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칭기즈칸의 선조

치즈송이 작성일 07.12.16 19: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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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칭기즈칸의 선조 (신화적 관점의 몽골 기원)


  몽골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선조는 누구일까? 그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는 『몽골비사』이다. 몽골학의 전문가인 박원길 교수에 따르면, 북방 유목민 가운데 오직 몽골만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을 남겼다고 한다. 그 책이 바로  『몽골비사』이다. 『몽골비사』에는 그들의 시조인 알랑-고아의 설화가 있다. 알랑-고아는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의 따님이다. 


  알랑-고아(alan-go'a)는 알랑 미인(美人)이란 말인데 몽골민족의 성녀(聖女)이며 이 이름에 들어간 ‘고아’는 곱다(beautiful)는 의미이고 ‘알랑’이란 우리가 자주 들어온 아랑 설화의 그 아랑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밤바다 밝은 금빛을 띤 사람이 겔(몽골인의 천막집)의 에루게(천막 위로난 창문)의 창문을 통해 빛처럼 들어와 나의 배를 비치자 그 빛이 내 뱃속으로 들어왔다. … 뱃속의 아이는 하늘의 아들이다 … 이 아이가 우리 모두의 칸이 되면 일반 사람들은 이 아이의 내력을 알게 되리라 (『몽골비사』)”


  위의 내용은 고구려의 유화부인 설화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코리족의 선사자(善射者)”라는 의미다. 이 선사자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한역된 말)로 보자면 주몽(朱蒙)이라는 말로 활의 명인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칭기즈칸의 선조인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고주몽(高朱蒙 : 코리족의 명궁)이라는 것이다. 


  『몽골비사』에서는 민족의 시조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알랑고아의 아버지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사냥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아름다운 여인 바르고진을

  아리ㄱ 오손(arig-u* : 청결한 강이라는 뜻)에서 만나 알랑 고아를 낳습니다.

    그런데 코릴라르타이-메르겐에게는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이 사냥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 방해하는 무리들이 나타납니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사람들을 모아 코릴라르(khorilar)라는 씨족을 만들어

  성스러운 산 보르칸으로 이동합니다.

  성스러운 보르칸 산은 땅이 좋고 사냥감이 풍부한 곳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코릴라르는 세계적인 몽골학자 가담바에 의하면, 코리족(고리족 : 고리국의 사람)에서 갈라져 나온 부족의 명칭이라고 하는데, 이 명칭은 주몽이 코리족에서 일단의 지지 세력을 이끌고 남으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운 뒤 국명을 코리의 한 나라임을 나타내기 위해 고(高 : 으뜸) 구려(kohri)라고 부른 것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를 보면 몽골의 건국신화와 고구려의 건국신화의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특집1]에서 주몽을 왜 범한국인들의 한 아버지의 표상이라고 했는 지 독자 여러분들은 이해가 될 것이다([특집1] 참고).


  참고로 『몽골비사』에 보면 알탄 칸(금나라의 황제)이 타타르가 자신에 복종하지 않자 칭기즈칸에 혐력을 요청하고 칭기즈칸이 타타르를 정벌한다. 이 때 칭기즈칸이 받은 칭호가 ‘자오드 코리(札兀忽里)’이다(『몽골비사』134절).


  여기서 말하는 자오드는 족장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코리족(고리족)의 족장이라는 말이다. 이 코리는 바로 고리, 고리국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칭기즈칸은 이 호칭에 대해 대체로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당시 칭기즈칸은 자오드(札兀) 이상의 제후인 ‘제후타오(招討) 코리’를 요청하였으나 금의 승상 옹깅이 그것은 대금황제에게 결정하도록 요청해보겠다고 하면서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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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①] 칭기즈칸


  『몽골비사』에는 세 개의 몽골 기원설화가 실려 있다. 맨 앞에 있는 늑대 설화는 돌궐의 것을 유사한 것이지만 나머지 두 개 즉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의 이동설화와 알랑 고아의 설화는 몽골 고유의 설화라고 한다(박원길 『북방민족의 샤머니즘과 제사습속』1998). 알랑 고아 설화는 고구려의 유화부인(柳花夫人) 이야기와 거의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한역하면 고주몽(高朱蒙), 즉 고리족의 명궁(名弓)이라는 말이다. 메르겐은 신라의 마립간(麻立干)과 같은 말이라는 견해도 있다. 


