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반장은 몸이 찌뿌드드한지 기지개를 늘어지게 폈다. 뼈마디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허 순경의 귀에까지 들렸다.
“좋은 아침!”
김 형사가 말쑥한 모습으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 반장은 김 형사의 말쑥한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반장님 또 여기서 주무셨어요?”
김 형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까치집을 짓고 있는 오 반장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어? 어.”
“자네는?”
“전 사우나 가서 한잠 자고 씻고 왔죠?”
“그렇군.”
“아 그렇고 허 순경은 왜?”
오 반장 앞에 멀뚱하게 서 있는 허 순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허 순경은 무척이나 대조되는 겉모습의 두 남자를 한번씩 번갈아 보고는 손에 들고 있는 파일을 오 반장에게 넘겼다.
“어제 반장님이 말씀 하신 거 조사했거든요.”
“뭐였지?”
“오반장님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랑 금요일 국내에서 시술됐던 심폐 동시 이식 수술에 관한 거요.”
“아 그거.”
그제야 그는 자신이 허 순경에 시켰던 일을 떠올렸다.
“먼저 반장님 핸드폰에 걸려온 번호를 추적했거든요. 그런데 추적이 불가능 했어요.”
“쉐도우폰이야?”
허 순경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 반장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일단 당시 이용한 기지국은 서울 마포 기지국 이었거든요.”
“그렇군.”
쉐도우폰의 특성상 이용한 기지국 밖에 알지 못했다. 물론 위치추적 신청을 내놓은 상태라면 가능하지만 말이 다. 하지만 일단 통화가 끝나게 되면 다시 통화가 되기 전까지는 위치 추적이 불가능 했다.
“그리고 말씀 하신 수술은 2건이 행해졌습니다. 한군데는 Y대학 병원이었습니다.”
이식을 받은 환자는 24살의 여자였고 48세의 뇌사자의 장기를 받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 반장은 넘겨준 파일을 넘겨보았다.
“그렇군. 다른 곳은?”
“대륜 병원입니다.”
“대륜 병원?”
대륜 병원은 모 기업이 만든 종합 병원으로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 초빙한 최고의 의사진과 최신식 의료장비 를 갖춘 최고급 병원이었다. 병실도 모두 개인실로 일류 호텔 수준이었다. 물론 아무도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은 아니었다. 정, 경계 고위 인사나 유명 연예인들이 주로 이용했다.
수술 시간은 어제 자정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식자와 피이식자를 밝힐 수가 없었다. 후배 녀석 말로는 병원 측에서 환자의 개인 정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일관했다고 했다. 결국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후배의 말대로 병원 측에서는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허 순경은 겨우 겨우 이식자만 알아 낼 수 있었다.
“환자 개인 정보 유출은 절대 안 된다고 일관하던걸요. 그것도 겨우 겨우 알아냈어요.”
오 반장은 이식자의 자료를 확인 했다.
“윤무선 총리 아들이에요.”
“윤총리….”
오 반장의 작은 눈이 잠시 커졌다.
“네.”
“피이식자는 못 알아낸 거야?”
“네. 이식자도 겨우 알아냈어요.”
“이봐! 김 형사. 그 병원에서 어제 사건 현장까지 몇 분 정도 걸리지?”
“글쎄요. 길 안 막히면 10분정도 걸릴 거 같은데요. 새벽이면 10분도 안 걸릴 거 같은데요.”
“그렇군.”
오 반장은 잠시 서류를 움켜쥐고는 생각에 잠겼다. 뭔가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허 순경은 오늘부터 강력 1반에 지원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 가봐.”
허 순경이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어느새 김 형사는 오 반장 옆에 다가와 있었다.
“팔은 괜찮은 거야?”
“네. 그냥 좀 까진 거예요.”
오 반장은 좀 까진 것 치고는 붕대를 많이 동여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장님 말이 맞는다고 치죠.”
“치긴 뭘 쳐.”
“말 꼬리 잡지 마세요.”
오 반장은 입을 다물었다. 김 형사가 무섭게 노려봤기 때문이었다. 다친 다음에 성질이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계집애처럼 조금 다쳤다고 삐지기는’이라고 말해주려다가 불에다 기름 붓는 격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렇다면 죽은 남득구는 거기서 죽은 게 아니고 대륜 병원에서 심장과 폐를 이식 당한 후 그곳으로 옮겨졌다는 거죠. 그리고 그곳에서 시체를 난자 한 거구. 이식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시체를 난자 한거구요. 그리고 조성환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조작을 한거구요.”
오 반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요. 윤 총리 정도의 거물이라면 노숙자하나 처리하는 거는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겠지.”
“그렇다면 결국 이야기는 오 반장님이 말하는 그 의문의 살인 사건들과 이어지는 건가요? 12주마다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사건 말이에요. 하지만 그러면 반장님이 조사하는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 아닌가요?”
