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비류 작성일 06.08.23 0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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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에서 1등을 했다는 운영자님의 쪽지를 받고 무척 기분이

좋더군요. 그리고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도 무척

감사하구요. 이번에 올릴 내용은 이벤트에서 당선(?)된 내용의

뒷 이야기 입니다. (편의상 반말로 하겠습니다.)



그녀에게는...
내가 알 수 없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내가 군을 제대했을 때, 그녀는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미용일을 시작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렇지만, 지금보다 10여년 전인 그 때에는 미용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좋질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시선들이 싫었고 그녀가
그런 취급을 당할 것이 싫었다. 살짝 반대 의견을 말했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강경하게 그 일을 고집했고 결국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 정도가 지났다.
군대를 제대할 때부터 느꼈지만 그녀의 술버릇이 나빠져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 몰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았고 툭하면 외박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단지 집에 들어가기 싫기 때문에, 어머니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만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그녀의 모습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날이 왔다.

당시 나도 대학을 관두고 Pc방 설치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20대 중반에
어린 나이로 시작한 것이지만 그런대로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사실 웬만한
사람이 벌 1년치 봉급을 한달이면 벌곤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동거에 들어갔다. 그녀도 일을 하고 나도
일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식사나 빨래 같은 일은 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손에 물을 묻히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괜찮은 모델에 장기 투숙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더 좋아지면
호텔로 옮길 생각도 했었다. 그게 내가 그녀를 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급전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술 주정을 하거나, 다른 여자에게
시선을 돌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 이상한 생각에 그녀를 보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증오스럽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섬칫한 마음에 말을
걸어보려 하면... 그녀는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 왜... 그래? 내가 무슨 잘못했어? "

이렇게 물으면... 나를 외면한 체, 이렇게 대꾸하는 그녀.

" 아니. 피곤해서 그래. "

그럼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것이 후회가 된다. 그녀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생각했었어야 하는데...



그녀는 점점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내게 거짓말을 하고 나도 모르는 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고 곧잘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불안해 졌다. 일의 특성상 지방으로 출장을 가거나,
늦게 퇴근하거나, 아니 일찍 퇴근해도 마찬가지였다. 늘 그녀를 기다려야
했다. 연락은 항상 되지 않고... 이른 아침이나 새벽이 되서야 그녀는
들어왔다. 혹은 연락됐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그녀에게 집착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역시 내게 집착했다.
잠든 내 소지품을 뒤지고, 옷가지를 뒤지며 혹시라도 있을 다른 여자의
흔적을 찾았다. 당시 난 별명이 일편단심 민들레라 불리울 정도로 그녀에게
미쳐 있었다. 다른 여자는 '고깃덩이'라고 부를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게 집착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갑자기 그녀가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직장, 미용실에 찾아가 보았지만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집에 찾아가고 싶어도 그녀가 전부터
만류했던 터라... 그녀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 찾아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그녀가 돌아왔다.

" 헤어져. "

돌아와서 딱 한 마디... 이별을 내게 말하는 그녀.
나는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문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달래보려고 별 수단,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결국 난 미친듯이 화를 냈고 그제야 그녀가 이유를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 집에서 점을 봤는데, 너랑 헤어지래. "

... 그녀의 집에서는 나랑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점을
보고 헤어지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냉정하게 짐을 챙겨서 나가버렸다.



그 뒤, 내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큰 돈을 벌고 있었으니...
내가 하지 못할 일이란 없었다. 여자를 사고, 노름을 하고, 약에도 취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녀를 잊기란 쉽지 않았다. 사장이 그런 형편이니...
회사가 잘 돌아갈리도 만무했다. 자재비를 쓰는데 공사를 대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결국 쉽게 성장한 내 사무실은 쉽게, 그리고 빠르게
망해갔다. 그녀가 떠난 지, 6개월 만에 내 수중에는 단 돈 10만원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의 여자까지 건들여서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말았다. 결국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술집 아가씨의 집에서 빌붙어 사는
지경에까지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였다.

" 흑흑... 용서해줘. "

첫 마디가 이거였다. 8개월 만에 만난 그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약간 통통한 편이어서 치마를 잘 입지 않았는데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늘씬한 다리를 들어내며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외모 역시
성숙해 있었다. 술집에 앉아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약 2달간 살았다고 했다.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른체,
그녀는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를 늘여놓았다. 잠자리 이야기까지 하는데...
순간 난 이 여자가 미친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헤어진 남자에게
용서를 구하러 와서, 다른 남자와 잠자리 한 이야기, 같이 산 이야기를
하겠는가?

