을 거울로 비춰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한참동안 아무런 말 없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뭐....... 이만하면 잘 생긴거 같은데?”
으......응?
Channel 1. 로키
폭동이 일어난지 일주일, 뉴 빌리지는 그 짧은 시간만에 평소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았다.
“저기 사장님, 이 옷좀 입어봐도 될까요?”
“네, 피팅룸은 저쪽이에요. 입고 와 보셔요.”
내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추려면, 그것을 뒷받침 할 근거가 있어야겠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에는 좌판에 깔린 상품대신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거울 한번 보실래요?”
“와아.......”
말끔하게 닦인 쇼윈도는 잔뜩 금이 가고 깨어져, 사금파리를 길바닥에 뱉어놓았으며.......
“요즘 이게 제일 잘 팔리는 녀석이거든요. 언니 정말 안목 있으시다.”
“사이즈가 좀 큰 거같은데...... 한 치수 더 작은 거 없나요?”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이정표도, 불타는 바람에 엿가락처럼 휘어져 바람에 휘청거렸었다.
“여기 있습니다.”
“저기.......가격은 어떻게?”
“50파운드입니다.”
“에에? 이게요? 좀 더 싸게 안되요?”
하지만 그때의 참상과 폐허도 지그은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되어버려서, 지금의 이 거리엔 파괴의 흔적따위는 말끔이 지워진 것 같이 보였다.
“이 가격에서 더요? 에이, 그럼 저희는 정말 손해보고 장사하는거에요.”
“그래요? 음...... 그럼 다른 데 좀 더 알아보고 올게요.”
“어어! 손님, 그래도 한번 걸쳐보셨는데. 다른데 가도 눈에 밟혀서 쇼핑이 되겠어요?”
상인과 손님 사이에 벌어지는 한바탕의 촌극과 같은 실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풀어낸 생각의 실타래는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면서 싹둑하고 잘려나갔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보여요?”
“재미라기 보단........ 이것 저것 생각할게 있었어.”
“흐음.......”
답답이는 삐쳐버린 듯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그럼 무슨 생각을 했었는데요?”
“사람의 욕심은........끝이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거?”
“에? 지금 저 모습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보이는 생각 같은데요?”
“그야, 저것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이 거리의 풍경과, 저기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저런건 감히 상상도 못했잖아?”
그녀는 내 말에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기사, 그 사건은 기억하는 것 만으로도 그다지 유쾌하진 않을 것인다. 내가 그녀에게 괜한 소리를 한 것일까?
“........”
“내가 괜한.........”
“아니에요.”
그녀는 대담하게도 이 좁아터진 길에서 감히 기지개를 쭉 하고 폈다. 그녀의 잇사이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지개를 쭉 편 그녀는 날 바라보았다.
“어쩌면 당신의 생각이 맞을 지도 몰라요. 모두 지난주의 일 같은 건 생각하기도 싫어서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
“아, 그러고보니 보여줄게 있어요.”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쓸어 올려 내게 들이밀었다. 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여 몸을 뒤로 틀었다. 그 바람에 내 뒤를 따르던 사람과 부딪쳐,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내 어께에 훅하고 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사과를 하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이마에는........
“이 상처는 왠거야?”
“예전에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낮은 천장에 머리를 박은 적이 있었어요. 그럴때를 흔히 ‘머리에 별이 반짝 한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정말 그 말이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사실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당황한 저는 천장에 난 구멍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구르며 손을 허위허위 저었는데........ 오른쪽 눈의 시야가 갑자기 확하고 붉어지더라구요........ 이마에 피가 나서 눈까지 질질 흘러버린거지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채 소녀티를 벗지 못한 여자아이가 이마에 피를 질질 흘린 채로 천장에 난 구멍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참 답답이 답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랑할 만한 이야기도, 지금 할 만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다 나았지....... 상처는 조금 남아있지만.”
“비슷하지 않을까요? 사람의 몸에 상처가 나면, 그 일대로 온몸의 장기에서 피를 나누어 준대요....... 상처를 메꾸기 위해서요.”
“그 결과가........ 이건가?”
“아무리 터럭같은 상처라도 온몸의 장기들이 합심하여 그걸 치유하지요. 그 덕에 새살이 돋아날 수 있지만, 그것은 이전의 피부와는 결이 달라서 그 흔적을 지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
“사회라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상처가 나면, 모든 이들이 그걸 치유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고, 마침내는 원상으로 회복을 하지요. 하지만....... 그 사회는 시련을 겪기 이전의 것과는 분명 달라졌을게 분명해요. 좋은 쪽이든 좋지 않은 쪽이든.......말이에요.”
뒷말을 삼키는 그녀의 입은 뭔가 개운치 않았는지, 씁쓸이 찌푸려져 있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은발머리 사내와 뉴 빌리지 거리를 걸으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은발머리, 그는........
“저도 이런 걸 놓고 가려니 마음이 무겁지만...... 가격이 상당히 부담되네요. 솔직히.”
“알았어요 알았어! 옷이 이렇게 주인을 만났는데, 제가 주머니좀 불린다고 욕심을 내면 쓰나. 인심 써서, 45파운드로 깎아줄게요.”
“기왕 깎는거 40파운드로 갑시다. 괜히 거스름돈 생기면 거추장스럽잖아요. 사장님, 기왕 쓰는거 좀만 더 힘써 줘요. 네?”
