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스포약간] 이스 오리진

f_king 작성일 07.09.08 03:32:41
댓글 4조회 1,592추천 13

1. 또 게을러서 스샷이 없다. 남이 찍은 스샷은 안 올린다.

영 스샷이 땡기는 횽아는 http://www.falcom.co.jp/yso/gallery.html 여기로 가라.

미안하다.

2. 내가 적은 것 중에 사실이 아닌 건 모조리 태클 때려라. 나는 관대하다.

3. 웬만하면 횽아 자신을 위해서 정품 사든가 아루온에서 서비스 받아라. 아루온에서는 한글화가 되어있고, 일본판 정품을 사면 그림책을 준다.

 

 

 

1. 소개

 

팔콤이라고, 좀 오덕스러운 게임 제작 회사가 있다.

 

뭐가 오덕스러운고 하니, 온갖 장르파괴 게임이 유행하던 90년대 중반에 저 혼자 순수 에픽 RPG를 만든다고 설쳐 끝내 아시아 게임사의 걸작 [가가브 트릴로지]를 완성한 것이 오덕스럽고, 2000년 이후 스께아를 비롯한 온갖 겜회사가 남의 스타일을 베끼기나 하는 한심한 추태를 보이고 있을 때도 참으로 오덕스럽게 지 혼자만 잘난 척을 해대면서 츠바이, VM 재팬, 구루밍 등 희한한 수작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다이노소어]라는 괴작도 발표했다) 잇달아 발표한 것이 너무나도 오덕스럽다는 것이다. (오덕오덕 하니까 무슨 큐어게임 만드는 회사로 착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미리 말해둔다. 팔콤 이 넘들은 OST 팔아먹은 돈으로만 다음 게임 만드는 개발비 모조리 다 뽑아먹고도 남는 놈들이다. 그냥 취향이 좀 착한 것뿐이지 절대로 가난하고 지고한 회사는 아니다)

 

그 팔콤의 간판 게임 중에 [이스]라는 시리즈가 있다.

 

이제 정확히는 [아돌 크리스틴의 모험일지]라고 새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16살이 되자마자 역마살이 단단히 껴서는 가출하자마자 태풍섬 에스테리아에 투신, 그 섬에서 한때 융성했다가 사라진 고대왕국 이스의 실체를 밝혀내는 (덤으로 유적세트를 하늘에서 끌고 내려오는) 위업을 달성한 이후 아직도 모험 속에서 살고 있는 용사 아돌 크리스틴의 각 모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행은 타기도 한참 되기 전에 액션으로서의 RPG라는 개념을 확립한 점, 게임음악이 게임보다 더 많이 팔린 점 (누누이 말하지만 팔콤 게임은 음악 게임이다), 게임 주인공이 게임보다 더 유명해진 점 (이스 직접 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호색마왕 아돌의 악명은 잘 아는 경우가 허다하다) 등등등등등등등등등등 무슨 의미를 기준하건 아시아 게임사에 무시무시한 영향을 처앵긴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소개하는 [이스 오리진]은 바로 이 이스 시리즈의 최신작으로서, 아돌 크리스틴이 태풍섬 에스테리아로 닥치고 돌진하기 700년 전,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던 고대왕국 이스에 얽힌 사건을 풀어낸다. 아돌이 찾아낸 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스는 아름다운 두 여신의 인도와 흑진주의 기적 아래 융성했던 나라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魔)의 군대가 나타나 밥달라며 사람 심장에 포크를 꽂아대자 그 행패를 견디다 못한 여신과 그 휘하 신관은 이스의 백성을 거두어 여신의 궁궐 ‘살먼 신전(salmon이라고 해서 새먼이라고 읽으면 안 된다. 이건 생선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물이다)’에 모아, 신전을 통째로 하늘에 날려보냈다. 마의 군대는 신전을 쫓아가 마저 밥달라고 깽판치기 위해 탑을 쌓았으나, 신전은 탑조차 닿지 못하는 구름 위에 700년이나 멈추었다.