2. 몽골의 기원 (역사적 관점의 몽골기원)


  몽골은 8세기 무렵 아무르강(흑룡강) 상류인 에르군네(ergüne) 강[河] 유역에서 몽올실위(蒙兀室韋)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여, 당나라, 위구르, 토번 등이 붕괴 또는 와해되는 틈을 타서 지속적으로 서쪽으로 진출하여 11~12세기 무렵에는 오난(onan) 강[河] 일대까지 진출한다. 오난강으로 진출한 몽골은 게레이드(kereyid), 메르키드(merekid), 타타르(tartar), 나이만(naiman) 등의 부족들과 서로 다투면서 성장하다가 1206년 칭기즈칸을 중심으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계제국을 건설한다[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역사와 민속』(민속원 : 2001)].


  몽골의 기원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몽골은 동호(東胡)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쉽게 말하면 남쪽에 있는 동호는 거란이 되었고 북쪽에 있는 동호는 몽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당나라 때에 이르러 현재의 흑룡강 부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몽골 또는 모골 또는 머골(蒙兀)이라는 이름이 이 때 나타났다(屠寄『蒙兀兒史記』卷1 「世紀」).


  몽골의 원류인 동호계는 주로 해(奚 : 현재의 내몽골 지역), 습(飁) 실위(室韋 : 현재의 몽골 지역) 등이다(『新五代史』卷74 「契丹」; 『北史』卷94 「奚」).


  해(奚 - 여자노예라는 의미), 습(飁 - 큰바람) 실위(室韋 - 집에서 잘 다듬은 가죽) 등 말들이 대부분 욕설에 가깝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없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이 말들이 음차(音借 : 발음을 빌림)를 한 말이기 때문이다. 한족(漢族)들은 이렇게 주변민족을 항상 욕설로 부르고 있다.

 

이 한자말들은 서로 다르게 보여도 발음은 모두 [쉬] 또는 [쇠]에 가깝게 나타난다. 즉 해(奚)는 쉬[xī], 습(飁)은 쉬이[xí], 실위(室韋)는 쉬웨이[sh&igr*e;weí] 등으로 소리가 나서 범한국인을 의미하는 예(濊) 또는 예맥(濊貊)과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 가운데서 해(奚)는 거란이 되고 실위(室韋)가 바로 몽골이 되었다고 한다(상세한 해설은 『대쥬신을 찾아서』제2권 참고).


  『신오대사』는 거란과 동류인 “해(奚)는 본래 흉노의 별종(『新五代史』卷74 「契丹」)”, 『북사』는 “해는 거란과 이종동류로 본래 고막해(庫莫奚)라 하였는데 그 선조가 동호의 우문(宇文)의 별종(『北史』卷94「奚」)”이라고 한다. 요나라 태조가 해(奚)를 정벌하면서 “거란과 해(奚)는 언어가 서로 통하니 하나의 나라이다(『요사』권72 「종실열전」).”라고 한다. 요나라는 자신의 발상지인 현재 내몽골 자치구 빠린줘치(巴林左旗)를 상경(上京)으로 하였다(『契丹國志』권22 「四京本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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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②] 거란 발상지


  흉노라고 하니 낯설게 느겨지겠지만 흉노는 한국인(터키인 등)으로 분리 되기 이전 단계의 선민족으로 볼 수 있다. 『한서』에는 “(한무제는) 동으로는 조선(朝鮮)을 정벌하여 현도군과 낙랑군을 일으켜 흉노의 왼팔을 잘랐다(東伐朝鮮 起玄菟 樂浪 以斷匈奴之左臂 :『漢書』卷73 「韋賢傳」)”고 하고 있다(흉노와 범한국인, 몽골의 관계에 대해서는 『대쥬신을 찾아서』제2권 참고).    


『북사』는 “실위는 대체로 거란의 부류로서 남쪽에 있는 것은 거란이 되고 북쪽에 있는 것은 실위라고 불렀다 … 실위는 풍속이 말갈(靺鞨)과 같다(『北史』卷94 「室韋」).”라고 하는데 이 실위는 바로 이전의 오환․선비이며 그 후 거란․해․실위가 되고 후일 몽골이 되었다.