“글쎄. 그거야 모르지….”
오 반장은 뒷말을 이으려다 그만두었다. 그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조성환과 자신이 쫓고 있는 의문의 사건이 분명히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확신 말이다.
“그럼 전 다녀오겠습니다.”
“어딜?”
“대륜 병원이요. 대륜 병원에 가서 피이식자가 누구인지 알아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쳇. 언제는 쉬운 거 있었어요. 그럼.”
“잠깐 김 형사.”
나가려는 김 형사를 오 반장이 불러 세웠다.
“왜요?”
“일단 밥이나 먹고 가자고. 배고프니깐….”
“아 그러고 보니 밥을 안 먹었네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건 그렇고 반장님 안 씻으세요?”
“귀찮아.”
“제발요. 같이 다니는 사람 좀 생각하시라구요.”
둘은 경찰청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09:23 서초구]
내가 살던 동네도 분명 서울의 주택가였다. 하지만 언덕에 마구 잡이로 지어진 집 들 사이로 미로처럼 길들이 이어져 있었다. 비슷한 모양의 작은 2층에서 4층짜리 다세대 주택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지어져 있어 다 그 집이 그 집으로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오면 딱 길 잃어버리기 쉬운 동네였다. 재개발을 한다고 한지 꽤 되었지만 내가 이 곳에 이사 온 그 때부터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동네였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도 서울의 주택가였다. 하지만 평지에 넓은 길 위에는 아스팔트가 쫙 깔려져 있었고 커다 란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다른 도시 같았다.
“이 집이군.”
내 손에 들고 있는 사진 속과 아주 일치했다. 아마도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곳이었던 것 같았다. 4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붉은 벽돌 담장과 커다란 철 대문이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철제문은 차고로 보였다. 벽돌 담장 너머로 보이는 조경수의 위치와 모양까지도 아주 똑같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른 기와의 2층 양옥집.
나는 차를 세워둔 큰 길로 나왔다. 이 동네에는 차를 세워둘 공간이 없었다. 모든 집이 개인 차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집 앞에 세워둔 차가 없어서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왜 나와 있어?”
신중이 녀석은 차 안이 비좁았는지 밖에 나와 있었다.
“좁잖아.”
“그나저나 찾았어?”
“어.”
파일의 내용은 정확했다. 우리는 차 안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차를 기다렸다.
“저 차인가 본데.”
깜빡이를 켜고 한대의 차가 접근했다. 우리는 번호판을 확인했다. 자료에 써 있는 번호의 차량이 맞았다. 유혜원이 이용하는 소속사 차량이었다.
[09:30 소속사 차량 도착 후 집 출발] [10:20 경기도 부천에서 드라마 야외 촬영] [14:00 서울 을지로 국제 인권협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인권 보호 명예대사 수여식 참석] [17:00 서울 S시네마 영화 홍보를 위한 팬 사인회 참석] [18:35 S대학 병원 백혈병 어린이 방문] [20:00 N호텔에서 S일보 45주년 만찬 참석] [22:00 귀가]
그녀의 오늘의 스케줄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잠시 후 소속사 차량은 다시 큰길로 나왔다. 진한 썬팅 때문에 안은 보이지 않았다.
“저 차에 타고 있겠지?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따라 가자.”
우리는 그 차를 따라 가지 시작했다. 일단은 이 내용이 확실한지 확인 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 미션의 완료 시 간은 오늘 자정까지였다. 나는 자정이 지나기 전에 그녀를 죽여야 했다. 그들이 보내준 자료는 아주 자세했다. 나 는 이를 토대로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오늘 밤 10시 이후에 집에 오게 된다. 그리고 집에는 그녀 혼자였다. 그 때가 기회였다. 자료에 써 있는 대로라면 들키지 않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위험부담은 컸다. 집에는 사설 방범장치가 되어 있었고 집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동네는 경찰이 자주 순찰을 도는 모양이었다. 자료에는 CCTV위치와 경찰 순찰 시간까지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었다. 충분히 들키지 않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케줄대로 행동하는지가 문제였다. 만약 그녀가 밤 10시에 집에 오지 않는다면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단 스케줄대로 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
김 형사는 대륜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병원 측은 환자의 신변 보호를 명목으로 공개를 하지 않았다. 수사를 목적으로 라고 해도 절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병원 측의 관계자라는 남자도 꽤나 사람들을 다루는 데는 이골이 난 듯싶어 보였다. 고위층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에서 총무과장을 맡고 있는 남자라서 뒤도 꽤 든든한 모양이었다.
결국 김 형사는 포기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반장이 생각한 것은 다른 방법이었다.
[사이버 수사대]
오 반장은 이런 팻말이 붙어 있는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기계들의 낮은 소음들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에어컨이 가동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와 모니터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인지 방안은 후덕지근 했다.