 

그런데 에스테리아를 모험하던 아돌이 미처 알지 못했던, 기록 너머의 진실이 있었다. 마의 등쌀에 내쫓겨 하늘에 궁뎅이 붙인 이스에서 얼마 후에는 여신까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지도자, 혹은 마음의 지주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흔들리고 좌절하기 전에 여신을 찾아야 한다고 결의한 여신 휘하 6명의 신관은 이스의 사회에서 가장 유망한 젊은이를 꼬드겨서 탐색대를 구성하고, 마의 군대에 철저히 잠식된 지상으로 파견하는데.......

 

 

 

2. 요소 평점

 

 

요소 1 그래픽 : 별 5개 만점에 5개

 

물론 이스 오리진에 최신 그래픽 효과 같은 건 조또 없다. 진부한 텍스처에 렌더링한 2D대두 캐릭터가 전부이다. 아, 물이 나오면 쪼까 셰이더 삘이 나온다. 바람이 불면 (물론 마법으로 결계가 둘러쳐진 탑에서 바람이 부는 경우라고는 베라간더가 되새김질 준비하고 있을 때나, 진화를 빙자한 퇴보를 이룩한 다레스 같은 넘이 고간빔을 발사하고 있을 때 정도다) 모션블러 삘도 좀 나온다. 그래도 그 이상은 없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시작하면 기술의 부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용된 기술의 확립연도’에 대해서 게이머가 고민할 틈을 이스 오리진은 아예 주지 않는다. 도트로 노가다질한 게 분명한 캐릭터 타격 모션은 대단히 적절하며, 모션의 재생 속도 배분도 훌륭하여 때리면 때린 듯, 쏘면 쏜 듯 확실한 무게가 느껴진다 (3D 게임도 못 해낸 걸 2D 대두게임이 해내고 있다) 유니카의 도끼질이나 토르의 발톱질이 쏟아지면 그걸 맞은 쫄따구가 팍팍 뒤로 밀리는데, 그 탄력감도 아주 작살 간지다.

 

멋진 놈이 주인공밖에 없다면 그건 또 옹박삘 생쑈플레이가 되겠지만, 오리진의 배려는 주인공에게만 내려주지 않는다. 쫄따구도 특색에 맞는 적절한 공격과 연출로 주인공한테 덤비고 (물론 그 다음엔 흠씬 처맞고 주인공의 경험치가 되어주는 게 순서이긴 하다) 보스의 경우는 정말 걸리기만 하면 주인공 같은 건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관광 보내주겠노라는 풍채의 간지를 질질 흘리며 맹공을 펼친다.

 

또한 유고의 전기폭탄(기술이름 내맘대로), 유니카의 봉황발사(이것도 내맘대로), 토르의 마인신속(내맘대로 갖다붙임) 등 각 기술에 매우 어울리는 캐간지 특수효과는 기술의 유무를 떠나 결국 ‘미학을 결정하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는’ 사실을 양심이 저릿저릿하도록 실감나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건 이스 오리진의 사양이 얼마냐가 아니라, ‘화면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혼자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나 훌륭한 연출이 되는데 왜 하늘의 궤적 더 서드는 그 따위 썩어문드러진 연출로 사람 눈에 폭력을 휘둘렀는지 당최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는 이스 오리진이 팔콤의 전통에 견줘보면 이단에 더 가까운가...........ㅡㅡ;

 

 

 

요소 2. 사운드 : 별 5개 만점에 3개

 

 

*미리 말해둔다. 이 대목은 실제 분석보다 내 감상에 의한 주관이 아주 강하게 들어갔기 때문에 횽아한테 적절한 감상인지는 의심스럽다. 참고해두고 읽어라.

