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29

갑과을 작성일 16.05.08 2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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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162418

 

답답이가 이곳에 온지도 한 달이 지났다. 이곳에서 녀석은........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기적을 행하고 있다. 녀석이 믿는 종교에 등장하는 사람의 아들처럼 물을 포도주로 만든다거나 물 위를 걷는다거나 하는걸 말하는건 아니다. 굳이 말을 하자면 스케일이 좀 더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녀석은 지금

 

아이리스씨 여기 쑥갓 좀 더 주세요.”

여기요. 맛있게 드세요.”

아이리스씨 저는 아이 브라텐 좀.....”

잠깐만요오......”

 

바다를 가르고있다.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가 아니라, 살색의 인파가 넘실거리는 사람의 바다 말이다. 녀석이 지나가면, 꾸역꾸역 모여있던 요원들이 갈라지고, 그녀에게 손을 네밀며 구원을 바란다. 그리고 답답이는 천천이 하지만 빠짐없이 모두의 요구에 손을 잡아준다.

 

이런게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잘 잤어요?”

 

구원자의 발걸음은 내 앞에서 멈췄다. 답답이는 눈은 가늘게 입은 꼬리를 치켜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 저 얼굴형을 뭐라고 했었다.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도통 나지를 않는다.

 

.”

로키군은 뭐 필요한거 없어요?”

........”

 

나는 내 몫의 식판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밥이 조금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은 밥심이라고요.”

“.........”

 

녀석은 어떻게 내 생각을 읽었는지 밥그릇을 빼앗아서는 밥을 꾹꾹 눌러 담아서 돌려주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부족한 것 있으면 말씀 하시고요.”

 

총총 걸음으로 멀어지는 답답이를 보면서 나는 수저를 떠서 밥을 넘겼다. 쌀 알갱이는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따뜻했다.

 

네가 복덩이를 데리고 온 것 같군.”

“.......”

 

지부장은 답답이가 지어 보인것과 비슷한 얼굴로 내 옆에 앉았다. 그의 식판에는 더운 김을 뿜는 떡국이 담겨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지만 모두들 그녀 덕분에 안정을 찾았어. 심적으로만 보면 '우리'11.17사태 이전을 회복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식판의 떡국을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고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어떤 면에선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아주머니가 섭섭해 할 말씀을 하시는 군요.”

칭찬인걸 뭐.”

 

지부장은 내게 떡 그릇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제 이 지독한 냄새만 사라지면 될 텐데.”

“........”

 

지부장이 언급하는 냄새란 화약의 연기를 지칭한다. 화약연이 지부 아니, 이 운터브룩의 쓰레기 산 전체를 감싸고 도는 연유는 라스알게티가 다민족으로 구성된 도시, 인종의 용광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부터 답을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

 

많은 인종, 다양한 종교, 이질적인 문화를 보유한 여러 존재들이 서로 갈등을 빚지 않고 공존을 하려면 최소한의 공유점이 있어야 한다. 돌과 풀 그리고 철 조각들은 해답을 하늘에 떠 있는 태양에서 찾았다.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것이 대지에 미치는 영향을 넷으로 나누었다. 처음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시기를 임의로 신년이라 칭했다.

 

그리하여 왕도의 각 겨례는 동일한 신년이라는 기준점을 각자의 방식으로 축하하였다. 그것은 운터브룩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주일 동안 향이며 폭약이며를 터뜨리는 것을 신년 행사로 한 것이다. 그 덕분에........

 

.......엣취!”

괜찮습니까?”

 

산동네 거지새끼들은 연초에 1년 살림을 태운다.’라는 경멸조의 말이 떠도는 것이다. 그 말이 스스로 사실이라고 자평하려는 건지 화약연은 지독하게 가시지 않았고 요즘은 스모그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는 데스포그마냥 온 산을 뒤덮어 아무리 몸을 벅벅 닦아내도 냄새가 가시질 않는 지경까지 다다라버렸다. 지부장은 휴지로 코를 닦으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의 코는 이제 불에 닿은 듯 화끈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신문 봤냐?”

봤습니다. 재판 결과가 나왔더군요.”

그래..... 그래봐야 1심이긴 하지만.”

이대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요.”

