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검은 날' 을 시작으로 전쟁이 발발했고, 서로 죽고 죽이는 각축끝에,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전쟁도 8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훗날, 우린 이 전쟁을 '검은대전' 혹은 '제3차대전'이라 불렀다. 하늘은 몹시나 어두웠다. 핵폭발로 일어난 재와 먼지들이 지구의 하늘을 뒤덮었기때문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쾌창한 하늘을 볼수 없을 것이다. 나라간의 국경, 경계는 더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나라라고 불리기엔 생존자가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는 전체인구의 95%로 추산하고 있었다.
이 세상은 이제 우리가 알고있는 세상이 아니다. 검은 날이 계속되었고, 핵겨울이 찾아왔다.사람들의 공포,절망,증오들이 온 세상을 감쌌다. 더이상 희망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서로간의 마음속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세상은 혼란의 구렁텅이속을 치닫고 있었다.종전이 되고 얼마 안있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날씨는 오락가락하였고,이세상 것이 아닌 존재가 출현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뒤집는 존재들. 그들은 괴물, 혹은 마수,악마, 여러이름으로 불렸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다만 그들은 머릿속에서 공상속에서 상상속에서나 만들어냈을듯한 존재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존재(異存在)혹은 이괴수(異怪獸)라 불렸다.말 그대로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였다. 그들은 우리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에게서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총기류등의 소지는 필수가 되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는가. 우리 인간은 아주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난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못한 사내다. 내 이름은...없다. 다만 사람들은 날 '검은날의 생존자' 줄여 '검생'이라 불렀다. 난.어두운 것이 좋다.
서울
언제나 어두운 저녁하늘. 어둠이 있는 곳에는 이괴수들이 몸을 숨기고 있다. 항상 주의해야한다.어느 하나 불이 밝힌 곳은 없었다. 페허가 된 도시. 어느 하나 온전한게 없었다. 그 높디 높았던 63빙딜도 쌍둥이 빌딩도 거의 허물어진 채, 앙상한 철골만이 드러나있었다. 그 찬란했던 문명도 그 작은 '핵'에의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다.담배를 꼬나 물었다. 이젠 이 하찮은 담배마저도 귀해 없어서 못 구할 지경이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따지자면 끝이 없겠지만, 특히, 담배, 본드.환각제,마약 같은 것들의 값어치는 금보다 더했다. 지금 이 지옥같은 상황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아그작. 아작.-
길을 한참 걸었을까. 어디선가 무엇을 씹는 소리가 난다. 주위를 둘러본다. !! 이괴수들이 시체를 먹고 있었다. 그것도 머리만. 이괴수는 킁킁하더니 나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내쪽을 돌아봤다. 사람처럼 손발이 있으나, 눈 코 귀 는 없다. 오직 커다란 송곳니를 가지 주둥이만 가지고 있었다. 몸은 어둠에 맞게 짙었다. 사람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머리들은 없다. 아마 저 녀석들의 식사가 되었으리라. 난 주먹의 기운을 모았다. 푸른 신형이 주먹을 감싼다. 난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단지,나를 위협하는 이괴수들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 그것뿐이다.
팍. 쿠에엑.
난 길을 걸었다. 반쯤 녹아내린 교통 표지판엔 모란시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나마 종전 후, 다시 생긴 유일한 곳이었다. 모란 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로 자기들이 가져온 물건의 가치를 따져 물물교환이 이루어 졌다.주로 두꺼운 옷이나 오래된 잡지나 만화책들, 성인잡지는 그 값어치가 더했다.그래도 단연 인기있는 것은 담배였다.난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허름한 천막이 처진 곳으로 갔다. 과연 음식점이었다. 난 문짝을 옆으로 뉘어 드럼통위에 놓아진 곳에 궤짝을 끌어 앉았다. 이게 테이블이다.
담배의 가치가 이정도다. 음식을 주문하고 테이블에 턱을 괴고 멍하나 천막 밖을 쳐다보았다. 시체 몇구가 들것에 실려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괴수에게 뜯긴 모양이었다. 이괴수란 것들은 사람의 머리를 그렇게나 좋아했다. 아마 저 시체도 머리가...이런, 밥맛 떨어지는 생각을 해버렸다.
-여기 시키신 음식나왔습니다-
고기. 참 오랜만에 보는군.