 

이스 오리진이 팔콤 게임치고는 희한하다고 위에 말했던가. 그 말이, 그래픽이 아니라 사운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팔콤 게임은 음악 게임이라는 소리가 여기서는 조또 안 통한다는 소리다.

 

처음에는 아닌 척, 여느 팔콤 게임과 똑같은 작품인 척 사람을 속인다. 작살 감미로운 음률에 이끌려서 창규의 영역에 들어서면 재앙의 탑 전체 테마곡인 Tower of the Shadow of Death로 게이머를 마구 홀린다. 하지만 어둠의 일족을 처음 만나고 유니카가 에포나와 (혹은 유고가 박쥐 보스와) 싸우는 순간 횽아는 키보드에서 손을 놓고 귀를 싸쥐며 감탄할 것이다. “아놔 ㅆㅂ 낚였다!!”

 

정말이지 Oboro라는 그 곡은 분위기 흐름도 못 태우면서 저 혼자 잘난 듯이 날뛰기만 한다. 듣기 좋은 음악이면 그게 다 듣기 좋은 배경음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들인 9만6천원이 존나게 아까워질 정도였다. 게임을 더 진행하여 묵사의 영역까지 올라가면 더욱 가관이다. 구역 이름이 “말없는 모래”인데 배경음악은 아예 제대로 메탈 탔다. 이거 작곡한 색히가 혹시 패리스 힐튼인가?

 

라도의 탑 주제곡인 Dreaming 이것도 심히 불만인 것이, 이스 본편도 그랬고 이스 오리진도 그렇고, 라도의 탑에 주인공이 도달하면 그 때부터는 게임 진행에 가속이 착착 붙기 시작한다. 그러면 배경음악도 가속하는 주인공의 격정을 심어주는 걸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주인공은 처달리게 만들고 음악은 세월아 네월아 굿거리를 연주하면 어쩌자는 건가! 원곡이 그따구였으면 말을 안 한다. 원곡은 정말 비장하고, 격정에 차고, 결연한 휘몰이 아니었던가!

 

........제발 사라져 주기를 기원했던 괴곡 Tension........ 가져올 거면 Palace of Destruction 혹은 Battle Ground 이걸 좀 가져오지 그랬다? 그리고 탁혈의 영역까지 가면 이제 음악 쪽은 포기하는 편을 권하고 싶다. 이건 또 뭐 그렇게 구역 이름에 충실해지고 싶은지 말 그대로 독이 스며서 탁해진 핏방울처럼 문외한은 듣고 견디기 괴로운 매니악 사운드로 사람 혼을 쏙 빼놓는다.

 

소리의 지옥을 지나느라 지칠 대로 지친 게이머에게 날리는 결정타 Termination...... 바로 앞의 다레스 테마 Over Drive 이게 아주 훌륭하기 때문에 이제 반전의 충격까지 안긴다. 말 그대로 “절망했다! 곡조를 잊어버린 팔콤에게 절망했다!” 아무래도 팔콤은 이스 오리진을 통해서 게임 속의 괴로운 세계를 게이머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비법을 연구했던 모양이다.

 

물론 듣기 좋은 곡이 듣기 괴로운 곡보다 훨씬 많다. 위에 말한 창규의 영역 배경음악이나, 각 이벤트 음악, 잊을 만하면 들려주는 피나 테마, 이 참에 로다 나무가 독점한 이스 본편의 이벤트 테마, 살먼 신전 테마 등 간간히 귀를 정화해주는 고마운 음악이 있으며, 그 덕에 게이머는 귀가 썩으려는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엔딩까지 고고싱할 수가 있다. 객관적으로 점수를 매기라면 내 욕설하고는 별도로 별점 3개 정도는 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게임이라면 그래도 참고 넘길 만한 일이라도 팔콤 게임에서 배경음악 이야기가 되니까 신경질이 북북 돋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족. 이스 오리진의 효과음은 무난하다. 2D게임 특유의 오바액션과 다다이즘이 있지만 욕 나올 정도도 아니고, 소리의 종류가 스케일에 비해서 다양한 편이다. 주인공 무기가 (도끼, 팩트의 눈, 카기즈메) 모두 날카로운 데 맞춘 효과음은 훌륭하다.

