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리겔은 알 샤인을 보자마자 못 볼 것을 본 양 으르렁 댔다, 하긴 그럴 것이, 녀석들이 일 처리를 똑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설이 ‘그들’과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그건...... 단순한 뇌피셜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과실 비율은 실제와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기사단의 수사 결과가 주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자리가 비었죠? 잠깐 앉아도 될까요?”
하지만 알 샤인은 리겔이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는 듯, 우리가 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그의 시선이...... 리겔의 손에 들린 ‘더 빅 스케일즈’에 닿았다.
“가면살인마인가요?”
“어줍잖게 객기 부리덜 말구 얼렁 꺼지는 것이...... 니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맹글......”
“정의(justice)를 정의(definite) 내리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어떤 이들은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 ‘마땅하게 받아야 할 결과’를 받는 것(justice)이라고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진리에 부합하는 올바른 도리(rightness)라고도 이야기 하죠. 전자는 그냥 규칙을 올바르게 세우기만 한다면 그것이 뒤집힐 일이 없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옴맘마? 이 상놈의 새끼가...... 어르신 말씀 허시는디......”
리겔은 녀석의 잘난 얼굴을 부셔버리겠다는 듯, 주먹 쥔 손을 높이 쳐들었다. 하지만 알 샤인은 작정한 듯, 벌떡 일어나 녀석의 손을 꺾어버리곤, 그대로 테이블 위로 내리찍어버렸다.
“컥! 너..... 이 씨빨럼아.”
“제 행동은 정의로운 걸까요? 난 한때 이것에 대해 명확히 대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젠...... 잘 모르겠어요.”
“안.....컥! 놔? 이 씨빨 새......”
“그거 알아요? 정의의 반대가 악이 아니라는 거? 악함의 반대말은 선함이잖아요. 정의와 선함은 그럼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같다면, 애초에 표현이 다를 리가 없잖아요.......그럼 정의의 반대말은 대체 뭘까요?”
“크아악!”
리겔은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캑캑거리다가....... 더는 안 되겠는지 몸부림을 쳐가면서 알 샤인의 손을 홱 하고 뿌리쳤다.
“세간에서 가면살인마를 두고 그러더군요. 기사단이 놓쳐버린 악인을 단죄하는 정의의 사도라고...... 제 눈에는 그저 살인을 즐기는 변태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후아......후우..... 너 이 개새끼가.”
“가면 살인마는...... 나쁜 새끼일까요, 정의의 사도인 걸까요?”
“......”
녀석의 질문에는...... 답답이도 나도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질문의 무게는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여겨온 일들이 부정당하는 것을 직면한다는 건....... 자신이 그동안 쌓아올린 세계의 인식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정의를 입에 담길 즐겨하는 사람들만큼 타인으로 부터 위선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겠죠?”
“그건......”
나는 녀석에게 위로가 될 만한 말을 하려다가 그것을 삼켜야만 했다. 내 말을 받아들이기엔, 녀석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아 보였거든. 그동안 알 샤인의 말에 정신이 팔려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녀석의 어께에 손을 올리려고 하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알 샤인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손과 발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치...... 녀석은 무언가를 각오한 것 같았고, 그것은...... 알 샤인에게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Channel 2. 아이리스
“기생오래비 같이 생겨갔고...... 스타일 좆같네. 시벌”
멀어져가는 알 샤인씨의 등 뒤에 대고 리겔은 감자를 먹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습니다. 저와 로키군은 딱히 그를 두둔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서로를 바라보았죠. 어쩌면 그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아보였죠?”
“너도 그렇게 느꼈냐?”
“예. 그랬어요. 뭔가를...... 결심한 거 같은데. 그로인해서 마음의 번민이 더 심해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뭐 허튼 짓거릴 할 것 같지는 않은 캐릭터지만...... 사람 일에는 ‘절대’라는 건 없으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의자를 박차고 알 샤인씨를 쫓기로 했어요. 그 바람에 신문지가 바닥에 떨어졌고, 리겔의 당황섞인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단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 제일 급하니까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도 우리를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야! 이 년 놈 들아 나 시방 돈이 한......”
“모른 척 해.”
“네.”
결코 우리 수중에 돈이 없어서 그에게 덤태기를 씌우려는 건 절대 아니에요.