전화벨이 열심히 울리고 있었지만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 반장은 구석으로 향했다. 칸막이와 캐비닛으로 둘러져 사무실안에 작은 방처럼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공간에는 몇 대의 컴퓨터에 둘러싸여 있는 남자가 보였다. 모니터 한대에는 남녀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서로 뒹굴어 대고 있었다. 다행히도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다른 모니터는 계속해서 무의하게 보이는 숫자들이 화면을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운데 앉아 있는 남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모니터를 보며 무의미하게 마우스를 클릭 하고 있었다.
“음~”
아무리 뒤에서 서서 기다려도 자신을 보아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오 반장은 헛기침을 한번 했다. 남자는 귀찮은 듯 고개를 돌리지 않고 목과 등을 뒤로 꺾고는 뒤집어 쳐다보았다.
“엇 오 반장님!”
그제야 남자는 자리에 일어나 제대로 오 반장에게 인사를 했다.
“바빠?”
“아니 별로요.”
이 남자는 이우성이었다. 나이는 22세인 천재 해커였다. 15살에 국내 유명 은행 몇 개를 해킹해 수 조원을 빼돌리고 30시간이나 업무를 마비시킨 적이 있었다. 본인이 직접 범행 사실을 실토하고 자수하지 않았다면 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유명해지려고 했던 장난이었다고 밝혔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보호관찰로 끝났다. 그 후로 그는 자문 역할로 사이버 수사대 일을 돕고 있었다. 물론 직업은 모 인터넷 보안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연봉이 수억이라는 말만 돌았다.
“뭐 부탁 할게 하나 있어서?”
“뭔데요?”
“대륜 병원의 수술 데이터와 영환실 이용 데이터 보고 싶어서.”
“대륜 병원이요?”
“어.”
“거기 한번 가봤었는데 좋더군요. 전에 맹장 수술 받을 때….”
“그 병원 비싸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전 돈은 잘 몰라서요.”
오 반장은 할말이 없었다. 대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이우성은 눈은 모니터에 가 있었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오 반장 눈에는 그냥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 적 거 뽑으면 되요? 1년치 뽑아 드려요?”
“벌써 된 거야?”
“아. 네. 여기 보안장치 프로그램 제가 만든 툴을 이용한거라….”
오 반장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훔. 집에 자물쇠 있잖아요. 그 자물쇠를 제가 달아준거라구요. 물론 제가 열쇠도 하나 가지고 있는거고요.”
오 반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이번 주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새벽까지 것만 뽑아주면 돼.”
“네.”
[위잉!]
옆에 놓여져 있는 프린터가 낮은 기계음을 내더니 이내 A4용지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거 가져가시면 되요.”
오 반장은 10여장의 출력물을 집어 들었다.
“다른 거 필요 없으세요?”
“어. 매번 고마워.”
“뭘요.”
“그건 그렇고 이번에 유출된 서채림 몰카 안 필요하세요?”
“서채림?”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는 탤런트 서채림의 성행위 몰카가 유출되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떠돌았었다. 사전에 사이버 수사대에서 틀어막아 유출은 안 되었지만 말이다.
“아 그렇군. 필요하면 연락할게. 김 형사가 좋아하려나….”
오 반장은 출력물을 들고 다시 강력 5반으로 돌아와 살펴보고 시작했다. 오 반장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삐리리~]
오 반장은 핸드폰이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김 형사였다.
“반장님! 접니다.”
“어. 그래? 어디야?”
“대륜 병원이요. 제가 간호사들을 통해 알아보려고 했거든요. 쉽지가 않네요.”
“이제 안 알아 봐도 돼.”
“왜요?”
“방금 알아 봤거든.”
“어떻게요?”
“우성이.”
“네? 병원 데이터 해킹 한거에요? 그거는 범죄라고요. 엄연히 수색 영장을 가지고 검사해야 하는 거란 말입니 다.”
“흠. 언제부터 김 형사가 법 지켰다고 그래?”
“아니. 경찰이 법을 지키지 누가 지켜욧!”
“알았어. 알았으니깐 그만 하구. 어차피 우성이 녀석이 한거면 아무도 몰라.”
“그건 그렇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자료를 살펴봤거든. 심폐 이식을 받은 것은 윤 총리 아들이 확실해. 수술 시간은 금요일 01:50분에서 시작해서 04:45분에 끝났어. 수술자는 미국에서 초빙 해 온 저명한 외과 의사 케빈이라는 사람이구. 그 의사는 수술 후 바로 출국 했고.”
“그리고 목요일 밤 11시부터 금요일 낮 12시까지 대륜병원 영환실을 이용한 사람들 리스트를 살펴봤지만 전혀 없어. 피이식자 자료 같은 게 전혀 없어.”