 

 

 

요소 3. 조작성 : 별 5개 만점에 3개 반

 

 

마우스 조작을 지원은 하는데, 이스 오리진은 키보드나 패드로 때리는 게 훨씬 조작을 빨리 소화할 수 있다. 키보드 조작키 기본 배열........... 이전에 쓰는 키 자체가 많지 않아서 손꾸락 강림하는 곳 주위에 쓸 키가 모이기만 하면 금방 익숙해진다.

문제는 방향잡기다. 마우스로 오리진을 하면 불편한 이유가 마우스 커서가 있는 곳까지 캐릭터가 이동하면 자꾸 멈추니 한 방향으로 가고 싶어도 끊임없이 마우스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팔콤의 마우스 조작에 대해서는 RPG건 액션이건 작품마다 지적이 빗발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째 고쳐지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키보드를 쓰자니까 미세한 방향을 잘 잡을 수가 없다. 특히나 보스에 따라서는 원을 그리면서 빙글빙글 돌아야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놈도 있고, 필드 자체가 약간 뒤틀려서 그냥 달리면 자꾸 엇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키보드로 주인공을 움직이면 자꾸만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게 어지러워 보이고 안쓰럽기만 하다.

 

기술교체는 스탯화면 열지 않고 A/D로 바로 바꿀 수 있으며 (기본설정 기준) 숫자키로 바로 지정할 수도 있다. 숫자키가 있는 곳까지 손꾸락 뻗기가 싫은 정숙한 횽아는 QWE로 설정 바꾸면 게임이 좀 더 여유롭다.

 

그 외에 게임 속의 주인공이 키보드를 무시하고 사보타지하는 경우는 없으니 (물론 키보드가 고장나서 게임과 게이머 사이를 이간질하는 경우는 제외하겠다) 방향키 공격키 점프키 정도 외워두는 부지런함만 갖춰도 게임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

 

간단하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간단한 조작, 몇 가지 키만 가지고도 다양한 기술, 화면,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조작은 없을 것이다.

 

 

 

요소 4. 난이도 : 별 5개 만점에 2개 반. 단 확장패치를 하면 3개 반.

 

 

이 2개 반이라는 점수는 “쉽다”는 뜻이 아니다.

“닥치고 구매부터 하는 게이머의 경우 어지간해서 재미 붙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팔콤 사람들은 액션 게임 만든 역사는 오래되면서, 아직도 액션의 난이도 조정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 나이트메어로 들어가지 않는 한 노멀/하드 사이의 실제 난이도 체감은 그렇게 다르지 않으며 (베리이지/이지 차이도 마찬가지) 회피가 필요한 보스의 특정 공격 같은 경우는 이지에서 속도가 느려지는 경우 오히려 피하기 더 어려운 진상도 보인다 (공격이 오는 바로 앞에서 뛰어 피했더니, 내려올 때까지 그게 다 지나가질 앉았다!)

 

한 난이도로 진행할 때 생기는 난이도 곡선의 불규칙도 문제다. 창규의 영역까지 등장하는 보스는 쫄따구보다 더 주인공을 압박하지 못해 어이가 사라질 지경이지만 (더구나 박쥐 보스는 이스 본편 시절 역대 가장 짜증나는 보스로 악명이 높았는데!) 수옥의 영역 보스는 오리진 최초의 “벽”이라고 해도 될 만큼 피하기도, 막아내기도 어렵다.