난 급히 수저를 들었다. 허겁지겁 고깃국을 먹었다. 고기보단 흐물해진 무우가 몇 갑절은 더 많았지만, 간간히 씹히는 고기의 육질이 있어 괜찮았다. 멀건 국물에 기름이 둥둥 뜬 국을 정신없이 먹다 입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며 딱딱한 것이 씹혔다. 난 그 딱딱한 무언가를 손바닥에 뱉었다. 젠장. 사람의 치아였다.내가 지금 먹고 있는 건... 난 이런 걸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난 착한 사람이 아니다.
탁!
-주인 나와.-
주인장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난 달려오는 주인장의 관성을 이용해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이른바 카운터 펀치였다.주인장은 어이쿠 소리를 내며 자질러졌고, 쌍코피가 터져나왔다. 주인장은 코를 움켜쥐고 한참이나 구르고 있었다.난 주인장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인간만도 못한 자식아. 이거 무슨 고기야?!- -어이쿠. 손님 왜 그러십니까.- -이거 무슨 고기냐고 물었잖아!- -헤헤.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주인장은 비굴하게 헤헤거리며 말했다. 난 지금 인간의 고기를 먹었다. 내 뱃속엔 인간의 살점이 들어있다. 이괴수한테 머릴 뜯긴 사체의... 순간 열이 뻗쳐 올랐다. 난 주먹에 힘을 줬다. 내 안의 이존재가 웃는 소리가 들린다. 크크크.
[닥쳐.]
나의 주먹은 주인의 얼굴로 잽싸게 향했다.
이런 빌어먹을 인간따위.
파팟.
나의 주먹은 주인장의 얼굴 옆을 벗어난 바닥에 내리 꽂았고, 바닥은 산산조각이 났다. 주인장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바지 가랑이 사이에서 소변이 줄줄 흘러나왔다.
-너 같은 인간따위 죽일 가치도 없어.-
밖으로 나가려고 천막입구로 향했다. 주인은 처음엔 나의 주먹에 몸을 움추렸지만 이내 악에 받쳐 내게 소리를 내지른다.
-야 십XX야. 그걸 모르고 쳐먹었냐? 이 세상엔 고기란건 인간뿐이다! 너도 알고 있잖아! 여기 이 사람들은 다 안다고!!-
주위를 돌아봤을때, 사람들의 눈빛은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 지금 이 세상엔 내가 이상한거다. 우웁. 토가 나올거 같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됐지?
뱃속에서 고기살점들이 요동치는 거 같다. 난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난 죽어도 인간을 먹고 싶진 않다.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난 주인 곁으로 다가갔다. 다시금 주먹에 기운을 모았다. 푸른빛이 감돈다.
팍.
피가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내 안에 이존재가 웃는다. 크크크.
예전의 세상이 아니다. 음식을 먹던 사람들도 처음에 놀란 듯했지만, 이내 다시 먹는 일에 집중했다. 그들에겐 사람하나 죽든, 시체를 보든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 세상엔 널린 일이다. 아주 흔한일이 되었다. 난 입을 닦으라고 작게 잘라논 신문지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 난 차가워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방장! 고기 가져가.-
내가 언제 이렇게 악해졌을까? 이젠 그런것 따위 상관없다.
내안의 이존재가 웃는다.
크크크.
우웩. 오바이트를 한바탕 했다.내 안의 이존재가 속삭인다.
[그래. 소감이 어떠신가?]
난 괜히 신경질이 나 내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어이 그런다고 내가 아파할거 같나? 난 너에게 이 지옥같은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었어. 그런 나에게 이러면 섭하지.]
미간을 찡그렸다. 이 빌어먹을 자식.
[닥쳐.] [아! 알았어. 알았다고. 네가 나의 힘을 쓸때마다 네 생명은 줄어들고 있다는 걸 유념하라고.]
나의 생명이 내 안의 이존재한테 모두 빼앗기면 난 죽을 것이다. 여기서 죽는다는 건, 단순히 생체활동의 정지를 말하는게 아니다. 영혼도 죽는다. 나란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던 듯. 사라지는 거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에게 희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안의 이존재가 헬쭉 거리며 말한다.
[언제든지 말하라고.내 힘은 언제든지 빌려줄수 있어.]
그에겐 이런일도 작은 장난, 작은 유희에 불과하다. 내 안의 악마같은 자식이 '크크'소리를 내며 비웃는다. 그래 맘대로 짓어라.
이존재(異存在).
이괴수와 더불어 이세상에 나타난 존재. 그들은 단순하고 본능뿐인 이괴수보단 한 차원 높은 존재다. 이존재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엄청난 능력을 지녔고, 악마도 천사도 아니다. 난 그냥 막연하게 그가 신일거라 생각한다. 모든 걸 작은 장난, 유희라고 생각하는 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