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인력거는 운터브룩 앞에서 멈췄고, 나는 잔금을 마저 치른 뒤에 도로시와 함께 인력거에서 내렸다. 녀석은 운터브룩의 팻말 앞에서 ‘쓰레기 산’을 올려다보았다.
“여긴 여전하네.”
도로시는 삐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운터브룩에 오신걸 환영합니다.’라는 팻말의 기둥을 심술궂게 흔들어댔다. 녀석의 얼굴에는 근육이 만들어내는 형상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것이 어떤 감정 상태를 표상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굳이 추측을 해본다면....... 녀석이 이곳에서 보냈던 일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닥 좋은 감정이 아닐거란 걸 짐작 해 볼 뿐이다.
“한결 같지.”
“한결 같이 쓰레기 같은 곳이야.”
“........”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녀석이 이곳을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은 여전히 쓰레기장 같은 곳이니까. 기실, 운터브룩의 외관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한 이는 답답이 녀석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가슴에서 우러나온 소리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립 서비스에 불과했으니까 이곳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팻말을 몇 번 더 흔든 뒤에 어께를 으쓱했다. 이번만큼은 굳이 추측이란 걸 가져다 댈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냥 지겨우니 빨리 올라가자는 거겠지.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은 미래의 일을 판단하는데 근거가 된다고 한다. 저번에 답답이 녀석과 쓰레기 산을 올랐던 경험은 이번에 도로시와 함께 이 산을 오르는데 실마리를 가져다주었다. 이번 산행에서 나는 도로시를 앞세우고 내가 뒤를 따르는 식으로 산을 올랐다. 아무래도 도로시가 이 산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도 있지만, 이 새로운 방법은 도로시에게 페이스를 맞춰줌으로써, 도로시가 지쳐서 나자빠지는 걸 최대한 미룰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장점만 있을 수 있겠는가.
“와....... 저 집 아직도 안 무너지고 있었냐?”
“........”
“우와....... 저 구정물 봐라. 너네 아직도 저 물로 설거지하고 그래? 니네 그러다 진짜 죽어.”
“.......”
“야, 로키 이쯤 되면 니가 나서서 지부장 좀 설득하고 그래야 되. 너네도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란 게 있을 텐데, 언제까지 이런 구질구질 한 데에서 살 거야? 내가 겪어보니까. 사람은 사는 곳을 좀 많이 따라가는 거 같더라고. 이런 궁기가 주르륵 흐르는 곳에서 살면 사람이 쪼잔해지고........”
“아 쫌 닥쳐봐라.”
브레이크가 박살난 폭주기관차 마냥, 멈춤이라고는 없이 그대로 쭉 치고 가는 도로시의 지껄임을 태풍을 맞는 고목나무의 마음으로 피할 수 없이 정면으로 받아내야 하는 것이, 이 포지션의 최대 단점이었다. 녀석의 끊임없는 지저귀는 소리를 듣다보니, 문득 찰리가 따라주는 율무차 한 컵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하아. 찰리 그 새끼는 그놈의 돈이 뭐라고....... 진짜 깡패는 돈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로시는 그 가는 눈을 열심히 굴려가며 감회에 젖어들기 바빴다. 그래....... 내 생각을 녀석이 알 리가 없지. 알고서도 저런다면, 정말 쟤는.......
“어! 아....... 진짜 오래간만이다.”
도로시는 화장터를 보더니 가늘던 눈이 번쩍 떠졌다. 녀석이 이곳을 온 일은 별로 없었을 텐데, 여기를 보면서 왜 저토록 반가워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모르는 녀석만의 추억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수평이라곤 없는 이 산마을에 모처럼만에 보는 평지이니 그것이 반가운 것일까? 그 까닭은 끝내 알 도리가 없었지만, 도로시가 반가워하면서 이제 막 화장을 마쳤는지 재가 풀풀 날리는 이곳을 펄쩍 펄쩍 뛰어다니면서 제 몸에 재를 온통 묻히고 다니는 모습은 확실히 한심해 보였다.
“난 여기가 정말 좋더라고. 경치가 좋잖아. 개천도 흐르고........ 여기는 그래도 물이 깨끗한 편이니까.”