  필자는 『대쥬신을 찾아서』(해냄 : 2006)를 통하여 선비, 거란, 오환, 해, 실위, 말갈, 숙신 동호 등등으로 불러왔던 민족들이 실제로는 동일계열의 민족임을 고증하였다(예맥 = 숙신 = 동호). 그리고 이들 예맥, 숙신, 동호를 공통으로 부를 수 있는 말이 ‘쥬신(조선, 숙신, 직신, 식신, 주신, 제신)’이라고 하는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였다.


  실제로 단군신화에 가장 근접한 나라가 거란(동호)이자 요나라이다. 역사적인 기록에 나타난 중심지역의 위치도 일치할 뿐만 아니라 고고학적인 유물과 주거양식(구들 : 온돌), 묘장 양식도 그렇고 단군왕검의 샤먼적 통치가 가장 전형적으로 이뤄진 나라가 동호지역(후일 요나라)이기 때문이다.


『요사』에서는 “(거란 수도인 중경의 동부 관문인) 동경요양부는 본래 조선의 땅이며(東京遼陽府本朝鮮之地) … 요나라는 조선의 옛 땅에서 유래했으며, 고조선과 같이 팔조범금(八條犯禁) 관습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遼本朝鮮故壤 箕子八條之敎 流風遺俗 蓋有存者 :『遼史』卷49).”고 한다. 요나라는 정치적인 군장과 종교적인 수장을 겸하는 단군왕검(檀君王儉)식 통치를 보여준 대표적 경우로 『요사(遼史)』에 따르면, “(태조께서는) 천명을 받은 군주는 마땅히 하늘을 섬기고 신을 경배한다(受命之君  當事天敬神 : 『遼史』「耶律倍傳」)”라고 하여 범한국인들의 고유 신앙인 샤마니즘을 아예 국교(國敎)로 숭상한 나라이다[島田正郞 『遼朝官制の硏究』(1979) 321쪽 참고].


  그리고 위에서 나타나는 여러 민족들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지방적인 특색에 불과할 뿐 생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기원적으로나 다른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한족(漢族)이 동이(東夷)와 북적(北狄)으로 부르는 민족이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 공통의 명칭이 ‘쥬신’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사서들의 분석을 떠나 이제 한국의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을 살펴보자.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구려 또는 고려, 구려(句麗)는 고을 또는 나라를 뜻하는 고구려어 ‘구루(gulu)’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이것과 유사한 말로는 ‘몽골(gol)’, ‘말갈(gal)’, ‘돌궐(gual)’, ‘위구르(gul)’ 등을 들고 있다.  


  주채혁 교수(강원대)는 몽골이라는 명칭이 ‘맥고구려’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몽골비사』에 근거하여 보면 몽골의 시조인 알랑고아의 아들은 보돈차르인데 코릴라르타이 메르겐(고주몽)이 보돈차르의 외조부이므로 몽골족은 코리족의 외손(外孫)이 된다. 몽올(蒙兀)이라는 말은 보돈차르의 4대조에 이미 나오고 있다. 몽골은 성모(聖母) 알랑고아[고주몽(코릴라르타이 메르겐)의 따님]를 중심으로 세상에 태어난 종족으로 맥고구려(貊高句麗) → 貊(맥)고올리 → 貊(맥)골 → 몽골(?) 등의 순서로 음이 전화되었을 것이라는 게 주채혁 교수의 주장이다. 그리고 ‘몽골’에서 ‘몽’은 씨족의 이름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도 동몽골에서는 한국을 ‘고올리’라고 부르는데, 이 ‘고올리’에 ‘몽’을 합하여 몽고올리 즉 몽족의 고올리라는 것이거나 맥고올리(맥족의 고올리)가 몽골로 전화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주채혁 “몽골의 맥고구려 기원 문제”『몽골민속현장답사기』(민속원 : 1998) 251쪽].   


