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5 - 세종의 수성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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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수성 리더십, 박현모, 삼성경제연구소, 2006
세종에게도 인재를 가려내는 일이 제일 어려웠던 듯 하다. 언제나 그렇듯, 인재는 도처에 널렸지만 정작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인물을 구해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쓸만하다 싶으면 고려왕조에 대한 단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아니면 왕자의 난으로 숙청되었거나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은 그 해법을 젊은 선비들의 생각에서 찾았다. 과거시험 문제에 부딪힌 난제를 털어놓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듣는 것은 그가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과거제도 개선책에서 세제 개혁에 이르기까지 묻는 주제도 다양했다. (87p)
(선략) 제아무리 국왕이 여진족을 제압하여 수성의 시대를 열고 싶어도 신료들이 끝까지 반대하면 무위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은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다. 모험을 꺼리는 신료들에게 토벌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한 편 토벌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을 줄여나갔다. 세종은 특히 토벌을 반대하는 허조가 제기하는 위험요소들을 하나씩 대비함으로써 '토론의 예방적 효과'를 거두었다. (76p)
세종은 자신의 시대를 수성기(守成期)로 인식하고 있었다. 수성기란 창업-수성-경장-쇠퇴 라는 동양사상의 체계순환론에서 두 번째 단계로, 혁명과 건국이라는 창업의 어수선한 시기를 지나 정치 및 사회 운영 메커니즘이 안정화되고 제도화되어가는 시기를 뜻한다.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창업을 하고 일정한 수준까지 올려놓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대내외적 도전과 시련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난관들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키고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따라서 창업의 단계를 넘어서 수성의 단계로 진입시키는 뛰어난 리더쉽이 필요하다.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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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하수상하다. 오만가지 정치적 파동과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사실 그러함에도 한국 사회가 흔들리지 않는건, 그런 자들을 믿고 일을 맡기는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 전체가 정치의 모습과는 유리되어 자신들의 룰을 지키려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혹자들이 믿는 것처럼 빡통이 다 해줘서, 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면, 한국사회는 창업의 시기 이후 애저녁에 무너졌어야 했을 것이다.
책의 본문들에도 나와있듯, 세종은 말 그대로 죽어라고 토론을 했다. 아침먹고 업무 본 후 점심 먹고 토론 하고 저녁 먹고 토론했다. 토론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왜 안되는가를 '듣고' 들은 것을 유념하여 '절충'하고 '위험요소를 없게' 만들었다. 그런 토론은 짧게는 여진족 북벌의 상황에서부터 길게는 17년간 걸린 세제개혁에 이르기까지 모두 든든한 힘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17년간 걸린 세제개혁에서는 아예 국민들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노력했다는 지점이다.
물론 현실과 맞춰 지적하면, 집권시기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부터 왕정과 민주주의를 비교할 수가 있나 하는 부분까지 다양하게 피력될 것이다. 하지만 왜 왕정의 시대에 세종이 했던 일들이 현실에도 설득력을 지니고 이렇게 책으로까지 나오게 되는가, 그 부분은 주목할만한 지점이다.
정조는 스스로가 세종처럼 생각하고 세종처럼 되길 원했으면서도 기실은 원맨쇼로 정치를 이끌어나갔다. 기존의 세력을 벽파하기 위해 측근정치를 도입했고 결국 그것은 이후의 또다른 폐단들로 이어졌다. 세종과의 큰 차이는 여기에 있다. 세종은 들으려 애썼고 정조는 듣지 않았다. 정조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지만 결국 정조 개인의 입장에서만 남는 업적들이 있을 뿐이었다.
연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도서박람회에서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라는 책을 사갔다. 소통없는 자와 이후 그에게 숙청당할 자의 이런저런 논고 모음. 소통없는 정부 수장이라는 이미지와 대조해보면 참 희한하게 들어맞는 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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