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53

갑과을 작성일 17.10.25 06: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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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물주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특실칸에 들어갔다. 

 

“와......장난 아닌데요? 로키군.”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너무 티는 내지 말자. 촌스러워 보이잖아.”

 

답답이에게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솔직히 나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특실칸은 말 그대로 별세계였거든, 일반석칸과의 차이점을 대자면 두 손 두 발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헤아리기가 어렵겠지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특징을 꼽자면, 좌석의 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실의 경우에는 정해진 공간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좌석이 촘촘하게 오와 열을 맞춰 배치해 놓았다면, 특실은 좌석과 좌석 사이에 넓은 간격을 두고 자리가 듬성듬성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좌석에는 좌석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최대화하기 위한 각종 부수기재들이 구비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과장을 좀 보탠다면, 좌석이 하나의 방과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가지고 오신 짐을 건네받아도 되겠습니까?”

“아 네 뭐...... 감사합니다.”

 

특실 문을 열자, 정복을 갖춰입은 종업원들이 우리 셋에게 허리를 숙이는 인사를 해가면서 우리의 손에 들린 짐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세상에, 이들은 자신들이 건네받은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고나 저렇게 챙기는 걸까? 뭐...... 함부로 건드리면 위험해지는 물건이니 저렇게 조심스럽게 챙기는 건 ‘공리주의적’으로 볼 때는 이치에 맞겠다만...... 만약 내가 짓궂은 마음으로 그들에게 이 물건의 정체를 일러준다면, 그들은 아마 기겁을 하며 손가락 끝도 가져다 대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어때, 마음에 드셔유?”

“네, 생전 이런자리에는 처음 앉아보는걸요. 저는 그동안 열차에 이런 칸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뭐...... 나도 비슷해. 덕분에 돈이 깡패라는 걸 잘 알게 됐군.”

 

우리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물주는 흐뭇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물주를 따라 우리도 자리에 앉았는데, 세상에 이렇게 쿠션이 좋은 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어찌나 푹신한지, 내 온몸이 쿠션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더군. 나는 혹시나 싶어서 내 옆자리의 답답이를 슬쩍 살펴봤다. 녀석의 경우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그녀는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쿠션의 폭신한 감촉에 빠져들고 있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우리는 이미 다 했어요.”

“에이, 어차피 다 꽁짠께 그냥 별미를 맛본다고 생각하시구 조금만 드셔유. 이보 종업원 양반, 여기에 코스 요리로 한번 부탁드릴게유.”

“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이 우리의 식사를 내오기 위해 자리를 떠난 동안, 물주는 급하게 손바닥을 비볐다. 그녀의 입가가 하얗게 일어난걸 보니,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꽤나 안달이 나 있는 것 같아보였다.

 

“이렇게 만난 것두 인연인데, 우리 통성명이나 할까유? 제 이름은 주설이어유. 라스알하게식 이름이라 헷갈리실거 같으니 쪼깐만 자세허게 설명을 갔다가 해보자면, 성이 ‘주’이고 이름이 ‘설’이어유. 설이라고 부르셔두 되유.”

“제 이름은 아이리스이고요. 여기 제 일행은 로키라고 합니다.”

“반갑다.”

“그러고 보니까네, 로키씨는 주먹깨나 쓰고 다니셨는가 보대유? 지는 그런 명장면은 난생 처음으로다가 봤슈. 사람들을 갔다가 종이상자마냥 휙휙 집어 내뿌리던디. 아무리 심이 좋아도 사람인디 어떻게 그런걸 다 해낸댜 했다니께유?”

“아니 뭐, 범인의 대답이라고 한다면 노력의 힘이라고 해야겠지만, 난 죄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타고 난 거지.”

 

하아...... 프로하기온에서 아재들 판에 섞여있다 보니, 이런 아재식 유머코드가 몸에 배어버린 모양이다. 재채기하듯이 튀어나온 말에 답답이는 쿡 하고 실소를 흘렸다가, 이내 ‘이 무슨 족보도 없는 드립을 치냐?’라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니 뭐 사람들은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유머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지 않나? 내가 보고 배운 건 그런 것 뿐이라고.

 

“이해하긴 쪼깐 심이 들지마는 그래도 나름 유머감각이 있으니께 덕분에 일곱 시간 외롭지는 않게 갈거 같구먼유. 근데 라스알하게로는 워쩐 일로......?”

“심부름이에요. 저희 아버님이 지인에게 물건을 맡겨두셨는데, 그걸 찾아오라고 시키셨거든요.”