 

나는 식탁 옆에 꽂혀있는 더 나이츠지를 꺼내들었다. 역시 장소를 달리해서 본다고 기사의 내용이 달라지진 않았다. 반쯤 곤죽이 된 요원 둘이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서 있는 모습이 일면 탑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민 폭행 도심방화, 죽음을 먹는자들이 양지로 나온 이유는?' 이라는 의문조의 제목으로 시작한 기사는 '우리'를 천하의 쳐 죽일 놈으로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들은 입을 열지 않는 요원들을 독종이라 묘사하면서 이들이 형장에서 마지막 숨을 쉬기 전에 죽음을 먹는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지옥에 가기 전 마지막 속죄가 되리라고 펜을 떼었다.

 

 

만민의 법이 누구에게나 세 번의 송사를 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

준비는 잘 하고 있나?”

파티플래너와 미팅이 오늘 10시에 있습니다.”

그래.........그녀라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들어 주겠지. 늘 그래왔으니까.”

 

내게 들으란 것인지 혼자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지 그 의중을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그를 보면서, 지부장이 기도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162418

 

로키군에게 빠득빠득 우겨서 아주머니의 조수로 들어온 지도 벌써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나름의 규칙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시행착오의 수렁속에서 허우적 거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을 해 낸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의 도움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걸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근본적으로......

 

아이리스씨 여기 쑥갓 좀 부탁해요.”

, 여기 맛있게 드세요.”

 

이곳에서 하는 일이 수녀원에서 해 온 것과 큰 맥락에서 차이가 없었거든요. 순서와 양식 그리고 명칭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결국 그 일이 그 일이었다는 거지요.

 

하나의 물방울이 대양을 넘치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이런 상황에 쓰는게 맞나 싶긴 한데요. 작은 변화가 큰 일을 만드는 초석이 된다고 한다면 제 인용이 틀리진 않았겠지요? 쨌든 이러한 발견은 제 처지에도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일을 잘하다보니, 아주머니의 칭찬을 듣게 되었지요. 아주머니는 제게만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공유 했답니다. 저에 대한 칭찬을 들은 사람들은 서서히......

 

아이리스씨 저는 아이 브라텐이요.”

..... 잠깐만요오.......”

 

저를 보는 시선에서 '의구심'이라는 렌즈를 떼어놓기 시작하더군요. 의구심의 렌즈를 벗고 날것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지요. 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

 

누님, 너무 고생하는거 아니에유?”

.......스벤.”

 

이글거리는 붉은 머리칼을 한 앳된 소년인 스벤은 머리카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제 카트를 함께 잡아주었습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린 친구라도 남자는 남자인가봐요.

 

계란 프라이 여기있어유. 이거 먹고 꼭 만수무강 하셔유.”

에라이 차라리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라.”

 

그는 넉살 좋게 요원분과 마주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계란 프라이를 건네주고는 다음 분을 위한 음식을 건네 주기위해 카트를 뒤적거렸습니다.

 

지미럴 그런 방법이 있었구먼.”

......?”

 

스벤은 제게 눈을 찡긋 하면서 조크에유.’라고 말하긴 했지만..... 진실성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았다는게 함정일까요?

 

이곳에 스스로를 우리라고 칭하는 사람들과 한 달 가까이 지내본 결과, 저는 암살자들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암살자라는 집단을 살펴보면 로키군을 알아가는 데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그것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졌던 생각이 맞으려면 암살자들은 개개인의 성정을 제거하여 사람을 표준화 시킨다.’라는 전제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냉정한 로키군, 다정다감한 스벤, 은근히 장난끼 많은 지부장님 그리고...... 싹싹한 토라씨. 이들만 놓고 보아도 직업 외에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키군은 전형적인암살자도, 그렇다고 특이 케이스도 아니었습니다. 로키군은 그냥 로키군 그 자체였던 거에요. , 저는 방향성을 잘못 잡고 여정을 시작했던거죠.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니 문득 그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연중에 저는 그보다 도덕적으로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관찰하려 했었던거고요. 이 얼마나 건방지고 위선적이었는지......

 

.......잤어요?”

“..........”

로키군은 뭐 부족한 거 없나요?”

....... 그게.”

 

로키군의 대답을 듣기 전에, 그의 식판을 살펴보니 밥이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저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떨리는 손을 꼭 잡아 밥을 푸고는 태연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에게 입을 떼었습니다.

 

사람은 밥심이라고요.”

“........”

 

저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그에게서는 어떠한 반향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마치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부족한 거 있으면 말씀 하시구요.”

그래....... 고맙다.”

