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뒷골목 0.7평 ...자매는 꼭 껴안고 잠든다

맹츄 작성일 06.12.03 04: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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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우리이웃이 희망을 찾아갑니다. 이웃과 온기를 나눌 계절, 겨울이 왔습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이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나눔입니다. 이 추운 계절,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이 독자 여러분의 귀중한 나눔을 기다립니다.

예진이(가명·11)가 사는 집은 0.7평 단칸방. 동생 예은이(10)랑 함께 산다. 어린 자매가 꼭 끌어안고 누우면 얼추 꽉 찬다. 눈이 내린 30일 아침, 이불을 꽁꽁 싸매고 문 밖으로 나왔다가 소복한 눈을 만났다. 불쑥 예은이가 말했다. “언니, 이제 화장실 가기 힘들겠다….”

예진이와 예은이는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시장 뒷골목에 산다. 외할머니(이명숙·56)가 하는 순대국밥 가게에 딸린 방이다. 가게에는 화장실이 없다. 오줌이 마려우면 100m를 걸어가 길가 공중화장실로 간다. 눈, 비가 내리는 날이면 질척한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 가기가 싫다. 예진이가 말했다. “자다가 화장실 가려면 학교 갈 때처럼 옷을 다 입어요. 전에는 예은이가 무섭다고 그래서 같이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적응됐어요. 밤에는 안 가요.” 밤에 화장실을 참는 이유, 또 있다.

아이들이 자는 방, 김치창고였다. 판자로 얼기설기 벽을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를 대충 발라 바람을 막은 창고. 천장 벽지를 뜯으면 바로 슬레이트 지붕이 나온다. 창문은 비닐을 잘라 압정으로 박아놓았다. 책상도, 책도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식당 한 켠에서 잠을 잔다.

언니랑 동생은 열선이 깔린 전기패널을 장판 아래 깔고서 겨울을 난다. 부실한 벽 틈새랑 창문을 뚫고 찬 바람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이불 속을 벗어나 그 매서운 겨울 밤을 뚫고서 화장실 가기, 정말 싫다. 작년 겨울엔 방에 들여놓은 화분들이 몽땅 얼어 죽었다.

엄마는 3년 전 빚을 잔뜩 남기고 집을 나갔다. 지친 아빠는 1년 전 아이들을 외가에 맡기고 한 달에 두어 번 찾아와 용돈을 주고 간다. 그러다 지난달 말했다. “앞으로는 자주 못 올 것 같아요. 데려갈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보육시설에라도 맡기시는 게 어때요”라고.

할머니는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 당뇨병도 앓고 있다. “어린 것들 보듬고 같이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아파서….” 할머니가 휴지를 눈가로 가져간다. 순대국집은 보증금 8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다. 하루 5만원씩 일수돈 갚고 나면 벌어서 손에 쥐는 것이 없다. 할머니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가게에 매여 있고 어린 손녀들은 서로 껴안고 도우며 들꽃처럼 자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는 동네 공부방에서 숙제를 하고 저녁도 먹는다. 공부방 안 가는 날, 그리고 공부방에서 돌아온 다음엔 갈 곳이 없다. “밖에는 손님이 있으니까 하루 종일 방문을 닫고 TV 봐요.” 예진이의 목소리가 풀이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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