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워터 프론트역은 예전에 외근을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렸다. 역전을 넘실거리는 사람의 물결은 자신의 걸음을 멈출 곳을 찾아 헤메고 있었고, 나와 도로시는 그 인파들 속에서 흩어지지 않기 위해 손을 꼭 붙잡았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손길로 서로를 붙잡기에는 사람의 파고는 너무나 높고 거대했다.
“와....... 진짜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걸?”
“커먼 브룩에 가면 더 많아질 거다.”
“거참 여지껏 듣던 말 중 가장 반가운 소리구먼.”
도로시는 역설적인 말을 내뱉으며 내 손을 더욱 꼭 붙잡았다. 아니, 이정도면 움켜잡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군. 녀석의 이러한 의존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 마냥 생각해보면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녀석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 녀석의 삶의 양태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매일을 전당포에만 처박혀있던 문신쟁이년이 이렇게 사람들로 득시글한 곳에 몸을 던졌다. 그건 도로시 인생을 통틀어서 손에 꼽을 정도의 큰 도박이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녀석의 손을 꽉 잡는 사이에, 인파의 흐름이 별안간 빨라지기 시작했다. 급류의 근원은 저쪽에 있는 플랫폼이었다. 음...... 저쪽은 우리가 가려는 곳과 반대방향이다. 저곳으로 덩달아 빨려 들어가면, 아마 우리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다 보면 온 세상 어린이들을 다 만나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그건 매우 비효율적인 짓이지. 정신 차려야 할 시간이다.
“꽉 잡아라.”
“오키도키.”
나는 짐짝을 나르는 양 도로시의 뒷목을 잡고, 인파들을 헤쳐갔다. 아무래도 흐름에서 벗어나야하는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과 충돌이 더욱 잦아졌다. 그러다보니 땀으로 절은 타인의 피부와 맞닿아야 하기도 하고,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덥고 습한 숨과 마주해야 하기도 했다. 도로시는 투덜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지금은 그런걸 신경 써줄 여력이 없다. 가장 중요한건 저 배수구에서 벗어나야 하는거니까.
“아오....... 야! 로키!”
“닥치고 따라와.”
“나 어께가....... 아악!”
“시끄러.”
한참을 끙끙댄 끝에 급류에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탔다. 새로운 흐름이라........ 말은 거창하긴 했는데 실은 별거 없다. 우리가 가야할 플랫폼 역시 사람을 끌어당기는 급류가 흐르기에, 그쪽으로 내 몸을 맡기는 거지 뭐. 굳이 차이를 찾자면, 첫 번째의 사례에서는 내가 인파에 맞서느라 대립과 충돌을 빚어낸 것에 비해, 두 번째 사례에서는 나와 인파가 서로 맞서지 않고 같은 흐름을 탔다는 거겠지. 어쨌거나 나와 도로시는 하수구의 배수관으로 오물이 쏟아져 나오듯 꾸역꾸역 쓸려가는 사람의 파도를 타고 플랫폼으로 흘러들어왔다.
“아이고.......어께 나간거 같아.”
“사람 몸 생각보다 강하다.”
“야 그래도 살펴나 봐줘. 나 진짜 어께가 심상치 않다고.”
돌 벽과 돌기둥 그리고 그곳에 가지런히 열을 맞춰 서 있는 사람들의 풍경은 거대한 시체안치소와 같았다. 소음보단 침묵이 어울리는 이 장소에, 도로시는 눈치 없이 소음이라는 것을 집어던졌다. 녀석의 목소리는 빈 동굴에 깡통을 던지는 것처럼 쨍쨍거리는 여운을 남겼다. 눈치가 보이지 않냐고? 글쎄, 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녀석이 비록 눈치 없는 짓을 했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 이런 죽음 같은 침묵이 자리를 깔고 있는 곳에 누군가가 생의 자취를 남긴다면 어떠한 형태건 간에 나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도 생각해보면 타고난 반골이지.
어쨌거나, 나는 도로시가 주문한대로 녀석의 어께를 살펴보았다. 판독을 해보니, 녀석은 지독한 엄살쟁이였던 걸로 밝혀졌다. 나는 고개를 으쓱하는 걸로 내 의사를 전달했고, 민망해진 녀석은 괜시리 자신의 어께를 주물주물 거렸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뭐가 이리 조용한 거지? 여긴 엄청나게 큰.......”