난 정말..... ‘니가 방금 발을 살짝 담근 그 개천에는 방금 살 태운 재와 뼛가루가 떠내려갔을 것이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목구멍 너머로 꾹 삼켜야만 했다. 여기까지 와서 일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나는 결국 도로시가 그 시체를 태운 곳에서 뭘 하든 간에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심정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렇게 된 김에 나 역시도 난간 너머에 앉아 개천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휴식만 취하면 된다. 장소가 중요한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녀석도, 나도 신간이 편하니까. 그렇게 녀석을 따라 개천을 보다가, 끝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는 것도 너무나도 지겨워져 고개를 돌리니 다른 여자가 화장장에 서서 개천을 내려다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지? 요즘은 미친년들이 제철인걸까? 한명은 화장터에서 재를 뒤집어써가며 헤집고 다니질 않나, 한명은 소설 속 주인공 마냥 재 날리는 것도 모르고 분위기를 잡고 있지 않나....... 그래도 왕도로 파견 와서 이곳에 산지도 꽤 오래됐다고 내심 자부하는 나지만, 이런 일은 파견신고하고 처음 있는 일이기에,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분위기를 잡던 저 여자를 보니, 나는 그녀가 어떠한 종류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가 집어넣었다가를 계속해서 반복했을 뿐더러, 흐르는 개천을 보며 한숨을 계속해서 푹푹 쉬어댔다. 한참을 그러다가....... 그녀는 마지막으로 깊은 한숨을 쉰 뒤에 결심이 섰는지, 그것을 주머니에 우겨넣고 뒤를 돌았다.
“여기에서 뭐하냐?”
“어.......어어?”
그토록 궁상맞았던 그 여자는 바로 답답이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절대 안돼요. 그건 보여줘서도 안돼고,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도 안돼요. 죽을지도 몰라요.’
저는 사환아이의 말을 곱씹으면서 개천을 바라보았습니다. 개천의 물은 그 수심이 얕아서, 그 바닥에 깔려있는 지형지물의 모양을 그대로 수면위로 투사했습니다. 모래알같이 조그마한 것이 쌓여있는 곳은 잔잔하게 흘렀지만, 자갈과 같이 어느정도 부피가 있는 것이 쌓인 곳에는 살을 밀어올린 것 같이 주름을 지으며 흘러들어갔고, 마지막으로 바위와 같이 큰 물체는 그것을 돌아서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물은 계속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에, 장애물을 피해가려는 흐름과 계속 흘러가려는 흐름이 충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흐름의 갈등과 충돌은 부글거리는 기포를 안은 격류가 되었지요.
제 마음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제 마음은 두 갈래로 찢겨져, 어느 한 쪽을 잡아먹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향한 투쟁을 하고 있었지요. 그 격렬한 충돌은 하얀 거품을 안은 격류처럼 제 가슴속에서 휘몰아 쳤고 그것은 결국
“하아........”
한숨이 되어 제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1월의 차가운 공기 때문이었을까요? 제 입에서 나온 한숨은 순식간에 하얀 김이 되어 이리저리 모양과 궤적을 남기며 공기속으로 퍼져갔습니다. 그런데 그 하얀 김 마저도 휘몰아치는 제 가슴에서 나온 탓에, 격렬하게 요동을 쳤었지요.
어느 한 쪽의 마음은 제게 경고의 붉은 기를 들었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워 질 수 도 있는 물건이다.’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제게 ‘위험은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당장 그것을 저 개천에 집어던져야 한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마음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으며, 조금이라도 반박이라도 하려는 기색이 보이면 언제든지 소리를 지르며 윽박지를 준비가 되어있던 것 같았습니다.
다른 한 쪽의 마음은 제게 격려의 푸른 기를 들었습니다. ‘네가 이 곳에 머무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라.’라면서, ‘이것은 로키군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네게 주어진 소중한 실마리다.’라고 제게 속삭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크고 당당했으며, 주저앉으려는 이를 일으켜 세우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던 것 같았어요.
