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애 나이가 겨우 일곱 살이었죠.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저녁 늦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애는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겁에 질린 나머지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고, 9층과 10층 사이에 멈춘 엘리베이터 속에서 빠져나오려다 변을 당했습니다.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엘리베이터 문을 열 수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었죠. 사람이 극한 상황에 빠지면 초인적인 힘이 나오기도 한다는데, 그런 경우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공교롭게도 그 애가 하반신을 완전히 엘리베이터 밖에 내놓은 순간 전기가 들어왔고, 엘리베이터가 상승한 거죠. 119구조대가 도착했을 때엔 이미 그 애는 숨이 끊어진 후였답니다.
그 애의 어이없는 죽음은 TV뉴스로 보고되기도 했고, 엘리베이터가 모두 교체되는 소동을 겪고 1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잊혀져 갔었죠. 뉴스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 애의 하반신은 9층에서, 상반신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발견되었답니다.
엘리베이터는 가차없이 그 애의 연약한 몸뚱이를 끊어버린 겁니다. 목격한 사람들 얘기에 의하면, 그 애의 손톱이 거의 다 빠졌고, 엘리베이터 바닥은 그 애 손으로 피투성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더군요. 엘리베이터와 콘크리트 구조물에 몸뚱이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그 애는 손톱이 다 빠지도록 엘리베이터 바닥을 긁었던 겁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저 역시도 그 애가 죽었을 당시에는 엘리베이터 타는 게 두려워 11층에 비지땀을 흘리며 계단을 이용하며 이사를 할까 하는 고민까지 심각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교체되고 난 후로 한번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점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고, 1년이 지난 후에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녔죠.
적어도 그 일이 있기까지는요.
- 2 -
일이 생긴 건 작년 여름이었어요.
그 날 밤은 열대야로 밤늦도록 무더웠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답니다. 게다가 에어컨까지 고장났고, 전화로 부른 서비스기사는 퇴근했다는 이유로 다음날 방문하겠다는 말뿐이었지요. 결국 저와 아내는 선풍기 하나에 달라붙어 더위에 허덕이며 모기와 씨름해야 했어요.
“시원한 맥주라도 줌 사와 봐.”
참다 못한 저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고, 아내는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안 한다며 툴툴대면서도 맥주를 사러 나가더군요. 저는 뜨거워진 선풍기 바람을 쐬며 납량특집이랍시고 TV에서 틀어대는 재탕삼탕의 괴담 프로그램을 멍한 눈으로 보고 있었죠. 한데 이상하게도 아파트 앞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나간 아내가 30분이 지나도록 안 오는 거예요. 핸드폰도 두고 간 상태라 연락도 되지 않아 답답했고, 나중에는 슬금슬금 걱정이 되기 시작하더군요.
기다리다 못한 저는 아파트 앞으로 나가보기로 결심하고 현관을 나섰지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모기들이 극성스럽게 들러붙더군요. 저는 신경질적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댔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엘리베이터는 9층에서 꼼짝하지 않았지요. 1분이 넘게 기다렸지만, 엘리베이터 상단의 표시등은 여전히 ‘9’에 불이 들어와 있었어요. 그리고 가끔씩 알 수 없는 둔중한 소리만이 긍긍 울리며 올라왔답니다.
모르죠. 무슨 수리를 하는 건지도... 한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한쪽 엘리베이터가 수리를 한다면 마땅히 다른 쪽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시켜야 되잖아요. 한데, 다른 쪽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휴식중이었어요. 버튼을 눌러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구요. 이 아파트는 워낙 작은 규모의 아파트라 평소에 엘리베이터 두 대 중 한 대는 ‘휴식중’이라는 표시를 걸어두고 작동시키지 않거든요. 공동전기를 아끼기 위해서라나요.
계단으로 내려가 볼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을 즈음,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9, 10, 11.
팅.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어요.