 

저는 로키군의 입에서 나온 소리를 듣고,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키군에게 고맙다라는 표현을 들은 것이 처음이었거든요. 좀처럼 얻기 힘들었던 것을 얻었을 때, 기뻐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저 눈이 똥그래져 그를 쳐다보는 것이 다였습니다.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거든요.

 

제가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조르려고 하는 차에, 로키군의 옆에 지부장님께서 앉았습니다. 둘은 자기들끼리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제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어요. 뭐랄까....... 의도치 않게 불청객이 된 것 같은 어색한 기분? 저는 그 둘이 혹시라도 제게 말을 붙일까 싶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서 떨어져 하던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누님은 참 이상스러운 사람이구먼유. 다른 사람들에게 다 잘하는데 로키형 앞에서만 버벅거리기를 하질 않나........ 이제 한 달 정도 보면 대충은 캐릭터 파악 되지 않아유? 로키형은 누님 잡아먹을 사람이 절대 아닌디.”

하하........”

 

어느샌가 스벤이 제 옆에 와서 저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 말투만 고치면 정말 듬직한 동생이 될 것 같은데, 아버님이 자신의 피조물에게는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틀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나도 잘 알지.......”

그런데, 로키형한테는 왜 아직도 쫄고 그러유?”

그러게......... 사람 마음이 참 마음대로 안되는거 같아. 인생의 희로애락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거겠지?”

 

 

 

 

 

 

Channel 1. 로키

 

미팅룸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차와 과자가 정갈하게 접시위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토라가 만든 '판오디콘'모형은 시뮬레이터 위에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그 외에 이제 막 걸레질을 해서인지 방안에 은은이 편백나무 향이 감도는 것 까지 그대로였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다른 이들을 기다렸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미팅룸에 일찍 오는 편이다. 의뢰는 늦어도 미팅에는 일찍 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름 이유가 있다. 의뢰는 대부분의 경우 은밀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지만, 미팅은.......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경우에 난장판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고서는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없거든.

 

오늘도 일찍 왔네?”

그럼. .......”

그래 왔듯이.”

 

토라는 내 말을 가로채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 저 행동양태를 뭐라 했는데 아까부터 도통 기억이 안나네. 내 오늘이 가기 전에 반드시 떠올릴 것이다. 토라는 메모지와 펜을 제 자리에 세팅한 뒤에 펜을 끄적거리며 그것이 나오는지 확인을 했다.

 

아이고....... 하필 이런걸 가지고 왔네. 오빠. 펜 있어?”

여기 있다.”

이야 웬일이래? 펜 따위는 안 들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만사에 대비해야지.”

그렇게 들고 다니면 좀 쓰고 그래.”

내가 뭐 쓸 일이 있나.”

 

사실이 그렇다. 미팅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외부 고문인 파티 플래너와 내부 인사인 토라가 플랜을 점검하고 퇴고하고 편집을 하며 의견을 조율 하는 것, 결과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플롯을 만드는 것이 그 본질이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그 둘이라는 거지. 솔직히 내가 왜 이곳에 와서 둘의 입씨름을 지켜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어떻게든 정당화 해보려고 했지만 결론은 하나다. 늘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거?

 

문이 열리면서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여자가 문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파티 플래너다. 그녀에 대한 서술은 저번에 충분히 했으니 굳이 또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녀는 서류뭉치로 터져버릴 것 같은 가방을 낑낑대며 들고 들어왔다.

사실 저 엄청난 양의 서류 뭉치는 그녀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차피 계획은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걸. 하지만 그녀가 이 엄청난 육체적 비효율을 감내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친절하다고 여겨지는 것이고.

 

아이고....... 진짜 어께 박살나겠다.”

고생이 많구먼.”

 

내 말에 그녀는 눈을 흘겼다.

 

고생인거 알고 있음 한번 정도 들어주면 어디 덧 나냐?”

자기일은 자기 스스로 합시다.”

 

파티 플래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토해내듯이 꺼냈다. 겉보기에는 지저분해도 나름 파티 플래너 나름의 기준에 의해 배열 되어있었을 테지만, 창조주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기준은 힘을 잃고 정신없이 뒤섞여버리고 말았다.

 

....... 나눠 가지시고. 꺼내는 중에 좀 섞인 거 같은데 그건 미팅 중에 들으면서 맥락에 따라 알아서 정렬합시다. 누구 말마따나 자기일은 스스로 해야겠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것 같다. 나는 종이뭉치 사이를 뒤적거리면서 첫 번째 장으로 추정되는 종이를 꺼냈다. 그것에는 판오디콘 습격 계획이라는 글자가 써있었다.