다른 한 편으로 이야기 해볼까요?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는 한편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고, 높고 강한 목소리에는 책임감이 증발하고 그 자리에 충동이 자리한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제 솔직한 심정으로는........ 마음에 드는 쪽을 고르기보단, 그나마 덜 불만족스러운 걸 고르고 싶었어요. 그만큼 어느 쪽의 목소리도 제게 만족스럽지가 않았어요. 어느 쪽의 말을 듣던 간에 좋은 결과가 그려지지가 않았거든요. 첫째의 경우를 듣자니, 정체된 것 같은 제 상황이 그대로 굳어져버릴 것 같았고, 두 번째의 경우를 듣자니, 두려운 미래를 향해 대책 없이 나가는 것 같았거든요.
저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비정한 마음’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던져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어느 쪽도 결정하지 못한 채 그것은 제 손안에서 무의미하게 맴을 돌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메슬로우의 말이 꼭 맞는건 아닌 것 같아요. 메슬로우는 ‘사람의 욕구는 위계가 있으며, 그것은 일방통행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라고 말했었지요. 욕구의 위계란, 생존욕, 식욕, 성욕, 수면욕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에서 신체의 안정, 직업의 안정과 같은 안전에 대한 욕구로, 그것이 해소 되면, 집단에의 소속이나 친교와 같은 애정에 대한 욕구로 나아가고, 그 이후에 존경욕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아간다고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기초적인 욕구인 ‘안전에 대한 욕구’와, 형이상학적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메슬로우에 따르면 자아실현의 욕구는 안전에 대한 욕구에 선행할 수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그의 이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상황인 셈이지요.
제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메슬로우를 넘어서, 저는 다른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어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타브리스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신께서는 너의 선택을 존중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릇된 선택을 해도 책망하지 않을 테지만, 옳은 선택을 해도 칭찬치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었죠. 그는 제게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하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한 메슬로우와, 그 길을 때려 부시는 타브리스........ 두 사람의 사이에서, 저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이크!”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을 하며 ‘비정한 마음’을 만지다가, 무언가가 제 얼굴로 확하고 날아왔습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옆으로 팩 돌렸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제 얼굴로 스쳐간 그것은........ 개천가 갈대밭의 갈대에 붙어있던 사마귀 알이었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부모가 제 생명을 바쳐서 만든 덕에 사마귀 알은 어지간한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여물었습니다. 그토록 단단하게 여물었기에, 제가 피하지 않고 그대로 얻어맞았더라면....... 아마 제 이마에 혹이 돋아나지는 않더라도, 꽤나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 뻔 했지 뭐에요.
저는 이제까지 해온 고민을 내려놓고 사마귀 알집이 매달린 갈대 줄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의 밑에는....... 알집의 어미로 보이는 사마귀가 말라죽은 시체가 걸려있었습니다. 사마귀는 참 특이한 곤충입니다. 다른 곤충들은 애벌레와 어른벌레의 모습이 큰 차이가 있는데, 사마귀는 태어난 모습에서 크기만 점점 더 커질 뿐, 모습에서는 애벌레와 어른벌레의 모양에는 차이가 없거든요. 하지만, 그것도 곤충의 특성상 허물벗기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제 살을 찢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말로는 참 간단하지만, 아마 당사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사실 많은 곤충들이 허물벗기 과정에서 제풀에 지쳐 죽어버리곤 하거든요. 성장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겁니다.
그 모습이 지금의 저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걸 이루기 위해선, 저의 생명을 담보로 잡아야 할 상황........ 하지만, 아마 애벌레들은 성공 가능성을 조율해가며 허물벗기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잡다한 계산을 접어두고, 자신의 숙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 스케일이 작긴 하지만, 그것을 결코 폄훼해서는 안 될 노릇이죠.
........ 결심이 섰습니다. 저는 말라붙은 사마귀에게 감사의 말을 속으로 주억거리며, 비정한 마음을 제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냐?”
“어.......어어?”
Channel 1. 로키
“여기에서 뭐하냐?”
“어.......어어?”
너무 갑작스럽게 들이댄 탓이었을까? 답답이는 대답 대신에, 입을 헤 벌리고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녀석이 준비하지 못한 사이에 갑작스럽게 정보가 밀어닥쳐, 그것을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모양이었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핀잔을 주었을 테지만, 녀석이 워낙에........ 느린 친구란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공유했던 터라, 나는 녀석이 제 정신을 찾을 때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기로 했다.