 

재도전을 거듭하다 보면 그 “벽”을 넘어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보람은 별로 오래 가지 않는다. 재도전의 결말 대부분은 ‘운빨’이거나 ‘노가다 렙업’인 경우가 많고 어느 쪽이건 다음 던전에 대한 ‘도전’에는 도대체 도움이 안 된다. (또 그 다음에 나오는 구화의 영역 보스 겔랄디나 라도의 탑에 나온 제노크로스는 노멀이긴 하지만 실제 발로 마우스 잡고 깼을 만큼 쉬웠다. 겔랄디.......간지는 작살이었는데 말이지)

 

다른 게임도 난이도의 영향은 받지만, 특히 액션 게임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게 되면 사람들은 게임에서 도전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너무 쉬운 액션 게임은 시시하며, 너무 어려우면 할 맛도 안 나는 것이다. 액션 게임이 끊임없는 도전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스 오리진 본편은 난이도 조절에 반은 이미 실패 먹고 들어간 셈이다.

 

팔콤도 출시부터 달카닥 해놓고 찔리는 건 있는지 확장패치를 내놓았다. (해보지 않았으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 아루온 서비스에도 이 확장패치 내용이 포함됐을 것 같다) 이 패치에는 타임어택에 한해 등장 보스 난이도 조절, 아리나 모드 추가, 타임어택과 아리나에 한해 아돌 추가가 들어있다. 아리나 모드는 난이도 조절이 아주 잘 되어있기 때문에 조작 실력을 기르기 좋으며 (구조도 보스와 짱뜨는 게 아니라 쫄따구와 17:1 뜨는 거니까 실수의 대가도 치명적이지 않으면서 자기 점검을 하기도 좋다) 끝의 끝까지 가면......정말 귀여운 싸움에 도전할 수도 있다 (나중에 한 번 더 말하겠지만, 팔콤 게임에서 귀엽다는 말은 괴력이라는 개념과 같이 다닌다) 아마 이스 오리진 던전 다 파고 나면 다음부터는 타임어택과 아리나만 열나게 들락날락할 것이다. 피카돈을 이기기 위해........

 

 

 

3. 오리진의 의의

 

 

좀 무식하게 말하면 이거다. “이거 이스라도 인정해도 되냐” 위에 적어놨지만, 이스라는 게임 시리즈의 주체는 사실 이스라는 장소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모험에 홀리고 여자에 홀린 역마살 환자 아돌 크리스틴 공인 것이다. 그런데 그 아돌과는 100% 무관한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있다면, 그건 한 시리즈로서, 외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한 힌트를 나는 아돌 크리스틴의 모험일지 자체에서 찾고 있다. 아돌 크리스틴은 자신의 두 번째 모험이었던 펠가나의 마검 편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이스를 떠난 후 처음 겪은 모험이다.” 그 다음에도, 아돌은 자신이 겪은 모험을 헤아릴 때 ‘몇 년, 혹은 몇 살’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이스로부터 몇 번째’를 따진다.

 

아돌이 정말로 적고 싶었던 것이 피나 혹은 리리아일 수도 있겠다. 정말 그렇건 아니건, 에스테리아에서 아돌이 겪었던 사건에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이후 아돌의 삶 자체를 바꿔버린 간지건 포스건 하여간 뭐 그런 게 있었던 모양이다.

 

아돌이 만난 무엇이, 혹은 이스가 겪었던 무엇이 그렇게 한 모험자를 홀렸을까. 팔콤이 이스 오리진을 내놓은 건 그 마력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억측만 졸라게 굴리는 중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유니카 토바 편하고 토르 팩트 편을 해보고, 과연 이스의 역사가 아돌을 홀릴 만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아돌은 나오지 않지만 이스 오리진이야말로 떳떳한 ‘이스’ 시리즈라고 믿는다.