“영안실 같다고?”
“.......”
민망함이 얼추 가셨던 걸까?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긴 녀석은 플랫폼을 살펴보더니 자신 나름의 감상평을 남겼다. 녀석의 생각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하는 걸로 동의의 의미를 전달했다. 나도 저런 감상을 얼마 전에 했던 것 같은데....... 녀석과 내 생각이 닮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녀석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볼 때는 나와 녀석은 좀 닮은 구석이 있거든. 우리 둘 다 이 사회에서 천시하는 입장에 속해있고, 하는 일의 본질도 비슷하다. 하나는 칼을, 다른 하나는 돈을 수단으로 삼지만 우리 모두 타인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내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입장과 경험이 비슷하니, 하나의 현상에 대해 해석하는 방식과 결과 역시 유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래? 난 도서관 같다고 말하려 했는데?”
“그.....랬냐?”
“기분 좀 나빠지려고 하네? 내가 자기랑 똑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아니다.”
“뭐가 아닌데?”
도로시는 드디어 내게서 꼬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신이 나서 내 말꼬리를 계속해서 잡아댔다. 마치 끝말잇기를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이길 수가 없다. 녀석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이 난 것이고....... 나로서는 녀석에게 부차적인 즐거움을 줄 생각은 전혀 없다. 특히 나 자신을 깎아내려가면서 말이지. 이럴 때는 이런 상황을 빨리 끝내는 게 상책이다.
“미안하다. 그만하자.”
“뭐가 미안한데?”
“그만 좀 지껄여 미친년아.”
Channel 2. 아이리스
뼛가루를 뿌리는 의식이 모두 끝나고, 사자의 육신은 그렇게 연기와 뼛가루가 되어 공기와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장례가 끝난 셈이지요. 장례 이후에 남은 사람들은 화장터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만큼은 저와 아주머니, 그리고 칠성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저희 셋 다 팔을 걷어 부치고 정리를 하는데 손을 보탰습니다. 하하, 생각해보면 정말 셋 다 하나같이 오지랖 하나는 지독하게 넓은 것 같아요.
이 세 명의 손길이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지 않아 화장터는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화장이 이루어졌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요. 참....... 이게 뭐라고 뿌듯 했더라니까요.
“자....... 이제 돌아갈까?”
아주머니의 말에 저희는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위화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상한 예감이 제 발을 붙잡았습니다. ‘이 자리를 그냥 떠서는 안 된다.’라는 강한 명령조와 같은 생각에 저는 우뚝 멈춰 서서 화장터를 살펴보았습니다.
“아이리스!”
“.........”
“같이 안 갈거니?”
“음....... 먼저 가세요. 전 잠깐만 있다가 갈게요.”
“왜? 뭐 두고 온 거라도 있는 거야?”
아주머니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제 옆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잘 된 일입니다. 무언가를 찾는다면, 눈이 두 개인 것 보다는 눈이 네 개인 쪽이 더 수월 할 테니까요. 그런데....... 애초의 그런 생각의 한편으론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지요.
“아.......니에요. 그냥 먼저 가셔도 되요. 그냥 여기를 좀 살펴보고 싶어서요.”
“흐음.......그래?”
마치 재채기를 하듯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리고 놀랄 사이도 없이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은 제가 말릴 사이도 없이 아주머니의 귓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목울대가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침을 삼켰고, 아주머니에게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뵈기 위해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런 제 얼굴을 살펴보시다가......
“그래, 먼저 가볼게. 칠성이는 어쩔 거니?”
“저는 누나랑 갈게요.”
저는 아주머니를 보내고 빈 화장터를 살펴보았습니다. 딱히 무어라고 할 순 없지만 저는 무언가를 이곳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있을지는 솔직히 알 수 없습니다만, 역설적이게도 전 이곳에 무엇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그것은.......
“........ 저거다.”