“훔. 이야기가 좀 되가네요. 피이식자가 영환실을 이용할 수가 없었을 테니. 자료가 있을 리가 없겠죠.”
“그렇지. 피해자 남득구의 몸에서 폐와 심장을 적출하는데 걸린 시간이 대략 한 시간 정도라고 치면 약 03시. 공원까지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15분. 03:15 그리고 거기서 사체를 다시 그렇게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정도라 치면 03시 45분.”
“그렇게 되면 범행 시각이 얼추 비슷하네요? 죽은 남득구가 마취 상태인 이유도 그리고 상처들에 시간의 차이 가 있는 이유도 설명이 되고요. 그리고 수술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그렇게 사체를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거구 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는 거지.”
“뭔가 재미있게 되어가네요.”
김 형사는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일단 제가 청으로 들어갈게요.”
“그래.”
김 형사는 핸드폰을 끊었다.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오 반장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들어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형사는 지하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앗 죄송합니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다시 열었다.
“밑으로 내려가시나요?”
“네.”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두 명 모두 건장했고 어깨가 딱 부러진 것이 운동 좀 한 몸이었다. 한 명은 자신보다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였고 다른 한 명은 20대 초반정도로 보였다. 어려 보였다.
“몇 층이시지요?”
김 형사가 물었다.
“3층입니다.”
젊은 남자가 대답했다. 김 형사는 지하 3층 버튼을 눌렀다. 김 형사의 차도 지하 3층에 있었다.
[위잉!]
엘리베이터가 특유의 기계음을 내며 하강을 시작했다. 김 형사는 약간 긴장했다. 형사 특유의 감일지 모르겠지만 두 남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띵!]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지하 3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두 남자는 먼저 걸어 나갔다. 두 남자는 김 형사와는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김 형사는 잠시 멀어져가는 두 남자를 쳐다보다가 자신의 차로 향했다.
“괜히 긴장했네.”
김 형사는 차에 올라타고 차를 출발 시켰다. 그는 곧장 경찰청으로 향했다.
그 뒤를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쫓고 있는지 김 형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일단은 따라 가시죠. 아직 시간이 아닙니다.”
“네.”
승용차에는 방금 김 형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두 남자가 타고 있었다. 보조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의 얼굴에는 얇은 미소가 여전히 지어져 있었다.
[2010년 7월 24일 17:55 서울시 종로구 S시네마]
유혜원은 한 TV 연예 프로 리포터와 인터뷰 중이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뭔가요?”
“네? 뭐라고 하셨죠?”
“잠깐만요.”
유혜원의 매니저가 잠시 끼어들었다.
“혜원씨? 오늘 왜 그래요? 어디 아프세요? 자꾸 시계만 보고….”
“아…아니에요.”
“아니 몸이 안 좋으시면 오늘 스케줄 조정을 하려고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시 시작하죠.”
유혜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얼굴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건 조금 다른 질문인데요. 유혜원씨 동생인 유선일군에 대한 질문이에요. 엄청난 천재잖아요. 어릴 때 동생 때문에 놀라거나 그런 일화 없으세요?”
“네. 그건 전에도 많이 이야기 한 거라.”
유혜원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진 것을 보고 리포터는 깜짝 놀랐다. 한번도 인터뷰 도중에 유혜원이 얼굴을 찌푸린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에 대한 내용은 안 물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유혜원은 조금은 냉담하게 대답했다.
“아. 네. 이 부분은 편집하죠. 그럼 이번 영화 잘 되길 바라면서 시청자 분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시면 이 자리를 빌려 말씀하세요.”
유혜원은 힘들게 인터뷰를 마친 그녀는 다음 스케줄을 위해 차에 올라탔다. 평소의 여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시간만 확인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예정대로 스케줄을 하고 있었다. 요구대로였다.
‘선일!’
선일이 보통 아이가 아니란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를 낳은 것은 자신이었다. 이것은 자연계의 법칙에 위배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선일과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선일이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점점 알아갔다. 그럴수록 점점 머릿속에는 의문이 점점 커져갔다.
‘이 아이는 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바로 이것이 그 의문이었다. 가끔 이야기 할 때마다 선일도 자주 이 질문을 하곤 했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곤 했다. 또한 그 아이는 항상 자신이 대답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묻곤 했다. 자신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선일이 궁금하게 생각 한 것 중에는 하나가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은 타인을 위해 왜 죽는 걸까요?”
그 아이가 물었던 질문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내에서 했던 질문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의 대답이었다. 평소에 선일의 질문에 그다지 대답을 하지 못했던 그녀가 오래간만에 답을 했었다. 하지만 선일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럼 어머니도 저를 위해서 죽을 수 있나요?”
선일의 물음이었다. 그 아이는 무표정하게 묻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대답 을….
“그럼.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단다.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대답을 들은 선일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아주 짧게 미소 지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낳은 이 아이가 그 때 지은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 밤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