“아이고, 택배 놔두구 뭣허러 그렇게 발품을 파는거여유. 요즘 같은 17세기에는 주문만 하믄 택배기사들이 핑 갔다가 물건 가져다 줄 것인디.”

“파손이 쉽게 되는 물건이라. 그냥 우리가 직접 가지고 오는게 더 낫다고 하시더라고.”

“아아, 허기는 택배회사가 물건 파손문제로 고객들이 아조 지랄을 해싸갔고 꽤나 골치를 썩이긴 헌다고 허드라구유......”

“그런데 주설씨는 물건은 어째요? 마피아들이 죄다 들어내 버려서 괜찮을까 걱정이네요.”

 

답답이의 질문에 주설은 고개를 저으며 ‘이럴 줄 알고 프로하기온 오기 전에 보험 들어놔서 괜잔어유. 거게 청구해놓으면 아마 갸덜이 싹다 쌔걸로 갈아 놓을거라.’라고 대답했다. 그녀와 한참 이야길 이어나가는 동안 승무원이 식사를 가지고 왔다. 분명 주문을 받은 건 한 명이었는데, 식사를 가지고 온 이는 셋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각각 양은으로 된 접시가 들려있었고...... 그걸 본 답답이도 나도,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맛도 없는 길거리 음식 드시느라 입맛이 많이 퍽퍽하셨쥬? 이제 요걸로 목에 땟국물 시원하게 벗기면 되유.”

 

 

 

 

 

 

 

Channel 2. 아이리스

 

프로하기온 역전에서는 워낙 상황이 급박했던 지라, 라흐마준을 제대로 음미할 기회가 없어서 약간 배가 헛헛했었는데, 지금 저희 눈앞에 놓여진 진수성찬을 보노라니...... 그때 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건 ‘아버님’께서 제게 더 귀한 음식을 예비해 놓았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음식이 따뜻한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었고, 김 속에 숨어있던 고소한 향기가 코 끝에 간지럼을 태웠습니다. 세상에 이런 음식이 존재했고, ‘지금 여기’에 놓여져 있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로키군도 어서 먹어요.”

“아냐......난...... 이미 먹을 만큼 먹어서.”

 

반면 이미 라흐마준으로 배를 채운 로키군은 억울하다는 얼굴이었지요. 그 모습을 보노라니 고소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대놓고 놀리는건 그에게 너무한 처사이니까...... 그의 눈앞에 대고 최대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네요. 하하.

 

저는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바삭하게 튀겨진 닭 요리를 잘라냈습니다. 오오, 갈라진 튀김옷 사이로 이 하얀김이 쏟아져 나오는거 봐봐요. 그리고 튀김 옷 안에 잠자고 있던 하얀 닭다리 살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건 또 어쩌구요. 저는 침을 삼키는 로키군을 위해 한입 가득 베어 물었습니다. 그러자 바삭한 튀김옷과, 부드러운 살코기가 제 입안에서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부스러져갔습니다.

 

“야...... 싸울래?”

“에이,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요?”

 

티격태격하는 저희 둘을 주설씨는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두 분, 참 잘 어울리는 거 같어유. 에휴, 지는 언제 이런 짝을 만나 꽁냥꽁냥 해보나.”

“이게 꽁냥꽁냥 해보이는 걸로 보여?”

 

로키군은 제 포크에 꽂혀있던 닭을 냉큼 뺏어먹고는 주설씨에게 ‘근데 프로하기온에는 무슨 일로 온거야?’라고 물었습니다. 꽤나 자연스럽게 제 시선을 피했지만,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의 허벅지를 꼬집는건 피할 수가 없었지요. 꽤나 아프게 꼬집었음에도, 그는 얼굴에 전혀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연기력의 소유자인 것 같아요.

 

주설씨는 스프를 마신 뒤에 로키군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제가 식사를 하느라 흘려들은 게 많아 정확하진 않지만, 주설씨는 라스알하게에서 ‘상회’를 운영하는 사람이었어요. 처음에는...... ‘보부상’이라는 라스알하게 특유의 방문 판매상이라는 걸 했었는데, 거기서 쌓은 이익과, 인맥을 바탕으로 라스알하게의 주도인 ‘라스알하르게타’에 상점을 열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주장이지만) 젊고 미모를 갖춘 여사장이 운영하는 상점이 꽤나 ‘라스알하르게타’시장 바닥에 입소문을 타면서 더 큰 수익을 냈다고 해요.