문이 열렸을 때, 저는 질겁을 했어요. 엘리베이터는 구토물로 여기저기가 얼룩져 있었고, 아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 걸레조각처럼 한쪽에 구겨져 쓰러져 있더군요. 아내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고, 배가 터진 그 봉지에서 빠져나온 캔맥주가 깨진 귀퉁이로 거품을 울럭이며 쏟아내고 있었어요.
“여보, 정신 차려! 여보!”
엘리베이터에서 아내를 끄집어내어 뺨을 두드리고 입에 공기를 불어넣었죠.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누군가 위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지,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가더군요. 그 때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걸 볼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문 오른쪽에 난 쪽유리로 뭔가가 언뜻 지나갔어요.
그것도 엘리베이터 밑으로 말이죠. 순식간의 일이라서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었고,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뭔가가 언뜻 보인 것만은 정말이에요.
그 때 아내가 쿨럭 기침을 하며 정신을 차렸어요.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내를 부축해서 아파트로 돌아와 저는 아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어요. 아파트로 돌아온 아내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고, 아내는 그 일에 대해 대답하지 않더군요. 한참을 종용한 후에야 겨우 한다는 말이...
“우리... 이사 가.”
한 마디였죠.
그러다 문득 아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성추행이라도 당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운을 떠봤지만, 아내는 완강하게 고개를 젓더군요.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고함을 지르려다 아내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서 그냥 침실에 두고 거실에 나와 엘리베이터에서 수습해 가져온 온전한 캔맥주 하나를 따고 들이켰어요. 그것마저도 뜨뜻미지근해져서 영 먹을 맛이 안 나더군요. 캔을 내려놓는데, 형광등 불빛에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건 맥주캔 윗부분 옆면에 나 있는 선명하게 긁힌 자국이었어요.
- 3 -
그 날 밤 아내는 연신 가위를 눌리는지, 자면서도 계속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를 해댔어요. 안 그래도 더운 날, 아내마저 신경 쓰이게 하니, 잠이 오지 않더군요. 그 중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하나 있었어요.
“우... 오지 마.”
하는 소리. 도대체 아내는 엘리베이터에서 뭘 본 것이었을까요. 굳이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지요. 다음날 저 역시 아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 다음날 아내는 일찍 일어나 나갔다 왔어요. 손에는 교차로니, 벼룩시장 같은 생활정보신문이 들려 있더군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녀왔을까요. 물론 아닌 모양이었어요. 아내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거든요.
그리고는 아파트 광고를 유심히 보며 이 곳 저 곳 전화를 걸기 시작하더군요. 정말 이사를 갈 작정인 모양이었어요.
출근하는 저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말이죠.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이사까지 가려고 애를 쓰나 싶어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저한테는 묻지도 않고, 집을 알아본다는 게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충격이 컸겠거니 하고 싶어 그냥 이해하기로 했어요.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혼잣말처럼 그러더군요.
“엘리베이터... 타지 마.”
코웃음을 치며 아파트를 나섰지만, 막상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니, 환한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찜찜하더군요. 엘리베이터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잘 작동되고 있었죠. 버튼을 누르고 좀 있으니, 문이 열렸어요. 청소 아줌마가 청소를 했는지, 안을 깨끗했구요.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혹시나 급작스럽게 추락을 하거나, 멈추어버리지는 않을까 긴장이 되었죠.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적어도 그 날 아침에는요. 일은 그 날 밤에 터졌죠.
그 날 저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풀었어요. 술이 들어가니, 아내 걱정도 술기운에 묻혀 버리더군요. 결국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아파트로 돌아왔고, 저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답니다.
구웅 하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어요.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죠.
엘리베이터가 6층과 7층을 지날 때였어요.
“그으으응.”
조용히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둔중하게 끌리는 소리를 내며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어요. 잠깐이었지만,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만큼 긴장이 되더군요.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는 거예요.
7...
8... 9...
엘리베이터가 9층과 10층을 지날 때,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추었어요.