 

 

 

 

4. 인물에 대한 기억

 

 

인물 1. 유니카 토바

 

...........이 자의 포스가 나를 홀렸다. 나이가 몇인데도 불구 여신이 좋아서 짬밥 먹으러 굴러왔다는 것도 그렇고, 성격이 착함의 경지를 넘어 비범의 수준에 도달한 맹간지에 참한 인형 같은 차림새에 빵장갑 낀 손으로 배틀액스를 휘두는 힘간지도 멋지다. (귀엽다=괴력. 팔콤에서 잊으면 안 되는 공식이다) 제일 멋진 건 유니카의 성취 과정이다. 유니카는 태어나면서부터 마법을 쓰지 못한다. 즉 이스 문명의 거의 대부분을 이용하지 못한다. 아돌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유니카 또한 이스의 이방인인 셈이다. 하지만 그에 좌절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구하지도 않고, 유니카는 다만 여신에 대한 사랑만 우정만 다짐한다. 이 다짐으로 결국은 레아와 피나를 지킨다.

 

 

 

인물 2. 유고 팩트

 

아주아주아주 식상한 미소년, 시니컬, 암울, 빈정, 개똥철학, 센스 없는 말투, 질투쟁이 동생. 이렇게 간지 안 나는 주인공 참 오랜만에 본다 (그것도 남자다! 아, 눈꼴셔) 게다가 내 예상과 한 치도 틀리지 않는 타이밍에, 가슴 큰 처녀를 아줌마라 부르는 작태까지. 조폭 영화도 그렇고 이 놈도 그렇고, 한물간 흥행코드만큼 봐주기 괴로운 것도 없다.

 

 

 

인물 3. 레아

 

토르와 정말 커플이었는가? 하는 생산성 없는 의문에 매진하는 횽아는 별로 없을 거라 믿는다. 커플임을 확신할 수 있는 장면도 없었을 뿐더러, 혹 커플이라 쳐도 결국은 미녀를 빼앗긴 우리가 괴로울 뿐이다. 굳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친구 이상 애인 미만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피나, 유니카와 섬씽을 기대하는 횽아가 분명 있을 거라 보는 건 나뿐인가?

 

그건 그렇고, 하모니카는 결국 친구들한테 떼밀어 놓고서는 700년 뒤에는 천연덕스럽게 어디 흘렸네 어쩌네 순진한(??????????) 아돌을 꼬드겨 심부름 보내는 이 구라 센스. 참으로 앙큼하지 않은가?

 

 

 

인물 4. 토르 팩트

 

형은 다르다는 편견을 한층 보강해준 인물. 딱히 냉소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뚝뚝 묻어난다. 별 동요 없이 대응하고 있어도 말하는 투가 상당히 특이하다. 팔콤계의 존 맥클레인이라 불러도 괜찮겠다. 마의 인자를 받아들여 잃어버린 클렐리아 소드의 힘을 대체하는데, 이를 통해 토르에게 가장 두드러진 이득은 바로 루와 대화하는 것이었다.

 

 

 

인물 5. 피나

 

오리진에서는 별로 등장하는 일이 없다. 딱 유니카한테 반갑다고 할 때나, 토르를 역취조하는 장면 정도...... 이스에서 아돌한테 적극적이었던 건 여기서 등장 횟수가 없는 게 서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물 6. 다레스

 

...............이스2에서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놈이지만, 여기서는 실망했다. 이스2와 똑같은 수준의 악행, 똑같은 수준의 대가리를 뽐내고 있으면 게이머가 ‘어머나 멋져’ 하면서 쓰러지기라도 할 줄 알았던가. 식상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만 왕창 벌여놓고 무책임하게 죽었다. 죽는 장면 이야기가 나오니 말인데, 이것도 좋으려다가 실망했다. 그래도 유니카나 유고 편에서는 비장하게 소멸하더니만, 토르 편이 되니까 마왕한테 한 방에 창질 받고는 ‘살려줘어어어어’ ......추하다 색히야.

 

 

 

인물 7. 에포나

 

내가 럭키스타를 보면서 배운 게 맞다면 에포나는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건 츤데레가 맞을 거다. 딱히 더 설명할 말은 없지만, 간지는 토르 팩트 이상, 아니 악당 중 최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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