 

일단 주어진 환경에 맞게 짜달라는 주문을 고려해서 총 세 개를 짜 봤어. 열심히 쇼핑해보길 바랄게.”

좋지.”

우선 첫 번째는.........”

 

파티 플래너가 계획에 대해 읊어나가는 동안 토라는 계획서를 심각한 얼굴로 뜯어보고 있었다. 중요하다 싶은 부분 그러니까 파티 플래너가 강조하는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나름 각주를 달았고 때로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나왔는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신경질적으로 끄적거리기도 했다. 나도 그냥 멍하니 있기 미안해서 미간을 찡그리며 계획서를 살펴보는 시늉을 해 보았지만.

 

"오빠."

"?"

"그 페이지 아니야."

"........"

 

포기는 배추를 셀 때만 쓰는 게 아니라 빠를수록 좋은 것 같다.

 

 

 

 

 

 

Channel 2. 아이리스

 

누구나 하루는 24시간, 일주일은 7, 한달은 30, 일 년은 365일이라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라에 따라 그 삶의 양태는 달라질 것입니다. , 시간은 주어지는 양은 사람의 됨됨이를 막론하고 평등 할 지라도, 소비하는 질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차별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이곳에서 제 하루 스케줄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점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의 기상시간은 남들보다 1시간이 빠르지만...... 식사시간은 남들보다 2시간 가까이 늦거든요. 지부의 모든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1시간, 그리고 잔반처리며 설걷이며 통틀어 뒷정리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 1시간을 보내고 나면 비로소 저희의 식사시간이 시작되는 거에요.

 

늦은 아침식사라 분위기는 앞서의 그것과 다릅니다. 먼저번은 번잡하고 정신줄을 쏙 빼놓는다면, 이번의 식사는 조용하고...... 뭔가 침잠된 분위기랄까요?

그래도 이런 늦은 식사도 좋은 구석은 존재 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이리스 쌈장 남은거 있니?”

여기 있어요.”

오늘은 고기가 많이 남았네.”

에이 일부러 많이 담은거 봤는데요?”

 

아주머니는 킬킬거리며 고기를 쌈장에 푹 담가서 꺼냈습니다. 저희의 늦은 식사가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늦은 대신에 풍족한 식사. 그게 우리가 누리는 호사랍니다. 아주머니는 쌈장에 찍은 고기를 상추에 큼지막하게 싸서 그대로 입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아주머니 대신에 그 맛을 느낄 수 없었지만 잔뜩 부풀어 오른 입 안에서 새어나오는 아사삭 소리만 들어도 대충 그 맛과 식감을 짐작할 수가 있었죠.

 

오늘 상추 상태 괜찮은데?”

새벽시장에서 바로 떼 온 녀석이거든요. 오늘 이거 사려고 시장통에 피가 튀겼다고요. 어찌나 다들 눈에 불을 켜던지.”

“........”

 

아주머니는 쌈을 먹다 말고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말은 없어도, 그 눈길은 충분이 제게 그 의중을 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래서 경력직을 찾나봐.”

하하....... 경력직도 경력직 나름 아니겠나요?”

.......처음엔 몰랐는데 너도 생색내는 걸 제법 좋아라 하는구나.”

?”

 

아주머니와 저는 한껏지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워낙 홀에 사람이 없어서인지 두 사람의 웃음이어도 홀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아니면...... 저희의 출력이 두 사람 분 이상일 수도 있겠지만

 

벌써 한 달이 넘었구나. 여기 온지도.”

벌써 그리 됐네요.”

처음에 니가 여기서 나랑 있으려고 빠득빠득 우길 땐...... 마음은 고맙다만, 너무 얌전한 친구라 재미는 없을 거 같아 걱정이었어....... 사람은 역시 겪어봐야 안다니까. 이런 친구인줄 알았으면 애초에 받지를 않았을 텐데.”

제 생각은 안 물어 보세요?”

내가 니 생각을 궁금해 할 필요가 있나?”