  몽골이 고구려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몽골 지역에서 고구려를 구성한 민족 즉 맥족의 고올리(고구려) 성읍 터나 구비전승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보이르 호수 언저리나 몽골 동남부, 몽골의 중서부인 셀렝게․아이막 등지에서 이 같은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1995년 손보기교수(단국대)는 동몽골 다리강가 지역에서 고구?컥?무덤과 성곽을 찾아내어 몽골의 원류와 고구려와의 연속성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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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③] 고올리의 성읍터

 

현재까지도 몽골인들은 한국을 ‘고올리(고구려)’ 또는 ‘솔롱고스’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인 학자 모리마사오(護雅夫)는 비문(碑文)에 남아있는 돌궐 카한 시조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신 가운데 ‘해뜨는 곳’으로부터 파견된 뫼클리[mӦkli : 또는 복클리(bӦkli)] 초원의 사절을 고증하였다. 모리마사오에 따르면 이 뫼클리(mӦkli)는 맥의 나라[맥국(貊國)] 즉 뫽(mӦk)의 엘리(eli : 나라) 다시 말해서 고구려임을 밝히고 있다[護雅夫 “いわゆるbӦkliについて - 民族學と歷史學と間 -『江上波夫敎授古稀記念論文集』(民族․文化篇) 東京. 1977, 229~324쪽]. 즉 돌궐인들은 이들 몽골인들을 아예 뫼클리(mӦkli) 즉 맥국(貊國 : 범한국인의 명칭)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말이다. 


  몽골학의 대부(代父)인 한촐라 선생의 문하인 박원길 교수는 몽골이라는 명칭의 기원을 ‘주몽신화’에서 찾고 있다.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주몽이 모둔곡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는데 한 사람은 마의(麻衣)를 입고 한 사람은 납의(衲衣 : 장삼)를 입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수조의(水藻衣 : 水草衣)를 입고 있었다. 주몽이 묻기를 “당신들은 누구시오? 그리고 이름은 무엇이오?”라고 하니, 마의를 입은 사람은 재사(再思)라고 하고, 납의를 입은 사람은 무골(武骨)이라고 하고, 수조의를 입은 사람은 묵거(黙居)라고 하였다(『三國史記』「高句麗本紀」).“


  박원길 교수에 따르면, 위의 사료에서 재사(再思)는 지혜를 뜻하는 jai 또는 그 복수형인 jaic 의 음역이거나 귀인(貴人)을 의미하는 jaic(an)으로도 추정된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골과 묵거인데 박원길 교수은 이 두 개의 글자를 ‘몽골’이라는 용어로 추정한다. 즉 무골(武骨)은 mogol[모골] > monggol[몽골] 의 음역으로 보이며 묵거(黙居) 역시 무거[moggo]의 음역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원길 교수는 고구려는 기원적으로 몽골과 유사성을 가진 민족으로 단언한다. 고구려란 원래 ‘꼬우리(꾸리)’[코리(khori)라고 읽히기도 함]족 또는 맥족(貊族)이 남하(南下)하여 만든 국가로 ‘꼬우리(꾸리)’족이란 동몽골의 광활한 대초원인 메네킨탈에 살던 민족이라고 한다. 박원길 교수는 ‘꼬우리(꾸리 : 고리)’족은 케룰렌강(江)과 할흐강(江) 유역에서 동북대평원 멀리 흑룡강(黑龍江)과 송화강(松花江) 일대를 경유하여 남하한 부족들이라고 한다.


  고구려 시조의 어머님인 유화부인은 중세 몽골에서 버드나무꽃(uda-checheg)으로 다시 복원되고 금․후금의 삼신(샤먼) 할머니인 포도마마(佛多媽媽)는 다름 아닌 버드나무(uda)를 의미한다. 몽골계나 부여․고구려․금(만주) 민족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 아무르강(흑룡강) 중상류 일대에서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는 나무는 버드나무밖에는 없다고 한다[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머니즘』(민속원 : 2001) 82쪽]. 


  일반적으로 칭기즈칸의 후예로 알려진 바이칼의 부리야트족들은 바이칼 일대를 코리(khori : 구리족 또는 고리국의 구성원)족의 발원지로서 보고 있으며 이 부리야트족의 일파가 먼 옛날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 부여족의 조상이 되었고 후일 고구려의 뿌리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에 따르면 이 종족이 한국인들과 유전인자가 가장 가까운 종족이라는 것이다.


  정재승 선생에 따르면 이런 얘기는 동몽골이나 바이칼 지역에서는 상식적인 이야기로 이 지역 사람들은 동명왕을 코리족 출신의 고구려칸(khan)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이 방향은 약간의 오류가 있고 오히려 몽골이 부여쪽(아무르강)에서 오난강 쪽으로 이동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몽골인들은 한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이 부분의 상세한 해설은 『대쥬신을 찾아서』제 2 권 19. 몽골, 또 다른 한국 - 원사(元史)는 또 다른 고려사 - 참고).