내가 저번에 이야기 한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간이 날 때 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버릇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기행의 취지는, 관찰을 통해 사람들이 보이는 언어적, 비 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고도 말한 적도 있었는데......... 기억하려나 잘 모르겠군. 어쨌든, 앞서 언급한 경험을 통해서, 나는 녀석이 정보를 느리지만 정보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대응하는 양태를 좀 더 밀도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은....... 제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려 백치마냥 대처하던 초기의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약 3초의 반 정도 되는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이건 두 가지 가능성을 내포하는데, 첫째는 그만큼 녀석이 마주한 정보의 양이 많았다거나....... 아니면, 녀석의 머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이 그만큼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두 번째에 걸고 싶다.
처음의 충격에서 벗어나, 녀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차츰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녀석은 자신의 눈을 오른쪽으로 굴렸으며,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걸 피했다. 아마........ 녀석이 인식한 상황이란 건, 녀석에게 ‘유리’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인가보다. 녀석의 눈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는 건, 무언가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상황이 녀석에게 ‘유리’했더라면, 아마 이성보다는 감성이 녀석의 머리를 지배했을 터다.
상황을 이해한 뒤에, 녀석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나의 눈을 슬슬 피하면서 주머니에 슬금슬금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역시나....... 주머니에 들어갈 때는 주먹이 쥐여졌던 녀석의 손이, 그것에서 나올 때는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녀석은 주머니에 무언가를 감추었다는 걸 의미하겠지. 그 주머니에 감춘 물건은 나에게 보여선 안 될 것인 모양이고.
역시나....... 답답하면서도, 거짓말이 서툰 녀석이다. 아마 능숙한 거짓말쟁이였다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의 시선을 빼앗을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나의 시선을 관찰함으로써, 그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나와 눈을 피함으로써, 내 시선을 감시하지 못했고, 시선을 빼앗을 수도 없었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 무언가를 숨기는 행동을 하는 것....... 이건 마치 타조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도망가기 보다는 고개를 땅속에 박아버림으로써, 문제에 눈을 돌려버리는 것........ 이 얼마나 어리석으면서도 답답한 일인가.
이미 녀석은 자신의 패를 내게 다 알려준 셈이다. 이제 나의 유려하면서도 적절한 대응이 남았다. 속전속결이 답이 될 수 있으니, 녀석이 정신을 못 차리게 몰아쳐서 승부를 보아야 할까? 음....... 글쎄, 평소의 나라면 아마 그런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것이 내 행동 성향에도 부합하고,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거든. 하지만, 이 녀석이 상대라면........ 그건 별로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이 답답하고도 겁이 많은 녀석이라면, 몰아치면 칠수록 딱딱한 껍질 속에 자신의 몸을 우겨넣고 그대로 버틸 게 분명하거든. 껍질 속에 틀어박힌 거북이를 잡아먹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녀석을 살살 구슬러야 할까? 뭐....... 첫 번째 방법과 정 반대의 방법이니 유효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 행동 성향에 부합하지 않는 걸 넘어서........ 아예 불가능하다. 이제까지 그래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럴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리가 없으니까.
몰아치는 건 해결방법이 되지 않고, 구슬리는 것은 이쪽에서 아예 불가능하다면........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화장터다. 우수에 찬 눈으로 분위기를 잡기에는........ 터가 영 별로지.”
“아하하....... 티가 많이 났나요?”
녀석은 어색하게 웃음을....... 아 그래! 웃음이었다. 그래, 저렇게 입가를 비틀어 올리면서 눈가가 가늘어지는 근육 정렬 형태를 ‘웃음’이라고 했었다. 드디어 기억이 났군. 어쨌거나, 녀석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짐짓 모르는 척 하고 접근했던 게 효과가 있었나보다. 아마 녀석 딴에는 활로가 열렸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유도하는 대로 착실하게 들어가서
“......그런데,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말이지. 네 녀석은 그러면서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거 같던데.”