" 너... 미친 년이냐? "

나는 정말 믿을 수 없는 그녀의 행실에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닌... 타인을 대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 그 사람한테 2백만원을 카드에서 뽑아서 꿔줬는데... 못 받고 있어. "

내 질문에 뜬금없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난 어처구니 없었지만...
일단 그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는 사람 동원해서 내가
받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해서 뭐하지만...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아서 한다.
그 날 밤... 그녀는 나와 잠자리를 원했고 둘은 허름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자세한 설명을 하기는 그렇고... 결론 부터 말하자면...
이상했다. 수줍어서 하지도 않던 짓까지 하고 관계 중에는 음담패설을 늘어
놓았다. 마치 색에 미친... 한 마디로 색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남자인 만큼 그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정말 이상했다.
쾌감 속에서 나는 내내 생각했다.

' 너... 결국 신들린거니? '




약 다섯 달 후, 그녀가 또 내 곁을 떠났다. 역시 이유가 없었다.
카드에서 2백만원을 뽑아 꿰준 돈은 받아냈다. 그러나 카드빚은 오히려
8백만원 정도로 늘어났다. 다섯 달 동안 그녀는... 정말로 미친듯이
카드를 썼다. 아무리 말리고 화를 내도 그녀는 쓰고 또 썼다.
그리고 내 곁을 떠났다.

그렇게 그녀는 수시로 나를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대체 몇 번이나 그렇게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점은... 그녀가 떠나고 돌아왔을 때, 늘 다른 모습이었다.
외모부터 성격, 성적 취향, 타인을 대하는 태도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중인격장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확연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이번에는 이별의 기간이 좀 길었었다. 약 1년 2~3개월 정도?
돌아온 그녀는 그런대로 내가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지 기운이 너무 없어,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

그녀는 그 좋아하던 술도 마다하고 내가 자주 가던 인사동의 전통 찻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그녀, 그녀를 보는 것이 너무도
좋아서 병맥주를 시켰고 그녀는 차를 시켰다.
한참을 지난 추억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 나 6개월 정도 절에 가 있었어. "

" 절? "

" 응... "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미용 강사로 있는 유부남과 약 6개월 동안 같이 살았다고 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찾아내서 그 자식을 패고 그녀를 집으로 돌려 보냈었다.
그녀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찻집에서 만났고 그렇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후... 난 그녀를 만나지 못했었다.
돌아온 그녀를 본 그녀의 부모님은 막내 딸의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했었다고 했다. 알콜 중독 증상에 카드빚은 약 4천만원...
몸 각 부위는 정상적인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쇄약해져 있었다.
낙태 수술도 10여 차례나 했다고 했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를 결단을 내려야
했다. 외할머니가 내림굿을 받지 않았고, 그녀의 어머니도 내림굿을 받지
않았다. 결국... 그녀에게 신이 내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녀는 그 길로 하루에 딱 두 차례 버스가 들어오는 정말 인적이 드문
절로 보내졌다. 그 절에는 비구니와 스님 한 분이 살았는데...
귀신을 쫓고 더 이상 의학적으로 치료되지 않는 사람을 치료한다고 했다.

" 두 분(비구니하고 스님) 보는 순간... 눈물이 막 나오는 거야. "

그녀는 그 두 사람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절에 간 다음 날부터 치료가 시작 되었다.

역시나 그녀는 신이 들린 상태였다. 스님과 비구니는 보는 순간부터 알았다고
했다. 그녀가 절에 갔을 때는 귀신 셋이 씌운 상태였다고 했다.
남자가 하나, 여자가 둘... 남자는 강간과 살인을 밥먹듯이 하는 고약한
놈이라고 했다. 여자 하나는 남편이 자는 틈에 시동생이랑 몰래 관계를 맺을
정도로 색녀라고 했다. (또 다른 여자는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귀신을 쫓는 의식이 뭐였는지는 그녀도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쇄약해진 각 부위를 치료 받았고 그녀는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았다고 했다.

" 앞으로는 너 아프지 않게 할게. 나 받아줄 거지?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녀가 또 다시 떠났다.
다시 돌아온지 한 달이 지나지도 않았을 시점이었다. 언제나처럼 간다온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 단지 내가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던 것은...
그녀가 사라지기 하루 전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초리...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달라져 있었다. 갑자기... 나를 증오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때로는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랬다. 그녀에게는 또 무언가가 씌운 것이었다.

' 울음... 우는 귀신이 제일 무섭지. 네가 바로 우는 귀신상이야.
모든 귀신이 네 앞에서는 힘을 못 써. '

언젠가 했던 중년 여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녀에게 귀신이 씌우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인 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물론 이런 생각도 했었다. 나랑 같이 있는데... 왜 귀신이 씌우는 것일까?
내가 정말 무서운 귀신이라면 귀신이 범접하지 못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그 남자랑은 영영 맺어질 수 없을 게야. '

그녀가 나를 떠나기 이틀 전, 여전히 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 말이었다. 스님이 말했다면서... 그 스님이 틀렸다면서...
그리고 그 다음 날, 그녀는 떠났다.
또 다시 증오와 두려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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