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단종의 어머니는 현덕 황후 권씨다.
권씨는 세종13년에 13살의 어린나이로 대궐에 들어갔다.
이때 세자빈은 따로 있었으나.
권씨가 세자를 모시게 되었다.
그후 세자빈은 인심을 잃어 그 자리에서 쫓겨 나게되었고.
권씨가 세자빈이 되었다.
세자빈이 된 권씨는 첫 번째로 딸을 낳았고.
세종 27 년 7월 에 둘째 아들을 낳았으나 그가 바로 세종이었다.
그러나 권씨는 아깝게 그날 산고로 죽으니 그때나이 24살 이었다.
단종을 낳고 죽은 현덕 황후 권씨는 안산에 묻혔고, 그무덤을 소릉 이라 불렀다.
이후 세종이 세상을 뜨자,
문종이 왕위를 이었다.
그러나 문종은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않아 죽었고
12살의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그만 왕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성삼문, 하위지 등이 일어나 바로 잡으려 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나도 모두 죽임을 당하는데. 그들이 사육신이다.
세조는 이에 그치지 않고 현덕 황후의 동생과 어머니도 관련이 있다 하여 죽였다.
그리고 이미 죽은 지 오래인 현덕 황후 아버지의 지위를 내려 서민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어느 날 세조의 꿈에서 죽은 현덕 황후 가 세조를 죽이는 꿈을 꿧다.
세조는 현덕 황후 가 꽤씸해서 보복할 생각을 굳혔다.
이 날 밤 현덕 황후가 묻혀 있는 소릉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푸념하며 흐느끼는 곡성이 밤새도록 능에서 흘러 나왔다.
그런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세조가 보낸 무리들이 소릉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덕 황후의 관이 들려 지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궁리 끝에 제사를 지내고 다시 관을 끌어내니 신기하게도 쉽게 관이 들렸다.
관을 들고 근처 숲에다 그냥 버렸다.
나무꾼 들은 밤에 그곳이 무서워 잘 가지도 않았다.
몇일후 사람들이 치우러 왔다.
하지만 이번엔 모래 밭에 묻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파헤쳐진 능의 나무나 석재를 건드는 자가 있으면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번개가 쳤다. 또한 폭우도 쏟아지곤 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소나 강아지도 능에 들어가 석재를 건드리기만 하면
천둥이 치고 폭우가 내렸다.
능이 있는 안산 마을에는, 바다를 향해 있는 암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지내는 스님이 한 분 있었다.
어느 날 밤에 그 스님은, 여인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때가 밤인지라 어두워서 잘 않보였다.
스님은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울음소리가 나던 곳으로 뛰어가 보았다.
스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바닷가에 묻힌 현덕 황후의 관이 물에 씻겨 그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스님은 다급하게 염불을 외어 현덕 황후의 명복을 빌었다.
스님은 관을 근처 숲으로 옮겨 스님은 그 주위에있던 풀을 베어 관을덮고,
그것으로 부족하여 그 위에 흙을 덮고, 또 풀을 덮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풀이 무성하게 자라, 관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만 봉곳한 곳이 관이 있다고 짐작할 따름이다.
한편 세조는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죽여 버렸다.
또 꿈에 현덕 황후가 나타나 '내 아들을 죽였느니 너의 아들도 죽이겠다.' 라고 하니까.
꿈에서 깼다. 그후 하인이 동궁[세조의 아들] 이 죽었다고 했다.
세조의 아들인 동궁은 세조 2년 9월에 죽었다.
세월이 흘러 때아닌 천둥 번개가 치고 물난리가 났다.
세조가 점쟁이를 불러 왜 나라에 괴변이 있나 라고 물어보니까 죽은 현덕 황후 께서
노하셨다고 말했다. 세조는 큰일이군,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라고 하니까
현덕 황후 의 관을 찾아 문종 대왕과 더불어 모시는게 좋다고 했다.
세조는 할수없다는듯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했다.
막상 현덕 황후의 관을 찾으려니 까 어려웠다. 꿈에 죽은 현덕 황후가 나타나 가르켜 주니
이렇게하여 현덕 황후 는 문종이 묻힌 형릉옆에 정중히 묻혔다.
한번은 문종의 능과 현덕 황후 의 능 사이에는 소나무 몇그루가 있었는데
자라지 못하고 이렇게 말라 죽고 말았다. 백성들이 그 소나무 를 송두리째 배어네니까.
그후 나라의 괴변이 더이상 않일어 났다.