알 샤인씨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사람들과 부딪쳤지만 사과 한마디 없이 자기 갈 길 가버리기도 하구, 초점없이 걷다가 가판의 물건을 잔뜩 쏟아버리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당한 부당한 대우에 항의를 하려다가도...... 그가 입은 제복에 눌려 뭐라고 하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뒤에서 궁시렁 거리기는 했죠. 제복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해요. 그동안 우리가 몰라서 그랬지.
비칠비칠 걷던 그의 걸음이 순간 긴장감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건, 뉴 빌리지 경계에 다다라서였어요. 그는 혹시나 자신을 지켜보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 몇 번이나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펴보았어요. 이 부분이 우리 둘이 제일 곤혹스러운 부분이었지요. 마침 길거리의 가판이 있어, 자연스럽게 손님을 가장하며 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들어가는 거 맞죠?”
“응 나도 봤다.”
“저기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일단 길이 좁으니 들킬 우려가 있다. 시차를 두고 들어가자고.”
알 샤인씨가 들어가고서도 우리는 10여 초를 헤아린 뒤에 숨을 죽여 그가 들어간 뒷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길은 제법 구불구불했고, 한번도 햇볕을 쬐지 못한 곳에서 나는 콤콤한 냄새가 우리의 코를 찔러댔습니다. 이제 곧 11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눅눅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어요.
“어디로 갔을까요?”
“이쪽이다.”
그는 벽에 난 긁힌 자국을 보며 그의 뒤를 밟아나갔어요. 한참을 미로속을 달리던 우리는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어......? 안보이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분명 녀석의 흔적이 있을텐데..... 한 번 살펴보자고.”
로키군이 워낙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저는 할 말은 많았지만 입밖으로 꺼내진 않고, 골목에 나뒹구는 잡동사니들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골목만큼 잡동사니들도 습기로 잔뜩 축축해져 있었어요.
“.......이것도 아니고...... 음...... 어? 로키군!”
“왜 그러냐?”
“이거......”
제가 꺼내 든 옷가지를 보자마자 로키군의 눈이 가늘어졌어요.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제가 찾아야 할 물건을 제대로 찾은 거라고 볼 수 있겠죠? 제가 찾은 건, 망토조각이었습니다. 그가 걸치고 있던 것과 같은 색상과 같은 재질이었죠.
“이게 왜 여기에......”
“끄아악!”
난데없이 들려온 비명소리에, 우리는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Channel 1. 로키
비명소리를 들어버린 이상, 더는 지체할 여유따윈 없었다. 나는 답답이에게 양해를 구할 새도 없이 그녀를 내 어께에 들쳐매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렸다. 답답이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왁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발버둥을 치지는 않았다.
쓰레기통을 발판삼아 담을 넘었고, 사다리를 타며 지붕위에 올라가니, 거미줄 같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와 답답이는 두 눈을 치켜뜨며 소리가 들렸을 법 한 장소를 살펴보았다.
“저기에요!”
답답이가 가리킨 곳에 두 사람이 보였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바닥에 주저앉히고서 곤죽을 만든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대기하고 있어! 바로 치고 들어간다.”
“그럼 저는...... 알았어요! 얼른 가요!”
나는 답답이를 내려놓고 두 사람을 향해 날듯이 내달렸다. 내 등 뒤에서 답답이는 침착하게 기도문을 읊어나갔다.
알 샤인으로 보이는 이는 피범벅이 된 채로 자신의 발아래에 엎드려 있는 이의 손을 자근자근 짓이겼다. 그 사연이 어쨌건 간에, 방금 전만 해도 우리에게 어줍잖은 정의론을 운운하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이제부터 너에게 천벌을 내리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으으...... 살려줘......”
“그래 딱 들어만 줄게. 그럼 이제 그만......”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들려있던 칼을 뽑아들었다. 이런 제기랄, 지금부터 앞뒤 생각 안하고 뛰어내린다고 하더라도 저 녀석의 칼을 막아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알기에바의 촉수가 난간을 잡고 나를 아래로 내리꽂아버리더라도 말이다.
“뭐라도 해봐!”
“알았어요. 어디보자, 내가 죽음이 드리운 음침한 골짜기를......”
알 샤인의 칼날이 녀석의 대가리를 쪼개려는 찰나에
“깡!”