 

“돈은 확실히 바닷물허고 닮은 젊이 많드만유.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안씻기는 바닷물처럼, 돈도 벌면 벌수록 더 욕심이 났쥬. 그런디, 그리고 마침내 요 바닥은 꽤나 좁아서 결국은 버는디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쥬.”

“그래서, 라스알하게를 넘어서 프로하기온으로 진출을 하는거였다?”

“기쥬. 근디 지가 세상물정을 잘 몰랐어유. 지야 뭐 라스알하게나 프로하기온이나 돈 버는 거야 매일 반이라고 생각혔는디, 여그는 돈 벌라믄 깡패새끼들한테도 배춧잎을 갖다 바쳐야 하드만유. 뭐...... 그거야 변명이구, 솔직히 야그를 하자믄 지가 많이 게으른 거였쥬. 그냥 쪼깐한 동네에서 성공한걸루 갔다가 다른 동네에서두 먹힐 거라고 생각헌거니께......”

“그래도 이번에 큰 교훈 얻었으니, 다음번에 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잉. 그라쥬. 이번에 라스알하게로 돌아가서 보험업체에다가 보상 받구, 물건들 다시 띠어다가 프로하기온으로 다시 돌아가믄 같은 실수는 반복 안해야쥬.”

“이러다 나중에 주설씨네 상회가 엄청 커지는 거 아니에요?”

“그러믄 좋쥬. 아부지가 그랬슈. 꿈은 천년을 살 것처럼 맹글어놓구, 하루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이다 라고 생각하구 살라구. 기왕 밖으로 나오는거, 프로하기온도 평정하구, 라스알게티까지 먹어봐야쥬.”

 

자신의 꿈을 당차게 이야기하는 주설씨를 보니, 그녀 주위로 빛이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제 나이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운운하는 배포가 있잖아요. 그런 그녀를 보노라니 ‘로키군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온 제 자신이 조금은 작게 느껴졌습니다. 아니 뭐 그런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제 인생궤적에 후회를 하거나, 주설씨에게 열등감을 느끼는건 아니에요. 다시 살아 돌아오신 원장수녀님을 만나고 나선 제 삶에 있던 마지막 오점이 다 씻겨진 걸요. 그리고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가 하늘을 노니는 새를 부러워한다고 물 밖으로 나올 수는 없는 것처럼, 그녀의 길과 제 길은 명백히 다른 길이라 제 자신을 미워할 건 없지만...... 동경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자기 변명을 해봅니다.

 

“아이고, 남사시럽게 왜 그리 쳐다본대유? 쩌기, 종업원 양반 미안한데 화토 한 벌 가지고 와주실수 있어유?”

 

제가 이런 동경의 눈으로 쳐다보니, 주설씨는 그 시선이 퍽 불편해 졌는지, 승무원을 불러 무언가를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승무원은 주설씨의 부탁에 얼른 비품창고로 가서 붉은 색 카드 한 벌을 가지고 돌아오더군요.

 

“앞으로 갈라면 꽤나 시간 걸릴거 같은디, 지랑 라스알하게식 카드놀이나 해볼래유? 대륙꺼랑은 조금 달라가지고 처음에는 헷갈려두, 이게 더 간단혀유.”

 

 

 

 

 

 

 

Channel 1. 로키

 

주설이 하자고 제안한 ‘섯다’는 라스알하게 고유의 카드놀이였다. 52장의 카드를 가지고 하는 트럼프놀이와 달리, 라스알하게의 카드놀이는 48장의 카드를 가지고 운영을 했다. ‘섯다’는 그중에서도 20장을 따로 엄선해서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구 이거 워째유? 은혜 갚을라구 특실칸으로 탔는디, 이러다가는 제돈 내고 특실 열차를 이용하시것어유.”

 

홈 어드벤티지 덕분에, 주설은 우리의 돈을 거진 쓸어모았다. 뭐, 꽤나 보잘 것 없는 자기변명이겠지만, 우리가 잃은 돈의 80%는 답답이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녀석이 알려준 패와 족보를 숙지해 가면서, 내게 가망성이 없는 패가 나오면 족족 죽는 것을 택했지만, 답답이는 되도 않은 객기를 부려댔기 때문이다. 초심자의 운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그녀의 전략이 먹혀들 때가 있었지만, 주설은 이내 답답이의 전략을 알아차리고 오히려 역공을 가함으로써, 답답이의 돈을 쪽쪽 빨아먹었다. 그럴 때 마다 답답이는

 

“어휴, 이거 사기도박 아니에요? 왜 저만 이런 개똥패가 오는 건지 모르겠네.”