“음...... 그게 말이에요. 로키군. 우리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는 개소리를 하려고 했다면, 아예 입을 열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윽!”
스스로의 목을 졸라매지 않겠는가. 내가 자신을 지켜보았다는 걸 밑밥으로 깔아놓고서, 이렇게 도망칠 수 없도록 추궁을 하자, 녀석은 아까와는 다른 양상으로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뿐만 아니라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기 까지 했지...... 그래, 이런 심리상태를 ‘당황’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녀석은 아무런 말없이 눈을 좌우로 한참동안 굴리다가.......
“저.......로키군.”
“꺼내라.”
녀석은 마지막 희망을 쥐어짜서 내게 협상을 해보려 했지만, 이미 도망칠 수 없는 곳까지 몰아넣은 내가 굳이 녀석의 협상에 응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는 녀석에게 행동을 강요했고, 녀석은 결국.......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자신이 감췄던 것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것은........ 뜻밖에도 ‘비정한 마음’이었다.
“너 이거 어디에서 난거냐?”
“화장터에서 주웠어요.”
녀석은 우물거리며 변명의 말을 늘어놓았지만, 내 귀에는 앞서 녀석이 한 말 빼고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화장터 녀석들 제대로 껀수를 쳤구먼.’이었다. ‘화장터 이용에 대한 수칙’에 따르면, 시체를 화장할 때는 시체가 지닌 유류품을 분리해야만 한다. 망자가 가진 물건 중에 외부로 유출되지 않아야 하는 것과, 유출돼도 상관없는 것을 우선적으로 분류를 하고, 그것이 타는 물건인지 타지 않는 물건인지에 따라서 달리 처리를 해야 했다.
‘비정한 마음’의 경우는 외부에 유출이 제한되는 품목이면서 타지 않는 물건이었다. 화장터 관리인들은 비정한 마음을 수거한 뒤에, 그것을 적절하게 처리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것은 ‘외부인’에게 흘러들어가 버렸다....... 일을 벌려도 저렇게 크게 벌일 줄이야.
“.......”
“저기....... 그러니까.”
“일단 입 좀 닥치고 있어봐. 나도 생각할게 있으니까.”
하아....... 일이 너무 귀찮아졌다. 아니, 다시 말을 고쳐서, 일이 너무 커졌다. 금지품목의 존재를 외부인이 알게 되면....... 원칙상 그 외부인을 제거해야 한다.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고 해도, 외부인은 결국 외부인이기에,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면 어떤 행동을 할지는 미지의 영역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가능성은 ‘우리’에게는 너무 불편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사람의 호의에만 기댈 정도로 우리가 그렇게 낙관적인 상황도 아니고....... 이러한 선택이 ‘외부인’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부자의 관점에서는 옳다. 그리고 내가 그런 상황에 닥쳐서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할 것이다. 옳은 일은 당연히 행해야 하는 거니까. 그 편이 마음이 편하니까. 하지만....... 그 외부인이 바로 저 녀석이란 게 문제다.
Channel 2. 아이리스
“여기에서 뭐하냐?”
“어.......어어?”
등 뒤에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저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러 돌아보기 전에 황급히 유리세공품을 주머니에 숨겼습니다. 칠성이도 민감하게 여기는 물건을 로키군이라고 해서 좌시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대한 예바른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화장터다. 우수에 찬 눈으로 분위기를 잡기에는 터가 영 별로지.”
“아하하....... 티가 너무 많이 났나요?”
팔짱을 낀 채로 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의심’과 ‘추궁’이라고 적힌 메모지가 떡하니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니........ 머릿속이 아뜩해졌습니다. 이거....... 걸렸다고 해야하는게 맞는 걸까요? 저는, 제 일생을 통틀어 전무후무하게 머리를 굴려보았습니다. 분명 그의 얼굴은 ‘무언가를 숨겼구나.’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직접적으로 제가 무언가를 숨겼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만에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기가 막힌 ‘아버님’의 은총으로 그의 눈이 잠깐 어두워져 제가 한 행동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게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굳이 제가 자백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만 이끌어 간다면.......
“그래도 화장터라 하기는 정말 풍광도 좋고...... 개천도 깔끔한 것 같......”