시기적절하게 완성된 답답이의 장벽이 녀석의 칼을 막아냈다. 녀석의 검이 금속음을 내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녀석도, 그리고 희생자도 눈앞의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둘 다 당황해 했다. 그래, 딱 그 정도의 시간만 벌어줘도 충분하다.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알기에바의 도움으로 탄력을 받아, 힘이 잔뜩 실릴 대로 실려있는 내 무릎이 그대로 알 샤인의 뒤통수에 내리 꽂혔다. 무릎 너머로 호두껍질이 바스라지는 소리와 함께, 내 무릎에 뼈가 쪼개지는 듯 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우와 이 씨! 이거 참 더럽게 아픈데! 다음부턴 아무리 급해도 이런 시도는 하지 말아야겠구먼!”
Channel 2. 아이리스
“내가 죽음이 드리운 골짜기에서 길을 잃고 헤멜지라도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버님께서 나와 함께 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문을 외울 시간은 지극히 짧았지만, 혀를 씹어가며 기도문을 외운 보람이 있었는지, 희생자의 머리가 잘려나가기 직전에 장벽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알 샤인씨의 칼날이 장벽에 가로막혀 튕겨져 나가는 사이에, 로키군의 무릎이 알 샤인씨의 뒤통수에 그대로 꽂혔지요.
그래도 한 때 가면살인마라는 악명을 떨쳤던 사람답다고나 할까요? 로키군의 무릎이 정통으로 꽂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알 샤인씨는 넘어지는 와중에도 로키군을 향해 칼을 휘둘렀어요. 썩어도 준치란 걸까요? 로키군은 선제공격을 했음에도 알기에바의 촉수 몇 개를 희생시키고서야 간신히 그것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긴 했는데...... 그런 거지같은 디자인의 출처는 대체 어디냐?”
짐짓 여유로운 척 하며 로키군이 그에게 도발적인 말을 걸어왔지만, 알 샤인씨의 대답은 엉뚱했어요.
“이 녀석을 알고 있나 보군.”
가면에 무슨 장치라도 되어있는지, 가면 너머에선 낯선 소리가 들려왔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 쉰소리가 난다? 아니.... 그거랑은 좀 뉘앙스가 달라요. 음 그래요. 쇠뭉치가 시멘트 바닥에 긁히는 소리라고 해야겠어요. 모습은 알 샤인씨 그대로였지만, 목소리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것과 같았습니다.
“알다마다, 입만 열면 정의 정의 하는 고리타분한 젊은 꼰대를 잊어버리는 게 쉬운 일인지 알아?”
로키군은 알 샤인씨의 시선을 끌면서 제게 슬쩍 눈짓을 해보였습니다. 저는 로키군의 지시에 따라, 희생자에게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희생자는 잔뜩 겁에 질려있던 터라, 그를 빼내는데 꽤나 애를 먹어야만 했지만, 결국 그를 알 샤인씨의 시선 너머로 옮길 수 있었어요.
“조용히 도망쳐요.”
완전히 겁에 질린 그는 저를 멀뚱멀뚱 쳐다봤지만, 몇 차례 채근하자 간신히 제 말을 알아듣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알 샤인씨는 로키군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린 탓인지 그가 도망을 치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요.
“도시를 공포에 떨게 만든 연쇄 살인마의 정체가 기사단 내근직이라니. 내일 아침 신문은 꼭 챙겨봐야겠어.”
“누가 들으면 내일 아침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Channel 1. 로키
이쪽 업계에서 가면이나 복면이라는 단어는 통상적으로 양날의 칼이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선 이로울 수 있을지 몰라도, 시야가 제한되다보니, 행동에 제약으로 작용하거든. 내가 녀석을 도발했던 것도, 후자를 노리고 했던 것이 컸다. 녀석이 이성을 잃을수록, 시야의 제한이 더 크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나의 시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면......
“우왁!”
애석하게도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 것 같다. 녀석은 내 도발에 넘어가 다소 과한 동작을 선보이긴 했지만...... 그것의 날카로움은 전혀 무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날카로운 공격이 잇달아서 내게 날아 들어왔다.
“이봐, 이런 것도 간신히 피할 정도로 내일 아침 해를 보겠다고 장담 한 거야?”
“내 혓바닥은 가끔 협의되지 않은 말을 하는 경향이 있거든.”
“그럼 이번 것도 그런 건가?”
“아닌데?”
“이게!”