“에이, 끝까지 믿어유. 장사꾼이 신용 없으면 뭘로 갔다가 입에 풀칠을 하겠어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탄식을 쏟아내곤 했다. 하지만,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주설에게 있어서 답답이의 하소연은, 그저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팡파르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로키씨는 너무 심심하게 가는거 아니어유? 이렇게 매 판마다 픽픽 쓰러지면 가랑비에 옷이 젖어유.”

“뭐, 내 돈으로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니, 지나친 간섭은 하지 말자고 서로.”

 

말은 그럴 듯 하게 맞받아쳤지만, 그녀의 말은 사실이어서, 나도 시나브로 돈을 꽤 잃은 건 분명했다. 솔직히 겉으로 동의는 하지 않았지만, 답답이가 제기한 ‘사기도박 설’은 나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

 

“승객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이 열차는 10분 뒤에 라스알하게 역으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 역은 이번 열차의 종점입니다. 모든 승객 분들은 잊어버린 물건이 없으신지 확인을 하시고, 안전하게 열차에서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라? 벌써 다 왔네유? 그럼 열차 도착하기 전에 막판 깔끔하게 하고 끝낼까유?”

“아니 됐어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지. 이미 특실칸 사는데 들이는 비용은 모두 회수한거 아닌가?”

 

내 말에, 답답이와 주설은 아쉽다는 얼굴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번에는 양보할 수가 없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여행을 하는 마당에, 무작정 돈을 허투루 쓸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인간에게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날개로 하늘을 날아오른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이성의 왼손으로 오른손을 강하게 후려쳐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로키군...... 그래도 잃은 돈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딱 한판만! 딱 한판만 더해요.”

“너도 작작해. 다음 판이면 돈을 딸 거 같아? 100 파운드 잃을 거, 50파운드 더 잃지 말고 이젠 정신 차리라고.”

“......알았어요.”

 

내 일갈에 답답이는 시무룩해졌지만, 그 모습을 주설은 싱글싱글 웃으며 지켜보았다.

 

“아이리스씨는 좋은 여행의 동반자를 뒀네유. 그리고 이거 받으셔유.”

 

주설은 자신이 그동안 딴 돈을 모두 내밀었다. 우리는 그녀의 돌발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에요.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본거고, 그 결과로 딴 돈이잖아요. 이건 주설씨가 모두 가져가도 우린 할 말이 없다구요.”

“아녀유. 어차피 일곱시간이나 가려니 길이 막막혀서 시간이라도 때울라고 도박을 한거였구. 지두 사람인디 은인의 돈을 내기라는 이유로 뜯어갈 정도로 파렴치한은 아녀유. 덕분에 많이 즐거웠어유.”

“그래도......”

“고맙다. 잘 쓰도록 하지.”

 

답답이가 더 거절하면 주설이 그 돈을 도로 가져갈까봐, 나는 답답이의 말을 가로채며 돈을 받았다. 그리고 돈을 세어 내가 잃은 돈을 가져가고 남은 돈은 답답이에게 건네주었다. 답답이는 한사코 받으려고 들지 않았다.

 

“로키라고 하셨쥬? 로키씨도 좋은 동반자를 뒀네유. 무슨 이유에선진 모르겠지만 로키씨는 남들이 보면 꽤나 딱딱한 사람이라구 오해하기 딱 좋은텐디, 그걸 아이리스씨가 잘 커버 쳐주는구만유.”

“뭐...... 이게 커버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애가 워낙 맹탕이라. 남에게 통수 맞기 딱 이야. 난 여행의 동반자로선 그 꼴은 못 보겠어.”

“그렇게 말하니, 맘 씀씀이는 제법 따뜻하네유?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여행을 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두,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하시면 다치지 않고 잘 끝날거 같어유.”

“주설씨도 사업 잘 추스르시고, 프로하기온에서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아, 그러고보니, 라스알하게에서 며칠 체류하신다고 하셨쥬? 라스알하게야 워낙에 인심이 푸근하니께 별 일은 없겠지마는, 그래도 더욱 더 안전한 여행을 하려면 딱 하나만 명심하시면 되유.”

“그게 뭔데요?”

 

주설은 말을 하기에 앞서서, 조금은 긴장한 듯, 심호흡을 했다.

 

“라스알하게 역에 내리면서 부터는, 지랑 절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는게 좋을 거에유.”