“........거기에.”
제 말을 단칼에 자르면서 그는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앞으로 쑥하고 다가왔습니다.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정말 말 그대로 ‘그럴 사이도 없이.’순식간에 다가와 버리고는 제게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입을 틀어막은 제 입에는 새된 숨소리만 흘러나왔습니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거기에서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 같던데.......”
“음....... 그게요. 제가 생각할 때는 저희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는 개소리를 할 거라면, 그냥 마음속으로만 하고 절대 입 밖으론 내놓지 않았으면 좋겠군.”
“........윽.”
절대로 틀린 적이 없던 슬픈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건....... ‘이미 게임이 끝났다.’라는 거였지요. 그가 이렇게 운을 떼면서, 천천히 저를 궁지에 몰아넣은걸 본다면 애초에 로키군은 제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본 뒤에, 확신을 가지고 제게 다가온 게 분명했습니다. 역시....... 녹록치 않은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호되게 혼쭐이 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저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 이런 질문은 우문입니다. 이미 게임이 끝난 마당에 무얼 선택하겠습니까. 질문을 바꿔야겠네요. 어떠한 말을 해야 그나마 벼락을 덜 맞을까요?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내기 위해 로키군의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그 시도는 참...... 그의 얼굴에 제 눈길이 닿자마자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는지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타협이란 없으니, 있는 그대로 솔직하기 말해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이 판국에 일을 보태거나 빼는 것, 혹은 잡아떼다가는...... 본전도 못찾게 되는건 불 보듯 뻔한 일인 것 같았습니다.
생각이 이에 이르니, 머릿속이 오히려 맑아졌습니다. 아니, 달리 말하자면 기존의 길이 막히니 오히려 새로운 길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그에게 ‘비정한 마음’을 보여주고, 로키군에게 이 물건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물어보는 게 더 나아보였거든요.
“저......그러니까.”
“꺼내라.”
제가 이 판국에 또 다른 착각 속에 빠졌었네요. 제겐 애초에 기존의 길, 새로운 길과 같은 선택지란 게 없었습니다. 이토록 엄격한 사람에게 딜을 하려 들었다는 게, 참으로 객기어린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절절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가 더 딱딱하게 나오기 전에 주머니에서 ‘비정한 마음’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는 그의 얼굴에는....... 정말 미세하지만, 작은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파문...... 과연 긍정적인 의미였을까요? 아니면 제가 우려하던 그런 파문이었을까요?
“이걸...... 버릴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구먼.”
“칠성이가 이걸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하지만 넌 그렇지 않았지.”
그의 얼굴에 일어난 파문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옳은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파문이 대양의 물을 넘치게 만드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방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칠성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저기 그러니까...... 칠성이가 누구냐면요.”
“일단 입 좀 닥치고 있어봐. 나도 생각할게 있으니까.”
그의 말에 저는 말을 허겁지겁 삼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양의 물이 넘칠 때 그냥 넘칠 리가 없었죠. 그의 얼굴에 던져진 작은 파문이 성장과정을 거쳐....... 쓰나미가 된 셈입니다. 이런 쓰나미가 밀어닥치면 선택은 둘 중에 하나가 되겠죠. 파도가 흘러가는대로 몸을 맡기거나, 뿌리를 땅에 박고 그것이 지나갈 때 까지 버티거나.......
제가 선택지를 찾아 머리를 굴리는 동안,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채를 잡고서 ‘비정한 마음’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처치 곤란한 물건을 떠맡은 것 같은 얼굴이었지요. 그는 그 나름대로 생각에 잠겨서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 최대한 ‘합리적인’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있는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래요....... 누구나 고민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 고민 때문에, 아까 제가 본 것처럼,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득...... 저도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면, 저는 그의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비위를 맞추거나, 아니면 그의 감정이 잦아들 때 까지 버텨야만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뭐가 되는걸까요? 저는 로키군이라는 사람을 알기위해서 왔을 뿐, 그의 하위적인 개체로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에게 종속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입으로 ‘네가 가진 궁금점을 해결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협조를 해주겠다.’라고 약속한 적도 있습니다.
이제....... 용기를 내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