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에 대한 나의 기억 -3- 끝

엔초비 작성일 07.06.24 06: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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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아 입기 귀찮아서 근무복을 그대로 입고 잤는데 근무복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 50분. 시간을 확인하는 동시에 불침번을 서던 후임녀석이 저를 깨우려고 들어오더군요. 대충 세수를 하고 세면실 거울을 들려다 보며 끔찍한 꿈에대한 여운에 몸서리쳤습니다. 뭔가 암울하고 불안기운이 심장소리에 맞춰 핏줄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듯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어두운 복도를 내려와 남은근무를 서기위해 상황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음날 근무가 끝나고 총알같이 내무반에 가서 티비좀 보다가 자고 있는데 고참이 깨우더군요.


고참: 00야. 오늘 지방청에서 FTX(모의 전술 훈련정도? 전경들의 FTX는 랜덤으로 상황을 전해주고 그에 맞는 장비를 빠른시간내에 정확히 챙겨 출동하는 과정을 체크합니다.) 점검나온다는데 출동나가면 정문에 근무 설 사람이 없다. 밤새서 근무한거 아는데 진짜 근무설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고생 좀 하자. (출동이 걸리면 인원이 부족해서 근무서던 사람까지 전부 나갑니다.)

   나: (눈을 비비벼)아오~ 얼마나 걸립니까?

고참: 그냥 나가서 장비만 체크하고 들어오는 거니까 20분 정도 걸릴꺼야. 잠깐만 서있으면돼.

   나: 출동은 언제 걸린답니까?

고참: 1~2시 사이에 건다니까. 넌 자고 있다가 출동벨 울리면 내려가서 근무 서면돼. 쏘리~~! ㅋㅋㅋㅋ

   나: 아~ 아닙니다. 그럼 자다가 벨울리면 내려가겠습니다.


 제대 2개월 남은 고참도 출동에 근무에 잦은 사역까지 온갖 고생 다하는데 혼자 자빠져 자고 있기도 미안하고 또 고참이 하라는데 제가 안하면 어쩌겠습니까.ㅋㅋㅋ 까라면 까야죠~ 그렇게 다시누운지 얼마 되지 않아 출동벨이 울렸습니다. 조직폭력배 검거로 걸리더군요. 솔직히 조직폭력배를 저희가 어떻게 검거한다고 이런 훈련을 하는지 참 -0-;; 아무튼 저는 주섬주섬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정문근무를 서기위해 내려갔습니다. 정문근무도 2명이서 서는건데 혼자서 방문자들 안내하랴 차들 주차시키랴 정신없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였습니다. 경찰서 입구에 형사봉고차 급하게 스더니 곧 차량안에서 형사분 3분이 수갑을 찬 남자를 데리고 내렸습니다. 저는 무슨일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현행범을 연행해 오는가 보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행이 제앞을 지나가는 순간에 수갑을 찬 남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그 순간 온몸에 가시바늘이 돋아 나는 듯 했습니다. 수갑을 차고 담담표정으로 걸어가던 남자는 어젯밤 저와 함께 담배를 폈던 죽은 여자의 남자친구 였습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남자가 저를 향애 다급한듯 "저기요! 저기요!" 하고 외쳤지만 형사들에게 등살을 떠밀려 연행되었습니다. 저는 그 짧은 순간에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습니다. 어젯밤 컴컴했던 그 공간에 저는 살인범과 단둘이 있었던 것입니다. 살인이 일어난 택시와 살해당한 그녀의 귀신(혹은 헛것), 그리고 그녀를 살해한 남자까지 그 모든것이 어젯밤 저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글을 쓰는동안 그때의 기분이 다시 느껴지네요.


 범인이 밝혀지면 자기손으로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며 줄 담배를 폈던 남자. 정말 너무도 기가 막히고 가증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아마 그때 줄 담배를 펴댔던 이유는 초조했기 때문이겠죠. 생각 할수록 더 소름이 돋는건 그남자 제 이름까지 봤다는 겁니다. 한참을 페닉 상태로 멍하니 서있는데 남자를 연행하던 형사를 뒤로 천천히 따라오던 강력수사팀장님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미처 경례를 할 생각도 하지못했습니다.


강력수사팀장: 뭐야? 저 사람 아는 사람이야? 방금 저놈이 너 부른거지?

               나:(저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성을 되찾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처음보는 사람입니다.

강력수사팀장: 허허허허허. 위험한 놈이다. 저놈. 허허허허허~~ 그래 더운데 수고가 많다. 계속 수고해라.


 강력수사팀장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형사들을 따라갔습니다. 저는 그렇게 제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그 남자. 아니 살인범을 멍하니 한참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지금도 늦은 시간 집으로 귀가하는 길, 외딴곳에 홀로 주차되 있는 차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살아나고는 합니다.


 여기 까지가 제가 살면서 겪은 가장 소름끼쳤던 기억입니다. 그 이후 결과 보고서를 치며 알게된 사실인데 남자가 다음날 전화로 자수했다고 하네요. 애초에 택시기사에게 뒤집어 씌울 생각으로 택시까지 훔쳐 계획한 살인이였다고 합니다. 살인 동기는 여자친구의 외도이구요. 부족한 글솜씨로 그때 제가 느꼇던 그 공포감이 재대로 전해졌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무사히 제대하고 6월달에 예비군 훈련까지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인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는 제가 그날밤 꾸었던 꿈이 그 남자가 범인이라는걸 암시하는 일종의 예지몽 같은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기전에 받은 강한 충격에의한 개꿈인지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남자가 전화로 자수했다는 점인데요. 택시기사한테 뒤집어 씌울 생각으로 계획까지 세워둔 사람이 저와 대화한 다음날 바로 자수를 하다니. 역시 그날 택시안을 들여다 보더니 뭔가 본것일까요? 그리고 연행되던 날 저한테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요? 세번째, 마지막으로 가장 찝찝한 사실은 아직도 그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 꿈을 가끔 꾼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건의 숨은내막을 알고 싶지만 저 살기도 바쁜 이 각박한 세상. 오늘도 돈에 치이고 성적에 치이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제 주된 장르는 연애이야기인데 여름이고 해서 그 동안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제 이야기를 풀어놓아 보았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기회를 봐서 다른 글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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