 

 

 

 

 

 

 

Channel 2. 아이리스

 

“라스알하게 역에 내리면서 부터는, 지랑 절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는게 좋을거에유.”

“......네?”

“역 다 왔네유. 그럼 즐거운 여행 되셔유.”

 

주설씨는 의아해하는 저와 로키군을 남겨두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로키군을 바라보았어요. 로키군도 저와는 크게 다르지 않아서,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지요. 저는 자세한 말을 듣고싶어, 주설씨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주설씨는 자신의 짐을 챙겨 특실칸을 떠난 뒤였지요.

 

기차는 더운 김을 쏟아내며 플랫폼에 완전히 멈춰 섰고, 문이 열리자, 라스알하게 특유의 풀냄새가 나는 서늘한 공기가 저희를 맞이해 주었어요. 저희는 짐을 챙겨 플랫폼에서 내렸지만, 주설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알은체를 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글쎄다. 뭔가 곡절이 있겠지.”

 

라스알하게 지방의 중심 되는 역이라서 그런지, 역사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어요, 그리고 그 행색은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했지요. 자신보다 몇 배는 더 되보이는 엄청난 짐 꾸러미를 머리위로 짊어진 아낙도 있는가 하면, 프로하기온에서 가지고 왔는지 카펫 무더기를 내리는 사람들도 보였지요. 저기 삼등칸에서는 라스알게티로 유학을 다녀왔는지, 이스트민스터 중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청년이 내리고 있네요. 이렇게 꾸역꾸역 쏟아지는 인간군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로키군과 헤어질 새라, 저는 그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나가는 곳은...... 저쪽인가보다.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

“네. 알았어요.”

 

사람의 파도에 휩쓸리면서, 아까 보았던 플랫폼의 풍경은 삽시간에 인파너머로 사라져버렸어요. 이제 저희는 엄청나게 많은 다리를 가진 노래기가 되어, 천천이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게 사치스러운 생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낑겨가는게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내쉬는 숨결엔 고약한 냄새가 났고, 그들의 내뿜는 열기는 라스알하게 역사에서 만난 서늘한 공기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지요. 더욱 곤란한건, 그 속에서 손에서 땀이 흘러내려 몇 번이고 로키군을 놓칠 뻔 했다는 거에요. 다행이 그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깍지를 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고행과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저희는 마침내 역사에 나와 마음 편히 숨을 크게 들이쉴 수가 있었습니다.

 

“혼잡한 걸로 치면, 라스알게티 역 못지않은데?”

“그러게요. 저 아까 계단 올라오면서 오른쪽으로 꺾을 때 로키군하고 떨어질 뻔한 거 알아요?”

“그래, 덩치 큰 사람이 갑자기 우악스럽게 들이닥치는 바람에 나도 깜짝 놀랐어.”

“우리 둘 다 하마터면 이역만리 타국에서 미아가 될 뻔 했다구요.”

 

이렇게 투정 섞인 말을 로키군에게 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뒤편에서는 한차례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역전에서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어디론가로 와 하고 몰려가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한 건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사람들 여럿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가로막더란 말입니다. 가려는이와 막으려는 이들 사이에 벌어진 난장판에 저희는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야 이 씨펄련아! 니가 여가 어디라구 기어 들어오는 거셔!”

“웜마 웜마 웜마, 저년 고개 빳빳이 쳐들고 있는거 보소. 낯짝에 철판이라도 깔았는 가벼?”

“야! 이 벼락 맞아 디질 년아! 얼른 꺼져!”

 

검은 정장에 가로막힌 사람들은 분기가 탱천했는지,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는 위협적인 언사를 쏟아냈습니다. 대체 누가 저들을 그토록 분노에 휩싸이게 만든 것일까요? 저와 로키군은 호기심에 그쪽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쪽을 향해 구름처럼 몰려들었거든요. 저희는 이대로 있다가는 사람들에게 휩쓸려 역사 안에서의 고통을 다시한번 느낄 거라는 불안한 확신에, 서둘러 자리를 피했습니다.

 

“대체 누가 왔길래 저 난리인지 모르겠네요.”

“한번 확인해 보지 뭐. 저기 단상 위에 올라가서 살펴 볼 테니까. 여기서 절대로 떨어지지 마라.”

 

로키군은 단상 위로 기어 올라가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너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눈이 점점 찌푸려지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순식간에 눈이 똥그래졌습니다.

 

“뭐야.....? 저거 주설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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