 

아주머니는 더 이상 제 반격을 사양한다는 듯 아아하는 소리를 내시며 귀를 틀어막았습니다. 진짜 유치한 분이라니까요. 그게 아주머니의 매력이지만...... 결국 저는 아주머니가 그렇게 행동을 하시는 동안, 남은 밥과 반찬을 그러모아 동그랗게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아주머니 아니었음 이곳에 잘 적응하진 못했을 거에요. 친해지려고 먼저 다가와서 농담도 하고 장난을 치셨죠. 저도 처음에는 어찌할 바 모르고 당하기만 했었죠. 하지만 장난은 계속되었고 저도 오기가 치미는 바람에 조금씩 반격도 하다보니 얼렁뚱땅 이곳에 잘 적응 한 것 같아요. 맛있는 식사가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때론 여기면 됐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제 자신을 다독이곤 하지요. 제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닌걸요. 이곳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잠시 머물다 가야 할 곳입니다.

 

아이리스.”

?”

 

아주머니는 저를 뚫어져라 쳐다 보셨습니다. 가끔이지만...... 그런 시선을 받다보면 옷이 발가벗겨진 것 같은...... 아니 머릿속이 읽혀지는 것 같은 불편한 기분이 든답니다. 혹시 마음을 다잡는 제 생각을 읽은 걸까요?

 

잔반 버리기 가위바위보?”

하하.......”

 

 

 

 

 

 

 

Channel 1. 로키

 

일단 내가 준비한건 이게 다야. 이제 선택의 시간이야.”

.......”

 

토라는 설마 이게 끝이야?’라는 얼굴로 파티 플래너의 얼굴을 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느 쪽이든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하기사, 흘려듣고 흘려듣다가도 귀에 들어오는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주워듣는 와중에도 지금 이 상황에 현실화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정도니, 그 내용을 집중해서 들은 토라로서는 정말 말 그대로 똥과 설사의 딜레마가 그녀의 가슴을 후려쳤을 것이다. 어느 쪽도 고르고 싶지 않은데 골라야만 하는 상황...... 그걸 묘사하기에 앞서의 표현처럼 적절한 게 있을까 싶다.

 

...... 일단 잘 들었어요....... 그런데.”

알아. 현실성이 많이 없지?”

어떻게...... 조율이 안되요? 알다시피.”

 

녀석은 뒷 말을 끝내 꺼내지 못하고 말을 꿀꺽 삼켰다. ‘선 요원 조직이 완전히 괴멸되었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녀석의 마지막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감정을 못 느끼는 나라도 녀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개념적으로 알고 있다.

 

결국 손에 피를 묻히는건 내 몫인 것 같다.

 

알다시피 우리는 선요원 조직이 완전히 궤멸되었다. 언젠가는 다시 꾸려나가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들의 서포트를 받는건 불가능하다.”

“........”

 

파티 플래너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가. 입술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나라고....... 너희 사정 모를 리가 없잖아. 하지만 나도 직업상 규칙이 있어. ‘계획을 세울 때는 선요원 5인과 관리관 1인 히트맨 1인의 7인 체제를 기본으로 한다.’ 기본이라고 기본. 이런 파티로 판오디콘을 뚫는 게 가능할 거 같아? 자살행위지. 그럼 그나마 선요원 다섯 명도 없이 판오디콘에 덤벼드는 거? 그런 미친 짓을 계획하라고? 차라리 니들 목에 내 손으로 줄을 매라 그래.”

아니...... 우린.”

나도 계약직 외주업자이지만 의리는 있어. 니들과 함께 머리 맞댄 시간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사지로 너네를 내모냐? 나도 이거 짜내면서 매일이 눈물이었어.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답이 없어 답이.”

“........”

 

짜내듯이 절규하는 파티 플래너의 말에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토록 자신만만하고 천재적인 녀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감정적인 걸 차치해 두고서도 개념적으로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녀석도 토러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 인정해야만 했기 때문에 속이 쓰렸을 것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 어찌 보면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해온 것에 대해 정면으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쇠락했다. 노력의 여하에 따라 부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그러니까 지금 여기는...... 확실히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그래...... 잘 알았다."

 

나의 발언에 토라와 파티플래너가 동시에 나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성격상 그리고 직업상 남들에게 주목받는걸 즐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지부장에게 이야기해서 선요원 조직을 재건하도록 하겠다. 아르니람 너는.......”

......”

선요원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계획 다시 짜보자.”

 

무너진 건 다시 일으켜 세우면 된다.

 

 

 

 

 

 

 

Channel 2. 아이리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이란 것을 예약해 놓기 마련이지요. , 제가 말한 명제는 생명에게만 국한된 건 아닐거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라는 것도, 흥하고, 망하고 번성하고, 쇠락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거대한 산맥도, 바람과 비를 맞다보면 서서히 깎이고 깎여서 구릉지가 될 수도 있는거고요.

