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충격의 미래한국, 전영수, 프롬북스, 2014 (12월)
---인구변화의 경고수위가 나날이 높아진다. 특히 한국의 인구악재를 지적하는 해외석학이 크게 늘었다. 한국경제의 당면대책을 물었음에도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는 순위가 밀리는 한가한(?) 인구문제를 첫머리로 올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숲(세계) 밖에서 보니 나무(한국)가 눈치 못 챈 성장한계가 뚜렷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미래이슈이지만 현재대응이 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정책특징 탓이다. 샘 빠른 글로벌업계도 이미 한국의 인구경제학적 지속성을 심각하게 의심한다. (72P)
---58년 개띠를 베이비부머의 정점으로 본다면 이런 갈등현상의 총칭을 2015년 문제로 불러도 무방하다. 베이비부머의 대량은퇴가 가져올 다양한 문제를 일컫는다. 실버산업 등 거대인구의 소비파워를 전제로 한 시장창출 등의 낙관론도 없지 않지만, 대량은퇴 이후의 미래풍경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지금까지는 미약한 부담거리에 불과했지만, 대량은퇴가 본격화될 '2015년'부터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다. (98-99P)
---한국사회 앞날을 책임질 청년 등 후속현역의 내일은 적잖이 어둡고 먹먹하다. 일해도, 놀아도 정도차이만 있을 뿐 선배세대가 누린 만큼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획득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삶의 순간순간 안겨줄 행복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확률이 높아져서다. 일도, 돈도, 꿈도 가지기 힘든 시대의 도래다. 열심히 노력하되, 눈높이를 낮추는 게 시급해졌다. (206P)
끓는 물의 개구리 이야기는 다들 알 것이다. 펄펄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는 펄쩍 뛸 것이지만, 개구리가 든 물을 가열하면 온도가 점차로 높아져 죽음에 이를 때까지 개구리는 살아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그 이야기.
칼 포퍼는 과학철학에 대한 기초를 세우면서 사회철학도 함께 세우는데, 과학철학에서 논한 바와 마찬가지의 관점을 사용했다. 그의 과학이란 것은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논리여야 하며,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디테일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반박의 실증을 통해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체계도 어차피 처음부터 제대로 세울 수가 없으므로 점차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개념이어야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세우겠다고 덤비는 건 착각이라는 것이다.
끓기 시작하는 물 속의 개구리와, 칼 포퍼의 논리대로 노력하고 개선하려는 움직임의 결과. 이 둘의 차이는 사실 종이 한 장이다. 그 종이 한 장에는 개념만으로 따지만 무수히 많은 것이 써질 것이나, 간단히 말하자면 의지와 방향이 설정되어 있는가, 의 문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다 보면 우리는 그저 개구리 꼴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더 커진다.
저자는 한양대 교수이며 일본 경제 전공에 기자도 한 경력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설익은 밥이다. 두서없이 난리치고 할말은 많은데 우겨넣느라 혼잡해지고 산만해진다. 당연한 일이다. 기자 경력은 사유란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 그리고 그에 따른 허세만이 습관으로 남는다.
해결책에 대해서도 고민이 얄팍할 뿐더러 그 해결책을 제시한답시고 자신이 주워섬기는 말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분위기고, 책이 바라보는 사업의 트렌드 자체도 한국에서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지점들이 속출한다. 예를 들면 공동체라는 개념 같은 것을 해결책이라고 제시해 보지만 구체성이 드러나지 않거나,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업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국에 대입하는 지점들에서.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예가 한국과 같지 않을거라 말하면서도 일본의 예를 들 때마다 신나게 떠들다가 양국의 구별지점을 저자 스스로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부분들이 많다든가.
혼자서 지구의 종말이라도 본 듯 야단법석의 기운이 충만한, 졸저이지만,
이런 설익은 밥일지라도, 구별하여 체크한다면 건질 것은 있다.
첫째는, 일본이라는 끓는 물 속에서 개구리가 어떻게 삶아지고 있는가를 목도한다는 점,
둘째는, 개인의 주변에서도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상황들이 꽤 생생하게 떠오르게 만든다는 점,
셋째는, 한국에 어떠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복지가 필요한지 사유해볼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점.
특히, 마지막 세번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작금의 한국사회에는 복지공포증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설친다. 그 공포증은 심지어 2000년대 초의 아르헨티나와 이전의 그리스가 복지 때문에 망했다는 일베충들의 개소리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있다. 조금만 들여다 보면 둘 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된다. 여지껏 어떤 나라도, '복지 때문에 망한 나라'는 없다. 아, 복지 때문에 어려워 질 수는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개선을 행하는 것이 아닌, 미시적 차원에서의 국가자금회전 및 기득권 방어 차원에서 제도들을 개악하면 그렇게 된다--국민연금을 생각해보라.
사족으로,
당장 복지를 실행하면 거덜이라도 날 것처럼 구는 건 당장 복지를 실행하는 수준을 뭐 돈푼이나 집어주고 전면적으로 거액 들여 하는 걸로 이해하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서 그렇다는 건데, 솔직히 저자 같은 경제 계열 기자들이 생각없이 남발한 개소리들에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 저자는 인지하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