녀석은 분기탱천해 다시 한 번 일격을 날렸다. 그래, 다소 박자가 빠를 뿐, 못 피할 건 아니다. 완전 흥분해서 어께의 움직임을 여보란 듯 내놓고 공격을 하는데, 그걸 좀 더 빨리 읽어내면 되니까. 다만 문젯거리가 있다면 다름 아닌 체력인데...... 이 기생 오래비 같은 녀석은 의외로 강단이 있어서인지, 붕붕거리는 공격을 연달아 하고도,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음...... 그래도 저것이 사람이라면 언젠간 지치긴 하겠지? 지금으로선 녀석이 성공적으로 체력을 고갈시켜버릴 수 있도록 약간의 첨가물을 뿌리는 게 최선이다.
나는 다소 과장된 동작을 섞어가며 녀석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보였다. 나름 회심의 일격을 가할 때는 일부러 더 느리게 피하면서, 녀석의 칼날이 살짝 내 뺨을 긁어가도록 했다. 내 피부가 한 꺼풀 벗겨지면서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야, 이거 진짜 잘하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하악!”
됐다! 드디어 저 기생 오래비에게서 헐떡이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군. 이제야 이 지겨운 대치를 끝낼 실마리가 보이는 구먼. 앞으로 두 번 더 녀석의 입에서 헐떡거리는 소리가 나오게 된다면 바로 공세로 전환할 것이다. 녀석은 나를 몰아세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거기에서부터 내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셈이다. 녀석이 비틀거릴 때 갑작스럽게 공수가 전환 된다면, 녀석은 체력의 고갈과 당황스러운 심사, 그리고 내 공격까지 3:1의 싸움을 강제당할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어째 공격이 좀 무뎌졌다?”
“......”
“뭐야? 더 안 해?”
지진에 건물이 무너지듯 녀석의 체력이 한순간에 바닥을 드러냈는지, 녀석은 칼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바닥에 내팽개쳤다. 녀석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짜증나. 너 같이 입만 산 떠벌이 타입이 제일 싫어.”
“짜증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군. 그만큼 나라는 사람에 온 신경을 할애 한다는 거잖아?”
“그냥 이것 저것 재지 말고 둘 다 전력으로 완타치 한 판 하지? 그편이 깔끔하잖아?”
“내가? 너하고? 왜?”
“으으......”
방금의 말이 넘칠 랑 말랑 하는 컵 위로 떨어지는 마지막 물방울이 되어, 녀석의 이성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으아아아!”
알 샤인은 고함을 지르며 왼쪽 어께를 내리고 오른쪽 팔꿈치를 들어올렸다. 아하, 견적 보아하니 가로로 베어버릴 참인 모양이군. 녀석이 스스로 힘을 북돋을 양, 고함을 지르긴 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이제까지와 다를 바는 없다. 녀석은 내게 자신의 수를 들켰고, 나는 다시 한 번 여유롭게 녀석의 공격을 흘리면 그 뿐이다.
참격이 날아들어왔고, 나는 다시 한 번 극적인 효과를 주기위해 허리를 반대로 굽혀 칼을 피했다. 검신은 내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며 허공을 갈랐다. 이제 계획한 대로 공세로 전환하기만 하면 되는 건......
“촤악!”
분명 녀석의 칼은 허공을 갈랐다. 하늘과 땅이 뒤집힌 풍경에서 답답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고, 한손으론 입을 가리고, 나머지 손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녀석의 손이 작은 것인지, 아니면 녀석의 입이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나 크게 벌어진 것인지, 손은 입을 채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은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거지? 답답이 녀석이 내게 뭐라고 말을 하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 안돼! 로키군!”
뭐가 안 된다는 거지.....? 그럴 린 없겠지만 내가 뭐 녀석에게 당하기라도 한 걸까? 에이 말이 안 되잖아, 아까 녀석의 도신에 내 얼굴이 비쳐 보이기까지 했는 걸? 상식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내가 당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안 되는 게 분명한데
“끄아아아아악!”
몸이 쪼개지는 고통이 내게 엄습해왔다.
Channel 2. 아이리스
분명 로키군은 알 샤인씨의 공격을 피했습니다. 저도 그걸 봤어요. 하지만...... 이 싸움에 온 몸을 던져온 로키군도, 그리고 그 모든 걸 두 눈 똑바로 뜨고 객관적으로 똑똑히 지켜본 저도 놓치고 있었던 게 있었어요.