 

어찌 보면 제가 앞서 말했던 삶과 죽음의 메카니즘을 생명에게만 국한지어서 이야기 했던 것은, ‘인류라는 종의 수명이 매우 짧기에, 그 사고의 틀이 매우 좁은 것에서 비롯된 걸지도 몰라요. 하루만을 사는 하루살이에게 일주일이란 시간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것처럼 느껴지듯이, 백년을 채 못 사는 미물에게 수천 년, 수만 년, 수억 년의 시간이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광활한 영역이겠죠.

 

단위를 많이 줄여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아까까지만 해도 저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은 식사시간을 위해 태어나고, 식사시간에 소비되었다가, 잔반통에 버려짐으로써 그 삶을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흔적은....... 대기중에 불쾌한 냄새로 남아 코끝을 맴돌았다가 이윽고 흩어져 버리더라고요. 비록 맡는 이에게는 불쾌하게 느껴지겠지만........ 잔반에게 있어서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으니, 나를 기억해줘.’라는 마지막 다잉 메시지일수도........

 

.......”

 

이로서, 식사와 관련된 모든 일이 끝이 났습니다. 뭐 굳이 식사와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을 찾는다면 잔반통의 뚜껑을 덮고, 잔반그릇을 닦는게 다겠지요. 물론 몇 시간 뒤에 이와 관련된 일을 또 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몇 시간 뒤의 일이니까. 일단은 끝이 난거라고 치는거지요. 앞서 한 생각 때문에 그런 걸까요? 평소라면 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도 마음이 되게 상쾌했었는데, 이번만큼은 뭔가 가슴팍에 묵지근한게 잔뜩 올려 진 것 같이 먹먹해왔습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 그것은 이 생활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생활의 끝이라 하면, 로키군에 대해서 알만큼 다 알고, 그에 대한 가치판단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지금으로서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로키군에 대한 판단보다 더 궁금한게 생겼습니다. 그것은........‘이 생활이 끝나는 순간에 어떤 생각이 들까?’라는 것이었어요. 뿌듯할까요? 홀가분할까요? 그게 아니면........ 서운할까요?

 

이제 와도 돼.”

 

제 말이 끝나자마자, 잔반구역의 담에 조그마한 형상이 삐죽하고 튀어나왔습니다. , 냥사장이냐고요? 아니요. 뭐 조그마하다는 점에서는 냥사장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지만 종이 좀 달라요. 냥사장은 고양이라면, 이 친구의 경우는 사람이거든요.

 

헤에, 아무도 없어요?”

 

사환아이는 제 말에도 불구하고, 한참동안 눈치를 살피느라 쉽게 오지를 못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짠하기도 하고, 이 아이를 이런 잔반냄새 나는 곳으로 데리러 가는 것도 미안하기도 하여, 제 쪽에서 사환아이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제 행동에 사환아이는 살짝 놀라 움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도망치지는 않았습니다. 길고 긴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는 셈이었지요. 저는 사환아이에게 만들어 온 주먹밥을 건네주었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환아이는 그걸 또 그 와중에, 그 주먹밥이 뭐라고 걸신들린 것처럼 달려들었지요.

 

아서라 천천이 좀 먹어. 이런거 체하면 답도 없다니까.”

. 알았어요.”

 

대답은 시원스럽게 해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사실 그 시원시원한 대답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아이를 보면..... 성당 고아원에 두고 온 페터와 캐시가 많이 떠올랐어요. 물론 그 아이들이 잘 살고 있을지 하는 걱정에서 마음이 아픈 것도 있지만, 더 큰 것은 이 아이와 그 아이들을 비교해 보면, 그렇게 사환아이가 딱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거든요.

 

페터나 캐시도 눈치가 빠른 편이라지만, ‘미운 나이답게, 뭔가를 이야기 하면 일단 싫어.’라는 대꾸부터 튀어나오거든요. 그런데 이 사환아이는 그런게 전혀 없어요. 무조건 혹은 ’, 그리고 할 수 있어요.’ 남들 다 하는 투정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환경에 홀로 이 아이를 던져놓은 벌 받을 죄인은 지금 어디서 뭘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밥은 어쩌고

그리고 칠성아.”

?”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한테는 싫다.’라든지, ‘밉다.’라던지 그렇게 응석 부려도 되.”

. 알았어요. 앞으로 응석 부릴게요.”

...... 응석이 뭔진 알고 말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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