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각오하고 쓰는 민족사학 비판(2) - 환인, 환웅

백승길 작성일 06.12.28 00: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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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 및 환웅에 대한 현재 학계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신화는 삼국유사, 제왕운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 및 환웅은 신화답게 신성(神性)을 띄고 있죠.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성(神性)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환인은 동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한 지고의 존재인 '天'임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환웅은 그러한 환인의 아들, 곧 '天子'입니다. 이러한 환웅이 삼위태백 지방을 다스리기 위해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 '신시'를 열고 세상을 다스립니다. 곰과 호랑이가 있어 사람이 되길 원해 환웅이 그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곰은 사람이 되어 환웅과 혼인하였고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곰과 환웅의 아들이 곧 단군, 즉 '天孫'인 것입니다.

이상이 단군 신화에서 환인과 환웅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이에 대한 주류 사학과 민족 사학의 해석을 살펴보죠.

주류 사학계에서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환인은 '天', 즉 하늘을 의미하며 그의 아들인 환웅은 하늘의 아들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천강족입니다. 천강족이란 곧 우수한 무력이나 기술력을 갖춘 외부 부족으로 천강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로부터 유입되어 토착 부족을 정복 혹은 흡수한 부족입니다. 곧 환웅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외부로부터 우수한 무력이나 기술력을 바탕으로 삼위태백이라는 지방으로 공격 혹은 이주해온 부족을 의미합니다. 곰과 호랑이는 토템 혹은 부족의 상징으로, 곰, 호랑이라 불리는 두 부족이 환웅 세력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곰은 환웅 부족과 결합 혹은 흡수되어 하나가 된 것이고 호랑이는 뒤섞이지 못하고 쫓겨간, 혹은 멸망한 부족입니다.

이러한 신화 형태는 우리 민족의 신화 전반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천강족 해모수와 하백녀 유화 사이에 태어나는 주몽, 천강족 박혁거세와 그의 아내 김알지, 천강족 김수로왕과 해외인 허황옥의 경우까지.. 이러한 전반적인 보편성은 단군신화를 유치한 신화의 영역이 아닌 역사를 반영한 것으로서 우리 학계에서 해석하도록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단군신화에 대한 민족사학계의 해석을 보죠. 민족사학계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만을 놓고 해석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삼국유사를 기본으로 하여 한단고기, 단군세기 등을 포함시켜 해석을 풀어놓습니다. 그러나 기본 골격 자체는 삼국유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해석의 차이점은 단군신화를 신화보다 역사에 가깝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환인을 '환국'의 지배자 환인으로 해석, 그 역대 환인의 이름과 환국의 역년까지 밝혀놓고 있습니다. 환웅 역시 '신시'의 지배자로 역대 환웅의 이름과 그 재위년, 사적까지 상세하게 밝혀놓았습니다. 단군의 탄생은 곰, 호랑이가 등장하는 신화가 아닌 마지막 환웅의 후계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들 두 해석의 관점을 비교 비판해보겠습니다. 먼저 주류 학계의 해석은 세계 학계 혹은 우리나라 학계 및 역사적 사실에 철저하게 입각하여 이루어집니다. 단군 신화를 역사적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여 각각의 키워드를 다른 역사적 신화와 비교 분석하여 신화와 역사를 직접적으로 비교 대입하고 있죠. 이러한 해석은 신화의 원형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역사를 대입시킵니다. 그래서 주류 학계의 해석은 상세한 사적을 소개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민족사학계의 해석은 보편적, 실증적인 역사관과는 철저하게 동떨어져있습니다. 한단고기를 비롯한 몇몇 실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사료를 바탕으로 단군 신화를 신화가 아닌 역사의 단계로 단숨에 끌어올려 놓습니다. 여전히 신화적인 키워드는 일부 존재하나 그러한 신화적 키워드조차 여러가지 상세한 역년이나 사적의 나열을 통해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죠.

이렇게 나열되는 사적들은 실증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적합하게 부합되는 다른 사서들이 충분히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은' 왕조의 경우처럼 어느날 갑자기 유물이 발견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역사라는 것이 유물, 유적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유물, 유적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사료의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모순되는 말입니다. 게다가 그 사료의 실체마저 의심스러운데야 어떻게 그 사료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민족 사학계가 주장하는 또하나의 중요한 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 민족이 고대에는 전세계를 지배한 최초이자 유일한 문명국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헛소리입니다. 물론 어떤 나라, 민족이 인류의 조상, 인류 문명의 조상이 되기를 꿈꾸지 않겠냐마는, 그렇다고 현실적인 가능성도 전무하고 실증적인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 주장을 펼쳐놓는 것은 나치 독일의 게르만 제일주의에 다를바가 없습니다.

민족 사학계의 '한민족 세계최고 문명설'을 어느정도 설득력있게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세계제국이 한민족, 더 나아가 동이족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전제를 가질 경우입니다. 한민족의 조상을 유목민족으로 보고 고대에 거의 전 세계적인 규모의 느슨한 통합력을 갖춘 유목민족 제국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죠. 이는 가능성은 일부 존재할 수 있겠으나 역시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유목민족이 세계를 지배할 만한 무력을 갖추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마술입니다. 그러나 상고사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유목민족의 기마술이 충분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유는 등자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등자는 말에 탔을 때 발을 받쳐주는 발판이나 고리를 말합니다. 등자가 없는 기마병은 손잡이없이 칼날만 들고 싸우는 보병과 같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기마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마당에 뛰어난 기마궁술, 기마검술을 익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결국 민족 사학계의 한민족 세계 최고 문명설은 절대 실현이 불가능한 헛소리입니다. 한민족 상고대 강대국설은 가능성이나마 있을 수 있지만 세계 최고 문명설은 그야말로 자민족 중심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환인 및 환웅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현재 주류 학계의 해석은 무난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무난한 정도일 뿐이며 조금 더 여러가지로 부풀린 해석을 해본다고 해서 과연 문제가 될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환인의 세대를 쓰는 것은 정말 신빙성 없는 문제이겠으나 환웅에 이르러서는 역대 환웅을 쓰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환웅족으로 대표되는 지배세력의 통치가 얼마간 이루어졌다고 해석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민족사학계처럼 세계최고 문명국 '환국'이나 동아시아 최강대국 '신시' 등의 주장은 섣불리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많겠으나 참고해야 할 부분은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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