알 샤인씨의 검은...... 보이는게 다가 아니었다는거에요. 분명 보이는 것만 놓고 본다면 알 샤인씨의 검은 하나의 도신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도신의 뒤에는...... 보이지 않지만 제 2의 도신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어요.
제가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알 샤인씨의 일격을 로키군이 다소 과장된 동작으로 피해내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하더라도 저 역시 로키군이 여유롭게 피해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직후에 알 샤인씨의 칼이 일렁였어요. 그리고...... 갑자기 빈 공간에서 제 2의 검신이 훅 하고 나타났어요.
“아..... 안돼! 로키군!”
아주...... 미숙했어요. 그때 저는 외마디 탄식을 지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었다면, 혀가 곤죽이 되더라도 기도문 한줄이라도 더 읊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고 결국......
“끄아아아악!”
알 샤인씨의 칼이 로키군의 허리에 깊숙이 파고들어갔습니다. 로키군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어요. 저는 로키군을 향해 달려갔어요. 로키군은 허리를 잡으며 신음을 했고, 그런 그를 향해 알 샤인씨는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치명상은 피하네...... 여러모로 짜증나는 놈이야......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구먼.”
“크으윽......”
“이제부터 네놈에게 천벌을 내리겠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먹어.”
“뭐?”
“엿이나 처먹으라고.”
알 샤인씨의 칼이 로키군의 머리를 가르기 직전에, 저는 그의 앞에 파고들어가 손을 펼쳤습니다. 다행이 미리 기도문을 읊으면서 달린 덕분에 그의 칼이 제 머리를 내리치기 직전에 장벽이 완성되었습니다.
“아 뭐야! 아까부터 짜증나게 하던게 바로 너였냐?”
“큭......! 알 샤인씨......”
“그 이름으로 이 몸을 부르는 게 하나 더 있었네? 얌전한 서생 행세나 하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이놈 이거 할 건 다 하고 다니나봐?”
알 샤인씨는 장벽을 부셔버릴 양 칼을 마구잡이로 내리쳤어요. 장벽이 견고한 덕분에 외상이 생기진 않았지만...... 장벽이 맞는 데미지는 온전히 저의 몫이었습니다. 속이 쿡쿡 쑤시고 뒤집힐 듯 울렁거렸어요. 그가 몇 번 더 내리치자 제 무릎이 푹하고 꺾였어요. 이대로 가다간...... 장벽이 더는 견디지 못할게 분명했어요. 저는 로키군에게로 엉금엉금 기어갔습니다. 로키군의 배에서는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요
“괜찮아요?”
“살아남는다면 안경집부터 들르자.”
“조금만 기다려요. 아버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제 손에서는 초록빛 오오라가 피어올랐고, 그것은 로키군의 상처에 엉겨 붙었습니다. 그의 배가 아물어갔습니다. 저는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아직 벌어져있는 틈 사이로 그의 내장을 우겨넣었어요.
“하 이거 짜증나네! 꺼져! 꺼져! 꺼지라고!”
“그분은 나를 쉴만한 물가로.....커흡!”
더는 견디기 힘들었는지, 역한 구역질이 나면서 피가 제 입에서 왈칵 쏟아졌습니다. 으아...... 아파도 너무 아파요. 기생벌의 애벌레가 제 생살을 파먹는 것 같이 통증은 애벌레마냥 제 온 내장을 뒤집어 놓았어요. 그냥 이대로 모든걸 포기할까하는 생각이 초당 수백 번이나 떠올랐지만, 고통에 질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무릎을 꿇는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테니까요.
“꺼져!”
“내.....영혼.....을 소생시키고.....아버님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이제 그만해도 돼. 다 나았다.”
“인도하시도다.”
로키군에게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린 뒤에, 저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입에서는 선지인지 뭔지 구분도 안될 덩어리들이 입안에 가득했거든요. 이게 뭔지 차마 알 도리가 없어 뱉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제가 세운 장벽은 완전히 무너지고, 알 샤인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잡 기술로 사람 짜증나게 하네......”
“고생했다. 이제 그만 쉬어라.”
“로키군..... 알 샤인씨의 검......”
“알아.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거. 이제 더는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숨 잘 고르고 있어.”
“네......”
로키군은 알기에바를 전개했어요. 그의 어께로 알기에바의 촉수들이 하늘하늘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이상한 컨셉을 주워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두들겨 패다보면 알아서 술술 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