- 4 -
불이 켜진 채인 걸로 보아 정전도 아니었죠. 저는 어찌해야할지 망설였어요. 그런데, 서서히 엘리베이터가 진동하기 시작한 거예요.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곧장 추락할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었어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엘리베이터에 그대로 서 있었겠어요. 어떻게든 나가보려고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죠. 무척이나 안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을 안간힘을 쓰며 겨우 열고 보니, 엘리베이터는 9층과 10층 사이에 서 있었어요. 저는 9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반신을 밖으로 내놓았죠. 그 때였어요.
우당탕탕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여보오!’하는 외마디 비명 소리를 들은 건. 누군가 제 다리를 거세게 끌어당겼고, 제 몸이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가 구웅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가더군요. 하마터면 정말 엘리베이터에 끼일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죠.
정신이 들어보니, 제 옆에서 제 아내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더군요.
계단을 통해 11층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도 아내는 아무 말도 없었어요. 하지만 저 역시 그 날의 경험으로 이사를 가는 데에는 동의를 하게 되었죠. 아니, 사실 그 다음날 아파트 경비실에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 같다고 말해주러 갔다가 겪게 된 일 때문이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습니다.
“저기... 지금 가동되고 있는 엘리베이터 있죠?”
저는 다소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경비에게 어젯밤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아무 이유 없이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과 당장 떨어질 듯이 진동하던 것.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다 엘리베이터가 상승하는 바람에 죽을뻔 한 것까지.
“안 그래두 요새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거 같단 사람들이 많어서 어제 점검했그든요. 근디 아무 이상 없든디... 어제 몇 시쯤 그런 일이 있었쥬?”
그러면서 경비는 어젯밤 엘리베이터에 달려 있던 CCTV 녹화된 화면을 돌려보기 시작했어요. 녹화된 화면 시간을 거슬러 제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장면에 이르렀어요. 엘리베이터에 제가 오르고, 제가 11층 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보였죠. 엘리베이터가 상승하기 시작하고, 9층에서 10층을 지날 즈음 저는 긴장했어요.
한데 놀라웠던 건 분명 아무 이유 없이 멈추었다고 믿었던 엘리베이터가 사실은 저 때문에 멈추었다는 겁니다. CCTV 화면으로는 분명히 제가 비상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를 멈추게 하는 거였습니다.
그 후 제가 겪었던 극심한 흔들림도 화면상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았어요. 엘리베이터가 그렇게 진동했다면 거기에 달려 있던 CCTV 역시 진동이 없을 리 없었겠죠.
한데, 화면상으로는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 일이 없었고, 그저 뭔가에 홀린 듯한 동작으로 제가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밖으로 하반신을 내밀 뿐이었어요.
한 달 후에 이사를 했어요. 아내는 이사하던 날에도 이삿짐센터를 불렀고, 엘리베이터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어요. 이윽고 이삿짐센터 트럭 뒷좌석에 올라 우리가 그 동안 살았던 아파트가 멀어지면서 아내가 입을 열었더군요. 그 말로 인해 저 역시 그 후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게 되었구요.
- 5 -
“당신 맥주 사러 갔던 그 날... 정말 난 봤어.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때, 스믈스믈 기어올라오던 작은 손... 정말 나한테 기어왔었어.
그리고 그 다음날 당신이 돌아올 즈음 난 늦어지는 당신이 걱정 되서 밖으로 나와 있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당신을 기다렸지만, 차마 타지는 못하겠더라구... 그렇게 한 30분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다 갑자기 9층에서 멈추는 걸 보고 난 알았어.
무슨 일이 났다고... 계단을 뛰어내려갔을 때 막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는 당신의 다리가 보였어.
근데 내 눈에 보였던 당신의 다리만은 아니었어.
난 분명 봤어.
당신의 다리를 붙들고 있는 작은 손과, 그 밑으로 늘어진 가느다란 팔...“
제가 질겁을 했던 건 그 말을 하는 아내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오랫동안 제 발목에는 선명한 멍자국이 가느다란 줄로 가닥가닥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