  범한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바이칼 호수에는 삼십 개에 가까운 섬들이 있고 그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이 바로 ‘알흔섬’이다.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져 온 곳이기도 하는데 이 곳에는 우리 민족과 관련된 이야기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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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④] 바이칼 호수에 있는 알혼섬에서 본 풍경  



3. 알랑고아의 고향, 아리수 (지리적 관점의 몽골 기원)


  이제 시각을 달리하여 지리적 관점에서 몽골의 기원에 접근해 보자.

  서울(seoul)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한강(漢江)의 순 우리말 이름은 ‘아리수(阿利水)’이다. 매우 아름다운 이름이다. ‘아리’는 ‘(깨끗하고) 큰’ 이라는 뜻이므로 ‘아리수’는 ‘맑고 큰 강’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이름을 버리고 한강(漢江)이라는 해괴한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동명성왕)은 원래 부여사람으로 동부여를 출발하여 보화산을 거쳐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건너 제사, 묵골 등을 만나 졸본(현재의 환인)에 이르렀다고 한다(『三國史記』「高句麗本紀」).


  여기서 엄리대수가 열쇠이다. 신채호 선생은 엄리를 큰 강을 의미하는 ‘아리가람’을 한자음을 빌려서 표시한 말이라고 한다(신채호「조선사연구초」『丹齋申采浩全集(下)』1982). 즉 ‘아리수’라는 말이다.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 시라토리쿠라키치(白鳥庫吉)는 엄리대수를 흑룡강으로 보았다[白鳥庫吉『塞外民族史硏究(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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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⑤] 아무르강(흑룡강)의 모습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만주 지역의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했던 시라토리쿠라키치는 압록강(鴨綠江)도 엄리대수라고 하였다. 시라토리쿠라키치는 엄리대수의 다른 명칭으로 ‘아리수’(阿利水[아리 강]), 오열수(烏列水 [아오리에 강]), 무열수(武列水 [우리에 강]) 등을 지적하였다(白鳥庫吉 「黑龍江の異名について」『塞外民族史硏究(下)』74-75쪽). 이형석(한국 하천연구소 대표)에 따르면, 압록강의 다른 이름으로는 안민강(安民江), 요수(遼水), 청하(淸河), 아리수(阿利水),  패수(浿水) 엄수(淹水), 엄리수(淹梨水), 엄체수(淹遞水), 시엄수(施淹水), 욱리하(郁里河), 비류수(沸流水) 등으로 기록되어 있고 중국에서는 ‘야루’(yalu), 또는 ‘아리, 야루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만 문제가 아니다. 칭기즈칸의 선조들이 떠나온 ‘아리ㄱ 오손(arig-u*)’이라는 말로 돌아가 보면 ‘아리ㄱ + 오손(물 또는 강)’에서 ‘아리ㄱ 오손(arig-u*)’도 결국은 ‘아리수’가 된다.


  또한 선비족의 원주지 가운데서도 또 ‘아리수’가 나타난다. 즉 타브가치[탁발선비(拓跋鮮卑)]는 북위(北魏 : 386~493)를 건설한 민족인데 이들의 원주지(原住地)가 원제국의 건설자 몽골의 원주지와 겹치고 (같거나 인근지역)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나 풍속이 거의 같다. 전문가들은 타브가치는 고구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족으로 보고 있다. 북위의 역사서인 『위서(魏書)』에는 사신이 와서 북위의 세조(世祖)에게 민족 발상지를 설명해주자 세조가 그 곳에 사람을 파견하여 축문을 새겼다는 기록(『魏書』「烏洛侯傳」)이 있는데 1980년 이 기록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장소 가까이에도 또 ‘아리수’가 있다.