눈을 찡그려가며 화장터를 살피던 제 눈에, 무언가 반짝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참 대단한 통박이 아닐 수가 없네요. 아무런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 확신대로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거....... 이 상황은 ‘아드님’이 부활한 뒤에 제자를 만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연상시켰습니다. 토마스라는 제자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아드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후일 성흔이라 불리게 될 손과 옆구리에 난 구멍에 손을 직접 집어넣어보기까지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드님’은 그런 토마스가 끝내 믿을 때 까지 가만히 기다리신 뒤, 토마스가 승복하자 그렇게 말씀했다고 해요. ‘믿음이 부족한 녀석은 눈앞에 증거를 보여야 믿지만, 믿음이 굳센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믿는다.’라고 말입니다. 좀 교만한 소리겠지만 그런 점에선 제가 토마스 사도님보단 더 나았던게 아니었을까요? 하하.
제 잘난 척은 이만하고, 저는 반짝거리는 것을 집어 들어 그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팬던트의 일종이었는데, 장식 부분이 정말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장식에는 사람의 상반신이 묘사되어있었는데, 머리털이 조각되지 않은 민머리라 그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풍만한 가슴이 조각된걸로 보아, 이 펜던트의 모델은 여자였던 모양이에요. 여기까지만 보면 그래도 평범한 축에 드는 유리세공품의 모습이라 할 수 있었겠지만, 그 가슴팍에는 섬뜩하리만큼 생생하게 조각된 칼이 꽂혀있었어요. 심지어 그것은 그녀의 등을 뚫고 나와있었습니다. 역시....... 암살자들의 물건인지라 생긴것도 고어하게 생긴 것 같네요.
“누나! 다 살펴보셨어요?”
“어......어! 그래, 다 살펴봤어.”
저는 엉겁결에 주머니에 그것을 집어넣고 그대로 칠성이에게 가려고 했었는데.......
“아야!”
칠성이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엉겁결에 조각상의 칼날에 손이 찔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최대한 표정으로 티를 내려고 하지 않으려 노력을 했었지만.......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비명소리가 새어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를 칠성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누나?”
“아....... 그게 아니라.”
“뭔가에 찔린거 같은데....... 손 한 번 주세요.”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일단 살펴나 볼게요. 손 주세요.”
저는 어떻게든 주지 않으려 했었지만........ 사환아이는 기어코 제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저도 그냥 ‘무언가에 찔렸다.’는 느낌정도만 있었는데 막상 주머니에서 나온 손은 원래 피부색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습니다. 칠성이도 저 만큼이나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었지요. 칠성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제 손을 닦아주었습니다. 캐시, 페터 뻘 되는 아이에게 이렇게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참....... 그 조각품이 뭐라고 저렇게 칼이 날카로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누나? 아니 대체 뭘 만졌길래 손이 이지경이 된 거에.......으응?”
손을 닦아주던 칠성이는 제 손에 들린 팬던트를 발견한 순간 두 눈이 똥그래졌습니다.
“어........이건 말이야.”
“이거 ‘비정한 마음’이네요?”
“응?”
Channel 1. 로키
전철은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플랫폼으로 들어왔고, 나와 도로시는 사람의 면발 속으로 입수했다. 역시나 사람이 뒤엉켜 내뿜는 기분나쁜 열기와 습기가 온몸을 휘감았고, 이런 습식 지옥 속에서 한참을 시름한 끝에 우리는 간신히 커먼브룩으로 나올 수 있었다. 면통의 면발들은 뚜껑이 열리자마자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평소라면 면발의 파도에 몸을 싣고 커먼브룩 역 밖으로 미끄러져 나갔을 테지만, 이번의 경우는 동행자가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계단 근처 기둥에 몸을 기대면서 도로시가 면발들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도록 녀석을 꽉 붙잡았다. 도로시는 인간의 물결에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이를 꽉 물었다. 내 손을 잡은 녀석의 손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
“야. 다갔다. 우리도 가자.”
“어......응 그래. 가자.”
녀석은 완전히 얼이 빠진 듯 했다. 나는 도로시를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인파가 휩쓸고 간 빈 계단을 올라갔고, 마침내 커먼브룩 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와....... 진짜 입에서 허파가 튀어나오는 줄 알았네.”
도로시는 커먼브룩 역에서 나오자마자 헛구역질을 해대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그것이 녀석 특유의 과장된 행동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었지만,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은 내게 ‘섯부른 판단은 하지마라.’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이번만큼은 딴지를 거는 대신, 녀석의 손에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아 고마워.”