“........”
그가 생각 밖으로, 호기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임무 외에는 어떤 것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돌부처 같은 남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이 거리 이곳저곳의 모습을 샅샅이 살펴볼 뿐 만 아니라, 저렇게 상인과 손님이 벌이는 촌극같은 가격흥정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그의 호기심이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결된다면 참 좋겠습니다만....... 안그래도 인파가 북적거리는 뉴빌리지의 거리를 걷느라 힘이 겨운 판에, 그가 저리 정신이 팔려 있으니........ 우리의 걸음은 더욱 더 느려지고 힘들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가 다른 장소 다른 상황에서 자신의 호기심을 마음껏 펼치라는 뜻으로 그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그바람에 그는 화들짝 놀라서 촌극에서 눈을 떼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어......왜?”
“뭐가 그리 재미있어 보였어요?”
“재미있다기 보다는........ 이것저것 생각할게 있었지.”
흐음...... 과연 그는 손님과 상인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사회와는 격리되어 자신들만의 집단에서 살아온 외부인의 시선에서 저 모습은 어떤 식으로 해석될 수 있었을까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사람의 욕심은........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거?”
“으응? 왜 저 장면에서 그런 생각을 한거에요?”
“뭐....... 뜬금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폭동이 일어난지 고작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어. 너도 그 현장에 있어서 알겠지만, 그때는 난장판이 따로 없었지. 그런데 지금 이 거리를 보라고. 과연 누가 이 거리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거리가 불타고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그건........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는 것도 말이 안되지 않나요? 상처가 나면 그게 아물 듯이.......”
“내가 말하려고 하는건, 거리의 풍경만이 아니야. 사람들의 기억이지........ 너희는 대의를 위해 일어섰다고 하지만....... 일주일의 광란의 시간이 지난뒤 이 거리의 사람들을 봐봐. 철도 민영화는 더 이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아. 저기........”
그는 거리의 구석에 서서, 피겟을 들고있는 한 여자를 턱짓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집에 들리지 못했는지, 얼굴과 입성이 제법 꾀죄죄해 보였습니다. 그 여자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소리치며 자신의 주장을 호소해보지만...... 사람들은 귀를 닫고, 눈을 감은 것처럼, 아니 처음부터 그 여자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쌩하고 지나가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손에 들린 피켓을 살펴보고나서....... 마음이 무거워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철도 민영화에 대한 반대를 하다가 직위 해제를 당한 모양이었거든요.
정말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서 사람들과 함께했었는데....... 이젠 그가 짚어주지 않으면 피켓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져버린 제 모습이........ 참으로 민망스러웠습니다.
“혼자 뻘짓하는 저 여자만 빼고 말이지. 이제 그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
“인간 사회가 우리에게 조롱받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저거야. 그들은 무언가 일을 터뜨리면,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새도 없이 그 흔적을 지우느라 정신이 없어. 그들이 자신의 과오에서 교훈을 얻을 정신머리가 있었더라면, 그들의 의식수준은 두 세기정도 앞서나갔을 거야.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의 의식수준은 두 세기정도 뒤쳐져 있는거지.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민족에게 무슨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나?”
그의 말을 듣다보니 지독한 모욕을 들은 것처럼 화가 나려고 합니다. 당장이라도 그의 입을 막고, ‘그 입 좀 다물어요.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군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제 입과 손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어요. 제 머릿속에서도....... 그의 말이 옳은 점이 있다고. 우린 너무 어리석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났기 때문이에요.
만약....... 원장 수녀님이 살아계셨다면,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저도 어린시절 원장수녀님에게 어린 마음에 툴툴거린 적이 많았어요. 그럴때면....... 수녀님은 무언가 해결책 비슷한걸 쓱쓱 꺼내주신 것 같아요. 마치 자판기 같이 말이에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마치 자판기처럼 쓱쓱 해결책을 꺼내주셨잖아요.
‘아드님이 3년이라는 그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이 무엇일거 같니? 그분이 보인 기적? 그분의 카리스마? 아니야. 아드님의 가르침은 그 당시 사제들의 가르침과 차별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단다. 당시의 사제들은 신앙의 주체인 일반 농민들의 삶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설교랍시고 늘어놓았단다. 하지만 아드님은 달랐어. 그가 가르침을 전하면서 사용한 비유는 당시 농민들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어서, 그들이 이해하기 매우 쉬었단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전하면서,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한단다. 그게 어려우면....... 너 주변에서 소재거리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저는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제 이마에 있는 상처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것이라면, 그에게 그럴듯한 이야길 할 수 있겠다 싶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제 이마를 보시겠어요?”
그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어 하다가...... 제 얼굴을 빤이 보더니 제 이마를 살펴보았습니다.
“상처가 나 있군.”
“맞아요. 상처가 어떻게 아무는지 알고 있나요?”
저는 그 이후로, 상처가 아무는 것과 사회의 치유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 보았습니다. 상처를 이겨내는 것, 어찌 보면 잊어버린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코 이전과는 같지 않은........ 변화, 진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딱히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좋은 이야기 같긴 하지만........ 나로선 동의하기가 어렵군. 상처가 아물어 흉터가 남더라도, 그 기능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