축문이 발견된 장소는 내몽골 자치구인 후룬뷔일멍(呼倫貝爾盟) 어룬춘(鄂倫春) 자치기自治旗)의 천연동굴인데 이 동굴이 바로 아리하(阿里河)진 서북 10km 지점이라는 것이다[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머니즘』(민속원 : 2001) 97쪽]. 이 지역은 대체로 따싱안링산맥[대흥안령(大興安嶺山脈)]과 샤오싱안링산맥[소흥안령(小興安嶺山脈)]이 만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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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⑥] 아리수 관련 지도


  북위제국을 건설한 타브가치가 후일 요(遼)나라나 원(元)나라를 건설한 민족이다.  [그림 ⑥]를 보면 부여를 기점으로 마치 고구려와 북위가 서로 대칭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만약 부여에서 출발했다면 한 무리는 서쪽으로 한 무리는 남쪽으로 가서 ‘아리수’와 닮은 강가에서 터전을 잡다보니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

 

  여기서 정리를 해보자. 서울을 끼고도는 한강도 ‘아리수’요 압록강과 아무르강(흑룡강)도 ‘아리수’고 『몽골비사』에서 칭기즈칸의 선조들이나 선비족(鮮卑族)이 떠나온 고향도 ‘아리수’다. 『일본서기』에도 ‘아리나례하(阿利那禮河)’ 즉 아리수라는 말이 나온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 뿐만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평양이라는 지명이 원래는 베이징(北京) 부근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 지명이 베이징 → 만주 즙안(集安) → 평양(평안도)에서 계속 나타난다. 보르항산, 홍산, 적산, 붉은산, 아사달 등도 마찬가지이다(상세한 해설은 『대쥬신을 찾아서』제1권 4. 똥고양이와 단군신화 참고). . 


  전문가들에 의하면 유목민(기마민족)들은 어떤 곳에 살다가 불가피하게 이동해야하는 경우, 그 땅을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자신의 뿌리나 토템과 관련된 신성(神聖)한 지명(地名)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즉 유목민들은 이동할 때 자기 민족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들고 다닌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에 대한 집착도 없다. 이것은 유목민들의 중요한 특성이다. 하지만 이렇게 떠도는 민족일수록 뿌리에 대한 집착은 한층 더 강하다. 아무리 날라리 한국인이라도 인종 전시장인 미국에 가서 ‘한국인’임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고 유전자 분석법의 견지에서도 a 지역에서 하나의 민족이 b, c, d 등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경우, a 지역에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유전적인 변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사람들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이와 같이 민족이 이동할 때 그 땅이름도 가지고 다니는 경우는 비단 범한국인(범쥬신)의 역사(jüsin history)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앵글로색슨(anglo-saxon)의 경우에도 영국의 요크(york = yorkshire)를 미국에 옮겨온 것이 바로 뉴요크(new york)이고, 캐나다의 뉴잉글랜드(new england)도 영국의 잉글랜드(england)를 옮겨 놓은 것이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도 영국의 웨일즈(wales)를 옮겨다 놓은 것이다. 미국의 버지니아(virginia)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와 퀸즈랜드, 뉴질랜드의 퀸즈타운(queen‘s town) 등은 모두 영국 여왕을 기리는 땅이름이다.


  그렇다면 이 지명만으로도 민족의 역사의 일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범한국인(pan-korean 또는 pan-jüsin)은 오래전에 ① 알타이와 바이칼에서 출발한 후(흉노에서 분리) ② 황하 유역에 머물러 있다가 ③ 허베이(河北)․산둥(山東) → ④ 베이징(北京) → ⑤ 요동(遼東) → ⑥ 만주 → ⑦ 북만주 등으로 이동하여 부여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중국 사서의 기록에는 없지만 상당수가 알타이와 바이칼 지역에서 싱안링산맥을 돌아 바로 아무르강 유역으로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들을 한족의 사가가 볼 수 없으니 기록도 있올 리 없다). 이들이 합류한 시기가 b.c. 3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아무르 강유역까지 밀려간 범한국인들은 다시 ⑦ 북만주(길림 또는 농안지역) → ⑧ 압록강 중류(고구려)․어룬춘 아리하(몽골) → ⑨ 한반도 중부 ‘아리수’ 유역(반도부여) → ⑩ 일본 열도(열도부여) 등지로 이동해갔음을 알 수가 있다(상세한 분석은 『대쥬신을 찾아서』제1권 7장 참고). 

 

간단히 말하면, 한족(漢族)들의 압박이 거세어지자 다수의 범한국인들이 허베이에서 북만주로 이동하여 아리수(아무르강 또는흑룡강)을 제2의 근거지로 삼았다는 것이다[흑룡강은 좋지 않은 이름이니 앞으로 아리수로 불러야 한다. 흑룡(黑龍)이라니 마치 적(敵)그리스도나 사탄과 같은 느낌을 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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