“빨아서 돌려줘라.”
하지만 옛 격언이 맞았떤 걸까? 녀석은 ‘고맙다.’라는 말만 하고, 그대로 코를 팽하고 푼 뒤에, 그 손수건을 그 모습그대로 내 손에 쥐어주었다. 손수건에 느껴지는 뜨뜻하면서도 끈적거리는 그 느낌....... 아무리 무감정한 나라고 하더라도, 이번 처사는 좀 심한게 아닐까 싶었다.
“의사가 그러는데, 여자 손에는 물 묻히는 거 아니래.”
“........”
그래, 니가 옳다. 이 말만큼은 내가 언젠가 토씨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돌려주마.
“이제 걸을 수 있겠냐?”
“하아....... 나 더는 못 걷겠어.”
“갈길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벌써 퍼지고 그러냐. 뭐....... 그럼 조금만 쉬었다가.”
“난 몰라. 이제 니가 내 목에 칼을 들이대도 더는 못가. 데리고 가려면 업고 가던가.”
도로시 녀석이 하도 징징대는 통에 나도 모르게 ‘진짜 소원대로 죽여 버릴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그러면 새로운 선요원이란 명제는 그대로 녀석의 목과 함께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내 손을 붙잡았다. 적어도 이번 일까지라도 녀석을 활용해야만 한다. 기억하자.........‘계획을 세울 때는 선요원 5인과 관리관 1인, 히트맨 1인의 7인 체제를 기본으로 한다.’
주먹을 꽉 쥐고 숨을 고르는 중에, 인력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결국....... 인력거꾼에게 선금을 쥐여 주고 녀석과 함께 인력거에 몸을 싣었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다.
Channel 2. 아이리스
“비정한.......마음?”
“........”
칠성이는 아차 싶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지만, 이미 아이의 입 밖에 나온 말은 제 귓속으로 들어가 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 유리세공품의 이름이 ‘비정한 마음’이라고 하나봅니다. 저는 손수건을 걷어 제 손을 살펴보았습니다. 칠성이가 지혈을 잘 해놓은 덕분인지 제 손에는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이제는 어디에서 피가 났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처가 잘 아물었습니다. 역시 이 친구도 ‘암살자’의 일원이긴 한가봅니다. 이렇게 솜씨가 좋다니....... 어쨌거나, 기왕 이렇게 칠성이에게 신세를 진 김에 한 번 더 신세를 져야 할 모양입니다.
“너 분명 비정한 마음이라고 했었지? 그렇지?”
“.......”
“신기하네, 그냥 펜던트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름이 있을 줄이야.......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상품명’같은 거겠구나. 그렇지?”
“....... 말 못해요.”
칠성이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지만, 저는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칠성이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칠성이가 굳이 말로 대답을 하지 않아도 저는 이 아이에게서 제가 얻고자하는걸 충분히 얻을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고 있거든요. 제가 예전에 ‘빈민 구제소’에서 사역을 했었던거 기억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그곳에서 저는 문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쌓이다보면....... 느낌이란게 오기 마련이죠. 이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예를 들어볼까요? 아까 제가 말했던 ‘상품명’이라는 말에, 칠성이의 입꼬리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의표를 찔렸을 때’ 나타나곤 하지요. 이러한 제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건, 칠성이가 제 지적에 ‘말 못한다.’라고 입을 열었던 것도 한 몫을 한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속마음이 들켰을 때, 그 반동으로 그것을 부정하려고 들거든요. 그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정확히 짚었다는 거지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이 특이한 모양의 팬던트가 생각보다 많이 생산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
“그런데, 네가 이것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입을 다무는걸 보면....... 나 같은 외부인에게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거나....... 알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겠고........ 맞지?”
“........”
사환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아니라, ‘눈을 질끈 감았다.’라는 것이겠죠. 그리고 거기에서 저는 충분한 대답을 얻은 셈입니다.
“고마워, 내가 그냥 별거 아닌걸 주운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네 덕분에 내가 중요한걸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제 이걸 가지고 가서 아주머니에게........”
“안돼요.”
“응.......?”
“절대 안돼요. 그건 보여줘서도 안돼고,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도 안돼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요.”
마침내 침묵을 깬 칠성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섬짓 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